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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2 21:07
[기타] [대만글 번역] 대만의 한국 울산급 초계함 구매 사업 취소편
 글쓴이 : 노닉
조회 : 6,577  




최초의 대만 자체제작 군함 건조 계획이던 PFG-1 충호 계획이 사망한 후, 대만 해군은 광화 1/2호 군함 건조 계획을 1984년에 시작했다. 이 계획은 대만 해군의 중추를 맡을 2세대 군함 확보가 목표였다. 광화 1호는 3천톤급 미사일 구축함이자 하이앤드였고 광화 2호는 1500톤급 순찰선으로 로우급이었다. 이 둘이 하이-로우를 구성한다. 최종적으로 16대 건조가 예상되었다.

광화 1호로 뭘 뽑을지는 1986년 결정났는데 광화 2호는 확실치 않았다. 광화 2호 후보군은 한국, 미국, 아르헨티나, 벨기에, 서독(MEKO 140), 싱가포르 등에서 제출되었다. 1988년 말, 대만 해군은 서독의 MEKO-140, 남한의 HDF-1150과 HDF-2000(나중에 울산급이 되는), 보스퍼 75형 등을 최종 후보군으로 선정했다. 대만은 미국이 이스라엘에게 90년대 중반에 인도한 사르 5급 초계함도 고려했으나 사르 5급은 워낙 비사서 보류하고 대신 사우디의 SAU-5를 백업 플랜으로 정해놨다.

당시 해군 참모총장이었던 유화겸이 모듈식 설계를 채택했던 독일 MEKO-140을 가지고자 했으나 서독이 대만에 대한 무기 수출을 엄격히 금하자 실패했다. 독일의 MEKO 360, MEKO 140 그리고 TR-1700을 라이센스 생산하던 아르헨티나를 포함해서 라이센스 생산한 독일 배를 수출할 수 있었던 나라들조차 서독의 압력으로 대만 수출이 불가능했다. 독일 배 수입이 어렵다고 판단한 대만은 다른 옵션을 탐색했다. 남한의 울산급이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1988년 5월 5일, 새로 해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된 학백춘이 광화 2호에 울산급을 쓰고자 원했다. 5월 17일에는 학백춘이 165차 군사 회의에서 리덩후이 총통에서 남한이 건조한 울산급이 적절해보인다고 보고했다. 울산급을 제작한 남한은 당시까지만 해도 대만과 외교 관계가 유지되고 있었다. 이 때문에 울산급 유지를 위한 부품 수입이 쉽다는 이점이 있었다. 게다가 남한에게서 군함을 구입함으로서 한국-대만 간 관계가 돈독해지고 중공과의 관계는 멀어진다는 계산도 있었다. 그리고 대만이 울산급을 선택한다면 거기에 딸려서 올, 미국이 대만에게 수출 금지한 하푼 미사일이나 SLQ-25 어뢰 데코이도 딸려서 올 수도 있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중공군 공군과 잠수함 전력은 강하지 않다고 평가받았으며 대만 공군이 대만 해협의 제공권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미래에 대만 해군이 겪을 해전 시나리오는 1950-60년대에 있었던 해전의 경험에 기초해있었다. 5-60년대 해전에서 대만 해협을 무대로 중공군 소형함과의 교전이 있었다. 울산급은 강한 수상함 화력을 바탕으로 그런 소형 보트를 잡는데 최적화 된 배였다. 거기에다 울산급과 '광화 1호' 올리버 해저드 패리급은 같은 가스 터빈을 사용했다. 유지-보수 측면에서 매우 편리했다. 

기술-정치적 측면에서도 울산급은 메리트가 있었다. 1985년 이후로 남한은 대만에게 울산급을 세일즈하기 시작했다. 까놓고 말하면, 당시 대만 해군 관계자들은 울산급을 강하게 지지했다. 1986년. 대만 해군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울산급이 제작돤 조선소와 현대 조선소를 방문했었다. 1988년에는 대만 해군 본부 주도로 '기술적 제휴' 측면에서 울산급이 '유일한 옵션'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들은 울산급의 최대 속력이 30노트라는 빠른 속도(속도만큼은 후보군들 중 최고였다)라는 걸 강조했다. 한국을 여러번 방문한 대만 해군 관계자는 한국 정부와 해군, 심지어 조선소까지 울산급을 세일즈하는 것도 있지만 한국과 대만 관계가 돈독함을 이유로 꼽았다.




대만판 울산급 

아주 오랫동안, 해외 사람들은 한국이 울산급을 대만에게 판매하려고 했을 때 유럽이나 미국제 장비가 들어간 걸 팔려했다고 믿고 있다. 네덜란드가 만든 SEWACO 전투 시스템, 이탈리가아 만든 썅열 40미리 기관포, 미국 하푼 디함 미사일과 AN / SLQ-25 어뢰 데코이까지. 근데 사실은 다르다. 

한국이 대만에게 판매하려고 했던건 그냥 선체만이었다. 빈 깡통 수준이었다. 하지만 대만한테는 그 빈 깡통에 장비를 채워놓을 계획이 있었다. 40미리 보포스, 대만과 미국이 무진 3형 구축함에 장착하려고 합동 개발한 H-930 MCS 모듈 전투 시스템, 87년에 양산 시작한 슝펑-2 대함미사일까지. 그러므로 빈 깡통은 큰 문제가 아니었다.

장비 또는 선체 설계와 상관없이, 그러한 "대만 버전" 울산급과 한국 버전 울산급은 크게 달랐다. 일단 40미리 보포스가 한국판에는 1개 달리는데 대만판에는 미사일 재머를 빼고 빈자리에 보포스를 1개 더 넣어 2개를 달았다. 원판에는 76미리가 2개 있었는데 1개 빼고 그자리에 슝펑-2 발사관을 설치했다. 울산급 전투 시스템을 대만 중산 과학원이 만든 전자전/사격통제 시스템으로 대체한다. AN / SLQ-25는 장착 여부가 확인되지 않았다. 가변 심도 소나 장착도 목표 중 하나였다. 

정리하자면 대만판 울산급은 원판보다 확장된 초계함으로 한국이 만든 것보다 전투 능력이 더욱 늘어나도록 개조되었다. 만약 다중 심도 소나까지 장착된다면 대만-울산급의 대잠 성능은 일취월장할 것이었다.

88년 6월 1일, 예창통이 해군 참모총장으로 임명된다. 예창통은 광화 2호 계획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남자다. 이 사내가 등장한 이후 잘 굴러가던 울산급 도입은 180도 바뀌게된다.




비틀어지다

예창통이 대두되자마자 그는 그는 한국과의 계약서에 서명하지 않았다. 유화겸과 달리 그는 울산급을 공적인 자리에서 디스하고 나섰다. 그는 울산급을 2류, 3류급 카고쉽이라고 비판했다. 6월 27일에 대만 일간지에 한국에서 건조한 울산급이 광화 2호 계획에 채택될 것이라는 기사가 실렸다. '한국이 만든 전함이 대만 전함이 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대만의 민심이 요동쳤다. 여당 야당 가리지 않고 울산급 도입을 비판하고 나섰다. 여론과 학계, 미디어까지 논란에 가세했다. 울산급 구입은 정치적 폭풍으로 떠올랐다. 

많은 대만인들이 울산급 구입을 반대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한국이 대만의 라이벌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시장에서 한국과 대만은 항상 충돌했다. 건함 사업도 둘이 거의 동시에 시작했다. '왜 한국 배는 되는데 대만 배는 아니되는가?' 이게 대만인들이 가진 생각이었다. 한국 제품을 사는 것은 국민 감정을 상하게 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당시 대만인들의 마음 속에서 한국은 가난한 나라라고 인식되어왔다. 한국 제품은 '저급'하다는 인상이 짙었다. 한국의 건함 사업은 오래되지 않았으며 대만하고 별반 다를게 없었다. 울산급 설계도 뒤떨어진 면이 많았다. 오리지널 울산급은 오직 수상함 전투에만 올인한 것으로 대공/대잠 능력은 전무했다. 헬리콥터 뎈이 없다는 것도 비판받았다. 88년 10월 28일, '2세대 군함 건조를 위한 제안' 세미나에서 100명이 넘는 전문가, 대만 국립대학 건함 학부 교수, 업계인 등이 울산급을 비판했다. 

'대만은 건함 사업이라는 측면에서 한국보다 발전한 나라다. 배 설계라는 인력적 측면에서도 대만은 남한보다 열등하지 않다. 여러 사항을 고려해 봤을 때 대만 조선소에게 맡기지 않고 남한 손에 맡기는 건 온당치 못하다' 는게 저들의 주장이었다. 11월 15일, 대만 국방장관이 고위급 인사들을 불러 울산급 구매 여부를 가지고 논의했다. 여론이 저런데 입법부가 울산급 구매 예산을 안 통과시켜 줄 것 같다는 판단이 우세했다.

아직도 계엄령이 해제되지 않았고 국민당의 엄정한 통치가 이뤄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했을 때 언론, 한계, 국민들까지 단체로 발광하여 국방부와 해군의 체면을 손상시킨 건 이례적이었다.

1988년 10월, 대만 해군본부는 광화 2호에 울산급을 쓴다는 걸 공식 결정했다. 최초 6척은 한국에서 건조하고 남은 10척은 대만 CSSC 조선소가 1척당 2천억 원을 받고 만들기로 합의를 봤다. 그러나 여론이 반대했던데다 2천억 원이라는 가격이 뭘 기준으로 측정되었는지 논란이 발생하면서 지연된다. 당시 대만과 한국은 세부 사항에 합의하지 못했는데 마침 한국 정부가 레짐이 교체되면서 정치적으로 혼란했던데다 한국 조선소들이 파업 중이었기 때문이다. 

계약이 지연된 틈을 타서 88년 12월 대만은 프랑스의 라파예트급으로 시선을 돌린다. 그 때 한국 조선소들은 파업 중이었다가 한국 경찰에게 힘으로 강제 진압당하고 있었다.




폭파되다

울산급이 혼란한 틈을 타서 프랑스가 갑자기 등장하여 라파예트급을 들이댔다. 라파예트급은 극히 모던한 디자인에 울산급보다 고도의 기술이 적용된 군함이었다. 학백춘은 석연치 않게 울산급에서 라파예트급 구매로 마음을 바꾼다. 89년 6월 말에 프랑스가 라파예트급 견적서를 대만 해군 본부에 제출했고 10월 19일에 대만 해군본부는 공식적으로 광화 2호를 울산급에서 라파예트급으로 바꾸는 결정을 내린다. 현대 중공업은 대만 해군본부에 이게 어찌된 일이냐며 2차례 서신을 보냈지만 대만 해군본부는 지금까지의 계약에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생각했다. 

한국과 대만은 12회가 넘도록 울산급 구매 협상을 벌였지만 증거로 삼을만한 서류에는 그 누구도 사인하지 않았었다. 대만 해군본부가 고용한 대만 변호사는 서면 서류가 없으니 빠져나갈 구멍이 많다고 조언했다. 현대중공업은 최초 2척만 한국에서 만들고 남은 14척은 대만에서 만들어도 된다고 최종 제안했지만 이미 대세는 정해진 뒤였다.

어쨌거나 울산급 구매 계약은 완벽히 파토나고 빈 자리를 오늘날의 캉딩급이 채웠다. 1990년 1월, 프랑스는 중공의 압력을 받아 라파예트급 수출을 연기했다. 현대 중공업은 다시 희망을 가지고 울산급을 데리고 와 대만의 문을 두드렸지만 돌아온 건 차가운 반응뿐이었다. 91년 6월 말 프랑스가 중공의 압력을 이겨내고 대만과의 수출을 재개하자 울산급과 대만과의 인연은 영구적으로 끊어지게 되었다.

대만이 한국에서 제조된 울산급을 사려한다는 사실은 대만의 건함 사업에 대한 국제적 이미지를 무디게 만들었다. 대만과 한국 양국은 1970년대에 건함 사업을 동시에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건함 서업 초창기 때 한국 정부에서 조선소에 1억 달러를 투입했다. 이자율은 제로였다. 대만의 경우, 한국의 2배인 2억 달러를 조선소에 투입했으나 한국이 무이자로 준 것에 비해서 대만은 산업 대출 금리에 12%의 이자율을 매겼다. 한국이 돈을 때려박아 배 값을 떨어트리려 했다면 대만은 맹목적으로 배 가격을 인하하기 보다 배 품질을 높이는 쪽으로 나아갔다. 

대만이 남한에게서 울산급을 사려고 결정했을 때, 국제 사회는 대만의 건함 사업은 너무 후진 나머지 한국으로부터 군함을 구입해야 할 상황이다' 라는 생각을 떠올렸으며 대만 조선 산업의 경쟁력이 매우 낮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말았다. 





번역 내용은 반의 반만 믿어라.


그놈의 국민적 감정, 한국은 대만보다 열등하며 대만이 한국보다 못할 게 뭐라는 반발심이 울산급을 취소시키고 말았다. 울산급 대신 구입한 라파예트급이 대만 해군을 미래가 안 보이는 XX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흡족함을 느낀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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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망치 17-11-12 21:16
   
울산급 이면 대구급 다음의 차세대 함정이죠?
KDDX 차세대 미니 이지스함 맞죠?
아 그냥 울산급 이라고 하면 옛날 버전도 있어서 배치로 기준을 나누었군요
     
노닉 17-11-12 21:17
   
1980년대 건조한.... 지금 퇴역하고있는 울산급 말하는거에요....
전쟁망치 17-11-12 21:20
   
미니 이지스함이라고 불리우는 KDDX 는
실전 배치 되면 무슨급이 라고 불리 울까요?
6000톤 이니 부산급이 될려나

포함(1200톤)-울산(2300톤)-인천(3200톤)-대구(3500톤) 이 순서이니 이제 남은건 부산밖에 없어 보이는데
     
하나둘넷 17-11-12 21:51
   
KDDX는 초계/호위함이 아닙니다.

광개토대왕급(KD-1)이나 충무공이순신급(KD-2)를 대체하게 될 구축함입니다.

초계/호위함은 전통적으로 한국의 도시/도 등 지역명을 붙여왔고
구축함은 역사적 인물을 붙여왔습니다.

http://kookbang.dema.mil.kr/kookbangWeb/view.do?ntt_writ_date=20161118&bbs_id=BBSMSTR_000000001121&parent_no=1
          
전쟁망치 17-11-12 22:33
   
아 저의 무지함을 깨우쳐 주셔서 감사 합니다.
새로운 구축함 후보기종 이군요
          
테스크포스 17-11-13 00:31
   
음...조금 다르지 않나요 kd-2를 대체하는게 아니라 기존 세종대왕급 이지스함의 건조비 및 유지비를 감당하기 힘들어 차후 6대를 완편하고 나머지는 미니형 아지스함으로 건조한다는 목적이지 kddx가 완편된다고 kd-2인 이순신급을 패기하는게 아닙니다..오히려 이순신급을 더 찍으면 찍어야죠;;구축함과 이지스함이라는 엄연히 임무체계가 다른 기종이라고 압니다
               
하나둘넷 17-11-13 02:17
   
함정운용은 기본적으로 25~30년정도 보면 됩니다.

KDDX 이야기가 나오는 와중이지만, 실질적으로 대구급/인천급 배치3와
이지스함 배치2 3척등이 건조가 어느정도 마무리 시점에 들어가는 2020년대
초중반이 되어야 실질적인 초도함의 윤곽을 보실 수 있습니다.

KD-1의 초도함이 2000년 전후로 배치되었고, KD-2는 2003년부터 2008년사이에
배치되었습니다.

문제는 KD-1도 그렇지만 특히 KD-2의 경우 과도한 임무스케쥴로 인해 함 노후화가 좀 많이 진행된 편입니다.

KD-1 KD-2 공히 오버홀 및 부분성능 개량을 고려하고 있습니다만 202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 기본적인 함작전수명주기인 25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함 개수는
함운용을 40년 쓸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적정 함 수명은 25~30년이면 신조함으로
교체를 해줘야 합니다. 

예산상황이 빠듯한 해군이다 보니 호위함(울산급)들의 경우 30년 넘어서도 사용해왔기에
급한 FF(호위함)들 부터 우선적으로 교체를 해왔고 혹사중인 KD-1 KD-2도 부분개량
을 통한 부분수명연장과 함께 사실상 세대교체를 준비해야하는 시기입니다.

KD-1 KD-2가 세대교체를 진행하게 될 2025년에서 2035년 사이를 목표로 KDDX가
연 1척 수준으로 건조가 진행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KD-1 KD-2 역시 KDDX 배치와
함께 교대로 퇴역이 진행되겠죠. 순차적으로..

(이시기에 해군이 건함할 함정들은 장보고 3 배치 1, 2급과 세종대왕함 배치2와 인천급
배치3등 상당히 예산이 소요되기 때문에 KDDX를 동시에 여러척 찍어내지를 못합니다.)
               
하나둘넷 17-11-13 02:33
   
그리고, 이지스함이라는 별도의 등급이 따로 있는 게 아닙니다. KD-1, KD-2나 KD-3는
DDH, DDG로 구분될 뿐 둘 다 크게봐서 구축함입니다.

그리고, 건함계획을 좀 더 이해하셔야 할 것 같은데...

KD-3 배치2만이 아니라 KD-3의 기존 배치1 물량도 탄도미사일방어 (BMD)개수를 고려
하고 있습니다.

즉, 최상위급 KD-3 배치1, 2 6척은 기존의 함대방공구축함에서 더 나아가 탄도미사일 방어
를 중심으로 한 방공구축함 포지션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해군은...

이렇게 될 경우 탄도미사일 방어임무를 수행하는 와중에 각 지역함대 및 기동함대의 함대
방공망이 옅어질 수 있고 이에 대한 함대 방공의 부담을 덜어줄 필요가 있기 때문에
기존 구축함들인 KD-1, KD-2를 이어서 들어올 KDDX에 미니이지스라는 별칭 만큼의 함대
방공능력을 부여해주겠다는 겁니다. 

이지스라고 하니 대단한 이름으로 보이지만 결국 방공구축함의 록히드마틴사제 시스템 이름일 뿐 현대 및 근미래를 위한 신조 구축함들은 임무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저마다 방공구축함으로써의 능력이 기본적으로 부여되고 있습니다.

KD-1, KD-2가 오히려 도입당시 기점으로도 시대에 조금 쳐지는 능력의 방공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기준에도 조금 모자랐는데 2030년대 이후를 책임져야할 구축함들에 이순신급 수준을 더 늘릴 이유는 없죠.

KD-1, KD-2급정도의 성능은 인천급 배치1, 2, 3의 성능향상으로 어느정도 격차가 많이 줄어들었거나 줄어들 예정이기에 기존 DDH들의 성능을 더 올리는 게 맞습니다.
                    
테스크포스 17-11-13 16:24
   
친절한 설명 감사 결국은 kddx로 기존 kd-2의 임무도 병행한단 말이네요 말씀하신 건조계획은 당연히 이해하고 있는 부분이고요^^:
입싱 17-11-12 21:41
   
울산함은 당시 한국의 열악한 해군사정에 특화된 함체였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2000톤급인데 개념은 호위함에
고속정도 잡고, 미사일도 쏘고, 함포도 쏘고, 대신 소나 생략, 대공 생략, 헬기 생략.
설계 상 계량한다지만,
누가 봐도 가난한 나라의 군함으로 보이죠 -.-
미술관 17-11-12 21:55
   
흥미로운 번역입니다.
특히 대만 해군과 한국 해군의 커넥션를 설명하는 좋은 사례 중 하나라고 봅니다.

지금 이 이야기에 보태서,
대만 해군이 울산급 도입을 라파에트로 돌리게 된 계기만 좀 더 부연하고 싶군요.
우선 첫번째, 1983년 5월 5일 중공의 민항기가 하이재킹으로 춘천의 캠프 페이지 미군 기지에 불시착한 일이 있었는데요. 이 민항기에 꽤 중요한 요인들이 타고 있었던 모양으로 어찌저찌하여 대한민국과 중공이 한국전 이후 최초로 외교적 접촉을 하게 되는데 여기서 당시엔 우방이였던 대만으로의 망명을 요구하는 6명의 납치범들을 대만의 요구보다 중공의 요구에 부응해, 민항기는 중공으로 송환하고, 국제법에 따라 징역형을 선고합니다.

일단 이 납치범들은 1년 후 집행 정지로 대만에 귀순?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대한민국과 대만의 관계에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1985년 3월 22일 역시 중공의 어뢰정에서 선상 반란이 일어나 한국측 영해로 표류하게 되었는데 역시 반란 주모자 2인이 대만으로의 망명을 요구하였고, 대만 정부 측에서 매우 강력하게 함정과 승조원을 대만으로 송환할 것을 요구하게 되는데요. 이에 대한민국 정부는 함정과 승조원(사망자, 반란 주범들까지 통째로) 전원을 중공에게 송환시킵니다. 이로서 대한민국 정부와 중공은 차후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데 중요한 교섭 창구(홍콩 신화사 지사)와 신뢰를 쌓게 되고 대만과의 관계는 이때부터 극렬히 분리되기 시작합니다.

이후 대만은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에 대해 맹렬한 비난을 쏟아 내게 되고 한-중 수교가 임박하자 스스로 단교하고 뛰쳐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경과가 위에 상기해 주신 대만의 울산급 도입 사업의 경과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
대한민국과 대만의 외교사와 더불어 흥미로운 무기 도입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좋은 번역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건필하시길.
     
꾸물꾸물 17-11-13 11:03
   
스스로 단교하고 뛰쳐나간게 아닐텐데요. 한중수교 일주일전까지만해도 단교관련 내용을 문의한 대만(대만은 단교를 예상하고 있었지요. 한국이 처음도 아니고...)에 그럴 일 없다하고, 한중수교 발표되고나서 삼일인가 여유주고 자산 정리하고 나가라고 했다지요.

결국 대사관 건물 자산 정리 실패하고 한국 정부가 이를 그대로 중국에 인도한걸로...

미국에서 대만이 대사관 건물을 특정 업체에 1달러인가?에 넘기고 그걸 임대해 쓰는 형식이던가 하는 방법으로해서 날아가는걸 피했는데, 한국에서는 그 방법도 못 쓰게 했던지, 시간상 못 썼던지 했다고...
          
태강즉절 17-11-13 12:04
   
오잉!!! 근사치로 알고계시는분을 밀게에선  첨 뵙습니다 그려..ㅎㅎ

단교전..십여명으로 구성된 특사단이 비밀리에 청와대를 방문해 노태우와 단교 협의를 합니다.
그리하여 6개항에 합의를 이루고 ..문서에 서명하죠
(하다못해  명동 대사관은  대한제국과 청이 매매계약한  문서까지 들고왔으니여)
단교시 사전 통보 약속을 무시
더욱 대만것들이 대륙에 심어논 간자들의 첩보를 접하고 계속 확인을 하였으나..
절대 그런 사실없다고 부인으로 일관을 하였고..
북경과 수교 당일에도 확인요청을 했지만...부인 .불과 1시간후 전격 성명 발표와 동시..
3일이 아닌...그 즉시 중화민국 자산을 동결 대륙으로 이양한..
그래서 지금 명동 한복판 금싸라기 땅에 꼴도 보기 싫은 오성기가 날리게 만든...
당시 수교가 급했던것은 대륙넘들..천안문사태 이후 외교적 돌파구를 찾던..
그렇게 급박하게 서둘렀던건...한국측 참여자가 거액의 돈을 먹었다는 첩보도 ...ㅎㅎ
아무리 대만것들이 단교후 하는 꼬라지가 밉더라도 팩트는 팩트로 존재해야 한다는거..
우리네 가오가.... 왜놈들처럼  뭔 사안에 대해 왜곡질 구라질하는걸 따라 할순 없잖수...ㅎ
     
미술관 17-11-13 12:46
   
단교 과정에 그런 비사도 있었습니까? ^^.
두 분 말씀이 맞는 지는 관심있으신 분들께서 직접 외교부를 통해 확인하셔도 될 듯 하네요.
저는 처음 듣는 얘기라서요...

다만 대만이 대한제국과 청국 간 공식 외교 자산에 대해 자신들에게 소유권이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도 납득하기 매우 어려운 사안으로, 대만은 멸만흥한의 신해혁명을 통해 청을 엎고 중원을 차지한 것일 뿐 대만이 청의 법통을 승계하였거나, 청의 국유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근거는 없으며, 차라리 청실록이나 만주원류고에서 청 황족들이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그들이 신라의 후예라고 한다면 오히려 중원에 대한 종주권 및 소유권의 법통과 그 승계는 신라 고유의 영토인 한반도 남부를 점유한, 즉 대한민국에 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합니다. ^^.

이것이 대만이 스스로에 대해서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역사적 사실일 텐데요. 아직도 시모노세키 조약 상 대만섬에 대한 영토 주권 해석조차 스스로 명확히 확정하지 못하는 집단이 국제법을 해석하려고 하다니요? 꽤 재밌는 상황입니다.

대만은 그저 청말기 부패한 군벌 집합체일 뿐, 그 어떤 중원 지배국의 정통성도 법통도 갖지 못하는 괴뢰 집단일 뿐입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고 있기에 현재의 대만이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네요.

더 우스운 것은 이런 상황을 국내 일부 세력들이 오히려 대만을 두둔하며 대만에 없던 정통성을 부여하려고 한다는 것인데요. 그들이 바로 원잠을 추진하려는 세력들과 겹칩니다. 손원일을 추종하는 세력들이기도 합니다. 여튼 역사적으로 꽤 재미있는 상황입니다. 팝콘과 함께 즐기셔도 될 듯 합니다. ^^.
옵하거기헉 17-11-12 22:23
   
ㅋㅋㅋㅋㅋ
태강즉절 17-11-12 22:42
   
부산 왔었던 대만 해군 영관급 중 하나는..후일 코스트가드 댓빵까지 진급하고(해사 출신들.. 보직 변경 가능)
전역후..뭔 방송국 사장에까지 올랐는데..
방한 당시 만리장성 쌓았던...업소 처자를 못 잊어..가슴속 깊은곳에 묻어두었다가
한국인을 만나면..그 추억을 꺼내들고..."그때가 좋았었지!"..라고 반추했다는..ㅎㅎ

비틀린......사연도 복잡하고 내용도 심도는 있으나...^^
당시 대만은 계엄령하의 5권 분립 ...국민당 1당 철권통치 시절..
단지...총통 장경국이 급사하는 바람에..구색으로 안배했던 섬출신 교수 부총통 이등휘가 승계하는 바람에..
파벌간 극도의 정치적 혼란 상태였다는거.
입법원이고 해군이고 나발이고..(끝발없었다는)
당시 무소불위 파워는..종신직..중화민국 국민회의가 쥐고있었다는거..
(총통... 선출,탄핵,..입법원 해산..행정부 탄핵및..그 법안의 비토권등...
15인 상임위원이- 이넘들이 국민당 상임위원 겸임-  과반투표 후 정식 상정..총통 해임 가능)
이 와중에 섬출신 애들이 슬슬 세를 확장하니..
그 과정에서 무장 도입하네 마네는..그저 파벌간 이익에 따른 국민당 내부  당파 싸움의 부산물이란거.
그 좀 지난 언저리쯤..해군 참모총장이 해변가에서 대가리 총맞고 변사체로 발견되기도...(암살했다는 루머)
그냥 헤게모니 쟁탈 권력 투쟁 콩고물에...이리저리 갈짓자 행보를 한것 뿐이라오..
배만 그런게 아닌..대만군 현대화 계획 전체가 그랬을거요..
당시만 해도 혐한같은건 없었을거요..매우 친밀했소이다 나름..(지들이 형님이라고 했지만)
왜?..
당시 대만 수교 20여개 국가중..그나마 국가다운건 한국밖에는 없었으니...항상 한국에게는 반수 접어줬다는.
뭐 그렇다는 잡설입네다..ㅋ
태강즉절 17-11-12 22:52
   
대만과 한국간 단교에 이르는 내부 야그들..
팩트로다가 나름 많이 알고는있지만..세세하게 씨부려보이..지금 물증도 없고..시비나 당할까..우려도 되고..ㅎ
시중에 이렇다 저렇다 말들과 설들은 많은데..사실 틀린게 많아요..
대만넘들... 억울할점도 졸라리 많겠지만...
그런 빌미를 사리사욕으로 일부 제공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
좌우간... 박철언이와 황병태...이 두 썁새들은 한국 외교사에 똥탕을 튀겨놨다는..
실제 대만에서 빨수있었던 ...국토 개발 자금 5백억불과(한국 배정) ..무장 수출 30억불을 막았다는...
돈은 돈대로 빨고..난 후 단교했다면..^^더 욕먹었을라나?..ㅋㅋ
스크레치 17-11-12 23:12
   
덕분에 아주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테스크포스 17-11-13 00:33
   
지금은 참..이제 감히 비교해선 안될 정도로 차가 벌어졌으니;;격세지감..이라는 표현을 쓰기엔 그닥 오래된 이야기도 아니네요..정말 요즘 우리가 아무렇지도 않게 kfx다 흑표다 이지스함이다 핵추진 잠수함이다 3천톤이다 하지..정말 저때만해도 참;;하여튼 우리나라 대단합니다
숲속의소녀 17-11-13 00:34
   
어머나.. 정말 좋은 글이네요. - 중국과 대만에 관한 좋은 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사무치도록 17-11-13 01:21
   
굉장히 디테일 하넹... 오우
아잉없나 17-11-13 01:49
   
너무 재미있네요.  추천
일지매 17-11-13 08:41
   
그냥 한마디로 정리하면 대만이 쓸데없이 자존심만 내세우다 폭망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둥굴레차 17-11-13 11:04
   
잘 봤습니다. 추천.
꾸물꾸물 17-11-13 11:04
   
라파예트도 선체만 들어요고 내부는 대만이 알아서 채우는 것이었던가 그렇지 않았던가요?

급 드는 생각이...

미국이 중국에 북한 핵 제거 못하면 대만에 핵 갖다 놓는다!? 하면... 중국이 북한을 조지던지,

대만을 조지던지 할 듯.
유랑선비 17-11-14 18:08
   
지금 대만은 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