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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1-12 21:42
[기타] [대만글 번역] 대만의 잠수함 구입 잔혹사
 글쓴이 : 노닉
조회 : 7,339  


上편



잠수함이 대만에 가지는 전략적 가치

대만 열도의 작은 땅 안에 주요 군사 지휘소, 공군 비행장, 해군 항구 등이 있는데 대부분이 중국 본토 서쪽 해안과 마주보는 곳에 위치해있다. 이 둘을 오직 대만 해협만이 갈라놓고 있다. 대만-중국 전쟁이 발발한다면 대만의 주요 항구, 공항, 레이더 기지, 지휘소 등이 즉각 공중에서의 공격에 노출될 것이다. 중공군은 물량뿐만 아니라 공군의 현대화까지 꾀하고 있으며 대만을 겨냥중인 300mm 장거리 다련장 또한 위협적이다. 비행장이 쉽게 털리는 것과 전투기 숫자 부족을 감안하면 대만 공군은 대만 해협에서의 제공권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대만 수상 함대는 사태 초기에 일찌감치 자리를 피해서 전력을 보전할 수는 있겠지만 머지않아 중공군 해/공군에게 위치를 노출당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만에게 남은 것은 오직 잠수함뿐이다. 물 속에서 그나마 효과적으로 대만 해협에서의 공격 작전을 수행할 수 있다. 대만 섬으로 몰려드는 상륙 함대를 매복하여 후려칠 수 있다. 대만 공군은 대만 해협 위에서 싸우느라 바쁠테고 수상 함대는 중국 공군의 공대함 공격을 피하느라 고생할 것이다. 남은 건 잠수함밖에 없다. 전투기와 배는 레이더에 쉽게 걸리지만 수중에서 잠수함을 탐지하는 건 극히 어렵다. 수중 전장 환경에서 잠수함의 숫자 및 동향을 파악하기 무척 힘들다. 잠수함이 잠재적 위협으로 존재하는 한 적 해군은 마음놓고 활동하지 못할 것이고 항공모함까지 동원해가며 막대한 양의 자원과 시간을 대잠 작전에 쏟아붓지 않으면 안 된다. 적 보급을 끊고 수상함을 사냥한다는 점에서 잠수함은 불확실성에 근거한 가장 강력한 무기 체계이며 전략적 억지력이다. 잠수함 몇 대 잡자고 함대 전체가 바다를 싸돌아다녀야 한다. 

1982년 4월, 영국과 아르헨 간의 포클랜드 전쟁이 좋은 사례다. 당시 아르헨 해군은 겨우 TR1400 209 디젤 잠수함 2척을 보유했을 뿐이고 포클랜드 전역에는 1척만 투입되었다. 5월에 전쟁이 끝날때까지 영국 원정 함대는 전쟁 내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대잠 작전에 쏟아부었다. 이 때문에 영국군의 계획이 지연되거나 바뀌었다. 영국 해군은 수백발의 어뢰와 폭뢰를 존재하지도 않는 적에게 퍼부었다. 때문에 고래만 죽어나갔다. 영국 해군은 남대서양의 바다 환경에 익숙치 못했기에 자기네들이 보유한 대잠 장비를 효과적으로 쓰지 못했다.

그런 반면에 영국 원정군이 상륙 작전을 시작하기 전, HMS 컨쿼러 공격 원잠이 아르헨티나 순양함 제너럴 벨그라노를 침몰시켰다. 이 일은 아르헨 해군의 전쟁 의지를 꺽어놨으며 아르헨 수상함대는 전장에서 이탈하여 전쟁이 끝날때까지 항구 안에 틀어박혔다. 따라서, 포클랜드 전쟁은 잠수함의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설명하기에 충분한 사례다.

이 때문에, 대만 해군은 충분한 규모의 잠수함 함대 설립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그러나 대만에게 호의적이지 못한 국제 환경과 잠수함이 가지난 전략적 가치 때문에 대만은 난관에 부딫쳤다. 지난 수십년간 대만의 잠수함 도입 노력은 항상 좌절당했다. 1980년대에 화란국으로부터 당대 최신급 디젤 잠수함 2척을 구입하긴 했으나 나머지 구매는 중공의 압력으로 좌절당했다



미국으로부터의 구매 시도

1969년 10월 이후로, 장징궈 총통은 대만-미국 군사 외교 회담때마다 줄기차게 잠수함을 요청했다. 10-12대 구입을 원했다. 그러나 미 합중국은 단호하게 요구를 거절했다. 미국이 대만에게 상당한 양의 수상함을 공여해주긴 했으나 잠수함은 별거 없었다. 미국은 2대전 때나 쓰던 텐치급 잠수함 2척을 74년에 넘겨줬는데 이 잠수함들은 오직 대잠작전 훈련용으로 운용이 제한당했으며 전투 능력이 거세된 채 넘겨졌었다.

'핵'의 시대가 도래한 후 미 해군은 잠수함 기술 수출을 단호히 거절해왔다. 특히 선체 건조와 소음 줄이는 기술 관련해서. 당시 미국은 선진 잠수함 기술이 소비에트에게 넘어가는 걸 두려워했다. 94년 가서 대만이 잠수함 달라고 2번째 요청을 해왔을 때 미국이 좀 호의적으로 반응을 해줬다. 어쨌거나 판매는 불허했지만. 2번째 거절 히우 미 해군은 대만의 대잠 작전 향상을 위한 지원을 해주기 시작했다. 95년에 대만은 미국으로부터 신형 대잠초계기를 사왔다. 96년에 제3차 대만 해협 미사일 위기가 터지자 98년 미국 상원은 대만의 대잠전 요구 사항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한다. 당시 미국-중국 관계는 냉각되어 있었다. 냉각 기간 동안 미국은 대만의 방위력 강화에 신경을 쏟았으며 덕분에 대만 방위력이 강화되었다. 대잠/대함 전투력이 저 때 급상승했다. 그리고 마침내 2001년, 부시 행정부가 대만의 잠수함 판매를 공식 논의했다. 



'광화 8호' 계획이 떠오르다

1. 서막

부시 행정부가 권력을 잡은 2001년 초, 부시 행정부는 대만의 대잠 능력을 키우는 데 호의적이었다,. 01년 4월 24일 조지 부시 행정부는 대만 무기 판매 목록에 12대의 P-3 대잠초계기, 4대의 키드급 구축함, 6대의 팩-3, M109A6 자주포, MH-53E 소해헬기, MK48 어뢰, AAV-7A1 상장차, F-16에 달고다니는  AN / ALE-50 견인 데코이, 하푼, 그리고 8대의 디젤 잠수함을 포함시켰다. 당시 대만은 이지스 구축함을 요청했으나 승인받지 못했다. 

1992년, 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150대의 F16 전투기 판매를 승인했으며 이는 미국이 대만에게 판 무기 중 가장 큰 규모였다. 무기 판매 허가 목록은 미 해군이 제출한 평가 보고서를 기반으로 작성되는데 서태평양에서의 해군 운용과 대만의 자기 방어력을 고려해서 작성된다. 판매 목록 작성 전에 미국 EP-3 정찰기가 중국 상공을 날아다니다 중국 공군 J-8 전투기의 위협을 받아 하이난 섬에 강제 창륙당한 사건이 4월 1일에 일어났고 그 정찰기는 7월 3일에 미국에 돌아가게 된다. 이 사건 이후 미국 행정부는 대만의 방위력을 올려줘서 양안 균형을 맞춰줘야 한다고 판단한다. 제3차 대만 해협 미사일 위기때무터 01년 9월 11일까지 미국과 중국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관심이 중동으로 옮겨가고 중국과 협력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미중 관계는 회복된다. 어쨌거나 미중 관계가 냉각된 시기에 대만은 운 좋게도 무기 구입 기회가 늘어난거다.

그러나 운 나쁘게도 부시 행정부가 대만에게 대규모 무기 판매를 승인한 시점, 바로 그 시점이 대만의 정권이 교체되고 국민당이 망하고 민주진보당이 정권을 잡고 천수이벤이 총통이 되는 정치 격변기였다. 이 복잡한 시기 동안 정치적 민주화를 겪으면서 대만 국방부는 정치싸움에 휘말려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대만 경제 성장률이 처음으로 마이너스에 진입하면서 돈이 쪼달려 미국 무기를 많이 못 사오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대만의 미국 무기 도입 계획은 일부만 실현된다.


2. FMS와 DCS 파이프라인

FMS와 DCS의 차이점이 쭈욱 나열되지만 존나 복잡하니 생략한다. 2개의 무기 도입 파이프라인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나 잠수함 얘기가 안 나옴. 


3. 업체의 참가

01년 1월, 미국 정부는 대만 잠수함 사업 공문을 띄우고 참여 업체를 모집한다. 같은 해 11월, 노스롭 그루먼, 제너럴 다이내믹스, 독일 HDW, 네덜란드 RDM(해룡급 잠수함을 산 거기), 프랑스 DCN, 스페인 IZAR이 입찰에 응해온다. 독일 HDW는 212 수출판인 214급을 제안했다. AIP가 달려있는 모델이었다. 프랑스 DCN는 스콜펜급 디젤을 제안했다. 스페인 IZAR은 S80을, 화란국 RDM은 발루스급을 들이밀었다. 11월 16일, 앞에 언급된 업체들이 NAVSEA에서 브리핑 및 회담을 가졌다. 02년 12월 6일, 미국 해군 장관 고든 잉글랜드는 제너럴 다이낵스, 노스롭 그루먼, 록마, 레이시온으로 미국 협력업체를 정했고 유럽 업체는 독일, 화란국, 스페인이 남았다. 미국 업체들과 유럽 업체들이 2년간의 토의와 프레젠테이션을 거쳤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대만 잠수함은 지지부진했다.

계획 진행이 지지부진한데다 유럽 업체들이 중국의 압박을 두려워하자 상황이 꼬여갔다. 대만은 전에 네덜란드/독일한테 잠수함 구매를 타진했으나 퇴짜맞은 경력이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이 뒷배를 봐주고 있었지만 중국은 이에 아랑곳않고 유럽 업체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

01년 8월, 미 해군이 GE사와 손잡고 호주 잠수함, 6척의 콜린스급 사업을 시작한다. 호주 정부는 호주 업체가 100% 건조한다는 조건으로 콜린스급 건조를 딜했다. 소문에 의하면 콜린스급 제작은 미국이 대만에게 잠수함을 만들어주기 위해 먼저 몸풀기를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02년 3월, 독일 정부는 내켜하지 않았지만 HDW의 지분 75%가 미국 업체한테 넘어간다. 이는 HDW를 강제로 움직여 대만에게 독일 디젤을 넘겨주려는 미국의 계략이였다. 그러나 독일 정부가 HDW 지분 과반수를 사들이며 미국의 계략은 수포로 돌아간다. 

02년 6월 말, 대만 디젤 8척을 제작하는데 6조 6천억이 소모될 것이라는 해외 보도가 나왔다.



가격 논쟁

02년 12월, 미 해군이 한 브리핑에서 대만에게 잠수함을 넘겨주는데 쓰일 총비용이 12조원으로 추산되었다. 건조부터 승조원 훈련까지 다 포함된 금액인데 이건 존나 비쌌다. 단순 잠수함 값만 따져도 2000톤급 디젤 값의 2배가 측정되었다. 

당시 잠수함 구성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인용한 애미없는 가격은 대만에게 존나 의문스러웠다. 이게 말이 되는 가격이냐고 대만이 거절하자 미국은 최고급으로 뽑아줄테니 안심하라며 값을 낮춰 9조 5천억을 불렀다. 



대만이 직접 만든다 VS 미국이 만든 걸 사온다

비용 문제를 제외하고도 제작 관련해서도 논쟁이 불붙었다. 미국은 제작 전 과정을 미국 업체가 수행하길 원했다. 그러나 대만은 대만에서 조립되길 원했다. 02년 5월 7일, 민주진보당이 주축이 되어 여야 의원 할 것 없이 신토불이 드립을 쳐대기 시작했고 24일에는 의원 130명, 대만 의석 수 절반 이상이 뭉쳐서 미국과 대만의 공동 개발 내지 기술 이전, 구입할 8대 중 6대는 대만 현지에서 제작을 요구했다. 대만 국방력/기술력 강화와 현지 경제 활성화가 목적이었다. 대만이 참여 못하면 예산 안 통과시키겠다면서 뻐기자 미국은 02년 중반에 팀을 급파해 대만 현지 건조 가능성을 조사했다.

대만 조선소들은 잠수함 건조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01년 5월 초, 미국 정부가 잠수함 판매에 승인하자 CSSC 조선소는 5명으로 이뤄진 잠수함 건조팀을 만들더니 그 규모를 41명으로 확장시켰다. 이름까지 '건륭 팀'이라고 지어졌다. CSSC 조선소는 8-90년대 대만의 해룡급 잠수함 구매 과정에 참여했던 퇴역한 대만 해군 소장을 고용하기까지 했다. CSSC 조선소는 7억 6천만원과 6개월의 시간을 들여 잠수함 동체 샘플을 제작해 02년 8월 중순에 언론에 공개했다. 03-4년에는 잠수함 선미와 어뢰 튜브 부분을 설계했다. CSSC 조선소는 수중 엔지니어링 세미나, 회의, 대만 투자 컨퍼런스 등을 스스로 준비해서 개최했는데 대만 정부는 CSSC의 이러한 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하는 걸 무사히고 미국이 주도하도록 내비뒀다. 

엄밀히 말해서 CSSC 조선소는 잠수함 개발에 필요한 기술과 경험, 장비를 갖지 못했다. 설사 있다 한들 엄청난 양의 시간과 비용이 소모된다. 체계 개발과 잠수함에 달릴 기계 장치들은 해외에서 수입해와야 한다. 대만이 잠수함 건조에 참여한다고 쳐도, 미국의 계산에 의하면 대만의 잠수함 국산화 비율은 겨우 5%밖에 되지 않았다. 대만 업체가 참여하면 가뜩이나 비싼 제조비용이 더 뛴다는 결론이 내려지자 04년 6월 21일 대만-미국 당국자 회담에서 밀당이 벌어졌다.

대만 행정부와 국방부는 그냥 교육만 적당히 받는 선에서 끝내려했지만 입법부가 국내 건조를 주장하며 압박해오자 별 수 없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국방부, 대만 조선업체 등이 뭉친 태스크포스를 출범시켜 미국과 전략적 제휴를 맺는 선으로 딜을 했다. 대만이 얼마만큼 지분을 차지하는지 논의를 거친 끝에 03년 5월 28일, 최초 2척은 미국에서 제작하고 3,4척은 3분의 2는 미국이, 3분의 1은 대만이, 5,6척은 3분의 1은 미국이, 나머지는 대만이, 7,8척은 전부 대만이 독자 건조한다는 결론을 내린다. 대략 이익의 40%는 미국이, 60%는 대만이 가져갔다.

잠수함 건조 제작의 어려움은 철판이었다. HY-80강이 필요했는데 대만 업체의 호언장담과 달리 그걸 제대로 만들 수 있는지 능력이 의심스러운 판이었다. 판을 이어붙여서 동체를 만드는 것도 문제였다. 어찌되엇든 미국한테서 기술을 얻어와야 했다. 잠수함 장비나 무기의 경우 대만에게는 생산 능력이 전무했음으로 역시나 미국한테서 얻어와야 했다. 대만이 잠수함을 직접 만드는 걸 목표로 삼긴 했는데 실질적으로 성공 여부는 미국의 태도에 달려있었다.

CSSC 조선소의 추정에 따르면 CSSC가 잠수함 건조 시설을 만드는데 360억 원이 필요했다. HY-80강 제작에 필요한 장비는 충분치 못해서 따로 구입해야 했다. 제작에 도움을 받으려고 독일 전문가를 고용해서 투자 비용을 추정해봤더니 기술 이전, 자재 관리, 훈련 및 인사 비용 등에 3조 6천억 원은 꼬라박아야 했다. 미국이 제조했을 때 값보다 12%가 뛴 거였다.



교착 상태

02년 말 이후 가격과 제작 방법에 대한 양자간의 심각한 차이로 건조 계획은 교착 상태에 빠졌다. 재수없으면 광화 8호 계획이 폭발할 가능성이 있었다. 가격 협상을 위해 대만이 미국에 협상팀을 보냈지만 별 성과는 없었다. 가까스로 나온 각은 06년까지 자금을 마련한 후 13-14년에 제작하여 19년에 마지막 잠수함을 인도하는 거였다. 대만 군사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것에는 대만과 미국이 동의했으나 잠수함 관련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미국은 대만에게 잠수함을 주는 것보다 그냥 대잠 능력을 강화해주는 걸 원했다. 견인 소나와 대잠초계기는 문제 없이 넘어갔다. 03년에 미국이 대만에게 이탈리아 해군의 퇴역한 Nazario Sauro급, Primo Longobardo급 디젤 총 6척을 2조원에 넘기겠다고 제안했으나 대만은 새거 내놓으라고 거절했다.

아 지겨워서 못해먹겠네. 그냥 미 행정부와 미 해군, 대만 행정부와 대만 해군의 존나 지겹고 골아픈 줄다리기가 이어졌다고만 이해해라. 미국은 그냥 쿨하게 잠수함 넘기거나 대만은 국내 건조 포기하고 현찰박치기로 사오면 되는데 뭔 놈의 밀당질을 이리 많이 해.



3대 무기 크라이시스

04년 5월 21일, 천수이벤 총통의 신임 국방 장관은 '3대 무기 도입안' 계획을 언급하며 그의 두번째 임기를 시작했다. 삼대 무기란 팩3, P-3 초계기 그리고 잠수함이다. 8척 잠수함을 포함한 이 구입안에 무려 25조원이란 예산안이 측정되었다. 

민주진보당의 특별 예산안을 본 국민당과 국민들은 아니 이게 말이 되는 비용이냐며 들끓었다. 민주진보당 정부는 전례없는 극도로 적대적인 반대 의사와 직면했고 여당에 대한 신뢰 손실이라는 직격탄을 맞았다. 06년에 예산안에 최후 통과되기까지 무러 68번의 반대를 맞아 통과가 좌절당했다. 대만에서 계획이 질질 끌리는 걸 목도한 미국은 불쾌해졌다. 섬딤섬한테 팔아야할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잠수함이 중요하긴한데 배와 헬기만으로도 대잠 작전은 떡을 친다. 대잠작전에서 잠수함은 그렇게까지 결정적인 게 아니다. 

질질 끌리자 불리해지는 건 대만뿐이었다. 사실, 03년 초에 부시 행정부는 대만에게 진짜 필요한 것은 잠수함이 아니라 대잠 능력이라고 입을 턴 적이 있었다. 잠수함 판매에 대한 미국의 호의도가 떨어져만갔다. 05년 이후 대만 의원 몇 명이 미국의 분위기가 바뀌었단 걸 알아챘지만 바뀐 건 없었다. 



대만 무기 구입에 대한 미국의 우려와 요구

01년 4월의 합의 이후 대만에서 별 진전되는 게 없자 부시 행정부는 격분했다. 03년쯤에는 대만이 스스로를 방어하겠다는 의지가 과연 굳건한지 의심스럽다는 말이 행정부 싱크탱크에서 나왔다. 03년 1월 30일, 미국 공화당 싱크탱크 수석 John J. Tkacik, Jr은 '대만은 마치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이는데 대만은 물러서서 구경하는 위치인 것처럼 행동한다'고 말했다. 03년 2월 국립 대만 대학 로스쿨 강의에서 미국 행정부 싱크 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의 일우너이자 동북아 정책 연구소 센터 이사가 '대만은 자체 방어 능력 보강을 위해 속도를 내야한다'고 말했고, 같은 달 있었던 미국-대만 비즈니스위원회에선 '대만은 스스로 국방 책임을 져야 한다'는 미국 측의 발언이 있었다. 06년 가선 '이렇게 자기 방어 의지가 약한 나라를 돕기 위해 대만을 도우러 갈지 모르겠다'는 수준으로 발언의 강도가 강해졌다.



2단계 계획

06년 4월 3일, 대만 국방부가 미국에 2단계 방식의 건조를 요청했다. 설계 및 구현이다. 먼저 설계를 하고 그게 실행가능한지 평가한 다음 만드는 거였다. 미국 국방부 차관보는 2단계 계획이 가능은 한데 총 비용과 시간, 위험도를 증가시킬것이라고 대만 국방부 장관에게 경고했다. 2단계 방식은 ACS 미니 이지스함 계획처럼 하이리스크 하이리턴 사업에서 대만이 쓰는 방식이었다. 

미 국방부는 2단계 중 설계 단계에 3억 6천만 달러가 소모된다고 보고했다. 구현 단계에선 더 많은 돈이 따로 든다. 대만 국방부는 미 국방부와 판이하게 다른 금액을 추산했다. 이 양자간 차이때문에 또 계획이 지지부진해졌다.



3대 무기 사업의 통과

국민당에 의해 일어난 3대 무기 도입 반대 흐름이 낮아들자 슬슬 통과시켜보려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25조원이었던 금액이 17조원으로 낮아졌다. 전체적으로 다 칼질당했다. 07년 12월 20일, 08년 국방 예산이 통과되었다. 팩-3 도입 및 팩-2 개량은 좀 깎였고 P-3C는 원안대로 통과되었다. 잠수함 예산은 겨우 6500만 달러만 측정되어 사실상 모가지가 떨어져나갔다. 



부시 행정부가 공을 후임에게 넘기다

부시 행정부는 대만 행정부의 미적거림에 불쾌감을 느꼈다. 06년 대만이 요청한 F-16C/D 66대 판매를 단호히 거절하고 07년 4월에는 대만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에 반대를 표명했다. 천수이벤 총통이 07년에 '타이완'이라는 명칭으로 UN 가입을 시도하자 대만-중국 간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천수이벤 총통의 과감한 행동은 결과적으로 대만 중산 과학원이 개발하던 여러 국내 미사일에 들어갈 미국산 부품의 수입 차단을 포함한 여러 무기에 악영향을 끼쳤다. 대체적으로 이 시기 부시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계 유지에 주력했다. 08년 미국의 무기 판매 목록에는 F-16과 잠수함이 포함되어있지 않았다. 대만 잠수함의 운명은 다음 정권,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와 대만의 마잉주 정권으로 넘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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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편



마잉주 / 오바마 시대의 잠수함 도입

대만 해군은 잠수함 도입의 1단계(예비 평가 단계)를 완수하기 위해 3년간 3억 6천만불의 예산을 투입할 계획이었으나 국회를 통과한 양은 6천만불에 불과했다. 대만이 돈이 부족한 걸 아는 지 모르는 지 미 해군은 대만에게 1단계 작업을 위한 착수금을 요구했다. 돈이 부족했지만 어찌저찌 상황은 잘 풀렸고 08년 초에 미군이 대만으로 자세한 사항을 논의할 팀을 보냈다.

4월 중순 출간된 미군 군사 잡지에 의하면 부시 행정부 임기가 끝나는 09년까지 잠수함 도입 문제가 마무리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08년에 대만 총통 선거도 예정되어 있었다. 미 해군 본부는 잠수함 사업을 지지하지 않았으며, 미국이 유럽으로부터 디젤 건조 방법을 얻는다는 것도 잘 풀리지 않았다.

어쨌거나 대만 정권이 국민당의 마잉주 총통에게로 넘어갔다. 마잉주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중시하는 인물이었다. 동년 6월 경 베이징에서 대만-중국 간 회담이 열렸다. 회담 주제는 대만 해협 갈등을 낮추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외에도 양안 간 전세 항공편의 확대, 관광 항공편 직항 노선 등이 뚫렸다. 미국은 대만-중국 간 대화를 방해하지 않는다는 명목으로 120억 달러 규모의 대만 무기 수출을 잠시 중단했다. 

미국이 대만 무기 수출을 전면 재검토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아시아 국방부 차관보 태평양 보안 담당 제임스 쉰은 이를 부인했다. 08년 7월 16일 헤리티지 재단에서 열린 대만-미국 군사 회의에서 미 해군 태평양 함대 사령관은 대만 무기 판매를 동결했고 중국과 상의중이라고 발언했다. 대만에게 무기를 파는 건 대만 해협 상황에 좋을 게 없다는 거였다.

이렇게 무기 도입이 동결된 이후 미 의회에 보고된 조사서에서 부시 행정부가 대만에게 판 64억 달러 규모의 무기 - 아파치-D 30대,  E-2T 4대, 호크아이 2000, 팩-3 330발,  AN / MPQ-65 레이더 4개,  MIDS 50세트, 하푼 블록 2 32발, 재블린 182발에 발사기 20개, 훈련장비. 경국과 프십육, F-5, C-130에 들어갈 부품 등 - 이 브리핑되었는데 그 목록에는 디젤 8척이 빠져있었다. 08년 10월 부시 행정부가 공식적으로 대만에게 지금 정권에서는 안 될테니 다음 정권한테 넘긴다면서 계획을 동결한다고 통보했다. 

그리고 부시의 뒤를 이은 오바마 행정부는 대만 잠수함 판매에 관해 굳게 입을 다물었다. 01년에 시작되었지만 7년 넘도록 지지부진해서 미국도 질려있던데다 중국까지 압박해왔기 때문이다. 08년 8월 출간된 아시아-태평양 매거진 칼럼에 의하면 천수이벤의 민주진보당이 잠수함 도입을 추진했을 때 훼방을 놓은 건 다름아닌 다음 정권을 잡게 될 국민당이었다. 마잉주 총통은 일단은 디젤 도입 기조를 이어나가겠다며 천수이벤과 미국에게 약속은 해줬다. 허나 오바마 행정부는 대만의 요청에도 긍정적 답변을 해주지 않았다.

마잉주 총통 취임 이후 중국에 대한 적대적 정책은 반전되었고 양안 간 경제 무역 교류, 정치적 교류가 이뤄지며 갈등이 크게 완화되었다. 갈등이 완화되니 군사력에 대한 우선 순위가 점차 감소했다. 게다가 대만 내부의 재정 부족과 경기 침체. 세금, 의료 사회 복지 지출의 증가가 심해져만 갔다. 자연적으로 국방 예산은 소외될 수밖에 없었다.

마잉주 총통을 주축으로 한 NCS가 만든 정책에서 국방 예산은 3% 이하로 감소될 것이었다. 양안 관계 개선이 제1목표로 떠올랐다. 신임 대만 국방 장관은 그래도 잠수함은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만 해군 관계자와 의원 몇 명이 미국을 방문해서 잠수함을 요청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국방 예산이 침체되는 가운데 군 인건비 상승이 마잉주 총통 시기의 이슈로 부상했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2012년에 군 인건비 비중이 대만 국방 예산의 54.46%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이러한 환경에서 대만군 규모는 감축되었고 자주국방이란 모토와 점점 멀어졌다. 군규모 축소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과 인건비 문제를 퉁칠 수 있는 묘안이었다. 마잉주 촡옹이 정권을 08년에 잡은 이후로 '버티고 기다린다', '섬 방어에 주력한다' 같은 네거티브하고 수동적인 국방 전략이 대두되었다.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온건한 태도를 취했고 그 기조는 유지되었다. 때문에 대만 잠수함 도입이 파토났다. 그러나 오바마 말년에 가서 베트남, 인도, 일본 한국,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동맹국들간의 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태평양의 주둔 미군 숫자를 증가시키며 중국을 봉쇄하자는 쪽으로 방향이 선회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만의 위치는 미국의 대중국 전략에서 능동적으로 쓰이는 판돈이라기 보단 자칫하면 터질 수 있기에 피해야 하는 지뢰 정도로 취급되었다. 오바마 행정부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에서 대만은 제외되어 있었다.

2010년 1월에 블랙 호크 60대와 팩-3 114발, 중고 소해함, 하푼 12발 등을 팔아주긴 했다. 하지만 잠수함이나  F-16C / D같은 민감한 무기들은 목록에서 제외되었다. 2010년 초 미국 NCS는 중국 대사에게 미국은 대만에게 잠수함을 팔 의사가 없다고 통보했다. 대만은 반복해서 제발 팔아달라고 간청했지만 미국은 무시 내지 거절했다.

09년 4월 중순 뉴스위크의 보도에 의하면 대만이 미국에 대한 끈을 포기하고 직접 제작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허나 4월 22일에 마잉주 총통은 오바마 행정부한테 독자 개발 그딴 거 없고 미국만 믿는다고 발언했다. 11년 1월 25일, 마잉주 총통은 AIT 회장을 호출해서 미국에게 잠수함하고 프십육 좀 달라고 반복해서 요구했으나 씹혔다. 

대만에 미국한테 잠수함 좀 달라고 징징대는데 미국이 그걸 씹었다는 내용만 반복되서 남은 내용은 생략한다. 



요약: 대만의 내부 요인


내부 및 외부의 심각한 정치적 환경에 직면해면서 1980년대에 네덜란드로부터 해룡급 잠수함 2척을 구매했다. 당시 대만은 권위주의 정치 체제였고, 장징궈 총통은 국가 정책을 완벽히 통솔하며 이끌었다. 잠수함 구매를 위해 대만 정부는 일사분란하게 하나가 되어 움직였고 잠수함 구입을 위한 지원이 완벽하게 이뤄졌다. 잠수함 만들던 네덜란드 조선 업체가 파산할 위기에 처하자 돈을 꿔주고 대만-네덜란드 간 경제 협력을 강화하고 대만 외교부는 양국을 드나들며 기름칠을 했다. 굉장한 추진력이 발휘되었다.

이러한 추진력의 부작용으로 부패와 사기가 생겨날 수 있다. 다행히 해룡급 잠수함 도입때는 관련자들이 딴 생각 안하고 모범적으로 일했다. 민/관/조작/개인이 하나되어 행동한 이상적인 사례였다. 그러나 대만의 정치 체제가 1990년 이후 진정한 민주화를 향해 점차 이동하면서 이러한 추진력을 발휘할 능력이 사라지게 된다.

부시 대통령이 대만에게 잠수함 판매를 허용했을 때가 대만이 경제 침체를 겪던 시기와 일치한다. 수십년을 집권한 국민당이 야당이 되고 민주진보당이 여당이 되는 정권교체가 일어나자 그 파장이 엄청났다. 정권을 처음 잡아봐서 민주진보당이 어버버하는 건 둘째치고 국민당과의 이데올로기 싸움, 정부 부서 및 계획, 예산 및 기타 행정 부서의 인사들의 대거 교체가 발생했다. 민주진보당이 통과시킨 '국방법'은 무기 사업에서 대만 국방부가 전처럼 전권을 휘두르는 걸 막고 입법부와 민간의 감독을 받도록 바뀌었다. 

국방부 군사 조직들이 새로운 시스템과 프로세스에 적응하느라 혼잡했다. 01년에 대만 역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환경 파괴가 일어났고 경제 부채가 증가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계엄령 해재 후 대만에 대한 국가 정체성, '대만인이냐 아니면 중국인이냐'. 이 이데올로기를 둘러싸고 민주진보당과 국민당이 지독하게 충돌해댔다. 

이딴 개판 속에서 잠수함 사업을 통과시켜 미국에 넘겨주기란 불가능했다. 

천수이벤 총통과 국민당의 충돌에 의한 악순환이 잠수함 사업 폭파의 제1원흉이다. 국민당도 트롤짓을 했지만 천수이벤도 만만찮게 트롤짓을 많이 했다. 민진당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니 대균열이 일어났다. 천수이벤이 팩-3 도입을 국민 투표로 결정하자고 한 건 정말 희대의 트롤짓이었다. '유권자의 의사를 적용하자'는데 이짓때문에 팩-3 도입이 2010년까지 지연당했다. 

이것 말고도 민진당의 트롤짓이 자주 언급되는데 생략하고, 대충 요약하면 '이름은 민주당인데 하는짓은 민주적이지도 않고, 아무리 국민당이 싫다지만 협력과 타협을 해야하는데 안하고 꼴리는대로 하느라 정치적 충돌이 필요 이상으로 발생했으며, 이 때문에 잠수함 사업을 포함해서 무기 사업 여럿이 파토났다' 임. 물론 천수이벤만 까는 건 아니고 국민당도 까긴 함. 



요약 - 아메리칸 요인


이건 앞서 설명한 내용과 별 다를게 없어서 패스. 미국이 제안한 잠수함 가격과 필요 방식에 대한 분쟁도 나와있는데 이것도 복잡해서 패스. 어떤 방식으로 값을 매겼길래 미국이 그딴 마더리스한 값을 제시했는가, 적절했는가에 대한 설명이 나열됨. 



요약 - 사후 평가


대만은 02년에 '잠수함을 만드는 나라가 되자'는 인상적인 슬로건을 내걸고 잠수함 개발이 끼어들려고 했으나 기술 능력과 국제 현실을 고려해야 했다. 광화 8호 계획은 미국의 무기 판매 파이프라인에 의존한 사업이었다. 주체는 미국이었다. 대만이 아니라. 미국이 팔아주니까 대만이 살 수 있는거지 대만이 사고 싶으니까 미국이 팔아주는 게 아니다. 

무기를 만들고 싶아면 장기적으로 준비를 해야 한다. 가능한 빨리 방위 산업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무리수를 던지는 건 결과적으로 악영향만 끼칠 뿐이다. 현대 대만군을 지탱하는 무기 여럿이 1980년대 사업으로부터 나왔는데 그 프로젝트들은 단지 단계적 과제를 충족시켰으며 그 사업이 안착해서 유지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대만의 내/외부 환경, 정치, 경제, 노후화되는 군 상태 등을 엄격하게 따져봤을 때 대만이 진짜 '잠수함을 만드는 나라'가 되었다간 득보다 실이 컸을 것이다. 


외전 - 광화 8호 후보군들




2003년 11월, 싱가포르 해상 무기 전시회 때 대만을 위해 개량된 바벨급 잠수함 모형이 공개되었다. 바벨급은 1950년대 후반에 미국이 개발한 디젤 잠수함이다. 50년대까지만 해도 잠수함의 주류 디자인은 2대전 시대의 잠수함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극초기형 핵잠수함까지도 그러했다. 1953년에 알바코어급 디젤 잠수함을 만든 걸 시작으로 눈물 모양에다 이중축이 달린 잠수함 형태가 도입되었고 더 나아가 차세대 고속 항해가 가능한 잠수함이 개발되기 시작했다. 눈물 모양의 싱글쉘 동체를 채용해서 물의 저항을 줄였다. 덕분에 잠수까지 걸리는 시간이 대폭 줄었다. 1960년대에선 세계 최초로 X자 방향타가 개발되어 테스트 받았고 그 후 배터리와 이중 프로펠러까지 적용시킨 알바코어급 테스트배드 잠수함은 1966년에 최고 속도 기록을 갱신했다. 

바벨급은 알바코어급의 실험 결과가 적용된 최초의 디젤 잠수함으로 1956년에 생산되었다. 원통형 눈물 선체, 단일축 설계, 십자형 꼬리가 채용되었는데 바벨급을 시작으로 결국 핵잠수함까지 이어지는 디자인의 원류가 여기서 시작되었다. 바벨급은 길이 66.75, 너비 8.85에 HY-80 강판을 사용하여 320미터까지 잠수 사능하고 3050마력 페어모스 디젤 엔진 실린더와 9600마력 GE 모터 2개로 추진되는 단일축 잠수함이다. 수중에서 최대 25노트까지 가속 가능하고 항해 속도는 15노트, 최대 속도로 90분 갈 수 있고 3노트로 줄이면 102시간 항해 가능했다. 승무원은 85명, 533미리 어뢰발사관 6문, 싣고다니는 어뢰는 총 18발이었다. 

미 해군 잠수함이 '핵'의 시대로 들어섰을 때 바벨급은 미 해군 최후의 디젤 공격 잠수함이었다. 바벨급은 차후 개발된 1970년대의 네덜란드 제 즈바르디스 급 잠수함이나 일본의 우즈시오급 잠수함의 설계에 영향을 주었다. 유럽이 자기네 잠수함을 넘겨주기 껄끄러워하는 상황이라면 바벨급 개량형은 대만에게 대안책이 될 가능성이 있었다.

00년대 초, 미국이 호주의 콜린스급 디젤 잠수함 사업과 스페인의 S-80A 잠수함에 참여했다. 콜린스급은 스웨덴의 손을 탔는데 사격 통제 시스템 오류나 소음 문제 등에 고통을 받았고 미국이 이걸 해결해려고 개입했다. 스페인의 S-80A 또한 화력 통제 시스템, 무기 체계, 추진 체계 등에 미국의 손을 거쳐졌다. S-80에 적용된 것들이 버지니아급 잠수함에도 적용되었다. S-80의 AIP는 더도 말고 미국의 작품이다. 

이러한 사례에서 보이듯이 미국은 잠수함 체계를 만들고 통합하는데 상당한 경험을 갖추고 있었으며 자기네 핵잠수함 기술을 디젤에 적용하는 것에도 능통했다. 대만 잠수함의 경우 대규모의 연구와 개발 과정이 있었다. 콜린스급과 S-80 둘 다 일류급 디젤 잠수함이다. 미국은 초일류급 핵잠수함 건조 국가이자 하이엔드 디젤도 만들 능력이 있었다. 돈과 시간이 충분하다면.



2. 유렵한테서 도입

04년, 미국은 대만에게 214급 디젤을 제안했다. 노스롭그루먼과 HDW이 협정을 맺었었다. 제너럴 모터스은 스페인 IZAR과 합작하여 S-80A의 파생형인 P-650을 제안했다. 이 둘은 이상적인 후보였지만 유럽 국가들은 중국의 압력을 두려워하며 그닥 팔고 싶어하지 않는 눈치였다. 미국이 바람막이가 되어주겠다고 나섰는데도. 

이렇게 되니 네덜란드한테서 받아온 해룡급 잠수함의 설계도를 대만이 뚜룩쳐서 자체 셜계한 잠수함을 만든다는 방안이 제시되었다. 그러나 네덜란드와의 계약서에 따르면 대만에게 양도한 설계도를 제3국에 보여주는 게 금지되어있었다. 미국한테 보여주는 게 가능하더라도 대만 잠수함에 들어갈 장비 대부분이 미국산이었기에 유럽산 장비가 많이 들어간 해룡급의 설계도가 얼마나 쓸만할지 의문이었다.게다가, 04년 9월 초, 대만의 국방부 발표에 의하면  P-650 및 214급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돌핀급도 후보군에 있었다. 

07년 8월, 대만 관계자가 미국을 방문하였다. 이 때는 유럽의 2개의 후보군이 유력했다. 정리하면 스페인 P-650과 독일의 209급 TR1400이었다.



3. 일본한테서 도입


대만은 일본으로부터 중고 잠수함 내지 잠수함 건조 기술 도입을 원했지만 결국 실패한다

앞서 언급한 루트들 외에도 대만은 일본을 통해 잠수함을 확보하는 방안을 고려했다. 그러나 일본의 잠수함 기술 수출은 군사 기술 수출 금지법과 당시 극도로 민감했던 중일 관계로 인해 유럽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저항에 직면했었다.

대만의 전 해군 참모총장이 일본을 방문하여 비밀리에 잠수함 아니면 잠수함 설계도를 얻으려고 시도했으나 정치적 이유때문에 실패했다. 대만에서 미쓰비시 중공업에 사람을 보내 대만 건함 사업에 대한 기술을 이전받으려던 시기였다. 04년 '대만-미국-일본 협력 세미나' 때 일본에게서 잠수함 구입을 원한다고 공식 발언했을 때는 8월 일본 외무성이 공개적으로 거절 의사를 내비쳤다. 07년 7월 4일, 일본의 유리코 코이케 국방장관, 대만통이라고 여겨졌던 그녀 시절에 미국, 대만, 일본이 합작하여 일본이 하루시오급 잠수함을 대만에게 판다는 계획을 미국이 제안했지만 결국 취소되었다. 

미국이 하루시오급 잠수함 설계도를 받아와 일본 대신 만든 다음 대만에게 준다는 방안도 제시되었다. 그러나 하루시오급이 퇴역한 상황에서 유지 부품을 대만이 직접 생산해서 공급하는데 그 비용이 매우 높을 것으로 계산되자 비효율적이라는 이유로 취소되었다. 아베가 총리로 임명된 후 코이케 유리코는 얼마 안 가서 장관 직에서 해임된다. 대만에 대한 일본의 평가가 높지 않고 대만의 가장 큰 후원자가 사라지자 일본에게서 잠수함을 산다는 방안은 끝났다.

15년 12월 1일, 워싱턴에 있는 프로젝트 2049 연구소의 아시아 담당이 대만이 일본한테 소류급 잠수함 구입을 문의했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당시 일본은 호주의 차기 잠수함 사업에 소류급을 내놓은 상황이었다. 워싱턴 씽크탱크에선 소류급을 판다면 AIP 포함해서 5억 달러에 팔거라고 추산했다. 이 가격은 미국이 대만에게 제의한 미국 잠수함의 가격, 대당 8억 달러보다 훨씬 쌌다.



4. AIP 문제

초기에 대만 해군의 내부 여론은 잠수 시간을 크게 연장시키는 AIP를 반드시 갖춰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당시 미국에게는 AIP 기술이 없었고 유럽 업체들은 AIP를 대만에게 파는 걸 안 좋아했기에 결국 광화 8호에 AIP는 추가되지 않는거로 결정났다. 기술적 위험 및 유지 관리가 힘들다는 이유였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신형 잠수함들은 모듈식 설계를 채용하고 있으며 AIP 장치는 뺐다 꼈다 가능했다. AIP를 지금 못사더라도 나중에 사면 괜찮았다.



5. 소형 잠수정

대만 해군은 2천톤급 잠수함을 항상 원했다. 그러나 그 정도 크기의 잠수함은 건조 위험성도 놓고 값도 비쌌다. 이때문에 광화 8호 계획이 교착상태에 빠졌다. 결국에는 몇몇 전현직 해군 장교들이 500톤 미만의 잠수정을 사자고 주장했다. 독일의 206A급이 그거였다. 값도 싸고 만들기도 상대적으로 쉽고 유지도 쉽고 무엇보다 '잠수함 건조'의 첫발을 내딛기에 적절해보였다. 게다가 대만 해협의 평균 수심은 100미터 내외다. 몇몇 얕은 지역은 50미터 이하의 수심이다. 중국 동쪽 해안 또한 수심이 얕다. 대형 잠수함은 운신의 폭이 좁을 수밖에 없다. 이와 비교하면 소형 잠수정은 얕은 해안을 쉽게 오고갈 수 있다. 중국의 대형 잠수함들은 저런 데를 다니는 게 힘들다. 

몇명 사람들인 대형 잠수함이 정박/운용될려면 대형 항구가 필요하단 사실을 지적했다. 그 정도 규모의 항구라면 전쟁이 터졌을 때 일찌감치 공격받아 무력화될 것이다. 소형 잠수정이라면 중소형 항구에서도 정박 가능하다. 이런 항구들은 낚시배나 정박하기에 공격을 안 받는다. 결과적으로 전쟁 때 생존성이 증가한다.

그러나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다. 먼저 전략적 필요성이 있다. 대만 잠수함은 중국 배들이 나다니는 항로까지 진출해서 잠복하여 어뢰를 먹이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대만 해협이 아무리 얕다지만 대형 잠수함이 못다니는 것도 아니고 대만 해협 말고 동중국해, 남중국해로 중국 군함이 올 경우도 감안해야 했다. 그 두 해역의 수심은 매우 깊다. 그러므로 대만 잠수함의 커버리지는 대만 해협과 동/남중국해를 아우르지 않으면 안 된다. 임무 기간의 지속성도 문제다. 바다로 출동해서 오랫동안 잠복하고 버텨야 하는데 소형 잠수정가지고는 그게 안 된다. 대형 잠수함은 작전 시간도 길고 이동 가능한 거리도 길다. 

적 함대는 대규모의 대잠 작전을 넓은 해역에서 수행하며 항공모함같은 자기네 귀중한 배들을 보호해야 한다. 대형 잠수함은 적 함대의 전투력을 분산시킬뿐만 아니라 대만 섬을 향한 상륙작전까지 지연, 취소시킬 포텐을 가졌다. 대형 잠수함은 크고 성능 좋은 소나, 예인 소나를 가져 적 배와 잠수함을 감지할 수 있다. AIP는 작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늘려준다. 이 모든 게 대형 잠수함만이 가능하다.

소형 잠수정은 싣고 다니는 무기의 양도 적고 샤워실이나 수면실같은 생활 공간도 좁다. 이는 소형 잠수정이 연안을 못 벗어난다는 얘기다. 적 함대는 연안 직전까지 아무런 방해도 안 받고 접근할 수 있다. 독일 206A의 항해 거리는 3800해리가 고작이다. 이건 평온한 발트 해에서 찍힌 숫자다. 대만 해협의 더럽게 거센 해류를 만난다면 항해 거리가 매우 줄어들 것이다. 특히 물살이 거센 겨울의 경우 물속에서 작전 하는 것조차 힘들어진다. 계절 안 따지더라도 대만 주변 바다는 그냥 다 거칠다고 보면 된다. 대만 섬은 아열대에 놓여있다. 잠수함 배터리와 에어컨은 더운 날씨에서 버티기 위해 커지지 않으면 안 된다. 독일의 평온한 바다와 대만 바다는 비교를 거부한다.

물류와 작전적 측면에서 잠수정이 작은 항구에 정박할 수 있긴하다. 근데 정박 가능한 것 가지고는 아무것도 해결 안 된다. 잠수함을 위한 장비 보급 및 유지는 대형 항구에서나 가능하다. 잠수정은 어뢰를 쏘고나면 재장전도 못한다. 대형 항구가 공격에 취약하긴 하다. 그러나 대만과 중국간의 전쟁은 짧고 굵게 끝난다. 항구가 얻어 터지긴 하겠지만 잠수함이 출정하고, 물자 다 쓴다음, 항구로 복귀할 시점에 이미 전쟁이 다 끝났을 거다. 그냥 물자 풀보급 받은다음 나가서 되도록 길게 싸울 수 있는 대형 잠수함이 더 낫다.

기술/산업적 측면에서 잠수함 건조는 어렵다. 소형 잠수정이 간단하긴 한데 어쨌거나 복잡한 기술이 요구된다는 건 변함없다. 대만의 잠수함 산업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고 소형 잠수정으로 첫발을 내딛는건 쉽다. 그런데 다음 걸음을 내딛을 수 있을 지 묻는다면 답할 수 없다. 

작은 잠수정에서 시작하여 대형 잠수함까지 성장하는 그 과정에 엄청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대만은 그렇게 넉넉한 나라가 아니다. 중간 과정에서 언제든지 나자빠질 수 있는게 대만의 현실이다. 충호 3천톤급 호위함이나 ACS 미니 이지스함 계획이 폭파된 것도 이 시간과 비용 문제 때문이다. 

대만의 산업이나 자원이 딸리는 것과 비교하면 대만 국방부의 대형 무기 사업은 항상 '빠른 속도로 사업을 끝낸다'가 모토였다. 중공과 맞서야하는 현실 문제도 있고 시간과 돈이 없으니 빨리 대량생산해서 규모의 경제 실현하지는 이유도 있었다 이 장기적 시야가 결여된 무기 사업은 무기 산업이 안착하고, 발전하는데 악영향을 엄청 많이 끼쳤다. 

경국 전투기의 사례를 들어보자. 경국 전투기는 1년간 16대가 뽑힐만큼 초고속으로 공장 생산 라인을 돌렸다. 돈과 시간을 아끼긴했지만 후속 계획조차 없는데 생산이 종료되니 사업이 붕 떠버려 결국 직업을 잃은 기술자들이 해외로 가는 두뇌 유출로 이어졌다. 대만 잠수함이 급한 건 안다. 근데 이렇게 '단기 사업'만 남발하다간 한국이나 일본같은 지속 가능한 사업을 구현할 수 있을지 미지수다.



대만 국방 전략에서의 잠수함 수요

위에서 언급했듯이 잠수함의 불확실성은 적의 호전성을 잠재운다. 중공과 혼자 맞서야하는 대만 입장에서 잠수함이야말로 정말 필요한, 필수불가결한 무기 체계다. 대만의 국방 전략이 미국의 도움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거라면 대만 잠수함의 임무는 미 해군이 잘 오도록 대만 바다에서 중공 해군을 쫒아내는 것이다. 그러나 미군이 올때까지 버티는 게 목표라면 그런 임무는 잠수함보다는 수상함과 대잠 전력이 더 중요해진다. 

대만은 중국의 핵잠수함이 태평양에 진입하여 미국 전력을 위협하는 걸 막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 잠수함이 미국 지원군을 상대로 지연 작전을 편다면 대만은 끝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대만은 잠수함보다는 수상함과 대잠 전력에 투자하여 중국 잠수함을 잡아야 한다. 잠수함을 잡는데는 잠수함이 그닥 필요치 않다.

큰 그림에서 보면 대만의 잠수함 도입은 중국과의 갈등을 일으켜왔다. 대만은 유럽에게 문전박대 당했고 미국도 대만을 안 도와줬다. 결국은 잠수함 도입에 필요 이상으로 높은 비용이 들 것이다. 설상 잠수함을 산다고 해도 디젤 잠수함을 사는거다. 핵잠수함과 비교해서 디젤의 성능은 하위호환이다. 핵잠수함은 디젤보다 빠른 속도로 오랫동안 작전 가능하다. 적 함대에 끼칠 수 있는 위협 정도는 디젤을 압도한다. 

그래도 디젤이 없는 것보다는 있는게 낫다. 00년 이후로 대만 경제가 침체되면서 국방 예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외교 상황도 나빠져서 유럽 디젤 구입은 거의 불가능해졌고 미국은 없는 디젤을 팔겠다고만 한다. 잠수함을 얻는데 필요한 비용은 대만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이런 더러운 현실 속에서 국방 예산을 증가시키는 건 무리다. 제한된 자원을 하이리스크에 리턴은 불확실한 데 투자할지 아니면 그럭저럭 괜찮아보이는 다른 사업에 투자할지 대만은 양자택일해야 한다.

전반적 상황을 고려하면, 잠수함 구매가가 너무 높다면 그냥 다른 무기에 돈 쓰는 게 낫다. 대규모 잠수함 함대를 못 만들더라도 지금처럼 적은 수의 잠수함만 유지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잠수함을 소규모로 운용하더라도 대만 국방력에 큰 영향은 없을 것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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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요미지훈 17-11-12 22:25
   
글 잘봤습니다...^^

장문의 글이지만 나름 요약하면

1. 자신이 직접 만든 잠수함을 엄청 갖고 싶은 대만
2. 미국이 니들은 기술이 안되니 우리가 만들어 준다고..아니면 다른 나라꺼 사다 주겠다는데 지들이 만들겠다며 거절
3. 하지만 기술도 없고, 돈도 없고, 조선소 능력도 안되고, 항구 등 부대시설도 없고..
4. 현실을 깨닫고 여기저기 설계도, 기술 구걸하러 다니지만 결국 다 거절당하고..
5. 세월만 흐르고 현재 이모양 이꼴인 상태

올해 초인가에도 대만이 이지스함, 전투기, 잠수함 독자적으로 만들겠다고 한 뉴스 보거 같은데
참 얘들도 중국애들 아니랄까봐 입으로만 다 하는듯...
노원남자 17-11-12 22:26
   
자존감만 드럽게 쎈섬짱께들..
     
부르르르 17-11-12 23:05
   
오히려 자존감이 낮다보니 자신들의 현실을 인정하지 못하는게 아닐끼요?
참치 17-11-12 22:43
   
정말 재밌게 잘 봤습니다.

요즘 밀게가 말이 아닌데, 볼만한 글이 올라와서 오랜만에 흡족하네요.

감사합니다.
스크레치 17-11-12 23:12
   
감사합니다

정말 간만에 흥미있게 한자한자 빼놓지 않고

다 읽어봤습니다

덕분에 아주 재밌게 읽고 갑니다
가생일 17-11-12 23:37
   
잘봤습니다.
DakkaDakka 17-11-13 00:24
   
정말 잘봤습니다.
숲속의소녀 17-11-13 00:35
   
정말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박하맛사탕 17-11-13 01:03
   
잘 읽었습니다.
저 긴시간을 지들끼리 싸우고 질질 끌다 폭망한 예군요...  자기들 처지를 잘 모르나봅니다.
독자개발이라.....  ㅎㅎㅎ
아잉없나 17-11-13 01:37
   
잼나네요. 나라의 한계가 분명있을진데.
루루리 17-11-13 03:02
   
대만은 잠수함 뿐만 아니라

국방 외교에서 대단히 큰 실수를 엄청 많이 했지요

아직까지 중국에 먹히지 않은 이유는

1. 섬 2. 미국  덕분이지 안그랬으면 진작에 먹혔을 겁니다

대만은 외교 안보 오판으로 저 지경이 된겁니다 누구 탓을 할수가 없음

나라로 인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엄청난 제약을 받지요

더 심각한 문제는 중국이 세질수록 대만의 처지는 더 어려워질게 분명합니다

외교 안보 오판은 나라를 순식간에 어렵게 만듭니다
하나님 17-11-13 04:37
   
전체적으로 읽어보니 대만 잠수함 획득을위해
처절하게 온갖 꼼수는 다부리고 결국 자국 중공업 낙후,
그리고 미국이 판매한다고 했을 때 선택과 집중의 논리로
계획적으로 높은 비용을 감안해서까지 빨리 도입을 했었어야지
저리 재보고 이리 재보고, 비용 아끼려 능력도 안돼는 자국 조선소에서
건조한다, 유럽에 들러 붙었다, 일본에 들러 붙었다
아주 지지리 궁상 맞았네요.
화병의근원 17-11-13 05:50
   
10년후 우리가 원잠운영하게 되면 대만 반응 어떨지...ㅋ
낭만갈매기 17-11-13 08:17
   
꿈은 높은데 현실은 시궁창이네요 ㅋㅋㅋ
일지매 17-11-13 08:35
   
대만은 군사분야만 암담한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가 다 비슷한 실정이죠.

처음에는 자신들의 수준이 대단한 줄 착각하고 나대다가
현실의 벽은 너무 높고... 라이벌로 여기는 한국은 너무 앞서나가고... 결국 좌절모드...
꾸물꾸물 17-11-13 11:25
   
모든 문제는 정치와 시민간의 대립에서 찾아야 할겁니다. 국민당이 반공을 기치로 야당 세력을 탄압하거나 원주민들을 학살하던 것에 대한 반동은 당연한 것이니까요. 차별하지 말라, 탄압하지 말라는 요구를 반공을 이유로 학살하기까지 하다가, 중국과 친하게 지내야한다며 손 흔드는 모습을 보이면 갈때까지 가보자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유교권 국가에 친숙한 전형적인 전체주의적, 파시즘적 성격이 드러난 것중 하나가 혐한이겠죠. 우리가 역대 보수정권(자칭)들이 자행해온 이념 프레임과 궤를 같이 하지요. 전체주의나 파시즘적인 부분에서 중요한건 "적"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우리는 북한이라는 소재가 있었고, 일본과 대만은 냉전시절 소련과 중국이라는 소재가 있었지요.

냉전이 종식되고 나서는 중국을 소재로 삼기에는 어려워졌고, 대만에게 북한은 너무나 먼 나라이고, 일본에게도 북한은 어떻게든 이용해보려고 하지만 격이 맞지 않는 상대. 만만한게(?) 한국이니 한국을 적으로 삼는 것이랄까? 불만을 어떻게든 외부로 돌리려는 행태지요. 이걸 극복해야 발전하는건데, 적어도 현재 한국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중이고, 일본과 대만은 계속 그 안에서 버텨서 기존 기득권층이 이득을 추구하려는 형태.
테스크포스 17-11-13 16:18
   
정말 안습하다고 밖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