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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7-12-11 14:37
[기타] 나로우주센터는 10년 동안 한국과 러시아의 첩보 전쟁터였다
 글쓴이 : 넷우익증오
조회 : 4,892  

국은 러시아가 수십년 동안 개발해 얻은 발사체 개발 기술을 10년 만에 확보했을 것이다.”
나로호 개발에 참여한 러시아 연구원 예브게니 부킨(46·가명)은 “한국에는 10년 전 발사체 액체 로켓엔진을 이해하는 자가 한 명도 없을 정도로 ‘나비쵸크(초보자)’였다”며 “당시 한국 기술진은 초등학생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우리가 경계할 수준이 됐다”고 놀라워했다.

그는 “1·2차 나로호 발사가 실패하자 러시아 엔지니어들 사이에는 ‘한국이 러시아의 발사체 기술을 확보하려고 의도적으로 실패로 몰아갔다’는 말이 나돌았다”며 “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 측이 제작한 2단 로켓이 시험발사 때는 한차례도 실패한 적 없는데 유일하게 발사 당일 문제가 발생했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우주로켓 나로호가 불꽃을 뿜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나로호는 2009년, 2010년 두 차례 실패 후 이날 세 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가 30일 고흥우주센터 발사대에서 우주를 향해 힘차게 비행하고 있다. 항우연제공
2013년 1월 30일 오후 4시 전남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우주로켓 나로호가 불꽃을 뿜으며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나로호는 2009년, 2010년 두 차례 실패 후 이날 세 번째 도전에서 성공했다. 우리나라 최초 우주발사체 나로호(KSLV-1)가 30일 고흥우주센터 발사대에서 우주를 향해 힘차게 비행하고 있다. 항우연제공
한국 측은 러시아 측 주장에 반발했다. 한영민 한국형 발사체 추진시험팀장은 “러시아는 우리가 2단 로켓의 페어링(로켓 덮개) 분리 실험을 진공상태에서 하지 않은 것을 문제 삼은 것”이라고 했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과 러시아 연구진들 간의 설전은 이래저래 끊임없이 전개돼왔다.

전남 고흥 외나로도 나로우주센터는 총성 없는 전장(戰場)이었다. 특히, 2층 발사체 조립장은 나로호 발사 당시 발사체를 조립했던 곳으로 출입통제가 가장 심했던 보안구역이었다. 이곳은 러시아 보안 요원들이 상주하면서 최후의 순간까지 감시를 늦추지 않았던 곳이다. 24시간 감시카메라가 작동했다. 러시아에서 반입한 장비 일체에 대한 감시 체제를 유지하고 있었다.
1-2차 나로호 발사 실패로 양국 여론이 악화되면서 한국과 러시아 발사팀들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항우연제공
1-2차 나로호 발사 실패로 양국 여론이 악화되면서 한국과 러시아 발사팀들은 긴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항우연제공

러시아 보안요원 드미트리 포노마료프(55·가명)는 “나로호 발사 이후에도 철수 때까지 감시망을 소홀히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동료 엘례나 표도로바(53·가명)와 2인 1조로 발사대 주변과 발사통제센터, 발사체 조립장 내 러시아 장비들이 있는 모든 보안구역을 대형 모니터를 통해 스크린했다.

러시아는 나로호 발사 때까지 지나칠 정도로 엄격한 규정을 내세우면서 러시아 엔지니어와 한국 항우연 직원들과의 사소한 접촉마저 차단했었다. 러시아 엔지니어들이 한국 엔지니어들과 조금만 밀착해 대화를 나누는 듯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제지했다. 발사체 조립장은 물론 식당, 회의장 등 러시아인들의 움직이는 동선에서는 예외가 없었다. 대화 채널은 발사체 제작사 흐루니체프의 프로젝트 매니저인 콘스탄틴 샤이비치로 일원화했다.
러시아 측은 나로호 모형 주위로 러시아로 철수할 물품들을 봉인한 채 선적 순위를 매겼다. 정병선 기자
러시아 측은 나로호 모형 주위로 러시아로 철수할 물품들을 봉인한 채 선적 순위를 매겼다. 정병선 기자

나로우주센터는 러시아인들이 철수하기까지 한국이 아닌 러시아의 우주센터를 방불케 했다. 지난 2013년 1월 30일 나로호 발사를 전후로 러시아에서 온 연구원과 엔지니어는 200명이 넘어설 정도였다. 당시 블라디미르 포포프킨 러시아 연방우주청(로스코스모스) 청장을 비롯한 우주사업 핵심 요인들도 총출동했었다.

부킨은 “나로호 발사 과정에서 한국은 러시아가 제작한 1단 액체 로켓엔진 기술이 최대 관심사였다”며 “러시아 엔진 제작사 에네르고마쉬가 만든 RD-151엔진은 한국이 반드시 보유해야 하는 최첨단 기술의 복합체였다”고 했다. 이 엔진은 170t으로 140t의 나로호를 196㎞ 상공까지 쏘아 올리는 강력한 것이었다. 액체상태 연료와 산화제를 분사한 뒤 혼합시켜 연소시킬 때 나오는 추진력의 비결을 알면 한국도 당장 발사체 개발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러시아 보안요원들의 24시간 밀착 감시가 진행됐던 발사체종합조립동. 정병선 기자
러시아 보안요원들의 24시간 밀착 감시가 진행됐던 발사체종합조립동. 정병선 기자

이런 이유로 러시아 측은 엔진 작업하는 날엔 어느 때보다 감시를 철저히 했다. 긴장감이 넘쳤다. 한국 연구원들이 엔진에 대한 질문을 하면 러시아 연구원들은 하나같이 “나는 너를 믿는데 너는 나를 믿지 않는다”며 답했다. “물어보면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도 질문을 하면 곤란하지 않으냐”는 의미였다.

한국과 러시아 연구원들은 서로 알고 지내면서도 우주센터에서는 보이지 않는 팽팽히 긴장감을 유지해야 했다. 그 와중에서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보이지 않는 정보전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나로호 발사 이후 러시아로 반입할 물품을 24시간 감시하는 최후의 감시자.정병선 기자
나로호 발사 이후 러시아로 반입할 물품을 24시간 감시하는 최후의 감시자.정병선 기자
항우연 한국형 발사체 개발사업단 서견수 책임연구원은 “한국은 나로호 후속작인 75t급 한국형 발사체(KLSV-2)의 설계와 액체 로켓엔진 기술을 나로호 발사를 통해 확보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러시아와의 나로호 공동 제작을 하면서 KLSV-2에 대한 선행연구를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도 한국의 집요한 발사체 개발 의지에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미사일통제시스템(MTCR)’과 ‘우주기술보호협정(TSA)’ 등 국제 규정 때문에 로켓 기술 유출이 불가능했지만 한국으로서는 러시아 측의 조립·시험 과정을 하나라도 눈으로 보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러시아와 한국의 연구원들은 모두 “나로우주센터는 어찌 보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과 러시아의 첩보 전쟁터였다”며 “정보를 주지 않으려는 러시아와 정보를 입수하려는 한국의 치열한 기 싸움이 24시간 펼쳐진 현장이었다”고 했다.

당초 러시아 발사팀은 2009년 나로호 1차 발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서둘러 한국에서 철수하려고 했다. 나로호 발사 계약 당시 발사 실패 때 러시아 측이 부담금(계약금의 5%인 1050만달러)을 내게 돼 있어 1차 발사에 사활을 걸어야 했다. 하지만 3차까지 발사가 이어지면서 4년 동안 한국에 추가 체류하며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 러시아 연구원들은 나로호 발사가 성공하자 “후련하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향후 한국과의 협력에 기대감을 나타내기도 했었다.
러시아 측의 모니터링실. 항상 봉인하면서 보안에 만전을 기한 흔적이 남아있다. 정병선 기자
러시아 측의 모니터링실. 항상 봉인하면서 보안에 만전을 기한 흔적이 남아있다. 정병선 기자

러시아 전문가들은 “지난 10년 동안 한국은 러시아 발사체 기술을 날로 먹은 것이나 마찬가지다”며 “러시아가 직접 기술 이전은 하지 않았지만 전 작업 과정을 눈으로만 봐도 기술이전 효과를 충분히 누렸을 것”이라고 했다. 이철형 전 항우연 나로우주센터장도 “1차 발사에 성공했으면 좋았겠지만 두 차례 발사 실패로 오히려 러시아로부터 더 많은 기술 접촉을 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며 러시아 측의 주장을 부인하지 않았다.

러시아 엔지니어들과 나로호 제작에 나서면서 나로호에 관련된 설계 시스템 제작, 2만5000쪽에 이르는 시험평가 자료를 접하면서 한국형 로켓을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는 것이다.
러시아로 반입직전 봉인된 궤짝들. 정병선 기자
러시아로 반입직전 봉인된 궤짝들. 정병선 기자

항우연 팀들은 국가프로젝트를 위해 사활을 걸었다. 서견수 책임연구원은 “처음에는 러시아 로켓제작사 후르니체프, 엔진제작사 에네르고마쉬, 지상발사대 개발 설계국 모두가 일사불란하게 한국에 설계도조차 보여주지 않을 정도였다”며 “하지만 1·2차 나로호 발사 실패가 오히려 우리에게는 러시아의 설계 개발 검증 시스템과 기술을 접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나로우주센터는 지난 10년 동안 약 1000여명에 이르는 러시아인이 다녀갔을 정도로 북적였다. 이 때문에 우주센터가 위치한 고흥의 호텔과 모텔 모두 러시아인 차지였고 동네 가게에서도 보드카를 팔 정도로 흥청했다. ‘말렌카야 라시야(미니 러시아)’였다.
모든 종이 기록을 파쇄한 뒤 폐기 직전의 모습. 정병선 기자
모든 종이 기록을 파쇄한 뒤 폐기 직전의 모습. 정병선 기자

나로호 발사를 위해 파견된 러시아 엔지니어들과 장비는 2013년 완전히 철수했다. 그해 6월 50여명의 엔지니어가 발사체 관련 장비 1~2차 포장 작업과 더불어 장비 선적을 끝으로 나로우주센터에서 더 이상 러시아인들을 볼 수가 없다.

하지만 러시아인이 떠난 지금 나로우주센터는 여전히 긴장감이 넘친다. 2019년 예정된 나로호 후속작 한국형발사체(KLSV-2) 시험 발사를 위한 엔진 개발이 한창이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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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우익증오 17-12-11 14:55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3/29/2013032901237.html?Dep0=twitter&d=2013032901237

KSLV-2 계획서, 그 속에 나로호가 있다

―발사에 성공한 날은 어떻게 보냈나?

"언론 브리핑, 인터뷰, 보고에 회의까지 마치고 보니 밤 10시 30분이었다. 우주센터 기숙사로 돌아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웠다. 수백통의 축하문자에 하나하나 답하고 나니 새벽 2시였다. 불 끄고 누웠지만 잠이 오겠나. 창밖으로 빈 발사대가 보였다. 전날 밤까지 나로호가 있던 곳이다. 두 번의 실패 때도 침대에 누워 빈 발사대를 보았다. 그때는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들었다. 성공한 날 밤엔 지난 10년 세월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모스크바의 추위 속에서 담배를 피우던 모습이었다. 협상 중간중간에 건물 바깥으로 나와 한 대씩 했다."

그는 2005년 6월 담배를 끊었다. 28년 동안 하루에 2갑씩 피우던 골초였다. 그는 "정말 죽을 것 같아서 끊었다"고 했다.

―'나로호에서 한국이 얻은 것은 없다'는 비판이 있다.

"러시아의 성공이라고 볼 부분이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얻은 게 없다는 비판은 수용하기 힘들다. 나로호 다음 단계가 한국형 발사체(KSLV-2) 개발이다. 핵심 부품을 외국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힘으로 만든다. 2021년이 발사 목표다. 이미 4000쪽이 넘는 개발 계획서를 완성했다. 엔진까지 포함해 그걸 우리 손으로 썼다. 그걸 어떻게 쓸 수 있었겠나?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러시아에서 1단 로켓이 들어올 때 나로우주센터에는 러시아 보안 요원들이 함께 들어왔다. 처음에는 3인 1조로 한 명이 하루 8시간씩, 나중에는 2인 1조가 교대로 러시아 기술진의 동선을 감시했다.

―얻은 것이 있다는 뜻인가?

"기술자의 생리 같은 것이 있다. 기본적으로 별로 감추려고 하는 게 없다는 것이다. 모르는 것 물으면 답해준다. 어느 나라 기술자나 그렇다. '이거 어떻게 되는 거야?'하면 '응 그건 이렇게 되는 거야'라고 설명을 한다. 그렇게 대화하고 있으면 어느새 러시아 보안 요원이 와서 옆에 선다. 그들은 '대화하지 말라'는 소리는 안 한다. 그냥 온다. 그럼 말 못하는 거지."

―그런 짧은 대화가 도움이 됐나?

"'저녁 먹자'고 한다. 보안 요원이 밥 먹는 자리까지 쫓아오지 않으니까. 밥 먹으면서 물어보면 러시아 기술자들이 이야기해 준다. 족구를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운동한 뒤 회식하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듣기 가장 좋은 곳이 어디인지 아나? 역설적으로 모스크바다. 대전이나 나로우주센터는 러시아 보안 요원이 연구원이 숙소에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하는 것까지 체크한다. 모스크바는 자기네 동네니까 그런 체크를 안 한다. 퇴근한 뒤 술 한잔하면서 낮에 궁금했던 것 물으면 알려준다. 양국 기술자들이 한 방에서 회의를 하다가 차 한잔 마시고 산책도 하지 않나. 그때 생기는 빈틈도 활용했다."

―일일이 메모했나?

"그냥 저장 매체들을 많이 활용했다는 정도로 이해해달라(웃음)."

―개인적 만남에서 얻은 정보를 다 모았나?

"대화 내용을 내부 보고서로 만들고 누구와 어떤 접촉이 있었다는 식으로 필요한 부분은 다 모았다. 누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이뤄졌다. 연구원들은 그냥 친구들과 술 한잔한다는 생각으로 각자 주머니를 털었다."

◇독자 개발 로켓? 성공할 수 없었다

―독자 개발에서 나로호 도입(2002년)으로 정책을 바꾼 것에 대한 비판도 있다.

"'로켓은 엔진이 좋으면 담벼락도 끌고 올라간다'는 말이 있다. 로켓은 역시 엔진이 핵심이다. 독자 개발하던 액체연료 로켓(KSR-3)은 분사력이 나로호 1단의 13분의 1 수준이었다. 엔진 힘이 너무 약했다. KSR-3로 위성을 쏘아올리기 위해선 엔진을 다발로 묶어야 했다. 그런데 다발로 묶자 KSR-3 몸통의 무게가 위성·연료·산화제를 포함한 전체 로켓 무게의 거의 45%나 됐다. 로켓이 위성을 궤도에 올릴 수 있을 만큼의 속도를 내려면 그 비율이 15%가 넘지 않아야 한다. 이를 넘으면 위성을 올리는 데 써야 할 에너지가 제 몸통을 들어올리는 데 허비된다. KSR-3는 원천적으로 성공할 수 없었다. 연소시험도 실패의 연속이었다. 2~3초 타다가 꺼지고 2~3초 타다가 꺼지고. 정말 환장할 노릇이었다."

―애초에 안될 KSR-3에 매달린 이유는?

"미국에서 출판된 'LEO on the Cheap'이란 책의 영향이 컸다. '지구 저궤도(低軌道)에 위성 싸게 올리기' 정도로 번역되는 책이다. 우주 발사체가 너무 비싸진 현실을 파고든 책이다. 핵심 내용이 '성능이 떨어지는 발사체라도 여러 개를 묶으면 위성을 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연구원들은 이 책을 거의 달달 외울 정도였다. 여기에 무슨 길이 없을까 하고. 저자를 만나러 미국까지 갔다. 미 항공우주국(NASA)과 맥도널 더글러스 등에서 은퇴한 노인들이었다. 그들이 차렸다는 회사를 가보니 사무실만 덩그런 게 거의 페이퍼 컴퍼니 같은 느낌이었다. 다들 말은 청산유수였다. 공장은 어딨느냐고 물으면 '외주 주면 된다'고 하더라. 실제로 구현한 게 아니라 이론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로호 도입은 성과를 빨리 내라는 청와대의 독촉 때문이었다는 의심도 있다.

"내가 아는 한 청와대의 압력 같은 건 없었다. 전문가들이 과학기술부의 용역을 받아 연구를 했고 산업체 의견도 물은 결론이 '국제협력으로 가자'는 거였다. 2001년 2월부터 우주 선진국들의 문을 두드렸다."

―어느 나라를 갔나?

"일본·인도·중국·프랑스 연구원을 돌았다. 각자 색깔이 있더라. 일본은 '노'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책임자들을 만나면 '우리끼리 얘기하는 건 오케이인데, 공식적으로 이야기하는 건 조금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는 소리만 했다. 중국은 심플했다. '우리는 아무 권한이 없다. 군(軍)과 이야기하라'는 것이었다. 인도는 '정부에서 OK만 하면 발사체는 공짜로도 줄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프랑스도 번드르르한 수사만 늘어놓을 뿐 협력하겠다는 의사가 없었다."

◇사사건건 태클 건 미국… 우린 반미주의자

―미국은?

"국무부에 두 번 갔다. 그냥 가면 안 만나줄 것 같아 우리의 두 번째 지구관측위성인 아리랑 2호 문제를 이유로 찾아갔다. 이걸 중국 창정(長征) 로켓으로 쏘아 올릴 계획이었다. 가장 싼 가격을 적어냈고 발사 실적도 좋았다. 그런데 미국이 '안 된다'고 했다. '중국은 천안문 사태로 경제 제재를 받는 국가'라는 것이다. 중국과 거래하면 미국산 위성 부품을 안 팔 것이라고 했다. 인도 로켓을 쓰는 것도 반대했다. '러시아 로켓 기술을 수입하려다 역시 제재를 받고 있다'고 했다. 러시아에 대해서만 반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우주로켓 개발을 도와달라고도 했나?

"'우리도 계속 남의 로켓을 사서 쓸 수는 없다. 독자 개발 계획에 따라 파트너를 정하고 싶은데 너희가 좀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미국은 한국이 우주로켓을 개발하는 것과 한국이 우주로켓 개발 능력을 갖는 것을 찬성하지 않는다.'"

―우리 마음대로 개발할 수도 없는 건가?

"우스갯소리지만 로켓 개발하는 사람들은 반미주의자 많다(웃음). 너무 막으니까. 미국이 외려 더하다 이거다. 우방이라는 사람들이. 물론 돈이 목적이지만 러시아는 '그래 한번 해보자'고 했다."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에 대해서는?

"미국과 접촉하면서 러시아에 대해서는 '괜찮겠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 입장에선 러시아와 협력에 대해 미국으로부터 확실하게 '예스(yes)'라는 소리를 듣고 싶었다. 나중에 미국이 '우리 그렇게 말한 적 없다'고 하면 우리는 뭐가 되나. 또 안 된다고 하면 이건 정말 바보 되는 것이다. 그런데 끝까지 확실한 사인을 주지 않았다. 기술 없는 나라의 비애는 이런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 미국의 간섭은?

"간섭은 없었다. 다만, 러시아에서 듣기로 미국이 '한국과 계약 내용 중에 혹시 기술이전 되는 건 없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또 한 번은 2004년 10월 계약을 맺고 얼마 안 돼 (공동 개발 러시아 회사인) 흐루니체프 사장이 보자고 해 만났다. 그가 '(미사일로 전용하기 쉬운) 고체연료 로켓이 민감하다는 걸 너희도 알지 않느냐'며 '나로호 2단을 꼭 고체로 해야겠느냐'고 했다. 2단용으로 쓸 좋은 액체 로켓이 있으니 공짜로 주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너희가 다 해주면 우리가 하는 게 뭐냐. 만약에 2단 로켓 기술을 주면 받겠다. 2단은 엔진도 작은데 그것도 줄래?'라고 제안했다. 그랬더니 '없던 걸로 하자'고 하더라."

―미국을 의식한 제안이었을까?

"나는 그렇게 본다."
     
테스크포스 17-12-11 16:06
   
의외로 러시아가 쿨한면이 있네요 -0-;; 그건 그렇고 확실히 러샤도 미국에 관해선 압박을 받는게 사실인가 보네요;;참..하여튼 대단한 나라 어쨋든 우리 연구진들 너무 자랑스럽습니다
행복찾기 17-12-11 15:07
   
댓글 중 하나가 눈에 들어오는 군요..

"소설 쓰고 있군요.
나로호 이전에도 소형 엔진을 개발하여 연소시험을 마친바 있고,
후속 개발을 위한 기본 설비인 연소시험 설비등의 예산이 준비중이었는데
전시성 행사에 불과한 나로호에 밀려 모든게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한마디로 나로호 때문에 잃어버린 세월이 얼만데 이따위 소설이 나뒹구는 것인지..."

전형적인 조선일보식 사실 왜곡 기사라는 생각입니다.
하나둘넷 17-12-11 15:14
   
ㅋㅋ 우리가 개발하던 30톤 엔진 이야기는 쏙 빼버리고 KSR-3 13톤 엔진이야기 내밀면서 우리 수준에서는 불가능했는데 러시아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되지도 않는 이야기를 내뱉는데 기가 찹니다. ㅋㅋㅋ

조광래 전 항우연 원장 본인 스스로도 30톤 엔진 개발에 참여해놓고도 저런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개발에 참여했다가 정치적 이유로 러시아와 협력하는 것으로
바뀌면서 30톤급 엔진 이용 독자발사체 개발하려고 했다가 연구소를 떠나거나 흩어지게 된 다른 30톤 엔진 개발 참여 연구원들한테 똥을 먹이는 거죠. ㅋ
성현의말씀 17-12-11 15:24
   
"'저녁 먹자'고 한다. 보안 요원이 밥 먹는 자리까지 쫓아오지 않으니까. 밥 먹으면서 물어보면 러시아 기술자들이 이야기해 준다. 족구를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했고 운동한 뒤 회식하면서도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 듣기 가장 좋은 곳이 어디인지 아나? 역설적으로 모스크바다. 대전이나 나로우주센터는 러시아 보안 요원이 연구원이 숙소에 들어오고 안 들어오고 하는 것까지 체크한다. 모스크바는 자기네 동네니까 그런 체크를 안 한다. 퇴근한 뒤 술 한잔하면서 낮에 궁금했던 것 물으면 알려준다. 양국 기술자들이 한 방에서 회의를 하다가 차 한잔 마시고 산책도 하지 않나. 그때 생기는 빈틈도 활용했다."

연구원들....어떻게든 정보 얻을려고 노력 많이 했네요.
나로호 프로젝트는 한국형 발사체 만드는데 도움이 많이 됐군요.
     
하나둘넷 17-12-11 15:33
   
나로호 프로젝트 없었으면 독자 30톤 엔진 4개 묶은 1단부를 가지는 로켓으로 늦어도 2010년 이전에 쏘아올렸습니다.

종합연소실험 시설등도 이미 구축했을 거고요. ㅋ

30톤 엔진 4개 묶은 120톤 추력 갖추는 클러스터링을 구현하기 보다 러시아에서 한 번에 80톤급 이상 추력 엔진 기술
가져올 수 있다고 항우연 및 과기부 중간에서 농간질 해서 기존에 잘하고 있던 국산엔진 계획을 순식간에 백업계획으로
돌려버리고 개삽질해서 지금에 이른거죠.

10년은 당길 수 있었던 독자 발사체 개발이 나로호 때문에 밀린겁니다.

개별연구원들이야 "그나마 안주는 기술 어깨너머나마 배우자"라고 열심히 달려들었지만 가장 중요한 발사체 엔진과는
전~혀 관련없었습니다. 접근 자체를 못하는 데 무슨... 어깨너머...ㅋ
          
성현의말씀 17-12-11 15:49
   
연구원이 도움이 됐다는데..님이 뭐라고?
전 공신력 있는 연구원의 말을 더 신뢰하겠습니다.
               
하나둘넷 17-12-11 16:22
   
ㅋ.. 누가 들으면 75톤 엔진이 나로호 덕분에 나온 줄 알겠어요. 아주..ㅋㅋ

30톤 엔진 개발 좌절되고 한동안의 공백기를 거치고 나서 독자적인 75톤 엔진 개념연구등이 나로호와는 별개로 진행되었습니다.

나로호 계획 프로젝트 관련자들한테 인터뷰로 "도움이 되었습니까? 안되었습니까?"라고 물으면 누구나 "도움되었습니다"라고
답하지 어느 멍청이가 "도움이 안되더군요"라고 답합니까? 단순하시긴...ㅋ
               
마구쉬자 17-12-11 16:23
   
그게 연구실에서 그렇게 착 달라붙어서 못하게 만들었지만 문제는 그 많은 연구관계 인력들이 한국에
방문해서 그 작은 지방의 모텔과 술집에 덕지덕지 살아서 조그만 구멍가계도 보드카를 팔았다고
말하는 정도였으니 누가 그 인력을 다 관리감독합니까. 그러니.. 나가서 만났을때 술사주면..
술술~~ 술이 들어간다~~  술술술~~ 그게 러시아인들이 말하는 한국인들의 개발에대한 열정에
놀랬다라고 말하는 돌려까기 위트입니다. 그렇게 술을 덕지덕지 먹여가며 궁금하고 가려진
정보에대해 뱉어내게 만들었다는 이야기가 예전 르포기사에 있었음.

그러니 공개적으로 말할 수 있는 내용 말고도 많이 존재하기에 .. 기본은 철통 보안이였고
부정하지 않으나 말할 수는 없다.. 내부적 야사들이 존재한다고 본다면 어떨까 싶습니다.
하나둘넷 17-12-11 15:28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2/05/24/2012052400238.html?news_Head1

2012년 기사죠. 같은 조선일보... ㅋ

세부내용에서 조금 차이가 있긴 해도 우크라이나에서 30톤 엔진 기술 가져온 것 언급하고 있고
러시아의 몽니에 대해서도 적고 있죠. ㅋ

조선일보가 2015년 좀 여러가지로 힘들었던 조광래원장쪽 로비를 받아주고 써준 기사라고 밖에는...ㅋ
NightEast 17-12-11 15:28
   
아웅 파폭으로 여니까 좌우 스크롤이 안됨 ㅠㅠ
익스는 좌우 스크롤 되는데;;
     
스포메니아 17-12-11 16:36
   
전체 화면으로 키워서 보세요 ㅋ
태강즉절 17-12-11 21:13
   
참 매우 아름다운 야그라는.ㅎ
저런 기술들이란게 그래도 명색이 국가 1급들일텐데..동화 속 미담처럼 술술풀렸구먼..ㅎㅎ
뭐 거의 월컵 상대국 정보 탐색하듯?..선린우호적으로다?.ㅋ
허나..예전부터..엔지니어들 뒷면 음영진곳에선....매수로 돈이 오가고..러샤 판놈은 쥐도새도 모르게 고랑도 차고.
때론 영화처럼 현지에서 작전하다 울 요원이 러샤 정보기관애들의 총격으로 순직하기도 하고..공작 실패를 책임지고 좌천 발령도 나고..
마치 동화에 나오는 물위의 백조 마냥..
겉모습은 평화롭고 우아하나..물속에선 피눈물나는 엄청난 물갈퀴질이 있는것 처럼.
다만, 어찌된건지..서로 함구하니..일반에 후다가 덜까졌을뿐...
artfox 17-12-11 23:34
   
카리 로고 디자인 리뉴얼 할때 생각이나네요. 교수 및에서  눈물날때였는데... 시간 참 빠르다.
drizzt0531 17-12-12 01:14
   
무엇보다도 일본 미사일 발사체 개발에 대해서는 열심히 기술을 퍼준 미국의 입장이 한국에 관해서는 저렇게 차가울수가 있는지 다시끔 생각하게 하네요.  어느 정당이 들어서든지 미국과는 우호적인 (충실한 똥개) 일본과 달리 우리는 좌파 우파로 정치적 노선이 항상 상반되어 왔고 또한 대륙과 연결된것 때문에 언젠가는 실리를 지키기 위해서 미국과 적대적 관계로 돌아설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을지 궁금하네요.
좋은비 17-12-12 17:40
   
잘보앗습니다 비하인드 스토리 제밋네요

잘진행되서 우리손으로 위성을 쏘아올릴수 있는 그날이 빨리 왓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