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12-02-09 18:20
월남전의 포로들
 글쓴이 : 솔로윙픽시
조회 : 3,638  

출처: (http://www.vvk.co.kr/)


* 월남전의 포로들 *


기나긴 전쟁이 끝났다. 머나먼 이국땅 베트남에서 그리운 얼굴들이 돌아왔다.
돌아온 병사들과 가족들은 살아남은 자들의 기쁨으로 온통 들떠 있었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돌아오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다.

73 년 주월 한국군 사령부는 당당한 개선식과 함께 베트남 에서의 철군을 완료했다.
이세호 주월 사령관의 귀국 보고에는 단 한명의 포로나 실종자에 대한 언급도 없었다.

그런데 철군 5 일후,
장안을 떠들썩하게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전사한줄 알고 무덤까지 버젓이 만들어 놓았던 파월용사
유종철이 살아 돌아온 것이다.

월맹군과 한국군 최대의 혈전이던 안케패스 전투!
유종철은 그 안케패스 전투에서 팔과 가슴에 관통상을 입고 의식을 잃었다.

포로로 끌려간 유종철은 11개월간 포로로 잡혀있었다. 그는 시체를 확인하지 못한 명백한 실종자였다.
그러나 유종철은 바로 전사 처리됐다.

당시 주월사에서는 실종자나 포로에 대해 단 한번도 발표한적이 없다.
32만명의 한국군이 8년동안이나 참전했던 베트남전은 단 한명의 포로도 실종자도 없는 이상한 전쟁이었다.

유종철이 일으킨 파문은 국립묘지에 마련돼있던 그의 묘지를 철거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리고
유종철의 호적엔 <부활>이라는 전대미문의 문구가 새겨졌다.



기자회견을 통해 베트남전 포로문제를 여론화 시킨 박정환씨 그 역시 월맹군의 포로였다.
베트콩 게릴라와 월맹군이 베트남 전역에서 총궐기했던 구정 대공세,
태권도교관 이었던 박정환은
그때 시내 한복판에서 월맹군에게 사로잡혔다.박정환은 분명히 포로였지만 실종자로 처리됐다.

박정환은 캄보디아로 탈출했다가 천신만고끝에 극적으로 귀환했다.
살아 돌아왔을때 그의 병적기록부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다.

68년
베트남의 연대휴양소에서 수영을 하다가 없어진 김인수상병
김인수의 실종 처리과정은 월남전에서 실종자처리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말해준다.

당시
김인수와 같은중대에서 서무를 맡았던 이병화는 자신의손으로 직접 김인수를 전사 처리했다.
그러나 김인수는 92년, 살아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생사가 불분명한 경우에도 무조건 전사로 처리되었다.
참전 군인들에게 <실종>이라는 단어는 금기였다. 현재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월남전 사망자는 5068명,
혹시 그들중에 멀쩡히 살아있으면서 제삿밥을 받아 먹어야하는 실종자들은 더 없을까?

얼마전까지 우리 국방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던 베트남전의 실종자는 8명이다.
......
......

어떤 전쟁에서든 포로나 실종자는 발생한다. 월남전이 끝난후 월맹은 591명의 미군포로를 석방했다.
포로들은 전쟁영웅 대접을받으며 고국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한국군 포로는 없다는것이 우리정부의 입장이었다.

1973년 종전협상을 하면서 미국과 월맹은 포로교환에 합의했다. 그러나 한국군 포로에대한 언급은
어디서도 찾을수 없었다. 8년의 참전기간 동안 한국군이 파병한 연인원은 모두 32만명,
300만명을 파병했던 미국에 이어 연합군중 최대의 파병규모였다.

파병인원은 미국의 10분의1이나 되는데 한국군 포로,실종자수는 미군 포로,실종자의 400분의1도 안된다.

포로에 줄그어질 때 그나마 포로는 단 한명도 없었다.
의문이 아닐수 없다!



월남전은 전선이 따로없는 게릴라 전이었다.
한국군의 주요임무는 정글에서 활동하는 베트콩 게릴라를 소탕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실종자가 더 많이 발생할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군은 수색전만 벌였던게 아니었다.

월남전에서 벌였던 크고작은 작전이 약 6만회,
그 중에는 앙케패스전투,짜빈동전투등 월맹 정규군과의 치열한 접전도 많았다.
그 와중에 집계된 8명외에 실종자가 더 발생했을수도 있다.
실종자 문제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미국에서도 뜨거운 이슈다. 미국은 종전과동시에 포로와 실종자 명단을 공개했다.
3천여명에 달하는 미군 실종자와 전쟁 포로문제는 한동안 국민적 관심사였다.

헬기 조종사였던 프랭크 안톤씨 역시 전쟁포로였다.
5년간 월맹군에게 잡혀있다가 공식 포로교환때 풀려난 안톤, 취재팀은 그에게서 새로운사실을 듣게된다.
포로로 끌려다닐때 한국군 포로를 만났다는 것이다.

그는 건강해 보였고 ...한국군이라고 말했다.
"자기는 죽을것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포로생활의 경험담을 엮은 안톤의책에는 한국군 포로와의 만남이 생생하게 기록돼있다.
안톤이 만났다는 한국군포로는 <우리 >라고 분명히 말했다.
적어도 2명이상이 살아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그가 살아있을까? 그가 죽은걸 확인하지않은 이상, 내게는 살아있는사람!"

안톤이 봤다는 한국군 포로들은 분명히 실종자였다.그들역시 실종후 바로 사망처리 되었을것이다.

한국군 포로의 흔적은 또 있었다. 얼마전 기밀해제된 미국CIA첩보문서, 월남전 전쟁포로에 관해 조사한
CIA문서에서 한국군포로의 실마리를 발견할수 있었다.

문서에는
언제 어디서 목격되었고 어떻게 포로가 되었는지까지 비교적 자세하게 기록돼 있었다.
그 중의 한문서에는 심지어 한국군 포로2명의 인상착의와 신분까지 나타나 있었다.

CIA와 미국방성 문서곳곳에는 한국군 포로에대한 기록들이 많이나와 있었다.
이들의 실종시기와 인적사항중 우리 국방부에서 발표한 실종자 8명과 일치하는 것은 없었다.
모두 확실한 추가 실종자들인 것이다.

취재팀은 2통의 마이크로 필름에서 10 여명의 한국군 포로에대한 기록을 찾아냈다.
미처 조사하지 못한필름이 400 여통이나 더 남아있다.



한국군 포로는
66년부터 70년까지 베트남 전역에 걸쳐서 꾸준히 목격됐다.
......
......

프랭크 안톤이 목격했다는 2명의 포로들까지 적어도 18명의 한국군 포로들이 베트남 전 지역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 한국군 포로들은 도대체 어떻게 됐을까?
CIA문서에서 한국군 포로들이 하룻밤을 묵어갔다고 기록된 베트남 하오 유엔 마을을 찾아가 봤다.

월남전 당시 이 지역의 베트콩 책임자였던 사람을 만날수 있었다.
당시 베트콩 고위간부중 한명이었던 <무어>는 한국군 포로에대한 새로운 사실을 알려주었다.

"66년 한국군 포로를 잡은적 있는데 그는 맹호사단의 고위장교였다."
"포로들은
당시 베트콩들이 군수품과 병력을 보급하던 이길을 통해 이동했을 것이다."

취재팀은 안케패스 전투에대한 월맹군 3사단의 전투상보에서 한국군 포로에대한
또다른 기록을 찾을수 있었다.

위생병 티엔이 돌진하고 있는데 죽은척 하고있던 적군병사가 튀어나와 저항했다.
둘은 격투를 벌였다. 티엔은 적의등을 눌렀다.
그리고 적의 입안에 총기손질용 헝겊을 쑤셔넣은 후 진지로 끌고왔다.
......
......
......
......
그날밤
우리부대는 또 한명의 적군을 잡아왔다. 그들은 남한의 맹호사단 제8기갑 중대소속 이었다.
<월맹군 전사>에서 밝혀진 두명의 포로외에 안케패스 전투때 또 한명의 한국군 포로가 있었다.

기갑연대 1중대 1소대가 수색을 나가다가 제일 앞서가던 부인호상병이
적에게 사로잡혔다는 기록이다. 현재 부인호는 안케패스 전투의 사망자75명중에 포함돼있다.



638고지 탈환을두고 월맹군과 맹호부대가 한달간 접전을 벌였던 안케패스 전투!
그때
적어도 3명의 실종자가 발생한게 분명했다.

만약
그들이 포로가 되었다면,그후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월맹군은 간이감옥에 포로들을 잠시 가둬뒀다가 계속 이동시켰다.
포로들은 그 와중에 탈출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탈출하고 나서가 더 문제 ....모두 베트콩 .... 나가도 잡힌다!"

탈출했다 잡힌 박정환역시 모진 고문을 당했다.
고문과 함께 한국군 포로들은 뜻밖의 권유를 받았다."북한으로 가라"는 것이었다.

"소위 북에가면 편하다." "한국군 양자택일, 죽거나... 북한!"

월맹군은 포로들을 데리고 북쪽으로 북쪽으로 계속 이동했다.
월맹의 군수물자 및 인력보급로였던 호치민 루트, 포로들은 라오스와 캄보디아로 연결된
호치민 루트를통해 북베트남까지 끌려갔다.

호치민 루트를통해 하노이에 도착한 미군포로들은 일명 '하노이 힐튼'이라 불렸던 포로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러나 그 포로 수용소에도 한국군 포로의 자리는 없었다.
당시 월맹군으로부터 용병취급을 당했던
한국군은 포로로서의 가치조차 없었기 때문일까? 그렇다면 월맹군은 어떻게 한국군 포로들을
북한으로 보냈을까?
.......

하노이에서 북쪽으로 60km정도 떨어진 <랑장>지역,
호젓한 마을 어귀에는 오래된 기념비가 하나 있다. 북한군인 묘지다.
왜 북한군인의 묘지가 베트남에 있는 것일까?

당시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은 비밀리에 월남전에 참전했었다.
북한군들은 주로 공군과 심리전요원으로 활약했다. 월맹군은 한국군 포로들을 참전한 북한군에게
넘겼을 것이다. 월남전때 민사심리전 장교로 참전했던 김영시는 안학수와 박성열이 북한에 있다는 증거를
갖고있다. 베트남에서 수집한 북한의 선전용 전단,
그 전단 사진에 있는사람은 분명히 실종자 박성열이었다.
귀국을 일주일 앞두고 외출 나갔다가 실종된 안학수 역시 박성열과 함께 북한에 있다는것이 밝혀졌다.

결정적인 증언은 또 있었다.
70년 귀순한 정차랑은 북한에서 박성열과 안학수를 봤다고 했다.

"안하사와 박병장은 월남에서 자진해서 북한 왔다고..."평양에있는 세뇌교육 시설에서 만난 안학수는
고생한 흔적이 역력했다고 한다.



67년
헬기 추락사고로 실종된 박우식 대위. 국방부는 얼마전 박우식대위를 사망처리한후 실종자 명단에서 마저
제외시켰다. 그러나 그 역시 북한에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다.

8명의 실종자중 북한에 있다고 추정되는 네사람,
국방부는 이들중 일부가 자진 월북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거기서 어떻게 자진월북? "잡혀왔다는 소리못해"

"월남간건, 조국이 가라고 해서 ...."
"북에 가려는게 아니었는데, 살고싶어서 북한에 ...."

......
......
......
......
......

한국군포로의 존재는 미국의문서 곳곳에서 계속 발견되고 있다.
미국방성의 의뢰로 월남전 전쟁포로에 대해 조사한 '랜드' 보고서. 이 보고서에도 20명이나되는
한국군 포로의존재가 뚜렷이 새겨져 있다. 실종자에 대한단서는 그리 어렵지않게 발견할수 있었다.


"찾을수 없었던것이 아니라 다만 찾지않았을 뿐이다!"


지난 30년간
실종자는 8명 뿐이라고 되뇌였던 국방부,
그나마 얼마전 박우식과 김인수를 사망처리해 실종자 숫자는 오히려 6명으로 줄었다.

북한에 있다고 알려진 실종자에 대해서도 어떤 공식적인 대책도없다.
월남전 실종자문제는 30년동안 제자리걸음 상태인 것이다.

미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실종자 가족들이 문제해결을 위해 발벗고 나섰다. 1년에 한번씩 국방성 당국자와 가족들이
공개 간담회도 갖는다.
가족들은 끊임없이 실종자에대한 새로운 단서를 찾아와서 국방성을 채찍질한다.

실종자 문제에대해 전국 유가족연맹은 강력한 주도권을 갖고있다.
덕분에 96년에는 실종자를 찾는절차를 명문화한 <특별법>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가족들은 아직도 만족하지 않는다.

국방부산하에 있는 <포로 및 실종자 담당국>에서는 500 여명의 전문가들이 포로와 실종자를 찾기위해
세계각국에서 활동 하고있다.

"당신은 잊혀지지 않았다"는 이 문구는 우리와 유가족단체들이
결코 잊지않는다는 의미다.


<앞서가신 전우의 명복을 빕니다.>


하노이 현지에있는 실종자 사무소에서는 현지인의 증언과 각종자료를 분석해 실종자를 찾고있다.
실종된 미군의 유해를 발굴하는것도 이들의 주요임무다.
발굴된 유해는 DNA 분석 등을 통해 신원을 파악한후 가족에게 보내진다. 이러한 노력덕에 지금까지 미국은
실종자 566명의 행방을 찾아냈다.
현재 남아있는 실종자는 2017명, 이 숫자역시 앞으로 계속 줄어들것이다.

가족들의결의 역시 단호하다.
그들은 비밀해제된 국방성과 CIA문서를 자체조사해 많은 실종자를 찾아내고 있다.
<전국 유가족 연맹>은 더 많은 비밀문서를 공개하도록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이들의 목소리에 호응하고 있으며 재정적인 후원도 아끼지 않는다.

이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랑하는 자식과 형제를 찾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
.....

우리나라의 실종자 가족들에게 지난 30년은 잔인하기만 했다.
연대 휴양소에서 수영을 하다가 실종된 김인수, 그의 실종사실이 알려진 날부터 이집안에선.....
한숨이 그칠날이 없었다.


"생때 같은 맏아들을 잃은 후 부모님속은 숯검정이 됐다."
"참. 1년 내내..부모가 밥도 안먹고 ...못찾는다는데 우야겠습니까?"


"어머니는 그예 심장병을 얻어 돌아가셨다. 아버지도 얼마전 돌아가셨다."
"찾아가봐라 .....그카미 돌아가셔... "

눈을감는 마지막그날까지 아버지는 아들이 살아있을거라는 희망을 버리지않았다.

김인수보다 더 딱한 경우도있다.
섬마을 고향을 등지고 베트남으로 떠났던 하사 정준택, 그는 실종경위도 행방도 전혀 알려지지 않은채,
그저 실종자로만 분류돼있다. 정준택이 실종된지 30년이 넘었지만
가족들은 아직도 옛날집을 떠나지않고 있었다.
"어디서 왔소? 오매오매 감사허요. 우리집을 찾아오셨소?"

유복자였던 정준택,아들을 잃은후 노모의 얼굴에선 웃음이 사라졌다.
바깥출입도 안하고 사람도 피하게 됐다.

"가슴이 두근두근 .미쳐부러! 미쳐부러!....질긴것이 목숨이야"

30년간 공백으로 남아있는 준택의 호적,
그는 살아있는것도 아니고 죽은것도 아닌것이다.
준택을 불렀던 국가에선 30년간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그는 이제 남의나라 문서에 희미한 실루엣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사실.국가를 위해갔는데 ....책임져야지...."노모가 울음으로 세월.

베트남에서 준택이 보낸돈으로 마련했다는 앞동산의 보리밭,
올해도 보리는 누렇게 익어가는데 이보리밭의 주인은 도대체 지금 어디에 있는것일까?

"생전..어디가서 살았는지 죽었는지 .... "

올해 나이 아흔 셋, 자식의 얼굴을 보지못해 어머니는 차마 눈도 감을수 없다.
오늘도 먼 바다만 바라보고 있는 이 어머니에게 반가운소식을 전해줄사람은 없는것일까?




스무살 꽃다운 청년들이 머나먼 이국땅에서 피를 흘려야 했던 베트남 전쟁!
정겨운 고향과 사랑하는 가족을 등지고 사지로 떠나야했던 젊은 병사들!


그들이 순결한손에 총을 들었던 이유는 단 하나!
조국이 그들을 불렀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아직도 어디엔가 살아있다면, 그리고 애타게 조국의 이름을 부르고있다면,

"이제 조국은 그들에게 대답해야 한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백발도사 12-02-09 22:27
   
6.25전쟁이나 월남전에서 포로로 잡히신 국군포로들 생각하면
눈물납니다.

휴전후 전쟁포로 교환때 남한은 반공포로를 제외하고 북측에 포로를 돌려준 반면
북한은 남한병사 포로를 다른데 빼돌려 놓고 남한 포로 없다고 거짓말하는 바람에 그냥 그대로
묻혀버렸죠.
 
정부도 국방부도 그 후아무 액션도 취하지 않다가 탈북자를 위시해서 포로로 있던 분들이 귀환하면서 하나 둘 실상이 알려졌죠.

정부가 아무 액션도 취하지 못할정도로 남북관계가 경색되어 있었다 하더라도
적어도 김대중,노무현시절 적어도 햋볕정책으로 북한이 남한덕을 조금이라도 받았을때
정부가 문제제기 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그리고 월남전 때 포로이야긴데
포로는 실종자 포함 8명이다라는게 국방부의 공식입장인 듯 한데 포로가 어디 그 뿐이겠느냐는게
일반적인 시각이죠.  월남전에 북한이 참전했고 한국군 포로는 북송되었거나 공산월맹치하에서
갖은 고문을 당하고 죽었거나 아직도 생존해 있을지도 모를일이지요.

월남이 패망하고 들어서 공산 월맹정부와 신속히 포로협상을 못한 것은 냉정시대였기 때문이었다 손
치더라도 이후 공산월맹과 노태우 대통령재임기간인 1992년 수교 당시 월남전포로문제를
다뤘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듭니다.

대한민국 정부가 참전용사나 포로문제를 이런 식으로 경제논리나 한낱 과거사 문제로 치부하여
소극적으로 대한다면 앞으로 나라가 큰일을 당했을때 누가 나서겠습니까?
하시사 연평해전이 터져 국군이 죽어나가도 월드컵 구경다니는 대통령을 둔 대한민국이니
수십년된 포로문제를 국사에 올린다는 것은 우리들만의 망상인지 모르겟습니다.
서울뺀질이 12-02-10 06:06
   
오래된  문제이긴 한데  우리 정부는 젊은이들 필요해서 소집햇으면  사후 관리도 잘해야 하는데  영 소흘해서 문제 입니다.  이승만 정권때에도 제2국민역 사건으로 많은 사람들이 전투다운 전투도 못하고 겨울에 추위와 배고픔때문에 죽었습니다.  하지만 책임 지는  사람이 없엇죠. 

군대에 소집되어서 군생활 하다가  중간에 질병이 생겨도 나몰라라 입니다.  2년간 국가에서 불러서  병역의 의무를 수행케 하는 거면 최소한  건강 검진 정도는 중간에 1년에 한번씩이라도 해야 하는데  전혀 관심 없으니  부모님들 군대에 아들 보내 놓고 안심하겟습니까?

국군 포로 문제는  한 일면에 불과하죠.  사회 전반에  퍼져 잇는 무관심과  냉대가  아직도 문제 입니다. 언론의 스포트 라이트 받으면 해결이 정말 로  힘들어 보이는 문제도  금방 해결 됩니다. 

그러니  극단적인 행동을 해서라도  주위의 시선을 끄는 행동도 서슴치 않고 합니다.  포로 송환문제에 관해서는 미국을 본받아야 합니다.  비록 한국전쟁때  사망한 군인의 유해라도  찾아서  본국으로 보내는 걸 보면  강대국이  힘만 쎄서  강대국이 아니라는 점을 느낍니다.
아구양 12-02-10 10:12
   
과거로 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못하고있지요. 현재 국방부 관련 고위당국자들..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을겁니다. 간간히 군부대 내에서 터져나오는 xx사건. 이거 확실히 xx이라고 말할수있습니까? 그리고 xx하게끔만든 그동안 뭐했답니까? 그때나 지금이나 개인사병들은 국가에 개 같이 끌려가서 죽으면 개 값되는게
변함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권력자들은 그걸 알기에 지자식들은 군대에 안보내구요.
누구를 위한 군대인가? 그리고 내가 죽으면 "개"값으로 무쳐 버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 전쟁시나 군대있을때 안할까요. 당장 전쟁중이라면 어디서 죽을수있는데 전쟁끝난후 내 육신하나 거둬주려하지 않는 나라를위해 목숨까지 바쳐가며 싸워야 할까요? 미국이라는 나라가 대단하다는건. 역사가 짧지만 그들이 침략전쟁이되었던간에 전쟁에 참전한 어떤누구라도 영웅으로서 대접을 한다는 겁니다. 여론이야어찌되었던 국가에서는 그들을 영웅으로 만들고 또한 그만큼 노력을하지요. 그러니 국가가 부르면 언제든 전쟁에 참전하는거죠.
아구양 12-02-10 10:18
   
이부분이 내가 박정희를 욕하는 부분중에 한가지입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월남파병으로 인해 얻어오는게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 피값으로 경부고속도로 놓고 거기서 나오는 물자들 한국내 반입해서 전력상승시켰고. 국민에게는 월남파병하여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기치아래 생때같은 젊은목숨들 가져다 바친겁니다.
그러면서 실종자들은 나몰라라.... 그들에게 해주는건 고작 국립묘지 안장 . 포로는 인정도안하고 최소한 알아보려는 노력자체도 없지요. 그때 당시 우리가 너무 가난해서 거기에 힘쏟을 여력이없었다??? 그건 핑계일뿐입니다.  그러기에 박정희는 욕 쳐먹어도 싼인간이고 국가 반역자라는 겁니다. 박정희 너무 빨지 마세요. 북한에 김정일이 있으면 남한에는 박정희니까// 둘이 다른거요? 북한은 먹고사는게 고달픈거 남한은 그나마 먹고사는게 좀좋아진겁니다. 그거이외에는 다른게 없어요.
솔로윙픽시 12-02-10 10:42
   
화나는 건 이해하지만, 그래도 령도자 동지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건 좀 아니다 싶네요. 설사 같은 독재자라 하더라도 그 궁극적인 목표는 완전히 반대 방향으로 나아갔는데 먹고 사는 게 좀 좋아진 것 말고는 다른 게 없다? 그럼 몸에 비닐 두르고 잡초죽 끓여먹으러 북한 가세요. 별로 다를 것도 없으니까.

제가 아구양님같은 사람들 보면 한숨만 나오는 게, 박정희가 아무리 싫어도 엄연히 나름의 공이 있는데 그걸 무조건 누가 했어도 더 나았을 거고 쳐죽일놈일 뿐이다, 라고 매도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제 3 공화국 시대에 저질러진 과오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평가하는 게 아니라, 그저 조중동 꼴통 우익들에 맞서기 위해서인지는 몰라도  무조건 그들의 숭배대상인 박정희는 씹어먹어도 시원치 않을 놈이라고 목이 쉬어라 외쳐대는 것 뿐이지 않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현재 좌익 세력이 조중동의 프로파간다에 빠진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올 수 없는 겁니다. 이건 뭐 논리라고는 없고 무조건 극렬한 박정희에 대한 혐오로 모든 얘기가 귀결되니 원.
     
아구양 12-02-10 18:02
   
그런 말하는게 정말 싫습니다. 싫으면 북한 넘어가 살라는 말/// 참.. 자기 조국에 대한 열정이없다면 비판또한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경계해야할건 무비판적인 사고이구요.
내가 말하는부분에서 어디 북한으로 가고싶다고 한부분이있나요/ 그리고 박정희가 바꿔놓은건
말했다시피 먹고사는거에 힘쓴거 밖에없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은 대통령이면 응당 해야하는부분이구요/ 아시겠습니까? 북한은 ㅂ ㅅ 같아서 하지않고 저 지 럴 거리면서 살고있는거구요.
경찰이 도둑 잡는게 당연한겁니다. 그러기 위해 그자리에 있는거구요. 대통령이요? 국민을 위해 당연히 해야할부분이있는겁니다. 그리고 극렬한 박정희 혐오요???? 국내언론 어디에서 박정희찬양잔치를 벌이고 박정희 까는글은 눈씻고 찾아보기어렵습니다. 박정희 까기시작한것도 죽고나서 슬슬나오기 시작한거구요. 반대로 박정희 빨아주는글은 널리고 널렸습니다.
공과중에 내가 과만 나열한다고 했는데 난 그렇게 생각지 않고 그동안 공에 가려진 과가 서서희들어난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솔로윙픽시 12-02-10 18:19
   
일단 흥분하지 말고 글을 씁시다. (계속 마침표 옆의 슬래시를 누르시길래.)

박정희는 욕 처먹어도 싼 인간이고 국가 반역자다.
북한에 김정일이 있으면 남한에는 박정희가 있다.
둘이 다른 거? 북한은 먹고사는 게 고달픈거, 남한은 '그나마' '좀' 좋아진 것 뿐이다.

이게 편파적인 게 아니면 뭡니까. 게다가 남한은 그나마 좀 좋아진... 이라는 부분에서는 헛웃음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전세계 모든 후진국들이 영영 빠져나오지 못한 경제적 함정을 현실성 있는 국가 경영으로 뛰어넘은 거의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박정희의 공이 크다는 건 주지의 사실입니다.

아무리 박통이 싫어도 전세계 지도자들과 학자들이 모두 인정하는 점은 좀 객관적으로 평가하란 말입니다. 김일성이나 가다피같은 놈들 밑에서 뼈가 바스러져 봐야 행복한 거 알겠습니까?

잘한 건 잘한 거고, 못한 건 못한 겁니다. 그 두 가지를 제대로 구분하지 않고, 공은 과를 주장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다고 판단하는 비겁한 반쪽 인텔리들만큼 쓸모없는 것도 없습니다.

제가 어릴 적에 조중동에서 읽은 말대로 한국에 빨갱이 천지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분명 경제발전에 대한 무위로 돌릴 수 없을 만큼의 공이 있음에도 어떤 변명을 갖다 붙여서라도 박정희 시대를 완전한 한국역사의 암흑기로 묘사하는 아구양님같은 분들 때문이었습니다.
아구양 12-02-10 18:07
   
그리고 한마디 첨언하자면 우리가 이렇게 살고있고 민주주의를 이루고 사는거 인터넷에서 이렇게 대통령을까고 지낼수있는거.. 박정희 가 잡아죽이려고 그렇게 애썼던 소위말하는 "좌익" 지 마음에 안들면 빨갱이라고 덮어씌우고 잡아죽이고 고문하고 했던 그런 개 같은 작자들에 목숨바쳐서 이루어낸겁니다. 박정희가 먹고살게해줘서 자연스럽게 이뤄진게 아니고 ..... 일전 김근태 씨가 사망하셨지요. 그분이 걸어온 삶 . 그런분들로 인해
이렇게 자유를 누리고 사는겁니다. 박정희, 전두환, 이승만 같은 개 자식들이 살게 해주는게 아니구요.
     
솔로윙픽시 12-02-10 18:29
   
누가 뭐랍니까...
유시민이 낸 책 제목대로 한국의 민주주의는 후불제 민주주의입니다.
굳이 광주 민주화 운동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민주주의 공화국을 표방하고 나섰지만, 그 갑작스럽게 도입된 민주주의에 대한 댓가는 지난 60년간 점진적으로 지불해 온 겁니다.

피 한방울 흘리지 않고 민주 의식이 국민들의 머릿속에 뿌리내리기는 어렵습니다.
허나 아무리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해도, 그 피를 흘리게 만든 독재자들의 반민주적 행태는 분명 그 후손들에게서라도 죄값을 받아내어야 마땅하겠지요.

아구양님 말씀의 핵심에는 동감하는 바입니다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바꾸려면 먼저 어느 정도 온유적인 시선으로 박정희의 공을 찾아내려는 시도는 해 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중동의 찬양 일색인 글들을 본받으라는 게 아닙니다. 다만 그런 건전한 시도는 우익이 아니라 진보 좌익 진영에서 나올 필요가 있다는 얘기입니다.
니가카라킴 12-02-11 15:01
   
아구양님께 한마디 해드리죠.. 박정희 욕을 하셔도 좋고. 뭘 어떻게 비난하셔도 좋습니다.
그래도 전 박정희를 존경합니다..  딱 하나의 이유때문입니다.
화교들이 우리나라에서 경제적 실권을 쥐지 못하게 만든.. 그거 하나만으로 박정희는 역사에 큰 공을 세운거요..
이건 인정해야 할껄요?.. 싱가포르.. 동남아 꼴을 보면 말이요...
     
즐거운상상 12-02-18 22:33
   
ㅋㅋㅋㅋ 화교들 돈 쳐드시려했다... 빅엿먹은걸 말씀하시나요??? ㅋㅋ
아구양 12-02-13 12:48
   
다음에 돌아다니다가 요런 게있네요. 함 보시면 어떨까요.
http://bbs2.agora.media.daum.net/gaia/do/kin/read?articleId=60966&bbsId=K162&pageIndex=1
조금 읽을만 해서요.
당당하게 12-02-13 19:22
   
화교들 몰아냈다고 좋아한다니... 민주주의는 개똥으로 알던 사람인데 전 별로 좋아 할수 없는

전대통령중 하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