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대전차전을 다 읽고 마지막 정리부분에서 미군의 이라크군에 대한 평가 파트를 소개해봄
이라크가 가진 지형상의 이점과 막대한 무기 병력에도 불구하고 이라크군이 쉽게 무너진건 무기의 성능이상으로 이라크 내부의 문제들이 작용
특히 독재정권하의 군대들이 가진 고질적인 한계가 크게 드러남
1. 이라크군의 실질적 지휘관은 중장 1명에 불과
보통 병력 100만 규모의 군이 있다면 군단의 상급 조직으로 야전군이 구성되지만 이라크군에는 군단급 편제가 최상위 조직이었음
이는 반란을 두려워한 후세인이 한명의 지휘관이 대규모 전투부대를 지휘하는걸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
이라크군의 군단구성에서 6군단이 없는것은 6군단 지휘관이 모반혐의로 숙청당한후 6군단이라는 단대호를 쓰지 않았기 때문
이는 쿠웨이트전역에서 중장 한명이 수십개의 사단을 지휘하는 상황을 초래 신속한 의사결정 및 지휘를 불가능하게 만듬
2. 히틀러를 연상시키는 후세인의 지휘
후세인은 군사적 합리성보다 권력의 집중을 우선시해 군 통수권을 장악했고 자신이 직접 원수계급으로 군을 직접 지휘함 이는 흡사 2차 세계대전당시의 히틀러를 연상시키는데 이라크 국방장관은 육군대장이 맡았지만
숙청이 두려워 후세인의 비합리적인 결정에 대해 찬성하는 yes man 뿐이었다
후세인은 군 최고사령관으로싀 무능했는데 고도의 군사지식이 필요한 공세적 작전 수행능력은 전무했고
실제로 이란 이라크 전쟁에서 고착된 전선에서 소모전만을 보여주었을 뿐이다
1986년 소모전 와중 이란영토를 차지하기 위해 공세를 시도하다 오히려 역습을 당해 이라크 남부지역을 뺏기기까지 했다
3. 후세인의 눈치만 보는 무력한 지휘관들
후세인은 약간의 작전 결정권을 이라크군 총사령관에게 부여했지만 지휘관들은 작전 실패시 가져올 후세인의 잔혹한 보복이 두려워 적극적 공세작전은 제안조차 못하였고 결국 이라크군은 8년의 전쟁기간 대부분을 방어에 허비하고 공세작전은 전체 기간중 8개월에 불과했었다
그 결과 이라크군의 작전 수행능력은 없는것이나 다름없었고 독재지 후세인의 눈치만 살피는 체질이 되었다 그리고 그 대가를 걸프전에서 호되게 치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