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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18 05:00
[영상] 러일전쟁 뤼순공방전
 글쓴이 : 후라모델
조회 : 2,171  


러일전쟁 뤼순공방전..

지휘관에게 있어서 부하병사들의 목숨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병사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태도도

다시는 반복되면 절대 안되는

전쟁범죄가 아닐까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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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보트킹 18-02-18 11:48
   
우리 입장에서는 좋은 일 아닌가요?
일본군 숫자가 줄어드는 일은....
우리 군의 지휘관이 저런 똘아이라면
환장할 일이겟지만요.
아리우스 18-02-18 12:04
   
저 시대는 다 저랬습니다....

유럽도 1차대전 터지고 단체로 똘짓해서 천만명 아작 났죠....

저 시대는 왕,귀족이라는 계급사회가 대단히 강한 사회였기 때문에 가능했을겁니다만...

지금 기준으로 보면 똘짓이지만

역사는 지금을 기준으로 평가하면 곤란하죠.

중세시대는 사람이란 왕과 귀족에 국한되었고 석기시절에는 사람이라는 정의도 없었죠.
이 시대에 일어난 사건을 오늘날의 기준에 한정시켜 바라볼수 없듯이 저 시대도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곤란하죠...
깁스 18-02-18 13:37
   
저 땐 다그랬다니 후임으로 와 결국 극동함대 뒤통수에다가 포격한 장군은 뭐지?
4leaf 18-02-18 14:28
   
저 당시 전술이 신무기에 대응하지 못한 부분이죠.

당시 일본군을 갈아 엎은 맥심기관총은 엄청난 총알 소모로 각 군에서 골칫덩어리였죠. 혼자 몇분만에 수백, 수천발을 잡아먹는데 생산량은 소모량을 못따라갔으니... 그래서 각 나라는 맥심기관총이 성능은 좋지만 쓸만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습니다.

또 당시 육군의 포도 곡사포가 아닌 평사포라 고지나 참호사격에 매우 비효율적이었죠. 포병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요새화 된 고지 공격의 결과는 지금이야 끔찍한 상황인걸 알지만 당시는 그 모든게 처음 등장한 부분이라 피로써 배운게 있죠.
     
랄랄라라라 18-02-18 15:37
   
저 당시엔 공성용 곡사포가 따로 운용되었고 실제로 뤼순에서 일본측은 28센티 곡사포를 운용했죠.
          
4leaf 18-02-18 18:11
   
크... 또 제 얄팍한 지식이 들어나네요. ㅠ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태강즉절 18-02-18 14:44
   
노기는 그냥 메이지 연줄에 의해 발탁된.. 무능의 극치인 충성심에 쩔은 멍청한 군바리였을뿐인 것이고.
(그러니 합습원 교장질하다 메이지 운구날  할복했겠지..자기를 알아준 주군없는 세상은... 어쩌구 하며..)
삽질을 보다 못해 직접  뛰어가 불과 며칠만에  상황을 반전시킨 고다마는... 말그대로의 전략전술에 능한  군인이었고..
훈장질 하다 함대 사령관된 도고는..뭔가 반응이 늦은 그런 무덤덤한 마인드였기에..누가봐도 열세인 상황에서
일희일비 호들갑떨지 말고 진득하니 묵묵하게 버티라고... 역시 메이지가 앉힌거고..
일본이 잘난것 보단 저당시 러샤가 너무 삽질한거죠...극동 끄트머리에서 벌어진일이었고..  시국도 시국이고 황제란넘도 똘추였으니....
솔까..당시 왜넘들이 운대가 기가막히게 맞은거였고 재수가 너무 좋았던거지 뭐 별거 있겠수?..ㅎㅎ
저것들의 과장되고 미화된 영웅담으로..
그리 교육(국뽕을 링거로 꽂아놓고 산) 받고 자란 얼라들이 40년대 정치 군부의 중추 세력으로 성장해
겁박아지 상실로 미국을 상대로 개전하니..핵처맞고 지금도 미국 종놈으로(?) 사는거겠죠 뭐..트리거 이펙트라는..ㅋ

청일전쟁을 시/발점으로다~~~~월남전까지..동아시아 대전(?)......현재의 남북 긴장대치까지..백여년..
저시키들이 서양 애들 흉내 내면서 제국주의 막차 타면서 벌어진...
방아쇠를 당긴넘들이란거..덕분에  아시아가 개판으로... 피께나 흘리게 만든 원흉들인디..뭐가 잘났다고 요즘도 개설레발을 치는건지..
랄랄라라라 18-02-18 15:19
   
애시당초 당시에 일본 해군은 203 고지만 점령하고 거기서 항구에 정박한 군함을 포격해달라는 요청이었습니다. 하지만 노기를 비롯한 육군파는 모두 정면 돌격을 통해 뤼순항 전체를 점령해야 한다고 목표를 확대해버렸죠.

문제는 그렇게 해서 1~3차까지 노기 휘하 제 3군의 5~6만명(후에 증원 받음) 병력 중에서 약 5만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참사가 발생합니다. 그런 뒤에야 목적을 바꿔서 203 고지로 목표를 제한하고서 원하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죠.

그런데 노기만 못났다고 보기엔 주변의 일본 육군 장군들이 다 하나같아서...

그리고 사실 가장 큰 문제라면 이 당시에 보여준 일본군의 문제점들이 고스란히 태평양 전쟁에서 재현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되었죠. (심지어 중간에 탄넨부르크 전투를 통해 단기 결전 사상이 강화되기도 하고.. 응?)

거기다 이런 피해와 비효율도 다 미화되면서 교리가 강화되서 단기 결전으로 맛깔나게 미국을 후려주고 강화하려고 기습을 한게 진주만이었죠....
sunnylee 18-02-18 15:36
   
1차대전 직전.. 전쟁무기발달,전술을 .. 못쫒아간 지휘관의 무능탓도 커지만..
여순전투에서 증명된.. 철조망,참호(미 남북전쟁말기)+ 콘크리트방벽, 맥심기관총의 조합은
그대로 1차대전에서도 대량 살육의 시대를 열었죠..
그점에선 1차대전 유럽서부전선의  지휘관들도 ..교훈을 얻지못하긴 마찬가지
실질적으로 전쟁이 인간대 인간의 구도시대에서..
인간대 기계의 시대로 바꿔가는 시대가 시작된..
승리만세 18-02-18 23:13
   
웃긴건 러일전쟁때 유럽에서도 수많은 참관단이 와서 지켜보고 연구했다는데 1차대전때는 저거보다 더심한 살육전을 펼쳤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