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동서 냉전의 시대도 아닙니다. 더이상 이념이 상대방을 적으로 만드는 시대가 아니라는 뜻이죠. 이미 많은 철의 장벽 국가들이 자유 서방 체제를 따르거나 부분 차용하여 세계 경제권으로 나와 자유로운 경제 교류와 왕래를 이루고 있습니다.
미국과 전쟁을 했던 베트남 역시 주류 사회와 교류하며 자국의 경제적 부를 위해 매진하고 있죠.
그러나 냉전이 끝났다고 해서 군사적 위협이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념을 지우니 종교, 민족, 자원 등을 이유로 군사적 긴장은 지역별로 고조되고 있기도 합니다.
마치 제국주의 시대 때처럼 강대국들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민족간의 혹은 종교간의 분쟁에 개입해 무고한 피를 흘리게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도 남과 북이 한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분단을 지속하고 있는데요, 우리의 대립 양상은 다른 나라들과는 좀 다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남과 북의 분단과 군사적 대립은 과거 냉전시대의 그것처럼 이념으로 인한 분리와 대치입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북한이 무도한 국가로 국제 질서에 순응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의 정권자는 과거 동유럽의 구소련 위성국가들처럼 독재자로 위성국 지위를 통해 독재 권력을 정당화 했던 그 때의 그 모습입니다. 그러나 동구의 많은 사회주의 독재국가들은 시민들의 투쟁으로 둑재자를 무너 뜨렸고, 그결과 독재에서도 벗어 났으며 사회주의에서도 벗어났습니다.
하지만 북은 독재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이른바 '주체 사상'이라는 것을 만들어 마치 국민을 이도교 집단으로 만들어 독재자를 신적으로 숭배하게 하여 주민들을 통한 민주적 혁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습니다.
더불어 북한 주민들을 대표하고 북한 주민들의 안락과 번영을 위해 존재해야 할 정부는 그 본래의 취지를 잃고 오로지 독재자의 권력 유지에만 국가의 전력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북한은 냉전의 붕괴 후 많은 사회주의 국가가 그러했던 것처럼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 발전을 이뤄 주민들을 잘 살게 해 줬어야 합니다.
베트남과 동구권 국가들이 이에 해당하죠, 하지만 북한은 개혁개방을 하지 않았습니다.
동남아 국가 중 미얀마는 최근까지 군사독재를 통해 중국의 하수인 노릇을 했고, 내부적으로 많은 부족간 내전을 겪었습니다. 이는 군사 독재 정권이 미얀마 주민을 대표하지 않고 중국의 간섭권에서 일부 계층의 권력 독점에 치중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아웅산 수치'여사라는 미얀마 민주화의 영웅에게 손을 들어 군부 독재를 청산하고 내전까지 종식시키며 미얀마 국민 생활 향상을 위해 인접 국가들간의 교류와 협력을 늘려 가고 있습니다.
동남아에 중국의 영향을 받는 독재가 사라지자 동남아는 새로운 경제 성장의 큰 축이 되어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시장이 되었습니다.
북한은 시베리아와 중국 대륙을 통해 유라시아를 연결하는 매우 유리한 지정학적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지하 자원도 많아 개혁개방을 자체적으로 이뤘을 경우 엄청나게 빠른 경제 성장과 높은 번영을 이뤄 낼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충분히 중국에 구호 식량을 요구할 수 있었음에도 독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무고한 주민을 300만 명 이상 아사하게 만들었고 오로지 독재를 유지하기 위해 개혁개방 대신 철저한 폐쇄를 선택했습니다.
이는 그 어떤 논리에도 정당화 될 수 없는 지점이며, 중국이 자신의 영향력을 위해 북한 주민들의 삶과 행복을 외면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국제적으로도 치졸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급기야 북한의 독재 정권은 북한 2000만 주민의 목숨을 볼모로 핵무기를 개발하여 독재 정권 자체만을 유지하겠다며 무리수를 두고 있습니다.
그간 경제적 우위를 바탕으로 엄청난 군사비를 투자해 북에 재래식 전력의 우위를 점하고 있던 우리는 그간의 우위를 한순간에 잃게 됨과 동시에 안보적 위협에 놓이게 됐습니다.
군사력은 전쟁을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며, 군사력을 통한 전쟁 방지는 적대국이나 적국보다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는 군사력 자체에 있습니다.
따라서 군사적 견지에서 우리는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고, 이는 잠재적 전쟁 발발의 요소가 됩니다.
즉, 상대가 더 위협적이므로 우리가 원하지 않는 군사적 상황이 부지불식간에 발생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안보 현실에게 가장 좋은 대안은 역시 북을 압도하는 군사력의 보유에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이는 우리의 핵무장을 지칭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핵무장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있는데,
우선 핵무기를 개발하고 실험하고 구체적으로 무기화 하는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 시간 내에는 어쩔 수 없는 안보 공백이 생기고 이는 어쩔 수 없는 국가 불안 상황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핵무기를 개발하고 무기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할지라도 국제 사회의 동의 없는 핵보유는 북한과 똑같은 국가로 전락시켜 우리가 여태껏 이룬 경제적 번영과 국제적 관계를 한순간에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핵보유는 주변 인접한 국가들의 대규모 핵보유로 이어져 동북아가 핵의 화약고가 되고 말 것이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핵을 보유하면 일본도 북핵에 대비하겠다고 핵을 보유하려 할 것이고, 대만 역시 자구적 생존을 위해 핵 보유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대만이 핵을 보유하게 되면 동남아의 일부 국가들이 핵을 보유하겠다는 주장도 묵살하기 힘들어 질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미국에 의존한 핵보유는 안보를 지킬 수는 있지만 미국의 대한반도 영향력을 훨씬 더 높여 주기 때문에 우리의 자주적 지위가 외교적으로 군사적으로 약해져 미국의 도한 통제에 놓이게 될 수 있습니다.
이같은 이유 등으로 북에 대응한 우리의 핵보유도 사실상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안보 위협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북핵의 제거입니다.
북핵의 제거 방법에는 다양한 관점이 투영될 수 있다고 봅니다.
즉, 정치적 관점, 외교적 관점, 경제적 관점, 군사적 관점 등이 그러합니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전쟁이나 군사적 작전은 최후의 보루적 수단입니다.
외교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없을 때 군사적 작전이, 혹은 전쟁이 필요한 것이겠죠.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 북핵을 제거할 수 있을까요?
군사적 우위가 없는 상황에서의 군사적 대립의 대화를 통해 해소는 일종의 굴종적 행위를 수반한다고 봐야할 것입니다.
즉, 군사적 위협의 제거를 위해 우리가 많은 부분의 희생을 각오 해야 한다는 것이죠. 우리에게 이로울 것이 없는 일을 상대방의 핵 위협 제거를 위해 상대방에게 유리한 행동을 무조건적으로 해 줄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는 최선책이라고 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한 번 양보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습니다. 호랑이가 떡장수 어미에게 떡을 주면 잡아 먹지 않겠다고 해서 떡을 받아 먹다가 떡이 떨어지니 어미를 잡아 먹은 이야기에 비유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면 또 원론으로 돌아 가고 맙니다. 대화를 통해 북핵을 없애려면 우리가 북핵에 대응하는 더 강력한 군사적 수단을 보유하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스스로의 결정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 구도가 무한적으로 반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북핵문제에서 우리 나라가 직접 할 수 있는 개념적 수단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북핵 포기를 위해 대응하는 핵을 보유하고 이를 대화를 통해 상호 감축하는 방법은 우리가 핵을 보유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하고, 핵을 포기 시키기 위한 대화는 일종의 굴종적 외교로 이어지며 결과적으로 더 큰 속박이나 피해가 야기되므로 이도 불가합니다.
그렇다면 비정상적인 방법을 통해서라도 해결해야 하는데 안보의 위협이 분명하다면 이 안보적 위협을 치밀한 군사적 작전을 통해 해결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중동국가들을 대응할 때 했던 방법이죠, 군사적 위협에 대해 적이 나서기 전에 먼저 도발해 원천적으로 제압히고 적 동맹의 끈을 끊고 와해시켜 위협을 되려 기회로 바꾸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러한 선제적 작전을 통해 없던 영토까지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도 한계는 있었습니다. 바로 끊이지 않는 전쟁 위협의 상존이었습니다.
즉, 우리가 북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단편적 군사 작전으로 핵시설을 파괴하는 등의 작전을 사용할 경우 잠정적으로 또다른 북 도발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이죠.
따라서 북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군사적 작전은 결과적으로 북을 붕괴시키고 북을 우리로 복속시키는 이른바 전면적 전쟁 양상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전면적 전쟁을 감안한 군사 작전을 과연 누가 할 수 있을까요?
더불어 이스라엘의 경우조차도 끊이지 않는 전쟁 위협을 막기 위해 스스로 핵무장을 한 것만 봐도 군사 작전을 통한 문제 해결은 근시안적인 발상에 지날 수 밖에 없음을 알 수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런 여러 정황들 때문에 이 북핵문제는 우리의 손을 벗어나고 말았습니다.
즉, 미국이나 중국이 해결해야 하는 국외적 문제가 되고 만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지점을 비통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남북은 한 민족이고 한 나라인데 남북간의 문제를 우리 스스로의 손이 아닌 외세의 손에 맡겨야 하니 말입니다.
저는 한 때 우리 정부가 나서서 한미 동맹을 이용해 미국이 어쩔 수 없이 개입하게 하는 군사 작전을 해서 북핵 위협을 제거하고 한반도 주도권을 찾아 오자는 주장을 펼친 적이 있습니다.
이는 호전적 발상이라기보다는 앞 선 전제들을 통해 시간이 지날 수록 북한 문제가 우리의 문제가 아닌 미국이나 중국의 문제로 바통이 넘겨저 정작 우리가 북에 대한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게 될 미래의 상황을 걱정한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발상도 결국 위험한 도박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더욱 서럽기까지 합니다.
제목에서 군사적 해석을 이야기 했는데,
결론만 말씀드리면 북한 핵 위협에 대해 우리의 군사력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더불어 우리의 외교적으로도 미국과 중국의 외교논리에 우리의 주장을 개입시킬 전제도 희박합니다.
최종적으로 이 상황이 지속되면 북한은 중국의 지배하에 들어 가거나 여러 나라들이 분할 통치하는 수준이 되고 말 것이라는 것이 개인적 추측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아마도 북한 지역을 앞으로 수 백년 동안 회복하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현상태의 지속, 이는 우리에게 아무런 득이 없는 아픔과 방황의 시간만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희망을 가져 보는 것은 위기 속에 기회가 있고, 고통이 다하면 행복이 찾아 온다는 매우 철학적인 견지입니다.
즉, 이 사태를 한 번에 깰 수 있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던 묘수가 나와 남과 북 모두를 살리고 오히려 통일의 전초까지 평화적으로 만들수 있길 바란다는 것입니다.
그 묘수, 그 묘수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남북의 지도자가 직접 만나 민족과 국가의 번영을 두고 담판을 짓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