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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2-26 20:45
[기타] 독일제 120mm 활강포 탑재를 꺼려한 미국 육군
 글쓴이 : 노닉
조회 : 5,112  



1980년에 M1 전차가 공개되자 화력 분야에서 걱정하는 양반들이 많았는데, 거액의 개발비와 시간을 투자했음에도 M1 전차의 주포는 M60 패튼 전차와 동일한 M68A1 105mm 강선포로 다른 주요 3세대 주력 잔차와 비교하면 여전히 1세대 이전의 장비였다는 점 때문이었음.

영국군은 1965년부터 치프틴에 120mm 강선포를 장비했고 서독군 역시 79년부터 120mm 활강포를 탑재한 레오파르트2 전차를 내놓은 상태. 그럼에도 미군이 M68A1 105mm 강선포를 고집한 것은 다음의 4가지 이유가 있었음.


1. 120mm 주포를 도입하여 포탄을 사용하면 보급 체계의 혼란이 초래되고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반면 105mm 주포로 통일하면 NATO 회원국가들의 막대한 보급 재고가 있으므로 보급면에서 매우 유리하다.

2. 라인메탈사의 120mm 활강포를 도입하다가 M1 전차의 생산이 늦어지면 단가가 늘어나고, 최악의 경우 의회에서 생산 중지 명령이 떨어질 수도 있다.

3. 신형포탄을 쓰면 105mm 강선포라도 소련 전차들을 능히 제압할 수 있다.

4. 근본적으로 외국제 주포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다.


로 나뉨. 특히 4번이 제일 강했다고 함. 물론 M68A1 주포도 영국제 L7 105mm 포를 개수한 후 라이센스한 거라 순수한 국산은 아니었으나, '준국산' 으로 쳐줬고 독일제는 미국의 자존심이 용납을 하지 못했다고함.

특히 반대파들은 기존 105mm의 신형탄으로도 충분하며 무엇보다도 서독이 E-3 센트리를 구입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로 독일제 120mm 주포를 M1 전차에 장비하려는 것이라며 극렬히 반대했다고.

이는 정치적 문제로 번졌고, 미 정부와 국방부는 M68A1을 고집하는 육군과 자국 기업의 반대를 찍어누르면서까지 독일제 주포를 채용할 의향이 없어서 결국은 105mm 강선포를 장착한 M1 전차가 나오게 됨.

물론 미 육군도 M68A1 105mm 강선포에 만족하지 않았고 76년에 테스트를 했는데 클리포드 알렉산더 육군 장관은 M68A1의 선정을 바라는 자국 기업과 군 상부층의 기대와는 달리 라인메탈제의 120mm 활강포를 선정함.

또 다른 문제로는 기술적인 문제로 인한 것이었는데 도량형 문제가 상당히 심각했다고 함. 독일과 달리 미국은 여전히 인치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고 도면, 공작기계, 품질규격 등의 통일부터가 대규모 사업이었음.

여기에 독일제를 그대로 채용하지 않고 미국식으로 수정하겠다며 미국 측이 고집을 부린 것도 큰 문제로 지적됨. 경량화에 심각할 정도로 집착하던 미국은 포 체계, 특히 포탄을 장전하는 포미부 개수로 경량화 목표를 달성하고자 했으나 실패했고 결국 라인메탈이 개수를 맡아서 원판 대비 20% 가량 경량화에 성공함.

원래 계획보다 4년 늦기는 했으나 1984년 8월부터 라인메탈제 120mm 활강포를 탑재한 M1A1 에이브람스 전차들이 생산에 돌입하게 됨. 이 때 M1A1의 도입이 늦어지면서 걸프전 당시 미군들이 곤욕을 치뤘는데, 바로 제24보병사단과 제1기병사단의 전차들의 문제였음.

얘네는 전부 M1 전차로 무장하고 있었고, 열화우라늄 장갑도 설치되지 않았으며 T-72 전차와의 정면 승부에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웠기 때문. 더 큰 문제는 개인 화생방 방호 장치의 여부였는데 미군은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으나 M1의 경우 승무원들은 방호복을 입어 무사하더라도 전차 내부가 오염되어 전투력 하락이 우려되었기 때문에 M1A1 전차로 대체하자는 의견이 대두함.

당시 육군 참모총장인 칼 부오노 대장은 중동에 전개된 M1 전차들을 전부 M1A1으로 개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으나 노먼 슈워츠코프 중부군 사령관은 전차병들이 적응할 시간이 부족하다면서 거부함.

그러나 부오노 대장이 슈워츠코프를 설득해서 급하게 M1A1으로 대체가 시작되었고 사우디 담맘항에 전차 개수공장을 건설하고 M1A1으로 개수를 시작함. 당시 개수 대상은 제1기병사단의 M1 전차 360대, 제24보병사단의 IPM1 전차 235대, 제1보병사단의 M1 전차 240대로 총 835대였음.

전부 M1A1이 4년 늦게 나오면서 배치가 지연된 본토 주둔 부대들이었고, 독일 등에 대량보관하고 있던 POMCUS 등에서 865대의 M1A1 전차들을 확보하면서 어느 정도 문제를 해결함.

담맘항의 개수 공장은 하루 평균 20대의 전차를 개수했고, 전쟁이 끝날 시점까지 개수된 M1 전차는 총 1,032대에 달했다고. 그래도 모든 사단들이 M1A1을 장비하지 못했고, 제1보병사단의 경우 사우디 배치가 늦어지는 바람에 2개 기갑대대가 M1 전차를 그대로 이끌고서 전장에 참여할 수 밖에 없었음.



출처
걸프전 대전차전, 카와츠 유키히데 61~67P

[출처] |작성자 오로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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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bat69 18-02-26 20:56
   
독일은 사실상 전차분야에선 원탑이었죠
주포는 할수없이 라이센스 하고
내가보는 가장 큰뻘짓은 m1의 가스터빈
     
훈이야 18-02-26 21:20
   
그래도 가스터빈 장점도 있어요
연로수급이 여렵지 않타는점...점화가 가능한 액체면 향수도 연료로 쓸수 있다잔아요
          
Habat69 18-02-26 21:36
   
장점이야 많죠
순간 가속도 좋고 대응도 신속하고
특히 미국은 터빈엔진은 잘만드니
하지만 디젤전차 5백6백 킬로 달릴때
3백도 못가니 문제죠
               
남아당자강 18-02-27 01:38
   
그문제는 무지막지한 미국의 보급능력으로 해결가능하지 않나요? 다른나라는 꿈도 못꿀 이야기지만요.
               
현시창 18-02-27 08:18
   
M1의 연료탱크 크기는 레오파트2의 2배가량입니다. 연비가 후져도 항속거리는 비슷합니다. 거기에 그만한 덩치로 순간가속력이 최근에 똑같이 무거워진 레오파트2보다 더 우수합니다. 마냥 뻘짓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미군은 보급능력이 우수한 군대니까요.
                    
Habat69 18-02-27 09:59
   
뭐 엔진까지 주도권을 넘겨줄수 없었겠죠
그나마 터빈이라도 장착해야 미군전차라는 형식상 위안이라도 돨것같나능
그래서 탱크의 터빈엔진도 미국외엔 쓸만한 엔진도 안되고
러시아도 따라해봤지만 다시 디젤로 돌아갔고
                         
현시창 18-02-27 10:38
   
형식상의 위안이라...
지금 우리가 아는 모습과는 달리 당시 막 개발된 MTU-873도 갖은 문제를 뿜어내고 있던 테스트 버전이었습니다. 갖은 삽질과 개량을 통해 지금의 신뢰성을 갖추게 된 거고. 막상 에이브람스가 개발될 당시엔 어떤 확신도 없는 상태였습니다.(타임머신 타고 미래에서 오지 않는 이상에야...)
 
그저 미국의 자존심 문제로 개스터빈을 장착한 게 아닙니다.
실제로 연비문제 역시 등장당시부터 지금까지 MTU-873과 AGT-1500의 연비는 2배 이상 차이 난적이 없으며, 실제 기동훈련등에서 드러난 바로는 약 60~70%차이였고, 현재는 50%내측이라는 것이 정설입니다. 알려진 에이브람스 전차의 연비라는 건 실전 기동상의 자료이고, 레오파트2의 자료는 제조사의 카탈로그 자료입니다. 그 두 자료를 그대로 날것으로 비교하는 건 그리 온당한 방법이 아니지요.

아울러 최대토크를 뿜어내는 RPM상태가 아닌 모든 영역에서 개스터빈쪽 출력이 더 높은데다. 실제 스프로킷에 걸리는 실출력도 에이브람스쪽이 우위입니다. 최근 갖은 개량으로 SEPv2와 중량차가 1톤까지 줄어들게 된 A6버전 레오파트2의 기동력이 상당한 수준 하락했다는 건 정설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갑돼지 에이브람스가 그만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서방권 전차 최고의 순간가속력과 최대속력을 보유한건 그 나름 평가할 일입니다.

당시 시각에서 이런저런 것을 고려해 개스터빈을 선택했다는 건 일장일단을 비교해보더라도 나름 합리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가속력이 부족한 전차가 중동전쟁에서 보인 전훈을 감안하면 항속거리나 엔진의 수명보단  가속력을 선택한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따라서 미국이 열세인 전차수량으로 구소련의 파상공세를 막아내야했던 상황을 감안하면 국뽕 섞인 비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선택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자존심 때문에 독일보다 기술떨어지는 미국이 어쩔 수 없이 택한 것이라는 시각엔 동의할 수 없군요. 미육군이 우선적으로 추구한 바와 당시 안정화과정이던 디젤엔진의 불안정한 모습이 모두 섞여 개스터빈을 채용했다고 봅니다.
몽골메리 18-02-26 20:59
   
해병대는 M60으로 싸웠다던데...
뭐꼬이떡밥 18-02-26 21:11
   
독일이 유럽에 있어서 그렇지

독일이 케나다에 위치했다면 지금의 미국은 사라졌을듯
     
현시창 18-02-27 08:19
   
독일이 캐나다에 있었다면 독일이 사라졌을 겁니다. 전 그렇게 봅니다.
     
무라드 18-02-27 08:37
   
북미에 독일계가 영국계보다 많이 진출했다면 공용어도 독일어로 했을거고 여러모로
지금과는 많이 달랐겠죠. 아무래도 영국계보단 국가운영에 도움되는 인성들이라...
실제로 인구대비 군문에서 출세하는 독일계가 너무 많아서 wasp들이 께름칙해 했다는 썰도 있습니다.
NightEast 18-02-26 21:58
   
도량형 문제가 과거여서 심했던건가요

제가 알기로는 기본적으로 메트릭시스템을 쓰는거로 알고 있었는뎅

긍까 일상적으로는 인치 파운드 단위 쓰는데
어디 표기하거나 등등 기본적으로는 미터 단위도 쓰고 혼용하는거로 알고 있었어요
마치 우리가 한국식나이, 만나이 병용해서 쓰듯이요
꼭 필수 기입한다는건 아니고 미터제로 써도 충분히 통용하고 알아듣고 사용할 수 있도록요

제가 90년대 이후 모습을 봐서 그런건지.. 그 전에는 도량기준이 엉망이어서 그랬던건지요?
     
sunnylee 18-02-27 00:42
   
대표적인게... 2차대전 끝나고 독일의 걸작 다목적 기관총 MG-42
미국도 다용도 분대지원화기의 필요성을 느끼고 ..
 조병창에 카피하다 삽질 하다 흐지부지 ..
한국전 반발로.. 개발 포기하고
부랴부랴 있던것 조금 개량해서...M 시리즈로 정리하기까지..
실폐원인이.. 미터단위법을 ...
미국의 인치로 안바꾸고.. 만들다 ..그 사단난 대표적 예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다른 요인도 있었지만. 진짜 초보적인 실수여서.. 지금도 종종 회자 되는
     
의자늘보 18-02-27 09:23
   
최근들어서 도량형 문제로 사단이 난 케이스는....
호주에서 잠수함 국내제작할 때,
모듈 방식으로 각 조선소에서 만들어서 한군데 모아놓고 조립하는데...
어떤 곳은 인치법으로 만들고, 어떤 곳은 미터법으로 만들었는데, 나중에 모아놓고 보니, 오차가 너무너무 많이 나서 조립을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인치법 <-> 미터법 변환할 때, 생각보다 오차가 많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