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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3-31 19:01
[기타] 레이테 전투 당시 일본군 보병의 빈약한 대전차전술
 글쓴이 : 노닉
조회 : 1,795  




레이테 전투 당시 미군 제763전차 대대는 보병의 지원 없이 수천 야드를 진격했으나, 곧 질척질척하고 땅이 무른 지대로 들어서면서 옴짤달싹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들은 상륙 당시 산 호세에 등장했고, 전투 당시 제96보병사단에 배속되어 있던 상태였습니다.

당초 이들은 위기에 빠져있던 제383보병연대를 구원하기 위하여 진격을 했으나 10월 22일, 무르고 진창인 지형을 만나면서 다시 해안으로 되돌아가야만 했습니다. 당시 이들은 C중대와 D중대 예하 3소대가 배치되어 있었고, 해안으로 돌아가자 다시 북서쪽으로 약 4km 떨어진 피카스를 향했습니다.

이들은 Charles G. Fyfe 중위의 지휘를 받고 있었다고 합니다. David M. Rafferty 중위는 C중대의 선도에서 M5 스튜어트 전차들로 구성된 3소대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문제가 있었습니다.

바로 해당 지역의 일본군을 완전히 소탕하지 못한 상태에서 보병의 지원 없이, 전차들만 단독으로 좁은 정글길을 일렬로 이동했다는 점입니다. 763전차대대 소속 이들 중대는 카트몬 산을 우회하는 길을 이용해야 했는데 정글에 숨어있던 일본군을 미처 일소하지 못했던 것이죠.

게다가 피카스로 가는 길은 상태가 매우 나쁜 것으로도 모자라 길이 매우 구불거렸고, 교량은 통과 가능한 하중이 낮았습니다. 때문에 대열을 선도하는 중형전차는 교량을 망가뜨릴 수 밖에 없었기 때문에 후속하던 경전차들은 전차가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목을 찾아야 했습니다. 이 때문에 경전차 소대는 다소 뒤쳐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보병의 지원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이들 중형전차들과 경전차들은 주위를 매우 경계하면서 진격해야 했고, 이들의 우려는 현실로 드러납니다. 고개 하나를 넘자 갑자기 폭약을 단 막대기를 들고 일본군이 선두 경전차를 습격했고, David M. Rafferty 중위의 전차가 우측 궤도 손상으로 인하여 돈좌당하게 됩니다.

David M. Rafferty 중위는 급하게 자신의 전차를 수리하는 한 편, 다른 전차들로 하여금 자신의 전차를 둘러싸 엄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전차들이 경계 대형을 취한 지 얼마되지 않아서 일본군 보병들이 대전차 공격을 가해왔고, 1명의 장교가 지휘하는 30여 명의 일본군 보병들이 나타났다고 합니다.

이 때 일본군 장교는 무언가를 잘못 알았는지, 아니면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의 칼을 뽑아들고 마지막 대열에 있던 전차의 동축 기관총을 반으로 쪼개려 했는지, 그대로 내리쳤고 곧 다른 전차가 발사한 기관총 사격에 그대로 벌집이 되어버립니다.

혼란스러운 보병들의 대전차 공격 이후에 일본군 보병들은 퇴각했지만, 계속해서 근접거리에서 개인화기로 전차를 공격했으며, 이 때 C중대의 중형 전차들은 이미 한참을 앞서나간 상태였습니다.

David M. Rafferty 중위는 Charles G. Fyfe 중위에게 자신의 전차부대가 공격을 받고 있다는 무전을 보내며 지원 요청을 날립니다. 이 때 전차의 수리는 상당히 어려웠고, 일본군의 공격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는데다가 돈좌당한 전차 승무원들을 태우고 가기에는 M5 스튜어트 경전차의 공간은 좁은 지라 중형 전차들이 와야 뭘 하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Charles G. Fyfe 중위가 뒤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길이 앞서 말한대로 협소하고 복잡해서 1대의 중형전차 만을 뒤로 돌려보냈고, 이윽고 이 전차가 도착하자 탈출용 해치를 통해 David M. Rafferty 중위 이하 승무원들이 구출됩니다.

이후 퇴각을 하고자 했으나 일본군이 작대기에 폭약을 단 대전차 공격을 가해왔고, 여전히 치열한 개인화기 사격이 이어졌으므로 계속해서 이동하는 것보다는 정지하여 적을 상대하는 것이 더욱 나은 상황이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적이 나타나지 않을 때는 이동하고, 적 보병들이 사격을 가하며 대전차 공격을 가할 때는 정지하여 대응하는 식으로 싸우면서 하루를 꼬박 이동하여 원래 주둔지로 돌아왔고, 383보병연대에 도착할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전차에게 매우 불리한 정글 지형에서, 게다가 좁고 복잡한 도로에서 이동함에도 지원하는 보병조차 없이 고립된 전차 소대는 웬만한 보병들에게는 밥입니다. 당장 베트남 전에서 안록 시가전 당시 월맹군 기갑부대가 복잡한 시가지로 들어갔다가 남베트남군 보병들의 M72 LAW에 당했던 것을 생각하면 763전차 대대 D중대 3소대가 처한 상황은 정말로 위험하기 그지 없었거든요.

하지만 일본군은 3소대 소속 M5 스튜어트 전차 1대 만을 돈좌시켰을 뿐, 나머지 전차들을 격파하지 못했고, 돈좌된 전차도 우측 궤도를 공격해서 기동 불능으로 만들었을 뿐이었습니다.

2차 대전이 주전공이 아닌지라 이런 말을 하기 조심스럽지만, 만약 유럽 전선의 독일군을 상대로 이랬더라면 삽시간에 녹아내릴 상황이 아니었나도 싶기도 합니다. 일본군의 빈약한 대전차전술은 상당히 유명한 것이었고, 최악의 상황에서도 전차대가 거의 전력을 온존한 채 철수에 성공한 것을 보면 일본 육군은 음...여러모로 답이 없었던 게 아닐까도 싶습니다.

괜히 이오지마 전투 당시 미군 전차 승무원들이 자주 정해진 전술을 무시하고 일본군을 상대했다고 하는데 다른 이유가 있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물론 47mm 대전차포나 항공폭탄을 개조하여 만든 지뢰는 위협적인 것이었으나 보병들의 대전차 전술은 글쎄요...


출처
Armor in Leyte : Sixth Army Operations
ARMOR IN BATTLE

[출처]작성자 오로라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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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 18-03-31 19:13
   
일본 제국군은 해군 전력은 참 강했던 것 같은데 (천조국이랑 싸웠으니 발렸지만)

왜 육군을 보면 저렇게 삽질도 많이 하고 허접했는지 ㄷㄷ
     
바람노래방 18-03-31 19:29
   
해군이나 육군이나 정신적 수준이 종교적이라
무장의 수준이 비슷한 정도의 상대만 만났더라도 결국은 폭망했을겁니다.
     
bluered 18-03-31 23:20
   
육군도 나름 자만에 빠질만 했죠. 태평양 전쟁 시작 후 불과 몇개월 만에 동남아를 장악하고, 맥아더가 버티고 있던 필리핀에서 승리하면서 승리에 도취돼있었죠.

그러다, 그 빌어먹을 정신론에 입각하면서, 임하는 전투에서 후일을 도모하는 후퇴 또는 항복을 전혀 하지 않는 행위로 인해, 전쟁 초기 경험만고 유능한 인적자원이 빠르게 고갈되어갔죠.
랄랄라라라 18-03-31 19:20
   
이 때 일본군 장교는 무언가를 잘못 알았는지, 아니면 자신감이 충만했던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자신의 칼을 뽑아들고 마지막 대열에 있던 전차의 동축 기관총을 반으로 쪼개려 했는지, 그대로 내리쳤고 곧 다른 전차가 발사한 기관총 사격에 그대로 벌집이 되어버립니다..... ㅠㅠㅠㅠ
     
랄랄라라라 18-03-31 19:22
   
아무튼 저런 해프닝(?)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일단 일제 육군의 대전차 무기가 형편 없었죠. -_-;;;
znxhtm 18-03-31 20:10
   
유럽전선에선 티거에게 개발리는 셔먼이

일본군 상대로는 티거같은 존재감을 보일 정도 였으니...

레베루가 달라요, 레베루가.
진실게임 18-03-31 20:16
   
일본인의 정신주의는 유명한 국화와 칼에도 잘 묘사되어 있죠.

"물질 따위론 정신을 이길 수 없다. 고도의 정신력만 있으면 어떤 물질(무기)로 무장한 적도 물리칠 수 있다."

이런 소리를 내내 주입했으니까...
4leaf 18-03-31 20:26
   
그 당시 일본의 육군이나 해군에서도 머리가 돌아가는 군인이 있긴 했습니다.

그런데 실전경험이 있는 군인을 후방으로 돌려 새로 들어오는 간부나 사병을 교육해야 했는데 이게 전선이 갑자기 넓어지고 장기화 되면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거죠. 제가 기억하기로는 저 레이테 전투에 투입된 병력들 대부분이 새로 임관하거나 징집된 병력일겁니다.

이미 중일전쟁 중이라 일본 육군 대부분의 정예병력이 중국내로 깊숙히 들어간 상황에서 동남아와 오세아니아까지 전선을 넓혀지니 후방으로 돌려서 신병 교육할 병력이 있을리가 만무하죠.
Har00 18-03-31 20:28
   
많은 사가들은 중국침략 전쟁에서의 승승장구가 오히려 독이되었다고 말합니다.
마지노선에만 의존했던 프랑스 꼴이 된거죠.
푸른능이 18-03-31 22:58
   
그 폭약을 단 막대기 사용하면 사용자 얼굴도 날아가는 그 무기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