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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4-03 22:52
[육군] 1967년 11월 우리 특수부대의 북한군 사단본부 폭파
 글쓴이 : datafuser
조회 : 6,057  

1968년 2월 20일 미국의 Cyrus Vance 특사가 (1964~1967년 국방차관, 1977~1980년 국무장관) 린든 존슨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인데 당시 북한의 무장공비 침투에 대응해서 우리도 특수부대를 침투시켰고, Vance의 방문 전 몇 달은 1달에 평균 2번 침투했으며, 1967년 11월에는 12명으로 이루어진 특수부대가 북한군 사단본부를 폭파시키고 피해 없이 돌아왔다고 합니다.


http://history.state.gov/historicaldocuments/frus1964-68v29p1/d181


181. Memorandum From Cyrus R. Vance to President Johnson1

The Objectives of My Mission

Under the broad delegation of authority given me, I formulated the specific objectives of my Mission in the following terms:

“The objective of my Mission is to persuade President Park, and through him the Korean Government, that we intend to stand firmly with them in the current crisis and that our policy for handling the developing situation is soundly based.

(중략)


With one significant exception, we placed the onus on them to raise topics for discussion. The exception concerned South Korean forays across the DMZ into the North. This information was news to most members of the Cabinet since the South Korean infiltration units are under the personal control of Minister of National Defense Kim and their activities are closely held secrets within the ROKG. We emphasized the provocative nature of these attacks, which, over the past several months, have averaged two per month. We suggested that some of the more serious North Korean incursions into the South may have been launched in retaliation for South Korean raids, in particular the November 1967 raid against a North Korean Peoples Army Divisional Headquarters. The Headquarters was apparently blown up and the twelve-man South Korean strike team exfiltrated without sustaining any casualties. We pointed out that there was no evidence that the South Korean forays had had a chastening effect on Kim Il-Sung.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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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anto.. 18-04-03 23:06
   
68년 1.21 김신조 사건 이전이면
북한에게 1.21 사태로  보복 당한거군요...
bluered 18-04-03 23:29
   
1960년대 무장공비 침투 사례.

1966년
진주 덕의마을 무장공비 침투사건(5. 17.)

1967년
해군 당포함 격침 사건(1. 19.)
화천군 비무장지대 침투사건(4. 12.)
격렬비열도 간첩선 격침 사건(4. 17.)
서부전선 미군막사 폭파사건(4. 22.)
강릉 고단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5. 21.)
연평도 근해 어선포격사건(5. 27.)
대성동 미군트럭 기습사건(8. 7.): 침투한 북한군이 판문점 남방 대성동 자유의 마을 앞에서 미군 트럭을 습격해 3명의 미군이 사망하고 17명이 부상당한 사건.
서부전선 군용트럭 기습사건(8. 10.)
판문점 미군막사 기습사건(8. 28.)
경원선 초성리역 폭탄 테러 사건(9. 5.)
경의선 운정역 폭탄 테러 사건(9. 13.)

1968년
1.21사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사건(11. 2.)

1969년
주문진 무장간첩사건(3. 16.)
1차 흑산도 간첩선 격침 사건(6. 9.)
2차 흑산도 간첩선 격침 사건(10. 23.)
     
sangun92 18-04-04 00:32
   
1969년 주문진 무장공비 침투사건 당시
퇴각하던 공비들을 향해 사격하던 총소리를 직접 들은 1인.
새벽에 일어나 요강에 오줌을 누는데, 갑자기 콩볶는 듯한 총소리들.
(집에서 항구까지 200 m 정도)

나중에 알고 보니, 보트로 퇴각하던 공비들을 향해 군 + 경찰이 사격을 하던 소리.

며칠 후에 잠수부를 동원해서 시체들을 인양해서 방파제에 눕혀 놓았는데
뱃속에 문어가 꿈틀,
깨진 바가지 속에는 게가 들락날락.

사건 이전에는 문어 한 마리당 수백원이었는데
시체 인양 후에는 문어 한마리에 10-20원을 불러도 사가는 사람들이 없었던.
          
승리만세 18-04-04 05:11
   
으.. 상상해버렸다;;
          
유랑선비 18-04-04 14:57
   
와 ㄷㄷㄷㄷ
4leaf 18-04-04 01:20
   
당시 전방에서 소대장을 하셨던 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면 김신조 사건 터지고 매일 밤마다 북파공작원들 북으로 올라가는걸 엄호하는게 일이셨다고 합니다. 지금 생각하는 것보다 더 흉흉한 분위기였죠.
영웅문 18-04-04 07:07
   
아는 분 한분이 이런 말을 하더군요.
우리도 김영삼정권때 김영삼-김일성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북한침투를 하지 않았다고...
그 말인즉, 그 전까진 북한에 침투를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밖으로 알려지지 않았을뿐이죠.
     
영웅문 18-04-04 07:07
   
관련된 일을 했던 분....
     
다른생각 18-04-04 18:05
   
80년대까진 빈번했죠..
알만한 분들은 알던 사실..
다만 70년대까진 거의 복수전과 사보타주에 가까운 공방전였다면..
80년대부턴 조금 목적을 달리합니다..
90년대 들어서는 전략적 목표가 달라지면서 부대 통폐합과 개편이 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