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2가지 논점을 가지고 말씀드리려 합니다.
하나는 2차 대전기 추축국으로서 이탈리아의 해군력이 추구했던 건함 방향과 한계, 그리고 그 맹점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럽 통합 전력 혹은 나토 차원에서 이탈리아 해양력이 지향하는 관심사와 우리 해양 전력의 공통점에 관한 것입니다. 특히 반도 형태의 국토를 보유한 양국은 주변 해양 지형 면에서 서로 교류하며 배울 가치가 넘치고도 남지만 유독 이탈리아 군에 대해 편견과 몰이해로 이런 좋은 파트너를 무시해 온 것은 아닌 지 스스로부터 반성하게 됩니다.
솔직히 국내에 이탈리아 해군 관련 번역 서적이 '처칠 회고록' 중 일부 내용 뿐이라는 것이 무척 새삼스럽습니다. 대체로 해양에 관한 번역서도 적은 편인데 그 중 이탈리아는 아예 관심사도 아니였던 모양입니다. 지금 문명사를 주도하는 것이 미,영 등 해양 세력임을 감안하면 그들의 언어 문화에 녹아 있는 해양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은 곧 문명사에 있어서 도태와 퇴보를 의미합니다. 번역가 여러분들의 분발 부탁드립니다.
우선 지도를 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 두 이미지는 모두 같은 축척을 이용해서 캡춰한 것입니다.
좌하단의 400 KM 축척이 모두 같습니다.
이탈리아는 발칸 반도와 마주하고 있는 동쪽에 폭에 채 200 KM가 되지 않는 좁은 아드리아 해를 끼고 남으로는 시실리아 섬과 지중해의 길목인 몰타 섬을 감싸고 있는 지중해에서 가장 넓은 이오니아 해를 마주하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가상 주적인 프랑스가 강탈해 유배지로 삼았던 코르시카(코혹스) 섬을 코앞에서 마주 보고 있는 사르데냐 섬과 함께 티레니아 해를 갖고 있습니다.
좁은 아드리아 해는 냉전기 이념적으로 대립하는 두 세력의 접속 수역이자,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서도 재확인된 세계의 화약고 발칸 반도와 비교적 해안선이 단출한 이탈리아 동부 평원을 나누는 바다로 우리와 비교해 보자면 서해와 퍽 많이 닮았습니다. 뿐 만 아니라 사르데냐 섬과 인접한 코르시카 섬이 국민 감정 상 참 어울리기 힘든 프랑스가 영유하고 있어서 지리적으로는 이탈리아에 훨씬 가까운데 구분되는 모양새가 마치 대마도를 바라보는 우리의 감정과 묘한 공명을 일으킵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시칠리아 섬과 독립국이긴 하지만 몰타가 있습니다. 독도지요.
해양 지리에 대해 딱히 전문적인 식견이 없다고 해도 매우 많은 유사성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그들의 해양 전략까지는 아니더라도 전술적인 면에서, 또는 건함 체계 등에서 우리가 좀 더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이탈리아는...
이전 프랑스 해양력에 관한 글을 올리면서 중부 유럽 국가 동맹, 즉 3국 동맹에 대응해 영,불,러 등이 손잡고, 특히 프랑스가 보불 전쟁에서 패전한 여파로 이후 해군 내부 '쥰 에꼴'을 통해 엉뚱한 전술 개념을 내세워 자국의 해양력을 말아 먹는 과정에 대해 말씀드리면서 오히려 신생 이탈리아 왕국이 견실한 해양 전력을 마련했다고 말씀드린 기억이 납니다.
처칠의 2차 대전 회고록에 따르면,
1940년을 개전 시점이라 할 때, 주요 국가의 해군력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항모 전함 순양함 구축함 잠수함 총톤수
영 국 7 17 88 241 56 1,398,000 t
미 국 7 15 36 241 100 1,352,000 t
일 본 8 10 47 134 66 1,095,000 t
프랑스 1 8 18 71 78 524,000 t
이탈리아 0 6 22 160 100 468,000 t
독 일 0 5 8 42 56 ?
러시아 0 3 8 46 153 ?
자료의 신빙성을 검증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인용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더우기 이 자료가 퍽 불만인 것은 저처럼 균형 함대론을 내세우려는 사람들 중 일부가 이 이탈리아의 사례를 들어서, 2차 대전기 타란토에서 영국 함재기들에 의해 상당수의 함정들이 맥없이 그대로 침좌했다는 걸 들먹이며 소위 최소 항모론을 내세울 때 애용하는 근거로 쓰기 때문인데요.
그 분들의 주장을 그대로 따라가다 보면 결국 단 한 척이라도 함대에 공중 전력을 제공해야 하기 때문에 프랑스 함대 구조가 더 낫다로 이어집니다. 그 단 한 척의 항모를 보유했던 프랑스 해군은 2차 대전에서 그 어떤 활약을 했을까요? 또한 지금도 단 한 척의 항모를 넣었다 뺐다하면서 전체 해군 전력의 밸런스는 또 얼마나 깨지고 있나요? 행사 뛰나요?
위에 지도를 다시 한 번 봐 주세요.
이탈리아 해군 내에도 개전 이전부터 항모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습니다.
다만 폭이 200 Km도 채 되지 않는 아드리아해에선 당시의 지상 발진 복엽기로도 충분히 초계가 가능했고 서쪽으로는 사르데냐 섬이 방파제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었습니다.
유일한 문제가 당시 몰타섬을 장악하고 있었던 영국을 상시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였는데 이탈리아엔 기름이 없었습니다. 타란토 항에 묶여 현존 함대 역할만 한다고 했어도 최소한 지상 발진 항공기들에 의해 타란토 주변 해역이라도 상시 초계가 필요한 시기였지만 그마저도 하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 항모가 없었던 게 원인이 아닙니다. 당시 자체 레이다의 탐지 거리가 십 여 KM 에 불과할 만큼 낮은 출력 밖에 얻지 못한 전력 문제도 쫓다 보면 역시 연료의 부족에 의한 것입니다. 항모를 초계로 돌릴 정도로 기름이 있었다면 당연히 지상 발진 초계기를 띄우는 것이 더 싸다는 계산 정도는 쉽게 하실 수 있으실 겁니다.
보통 이탈리아의 함대를 두고 Flotta di evasione (탈주 함대)라고 하는데요. 이 말의 유래도 좀 더 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43년 9월 당시 해군성 장관이었던 쿠르텐 등이 주도해 독일로부터 "사생결단의 일전"을 감행하겠다며 피보다 귀했던 연료를 얻어 내고선 당시 독일 측 창구였던 롬멜과 케슬링을 속여, 실제로는 연합군으로의 탈출작전을 벌여서 붙은 별명이라고 하는데요.
결국 9월 8일 휴전이 선포됨과 동시에 전함 로마, 이탈리아(리토리오를 개칭함), 베네토등을 비롯한 이탈리아 함대는 코르시카로 탈출했고 나머지 타란토에 있던 함대는 말타로 탈출합니다. 뒤늦게 이탈리아의 속임수임을 알아차린 독일은 군함을 자침시킨 이탈리아 함장들을 총살시키고 탈출하는 이탈리아 함대를 공습하여 전함 로마를 격침시키지만 대부분 연합군측에 합류해 종전을 앞당기게 됩니다.
이걸 적전분열이라든가 전선이탈이라든가 비열한 처세술로 보실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이해하기도 힘든 것이 아래 표를 보시면 한창 격전 중인 시기에도 이탈리아는 군비를 국가 GDP 대비 25% 내에서만 유지하는데, 추축국 뿐 만 아니라 연합국의 자료와도 크게 대비되는 것이 전쟁의 목적에 있어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른 면이 있다고 볼 만하기 때문일 겁니다. 최소한 국가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혹은 르네상스 인본주의의 발원지로서 자국 국민을 위한 판단으로서 이해해도 좋을 듯 싶네요. 기본적으로 36계 중 최고는 줄행랑이라고 하던 누군가가 있기도 하고 문화 상대론적 관점에서 파악하기 힘든 특수성을 이해하신다면 이탈리아의 해양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듯 싶네요.
그들에겐 탈출이라는 게 이런 감상이 아니였을까 짐작해 봅니다.
혹은 아예 새로운 대륙으로의 이민을 감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군 함대를 지칭했을 수도 있겠네요. 뭐 어떻든.
현재 이탈리아의 에너지는 거의 리비아에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 대부분이 우크레인을 거쳐서 들어오는 러시아산 가스에 의존하는 것과 다르게 리비아산 쿠르드 오일의 주소비국이 이탈리아이고 그래서 이탈리아의 관심이 이오니아 해역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기도 합니다. 결국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해군 전력을 개선하는 데는 퍽 인색한 면을 보이고 있는데요. 이런 예산 환경 속에서 이탈리아 해군력이 놓지 않고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해상 기지(Sea-basing)인데요. 이 부분은 특히 해병대나 해상 전진 기지에 대해 좀 더 전향적인 생각을 요구할 수도 있으리라 봅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 해군은 특히 나토 협력 체계 내에서 상륙 전력 중심의 역할을 분담해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SIAF(Spanish-Italian Amphibious Fleet)에 관해선 이 쪽 링크를 이용하시면 좋겠네요.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보유한, 소위 국내에 중형 항모라고 알려진, 까보어 함과 후안 카를로스 함 등이 상륙 전력에 대해 CAS를 제공하기 위해 건함되고 구성된 것을 아실 수 있으실 겁니다. 제해권 확보가 목적이 아닙니다. 상륙 지원 전력으로서 VTOL 기체에 해상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고 이것은 EAI(European Amphibious Initiative) 5개국 협의체 내에서 똑같이 기능합니다.
이탈리아로선 리비아까지 연결되는 항로의 안전만 확보된다면 굳이 다른 해역에서 제해권까지 노릴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나마 갖고 있는 해상 공중 지원 플랫폼도 상륙 지원에 특화된 구성으로 이오니아 해역을 배경으로 하는 에너지 수입선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항모라기보다 강습함인 것입니다.
역시 같은 배경에서 이탈리아 해군만이 부유한 색다른 건함 체계가 플로팅 도크나 폰툰처럼 대형의 부유식 설비와 원양 터그선, 그리고 각종 보급 물자를 운송하는 텐더쉽으로 구성된 해상 기지입니다. 물론 상륙 지원 설비이구요. 이 기지들이 지금 중동으로부터 지중해에 뛰어 들고 있는 난민 구조에 대단히 크게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이탈리아 해경 함선은 함급 이상에선 매우 빈약한 전력이지만 그 아래 소형 정급 선박들이 매우 많은데요. 이런 작은 선박들로 넓고 거친 지중해역을 충분히 관할하며 난민들을 구조하는데에는 이런 해상 전진 기지들이 매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상륙 지원 면에서도 이런 대형 플랫폼은 활용도가 대단히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처럼 상륙 전력과 작전 규모가 크고 다양할 때 이런 멀티 플랫폼을 군이 확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용도나 목적에 맞게 얼마든지 형상과 구조를 바꿀 수 있을 겁니다. 분명히 연평도 빠지보다 훨씬 효율적인 동시에 적에게 큰 위협이 될 것입니다. 저 정도 방호력이라면 재래식 무장으로 뚫기 꽤 어려울 테니까요.
이제 이탈리아 해양력에 관해 정리해 보겠습니다.
함 척 수 총 톤 수
1. 전술함 56 202,174 톤
2. 지원함 82 159,376 톤
으로 전체 138 척, 총 톤 수 361,550 톤, 척당 배수량 2,620 톤/척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작전과 군수 면에서 함 척 수로는 3:4의 비율을 보이나 총 톤 수 면에선 4:3 정도 수준을 보입니다. 해경 전력은 12 척, 19,451 톤, 척당 배수량 1,621 톤/척이지만 표에는 나타나지 않은 정급 선박들이 100 척 이상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상 기지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플로팅 도크+외양 Tug 선+Tender 쉽으로 구성된 운영 체계는 상륙 지원 체계의 부족을 겪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시한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 해군의 전술함 구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함 척 수 총 톤 수
잠수함 8 14,768 톤
수상함 42 157,515 톤
상륙함 6 29,891 톤
잠수함과 수상함, 상륙함의 함 척 수 비율은 약 1:6:1의 비율을 갖고 총 톤 수는 약 1:5:2의 비율을 갖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탈리아 해군도 우리 해군처럼 아직 갈피를 못잡은 것이 눈에 들어 오실 겁니다. 각 용도별 척당 배수량은 잠수함 1,846 톤/척이고 수상함은 3,750 톤/척이며, 상륙함은 4,982 톤/척의 수치를 나타냅니다.
이탈리아 해양력은 우리보다 작고 우리만큼 혼란스럽습니다. 다만 그 혼란함 가운데 그들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한 전력에 대해 어떻게 집중했고, 그 결과 그들이 무엇을 획득했는 지 이해하는 것은 지금 해군의 발전 방향을 모색하려 하신다면 꼭 한 번 되짚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중에서 특히 플로팅 도크와 예항용 터그선, 다목적 텐더쉽으로 구성된 보급선의 구성은 이탈리아와 해양 지리가 비슷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