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괜히 시끄러워질까봐 적지는 않았던 주제, 특전사의 사제 개인장구류에 대한 제 생각을 풀어볼까 합니다. 어디까지나 밀덕후의 사견에 불과하니 너무 주의깊게 들으시지 않아도 됩니다.
전 두가지 이야기 모두에 공감하고 있습니다.
1. 특전사 현용 장구류와 무기체계는 성능이나 기능상에 문제가 많고 개선점이 많다.
2. 무분별한 사제 장구류 허용은 조직에 해가 될 뿐이다.
박쥐새끼로 보실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 저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많은걸 알면서도 왜 반대하냐? 고 물으신다면, 그 이유를 적겠습니다. 현용 보급품의 성능 부족 문제는 사제 장구류 전면허용같은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밀덕후들 눈높이에 맞춰서 얘기해드려보겠습니다. 고증 맞추신다고 이거저거 모아서 풀세트 만들어보셨죠? 전부다 오리지널로 맞추면 돈 얼마정도 깨질거같아요?
조준경 하나에 기본 몇백, 야투경은 최고급품 작정하고 구하려면 천만원대까지 깨져요. 방탄판같은것도 그렇고요. 거기다 그런것들 전부다 본질적으로 전투중에 얼마든지 소모될수 있는 소모성 물품 아닙니까. 현용 장구류들 성능이 구려서 내 돈으로라도 해결하겠다는 본인의 전문성과 열정은 물론군인으로서는 훌륭한 직업정신입니다만, 그거 전투중에도 막 스스로 알아서 인터넷 주문하고 할 정신 있을거같아요? 결국 보급체계에 들어있지 않으면 의미있는 전투력으로 작동 할 수가 없긴 마찬가지입니다. 말짱 도루묵이라구요.
거기다가 그런 물품들중 태반이 한국이나 미국 법규정에 위반하는 불법적인 루트로 거래되는 물건들 아닙니까. 개개인이 암암리에 쓰는거 부대에서 묵인하는 정도는 당연하지만 그걸 부대 차원에서 장려하고 허가하는 공문이라도 띄우라구요? 장병들 전부 예비 범법자 되라고 부추기냐는 소리 들을수도 있는 위험한 짓입니다. 정말로 사령부만 믿고 이거저거 지르던 사람들 쇠고랑 찰 수도 있는 문제인데, 이런 위험한 일을 '탁상공론'으로 치부하시는 분은 없으리라 믿습니다.
거기다 앞서도 말했듯이 그것들 엄청 비쌉니다. 진짜 욕나오게 비싸요. 사회 초년생이거나, 가정 꾸려나가시는 특전사분들 실무요원 선에서 개인 경제력으론 감당하기 벅차요. 진짜 목돈 깨서 장만해야하는거에요. 본인이 갓 사회나와서 쌓아올리기 시작한 최소한의 경제적인 여력을 쪼개야한다구요. 알면서도 그게 좋다는사람들은 정말 존경스러울정도로 본인 일을 좋아하는 분들이지만, 자기 일이 좋아도 정말 돈이 없어서 못 하는 사람들도 있을거에요. 이런 사람들 전부 빈털터리 만들어서 유지되는 '간지나는 외형'이 참 대단한 전투력이겠습니다. 그 사람들 하다못해 전부 장기 시켜준다는 보장 있어요?
거기다, 부작용들도 많습니다. 말이 본인의 자유의지로 인한 구매지, 실제로는 팀내 짬 많고 금적 여유 갖추신 분들이 하사들한테 눈치줘서 억지로 그런 실 전쟁시엔 전력 유지조차도 힘든 사제 장구류들 구매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만한 밀덕후들은 다들 아시리라 믿습니다. 이거 내무부조리고 유사금전갈취행위에요.
그리고 어이없고 한심한 경우가 또 있죠, '싸제 장만은 해야겠는데 실제 정품은 너무 비싸고 구하기도 힘들다. 그러니 서바이벌 게임용 모조품을 사다 쓰자.'
...믿기지 않겠지만 실제로 '사제장비 르네상스' 시절에 저런 일들이 왕왕 있었답니다. 저도 그런 경우 본 적 있어요. 한번 적어볼게요.
몇달 전인가 디씨질하다가 특자 들어가는 부대 근무하시는듯한 현역분이 지혈대 산다면서 모 군장샵 링크를 걸었었습니다. 뭐 사나 봤더니 세상에나, 서바이벌 게임용/코스프레용 레플리카 장구류 전문 업체인 중국의 에머슨에서 만든 코스튬 플레이용 소품 지혈대를 말하는거 있죠.
깜짝 놀래서 이건 민간인들이 코스프레용 소품으로 쓰라고 만든 물건이라 실제로 지혈하려고 썼다간 금방 부러진다고, TCCC 위원회에서 공식으로 이런 가짜 지혈대 사용시 파손으로 인한 응급처치 실패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 적 있다고 알려줬었습니다. 더 짜증나는게, 해당 군장샵에선 실제 지혈대 용도로 사용 가능한것처럼 약파는 광고문구까지 띄워놨더라고요.
그분 역시 내 말을 듣고선 정품을 구매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고 머지않아 현역들이 올린 다양한 종류의 글이 다 그렇듯 알아서 자삭을 하시더라고요. 하지만 뻔뻔하게 레플리카를 실물 용도로 사용할수 있다고 팔아먹는 업자들의 태도와, 그걸 제대로 검증하지 못하고 최소 한개 팀이 코스프레용 지혈대를 사용할뻔 했다는 사실 자체는 제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아 이렇게 여러분께 알려드릴 수 있었습니다.
사람 목숨이 걸린 지혈대를 가지고도 이런 장난을 치는게 믿어지지 않으시겠지만, 저와 제 가족의 명예를 걸고 사실입니다. 하물며 조준경이나 군장으로 장난 치는 업자들이 없을거라고, 그리고 거기에 속아넘어가는 실무 요원들이 없을거라고 저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11K는 전지 수명이 약하다고 툴툴대시는 분들? 잘못하면 총 몇발 쏘자마자 망가지는 조준경을 사실수도 있습니다.
전인범 장군 후임으로 들어왔다 알자회 파동으로 물먹은 악명높은 사제장비 반대파인 장뭐시기 그 양반같은 극단적인 사제장비 단속도 물론 심각한 문제가 있고 욕먹을 짓거리지만, 그렇다고 마냥 사제장비를 풀어주는게 좋은건 아니라는겁니다. 사제장비의 개인부담으로 부대 전투력을 유지하는건 미봉책이에요. 까놓고 말해서 전투복이랑 계급장 빼고 다 사제로 도배하라는 수준인데 그게 21세기 현대국가 군대 체계에서 권장할 일입니까? 무슨 자기 돈주고 갑옷 방패 무기 구해다 입던 고대 중세 군대 이야기도 아니고 말이죠.
미군은 알보병들도 사제장비 잘만 쓴다! 하는 분들 있는데 네 허상이고 잘못된 정보입니다. 걔들 사제 장구류 미친듯이 쓰던 시절이라면 00년대 초중반, 이라크 침공 직후쯤 해서 군인 가족들이 전선에 나가있던 병사들한테 자기 돈으로 성능좋은 방탄복같은거 막 사서 전선으로 택배부치던 이야기이고 그나마도 얼마 안가서 무분별한 사제 방탄복 사용 자제하라는 지시사항도 떴었어요. 그들도 결국 정석대로 해결했습니다. 보급품의 수준을 끌어올려서 해결을 했죠. 상식적으로 미군이나 우리나 병사 월급 아니고선 결국 군바리들 재정 형편이란게 다 거기서 거긴데, 자기 목돈 쪼개서 그런 사제들로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떡칠하고 다니는 양반들 몇이나 있을라구요? 부대명의로 지급되는 체크 카드같은 이야기들이 실제로는 전혀 그렇게 자율적이지 않다는 이야기는 이미 몇 달 전에 밀덕계에서도 나온 바 있는 이야기구요.
여기서 제시하는 우리의 현 문제점 해결방안. 뭣도 없습니다. 미군 잘 하는 대로 따라가면 됩니다.
1. 보급품의 수준을 끌어 올려야합니다. SOPMOD처럼 기본 패키지에 소음기 근접조준경 망원조준경 패키지로 딱 꾸려주고, 보급 방탄복 보급 장구류 수준들도 업그레이드 시켜야죠.
2. 사제 사용은 묵인하는 선에서 그칩시다.
물론 군 보급체계의 특성상 아무리 유연한 조직이라도 최신 트렌드보단 뒤쳐질 수 있습니다. 정말로 사제를 구입하는 사람이 자기 전문성이 있어서 높은 안목으로 보급보다 좋은걸 쓰는거면 말릴 이유 뭐 있겠습니까.
근데 이걸 부대차원에서 뽐뿌넣고 권장하면 위에서 말한 부작용들 터지기 시작합니다. 저것도 외부에서 들리는 이야기들 취합한 수준이니 실제로 내부에서는 우리 상상 이상으로 골치아픈 문제들 엄청 터졌을겁니다. 신용카드를 줘서 해결하자 부대운영비로 해결하게 하자 이런게 말도 안된다는 이야기들은 저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 여러번 이야기했으니 굳이 제가 말할 필요는 없겠죠. 덤으로 그런 자유로운 시스템에 구매결정권자와 판매업자의 인간적인(?) 관계가 겹치면 그때부터 비리가 터지기 시작합니다.
결국은 군 조직이 제 할일 잘 해서 쓸만한 물건들을 정식 보급품목으로 지정하고 군수지원이 유지되는쪽으로 개선하는게 중요한겁니다. 사제 사용은 그런 전반적인 서포트 속에서 개인적으로 뭔가 부족하다 싶은게 한두개 있으면 개인적으로 조달해서 더 나은거 쓰는걸 말리지는 않는 선에서 적당히 통제하구요. 사제 조달한답시고 보급품만도 못한 서블용 레플 이딴거 사오면 그땐 박살내야죠. 전투력 손실이 별거겠습니까.
보급품 조달 체계가 어떻게 현행 장구류 발전속도를 따라올수 있겠냐 뒷말 하고싶은거 많으실겁니다. 근데, 합리적인 납품과정을 거쳤다면 무분별한 방임보단 차라리 이게 나아요.
예를 들자면, 현 미군 특수전부대 개인화기인 M4A1 SOPMOD2의 구성품으로 들어간 대니얼디펜스 레일이 현 최신 트렌드인 '레일을 어댑터에 최소한만 달아서 중량 완화시키는 방식'인 엠락이니 키모드니 이런거에 비해 조금 뒤떨어졌긴 하지만 이게 심각한 전투력 저해 요소입니까? 아니죠. 테러와의 전쟁 이래 개인장구류와 총기장착물의 발전 속도가 인류 역사상 그 어떤때보다도 빠르게 발전하고 있어서 순식간에 구식이 된 것처럼 보이는거지, DD레일같은것도 충분히 제 기능을 다 할수있는 좋은 물건인것처럼, 민감하게 유행 따라가는게 무조건 좋은건 절대 아닙니다. 그런 와중에서도 삽질로 끝나는 아이디어들이 나오는데, 덜컥 따라했다 망하면 큰일나요.
정말로 중요한건 사제 허용같은 미봉책이 아닌, 보급품 개선이죠. 최근 '워리어 플랫폼'에 제가 제일 기대하는 부분도 '개별조합형'으로 통칭되는 현행 장구류 긴급개선사업이 아닙니다. 제가 워리어 플랫폼에 정말 큰 기대를 하는 이유는, 드디어, <미군이 실전적인 보병장구류를 연구/개발/조달하는 관료적/제도적 시스템>이 육참총장의 관심사항으로 우리가 연구하기 시작했다는 소식때문입니다. 장군 한 두 사람의 '의지'따위가 아닌, 보수적인 누군가가 다시 위에 올라가도 꾸준히 개선된 장구류에 대한 연구와 보급이 이어질 수 있는 시스템의 개선이 이번에 관심사항에 들어갔다는 이야기거든요. 다른 개선계획 다 엎어져도, 이거 하나만 건지면 희망이 있습니다.
아무튼, 보급품의 수준을 끌어올리면서 사제는 그것을 약간 보완할수도 있는 보조재정도 개념으로 접근해야지, 마냥 사제만세는... 그거야말로 앞서 말했듯 일체 무기와 장구류를 개인이 부담해야했던 비전투적이고 중세적인 마인드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