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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06-12 07:28
[잡담] 개구리는 올챙이 때를 기억하지 못하죠.
 글쓴이 : 흑룡야구
조회 : 2,172  

1945년 11월 미군정에 의해 '국방사령부' 창설
1946년 1월 15일 '남조선 국방 경비대' 창설, 2만 5천 명 규모.
1946년 6월 15일 '조선 경비대'로 개칭, 1947년 12월 1일까지 3개 여단 창설(서울, 부산, 대전), 계속하여 6개 연대와 2개 여단을 추가로 창설.
1946년 6월 15일 '조선 해안 경비대' 창설
1945년 8월 15일에 '조선경비대'는 '육군'으로, 
1945년 9월 1일, '조선해안경비대'가 국군에 편입, 같은 해 9월 5일에 '대한민국 해군'으로 개칭, 11월 11일에 해안 경비대가 '해군'에 편입. 11월 30일, '국군조직법'에 의거 정식으로 국군에 편입.

* 한국 전쟁 당시의 국군 규모.
- 육군 : 8개 사단(22개 연대) - 67,416 명
         지원 및 특과 부대    - 27,558 명
                              합 : 94,970 명
- 해군 : 3개 정대, 7개 경비부 -  7,715 명
- 해병대 : 2개 대대            -  1,166 명
- 공군 : 1개 비행단, 7개 기지 -  1,897 명

= 총 군사력                   - 105,752 명

* 한국전쟁 당시의 국군 장비
- 장갑차 : 27대(전차 및 자주포 전무)
- 곡사포 : 105mm M3 - 91 문
- 박격포 : 81mm - 384 문, 60mm - 576 문
- 대전차포 : 57mm -140 문, 2.36인치 바주카 - 1,900 문 
- 항공기 : L-4 연락기 8 대, L-5 연락기 4대
           AT-6(한국명 건국기, 연습용, 0.5인치 기관총 2정) - 10 대 
- M1 소총 - 40,050 정
- M1 칼빈 소총 - 14,746 정.

이렇게 빈약했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병력이 늘기 시작합니다. 미군은 장기적인 교착 전쟁에 정치적인 이유로 빠른 철수를 희망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전쟁중인 우리 나라를 방문에 미군들에게 고향에 최대한 빨리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며 미군을 독려합니다.

이에 한국군은 미군을 대체하기 위해 더욱 더 병력 증강을 하는데 그 결과 1953년에는 30대까지 징병 대상자가 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휴전 직후 한국군의 규모는 육군만 40만 명이 넘어가게 됐습니다.

미군을 대신하기 위해 징집된 한국군은 미군 예산으로 운영됐고, 입고 먹고 자고 장비하는 모든 것이 미군 원조 물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을 통해 전차(M-48전차 도입), 장갑차(M113 도입) 등의 현대화가 이루어졌고, 공군도 원조를 통해 F-4를 동북아에서 일본보다 먼저 장비하여 최강 공군이 되기도 했습니다.

1979년 전까지는 우리 정부에 의한 국방 예산 편성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즉, 미군이 국방비의 대부분을 내고 미군이 요구하는 추가 편성 등을 우리 정부가 보조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주 국방을 기치로 소화기부터 개발하고 배치하기 시작했고, 80년대 장비의 한국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90년대와 2000년대 초 그 성과들이 거의 모든 육군 기갑장비와 거의 모든 해상의 전투함정이 우리 손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발전을 토대로 국군은 2000년대 초반 70 만에 육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휴전 상태에서 미군을 대체할 목적으로 병력만 늘려 놓은 군대여서 우리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발전과 무기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군인 처우에 대한 것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국방 개혁, 그것은 우리 군대를 우리 정부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예산을 높이고 질적 대우를 해 주는 것이지만 아직도 그 길은 멀어 보입니다.

어떤 분이 왜 아직도 M48을 운용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기에 몇 자 적어 봅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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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절설사 18-06-12 08:44
   
오랜만에  좋은글 읽어봅니다.  모르던 사실도알게되고요  님의말에 적극  지지합니다.
나기 18-06-12 09:30
   
전쟁사를 모르는 바보들이나 치장 중인 예비장비들을 폐기하자 나불댑니다
우리보다 군사적으로 비교할 수 없이 강한 나라들도 하는 일인데...

욤 키푸르 전쟁 때도 예비장비에 예비군 태워서
미군 자원물자 들어오기 전까지 간신히 버티고 있었죠
꾸물꾸물 18-06-12 11:30
   
http://www.archives.go.kr/next/search/listSubjectDescription.do?id=006362


국방예산은 편성되었고 비율은 엄청났습니다. 엄청난 비율로 국방예산이 책정될 수 있었던건 미국의 원조를

받아 나라를 꾸렸기 때문이지요. 얼마전에 봤던 칼럼에서는 애시당초 미국이 한국에 상당한 규모의 군을

보유할 것을 요구했고, 이를 토대로 한국은 최대로 많을 때가 정부재정인지 예산의 70%를 국방예산으로

잡았을 때였습니다. 그래도 나라가 굴러갈 수 있었던건 애시당초 미국 원조로 살던 시기였기 때문이었지요.

미국이 원조나 차관 관련해서 이제 씀씀이를 줄여야겠다하던 시기에 득달같이 달려들어 읍소했다고 하지요.

니들 하라는 대로 해서 돈도 군대에 몰빵하고 있는데 이제와 그러면 어쩌냐랄까? 어쨌건 국방예산은 편성되

어 왔습니다.
     
흑룡야구 18-06-12 13:15
   
제가 듣기로 미군정과 미군 요청에 의한  예산 편성이 주였고, 제대로 우리 정부 이름으로 국방 예산을 독립적으로 편성한 것이 1979년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그 전에는 우리가 많은 돈을 국방비에 쓴 것은 맞으나 미군이 주도했고 미군의 요청에 의한 편성이었는데 79년에 와서야 상호간의 방위 분담의 개념에서 우리가 독자적으로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하는 방식으로 바꼈다고 들었네요.
Tenchu 18-06-12 11:44
   
엥? 방위세도 냈었는데....  재정의 30%넘던게 국방비였죠.
무상원조는 딴건 몰라도 70년대초에 중단됐고여..
승리만세 18-06-12 14:17
   
사실 경제는 평시체제였는데 군대는 전시체제라서 가장 젊을때의 젊은이들을 몇년간 군에 징집해 70만이 넘는 대군을 보유하는 기형적인 체제였죠. 지금은 나아졌지만 당시의 빈약한 재정으론 그 막대한 병력을 유지하기 위해 병사의 질적인 면과 대우, 복무환경은 최악일수밖에 없었죠.
문제의식은 다 있지만 역대 정부는 어쩔수없는 것이라 치부했는데 현정부는 국방개혁을 통해 점차 감축 및 장기적으로 모병제로 전환하기 위한 토대를 만들어 가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