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1월 미군정에 의해 '국방사령부' 창설
1946년 1월 15일 '남조선 국방 경비대' 창설, 2만 5천 명 규모.
1946년 6월 15일 '조선 경비대'로 개칭, 1947년 12월 1일까지 3개 여단 창설(서울, 부산, 대전), 계속하여 6개 연대와 2개 여단을 추가로 창설.
1946년 6월 15일 '조선 해안 경비대' 창설
1945년 8월 15일에 '조선경비대'는 '육군'으로,
1945년 9월 1일, '조선해안경비대'가 국군에 편입, 같은 해 9월 5일에 '대한민국 해군'으로 개칭, 11월 11일에 해안 경비대가 '해군'에 편입. 11월 30일, '국군조직법'에 의거 정식으로 국군에 편입.
* 한국 전쟁 당시의 국군 규모.
- 육군 : 8개 사단(22개 연대) - 67,416 명
지원 및 특과 부대 - 27,558 명
합 : 94,970 명
- 해군 : 3개 정대, 7개 경비부 - 7,715 명
- 해병대 : 2개 대대 - 1,166 명
- 공군 : 1개 비행단, 7개 기지 - 1,897 명
= 총 군사력 - 105,752 명
* 한국전쟁 당시의 국군 장비
- 장갑차 : 27대(전차 및 자주포 전무)
- 곡사포 : 105mm M3 - 91 문
- 박격포 : 81mm - 384 문, 60mm - 576 문
- 대전차포 : 57mm -140 문, 2.36인치 바주카 - 1,900 문
- 항공기 : L-4 연락기 8 대, L-5 연락기 4대
AT-6(한국명 건국기, 연습용, 0.5인치 기관총 2정) - 10 대
- M1 소총 - 40,050 정
- M1 칼빈 소총 - 14,746 정.
이렇게 빈약했던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병력이 늘기 시작합니다. 미군은 장기적인 교착 전쟁에 정치적인 이유로 빠른 철수를 희망했고, 아이젠하워 대통령 당선자는 전쟁중인 우리 나라를 방문에 미군들에게 고향에 최대한 빨리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며 미군을 독려합니다.
이에 한국군은 미군을 대체하기 위해 더욱 더 병력 증강을 하는데 그 결과 1953년에는 30대까지 징병 대상자가 되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휴전 직후 한국군의 규모는 육군만 40만 명이 넘어가게 됐습니다.
미군을 대신하기 위해 징집된 한국군은 미군 예산으로 운영됐고, 입고 먹고 자고 장비하는 모든 것이 미군 원조 물자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베트남 전쟁 참전을 통해 전차(M-48전차 도입), 장갑차(M113 도입) 등의 현대화가 이루어졌고, 공군도 원조를 통해 F-4를 동북아에서 일본보다 먼저 장비하여 최강 공군이 되기도 했습니다.
1979년 전까지는 우리 정부에 의한 국방 예산 편성 자체가 없었다고 합니다. 즉, 미군이 국방비의 대부분을 내고 미군이 요구하는 추가 편성 등을 우리 정부가 보조하는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자주 국방을 기치로 소화기부터 개발하고 배치하기 시작했고, 80년대 장비의 한국화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져 90년대와 2000년대 초 그 성과들이 거의 모든 육군 기갑장비와 거의 모든 해상의 전투함정이 우리 손으로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발전을 토대로 국군은 2000년대 초반 70 만에 육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애초에 휴전 상태에서 미군을 대체할 목적으로 병력만 늘려 놓은 군대여서 우리 정부가 감당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 나라의 발전과 무기 현대화에도 불구하고 군인 처우에 대한 것은 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국방 개혁, 그것은 우리 군대를 우리 정부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예산을 높이고 질적 대우를 해 주는 것이지만 아직도 그 길은 멀어 보입니다.
어떤 분이 왜 아직도 M48을 운용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시기에 몇 자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