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한 시점에서
무단파는 이미 힘을 잃은겁니다
통일을 위해서는 무단파가 가장 필요하지만 통일이 된시점에서는 관료중심인 이시다 파가 필요했죠
이젠 전쟁은 필요없고 통치만이 남았으니까요
각종제도와 법령 을 만들어 중앙 집권화를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이시다 미쓰나리가 나이가 어리고 가신으로서의 경력이 짧아도 히데요시사후 5대로를 조율할 오봉행에 임명된 이유입니다
그러니 무단파는 자신들의 총애가 줄어들자 불만을 가지게 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도꾸가와 이에야스도 통일을 하고 나서 무단파를 대거 물리고 관료중심의 인물들로 측근을 채워 나갑니다
세키가하라 전투도 왜 이시다 미쓰나리가 서군 총대장이 못되었냐 하면
일단 그는 히데요리의 가신으로 도요토미 가문으로 그가 총대장이 될수 없고.
이미 히데요시가 사후 일본의 정치를 맏긴 5대로중 모리 고바야카와 우키다 등이 서군측에 가담했기에
5봉행의 입장으로 그리고 그들보다 비교가 안되게 적은 영지로 인해 총대장이 될수 없었습니다.
5대로의 조절자인 미쓰나리가 총대장 되려 고집을 부렸다면. 분명 많은 이탈자들이 생겼을 겁니다
세키가 하라 전투에서 마쓰오산의 배신자 이전에 이에야스 편에 섰던 가또나 후꾸시마나 다들 서군과 내통해서 잘못될시 배신을 하겠다고 했고 또한 서군도 동군의 무장들과 서로 내통을 했습니다
원래는 히데요시 가신이였으니까요
서로 잘못되면 ? 잘 봐주쟈?
그래서 전쟁후 보신을 위해 약속된 청탁을 위해 열심히 구원을 청했지만 이야야스가 거절합니다.
진정하세요. 국내에서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 등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그것을 다룬적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당장 옆에 붙어있는, 그리고 가장 주시해야할 나라인 일본의 전국시대에 대해서는 다뤄본적이 거의 없었죠. 일본의 전국시대는 중국의 것과 마찬가지로 이후 나라의 문화와 이념, 전략의 발전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시대입니다. 그것을 살펴봄으로서 일본이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알아볼 수 있는거죠.
말로는 쪽바리, 쪽국이라 무시하면서 정작 그 나라의 역사적 저변조차 살펴보지 않는 것은 임진왜란 직전 조선이 일본을 경계하면서도 그들의 실체를 외면하다가 전화를 당한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