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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3-30 19:12
자동화기의 시초 게틀링건(펌)
 글쓴이 : 태을진인
조회 : 3,818  


 미해군이 도입한 게틀링건
 

1818년 오늘, 연발로 총탄을 발사하는 게틀링건을 고안한 미국의 발명가 ‘리처드 게틀링’이 노스캐롤라이나주 머니스넥에서 태어납니다.

게틀링은 어려서부터 기계조립에 남다른 재능이 있었으며,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기구의 작동 모습을 관찰하고 농업용 기계를 발명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의사이기도 했던 그는 이앙기, 대마파쇄기, 증기 경운기, 모터로 움직이는 자동 경운기 등을 발명해서 특허를 얻었죠. 하지만 발명가로서 게틀링의 이름을 역사에 남긴 것은 1862년 그가 만들었던 게틀링건이었습니다.

여러 개의 총신이 돌아가면서 탄환을 발사할 수 있는 속사화기인 이 화기의 초기 모델은 수동으로 크랭크축을 돌려 발사하도록 했기 때문에 기관총이라고 하기엔 좀 민망했지만, 개량형에는 전기 모터를 장착하여 그 성능을 향상시켰죠. 게틀링건은 1866년 미 육군에 의해 제식 무기로 채택될 당시에는 분당 600발을 발사할 수 있을 정도로 개량되었습니다. 특히 1898년 터진 미국-스페인전쟁에서는 미 육군과 해군이 사용하여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합니다.

애초 리처드 게틀링은 이 무기가 전쟁을 억제할 수 있는 무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발명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병력이 우세한 군대가 숫자가 적은 군대를 일방적으로 살육할 수 있었고, 약자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죠. 게틀링은 자신이 고안한 무기가 병력의 우위로 약한 집단을 공격하려는 강대국의 도발을 억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죠. 하지만 게틀링 건이 그 치명적인 성능을 과시했던 것은 미군의 아메리카 원주민 소탕작전, 영국군의 아프리카 침략 등이었습니다. (뭐 멀게 갈 필요 없이 우리나라의 동학 농민군을 공격했던 관군과 일본군도 게틀링 건을 장비했습니다.) 여전히 강자를 더욱 강하게 해주는 수단으로 전락하였던 것입니다.



그당시 전봉준의 기록

첫돌격때 1만명의 전력중 살아있는 사람이 3500명에 불과했다

2번째 돌격후 남은 사람은 500명도 안되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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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빈 12-03-30 20:10
   
근데 1차대전까지 지휘관들 마인드가 여전히 나폴레옹시대 수준이라서 계속 전선에서 닥돌했다는거. 그 결과는 뭐
     
painter 12-04-01 04:07
   
그럴수 밖에 없었던것이 개를링건이나 후에 나온 기관총들 명중률이 현저하게 떨어지고 내구성이
안좋아서 믿음을 못 줬다더군요. 밀리 다큐에서 실험한 것만 봐도 평원에 풍선 100여개 이상을 일렬로
늘어트려 논 상태로 교관출신의 숙련자에게 탄창을 다 비워가며 정면에서 쏘게 했는데도 많아봤자
20여개 이상 못맞추던걸요. 고정된 풍선도 그정도인데 뛰어오는 병사들이면 더 맞추기가 힘들죠.
그런데 독일군에서 기관총을 활용해서 양 사각 지역에서 사선으로 쏘는 전술을 개발하면서
1차대전양상이 뒤바꿨다고 하더라구요.
정면에서 쏘는게 아니라 참호 양끝에서 옆쪽으로 사선을 향해 쏘면 사각지대가 없어지면서
명중률이 현저하게 높아져 실험으로도 100여개에서 80~90여개 이상의 풍선이 사라지던...
즉 개발된 전술도 모르고 영국, 프랑스 지휘부가 닥돌시키다 불쌍한 병사들 비명 횡사...
후에 전부 응용하긴 했지만서도요.
나른한생활 12-03-31 14:20
   
당시 내구도는 어땠을까요


잘 고장났을거 같은데....ㅎㅎ
     
태을진인 12-03-31 14:32
   
첨구상한게 수냉식이였는데 총포가 잘 휘었데요 열때문에

 나중에 공랭식 으로 바뀌긴했지만요.재료가 좋아져서던가 ㅎ
임페라토르 12-03-31 14:33
   
게임에서 토탈워 쇼군2:사무라이의 몰락 에서 가공할 위력을 선보이죠 -_-
보신전쟁에서 라이플을 압도하는 엄청난 연사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