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 읽어보니까 독일이 패망직전 마지막까지 베를린 방어작전을 맡았던 집단군 사령관이었네요. 휘하에 만토이펠장군의 3기갑군,부세장군의 9군이 있엇는데 숫적으로 너무 딸려서
게속 서쪽으로 후퇴만 하다 열받은 히틀러한테 해임당했네요
집단군이래봐야 대략 4~50만정도일텐데 소련군 베를린 공격군은 무려 150만 이었답니다.
이사람 와이프가 유태인이라서 자식 2명이 별(유태인 표시)달고 있는걸 자기 직위를 이용해서 히틀러한테 직접 청원해서 보호해주도록 요청했답니다.
예.. 귀찮아도 읽어보니 예전에 얼핏 들어보긴 했던 장군같습니다.독소전은 클루게 휘하의 4군을 지휘하면서 시작한 셈인데, 당시 독일에 워낙 쟁쟁한 장군(인성말고 지휘능력만)들이 많다보니 상대적으로 부각된건 방어전에서였던거 같네요.
패잔병을 모은 군대로 붉은군대를 틀어막으며 후퇴하고, 정치군인도 아니면서 대장까지 진급한건 확실히 능력을 인정받은거 같긴 한데.. 그래도 3위 배정은 좀 과한거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발터모델은 현재 새로이 드러난 역사자료등을 통해서 진정한 명장으로 평가받고 있는 장군입니다. 전술적 천재이며 용장이고 동시에 덕장으로서의 면모까지 지닌 인물입니다.
동부전선에서의 그의 활약은 90년 소련의 몰락이후 드러난 자료들을 통해 나타났는데... 과장없이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르제프 공방전을 찾아보시면 그의 활약상의 일면을 보실 수 있습니다.
현재 만슈타인의 탁월한 전술입안 능력으로 높게 평가되지만, 모델은 야전사령관으로서의 감각적이며 동시에 결단력있는 공세적 방어로서 높게 평가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만슈타인은 뛰어났지만 부하들의 존경심이나 사랑은 그다지 받지 못하던 장군입니다. 대체로 참모장의 성격이 강하고 전술가의 이미지로서 부하들에게는 다소 권위적인 "전형적인 프로이센 장교"의 인물이었습니다. 반면 모델은 말그대로 최전선에서 권총들고 뛰어다니며 같이 구르는 스타일의 야전장교였습니다.
전술적인 천재로 롬맬을 많이들 언급하지만, 모델의 전적을 보면 롬맬을 뛰어넘는 천재라고 보입니다. 그리고 만슈타인과는 다르게 히틀러의 예스맨은 아니었습니다. 히틀러의 간섭을 무시하고 후퇴전술을 입안하는가 하면, 자신의 작전이 히틀러에의해 변경되었을때는 직접 비행기를 타고 벙커의 히틀러를 찾아가 면전에서 따지기도 했던 인물입니다. 대체로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는 군인의 기본사명에 충실하면서도, 야전에서의 자신의 결정이 옳다고 믿으면 밀어부치는 책임감있는 장성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얼마나 대단했는가는... 소련의 3대 명장, 게오르기 주코프, 이반 코네프, 콘스탄틴 로코솝스키, 모두가 그들이 입안한 작전과 수행도중 발터모델때문에 패전한 경력들을 갖고있다는 겁니다. 즉 소련 3대명장들이 모델에게 패전했다는 치욕을 갖고 있는 셈이지요.
덤으로 서방의 명장으로 손꼽히는 몽고매리, 오마 브래들리도 모델에게 패한 경력을 갖고 있는... 동부와 서부모두에서 승리한 인물이며, 그 승리들모두가 병력적 열세의 상황에서 수비와 반격의 천재적 운용과 기동으로 이루어냈다는 것이 그가 놀라운 명장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