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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4-06 20:02
6.25 때 한국군 최고의 명장은 누구라고 생각함?
 글쓴이 : Centurion
조회 : 4,208  


미국에서 꼽은 보통 6.25 4대 영웅 하면, 
맥아더 원수, 백선엽, 김동석 대령, 리지웨이 대장 4인을 꼽던데;..

맥아더나 리지웨이는 유엔군 사령관이니 모르는 사람 없을테고, 
백선엽은 1사단장으로 퇴각하다가, 다부동전투에서 승리. 그 다음에 지리산 빨치산 토벌..
김동석 대령은 첩보부대 지휘관으로 많은 첩보를 수집. 그 정보를 바탕으로 많은 승리를 이루도록함.

근데 갠적으로 참 궁금한 부분은... 
왜?? 백선엽이 한국군 지휘관을 대표하는 얼굴마담인가 하는 부분이죠.

사실 백선엽보다 훨씬 인상적인 전투를 펼친 지휘관도 분명 있었거든요. 

첫번째가 춘천전투에서 6.25 발발 당시 유일하게 북한군 공격을 격퇴한 김종오 장군.. 
훗날 중공군의 갑작스런 참전 후 기습 공세에 밀려서, 잠시 망신을 당했지만..
이건 UN군 전부에게 벌어진 일이었고.. 

그 후 백마 고지 전투에서  중공군 3개사단을 
상대로 난투극을 벌여 떡실신 끝에 점령하며 유종의 미를 거둠.. 

두번째, 김홍일 장군.. 오성장군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슴. 
중국 국민당군에서 별 2개, 한국군에서 별 세개를 달았슴.. 
상해임시정부와 관련이 있었고, 김구가 이끈  한인 애국단의 윤봉길 의사에게 폭탄을 지원.

6.25때 전선이 붕괴되고, 각 사단이 패주 중임에도 한강방어선을 구축해.. 
패잔병들을 이끌고 미군의 참전 시간을 버는데 성공함.. 
그러나, 이후 한강 방어선 전투가 끝난 후 후방 교육부대로 옮겨졌슴.. 


세번째, 장도영..

박정희가 이끈 5.16 쿠데타의 얼굴마담 장도영.. 
당시 장도영이 이끈 6사단은 중공군의 인해전술에 쫄아서 무질서하게 후퇴하다 개망신을 당함..

벤플리트가 이 후 장도영을 불러다 많이 야단쳤는데.. 
이 후 열심히 정신교육을 시켜서 병사들을 다독거림.. 

그 후 6사단 2연대 소속 3개 연대를 고지에 배치시키고, 
중공군 3개 사단의 공격을 막아내게 함..

중공군 인해전술 저글링에도 불구하고, 2연대가 1:9의 압도적 열세에도 불구, 
죽을각오로 싸우자,  중공군은 여기가 전초기지가 아닌 주 저항선이라 생각하고 병력을 집중.. 

그 때, 장도영이 후방에 아껴뒀던 나머지 2개 연대를 좌,우로 진격시켜 중공군에 반격해, 
중공군 1개 군단 병력이 6사단한테 쫓겨서 거의 전멸함.. 

전투결과

한국군(6사단) : 전사 107명, 부상 494명, 실종 33명
중공군(대규모 3개 사단) : 전사 1만 7177명, 포로 2183명

한국전쟁 최대 전과라고 함.. 


네번째, 백골병단을 이끌고 후방에서 북한군 지휘관을 사살, 체포하는 등 게릴라전에 탁월했던 채명신 장군..
(훗날, 베트남전에 파병되어 대활약)

다섯번째, 이등병에서 육군참모총장까지 진급한 한신 대령..(6.25때는 대령까지 진급)

여섯번째, 베티고지의 영웅 김만술 소위..
34명의 소대원으로, 중국군 2개 대대의 공격을 방어해, 13시간동안 막아내며 314명 사살.. (아군 12명 생존)

사실, 백선엽이 이끈 다부동 전투의 경우에는.... 
미 공군 폭격이나 미 지상군 지원도 크게 한몫한것도 있슴... 

갠적으론 김종오 장군이 가장 걸출하지 않았나 싶고, 
6.25 때 최고 부대는 역시 춘천 대첩과 용문산 전투에서 전공을 세웠던 6사단이 아닐까 싶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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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우 12-04-06 20:24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81mOP 12-04-06 20:26
   
아...이런것이 밀게의 본보습....좋습니다..
울보늑대 12-04-06 20:42
   
용문산전투 일명 파로호 전투라고도 하는 그 전투군요.. 영화로도 제작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오카포 12-04-06 20:50
   
확실히 저도 밀리터리에 관심은 있지만 6.25 전쟁에 대해선 잘 모르고 있네요...
전 역사보다는 무기 자체를 좋아하는 쪽이라서.. 헐..
암튼 잘 읽고 갑니다.
도영이 12-04-06 20:56
   
6사단 대단하네요.... 잘 읽었습니다~
Centurion 12-04-06 21:00
   
용문산 전투 쩔죠..
1개 대대가 1개 사단 공격을 막아낸 이틀동안 막아낸 셈인데..
중공군이 이건 분명 1개 사단이 방어하는 것이라 생각해 예비대까지 몽땅 투입..

당시 2연대 장병들은 오른손에 총 맞으면,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기고,
두팔이 다 맞아서 손을 못쓰게 되면 이빨로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 발로 차서 굴렸다고합니다.

그리고 김만술 소위도 진짜 쩌는데..
이전까지는 베티고지를 탈환 후 게속 뺏기기를 반복..

신임소대장이 된 김만술 상사가 베티고지를 점령 후..
중공군 2개 대대의 공격을 13시간동안 19번이나 격퇴를 하는데..
나중에는 진내 사격을 요청..

360여명을 사살하고, 500여명을 부상시켰다고함.. 한마디로 중공군 2개 대대병력 궤멸..
     
81mOP 12-04-06 21:01
   
혹시 군사학 배우셨나요?
아님 현역 군인이신가?
대단하시네요...ㅎㅎ
          
Centurion 12-04-06 21:12
   
아니 그런건 전혀 아닙니다.
밀덕후라고 하기에도 너무 지식이  얕은 편이라 부끄럽네요 ㅎㅎ
               
81mOP 12-04-06 21:39
   
역사쪽 게시물도 그렇고 군사쪽도 그렇고
대단하십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거지만
능력자시네요..ㅎㅎ
고전프라 12-04-06 21:31
   
백장군이 잘못한 점은,
최전방 책임자로서 전의 동향파악 못하고 6.25날 서울에 있어, 초기 현장지휘를 못한 점,
더 잘 못한 점은 허술하게 임진강 다리 폭파 못해서,  인민군들 서울로 쏟아지게 만든 점.

잘한 점이라면..
실제적으로 미군이 철수여부를 판단한 마지막 보루였던 대구 북방의 다부동 지키는 데 있어,
사단장이 권총 빼들고 돌격 앞으로 할 정도로 절대절명의 상황에 패잔병들 이끌고 잘 다독이면서
다부동을 사수한 점.

6.25 초기 빼고는, 그렇게 작전에 있어 크게 패전한 적이 별로 없다는 점.
유재흥같은 이가 군단을 말어먹고 가는데 패전하던 것과 달리..
살수대첩 귀주대첩같은 대첩은 없었지만, 85-90점 짜리 성적을 꾸준히 기록함.
평양을 일착하고, 부대 이름도 전진부대가 되듯이.. 대승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사단을 만듬..
동부전선 휴전선을 38선 북쪽으로 끌어올리는데도 백장군이 군단장으로 나름 역할을 했음.

다른 장군들 보다 뛰어난 점은 미군과 공조작전을 잘했다는 점.
유재흥의 3군단 괴멸로, 한국군 작전권을 미군이 가져갔지만, 그래도 최악의
상황까지 가지 않은 것은, 백장군같은 능력있는 장군이 한국군에 있다는 것으로
많은 공조작전에서 한국군도 할 수 있다는 것을 미군에 보여줌.

나중에 남부군, 해체해놓고 보니까, 몇개 사단급 규모였던 남부군 제거에도 사령관으로서 큰 역할을 했음.
당시 백장군의 지리산 토벌 경험을 미군에서도 게릴라전의 교본으로 인용하고 있음.

이게 장점인지 단점인지 모르지만..
6.25 직전에 군대에서 간첩을 만들던 박정희를 같은 만군출신 인연으로, 살려준데 있어서,
지대한 공헌을 했음.
당시 방첩부대장, 지금으로치면 보안부대장인 보안사령관 정도인데..
군대에서 빨갱이 만들다 걸린 박정희가 찾아와서 살려달라고 한 것, 박정희가 군내 빨갱이 계통도를
그려주고 살아난 점, 백장군 자서전에도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박정희는 6.25 떠질 때 민간인 신분으로 있다, 전쟁중에 군대에 다시 돌아오고,
나중에 남들 다 미국 유학갈 때도, 빨갱이경력으로 거부되기도 하고, 윤보선과 대통령선거때도,
색깔론으로 애를 먹음.(색깔론으로 애를 먹은건 김대중보다 박정희가 먼저 임)

6.25 초반의 MVP는 춘천지역 방어를 했던 6사단..
북한군이 서울에 3일을 머무른 것도, 이쪽 전투에 부진해서 합류하지 못했기 때문으로,
한국군이 후방에서 정비할 시간을 줌으로써, 당연 6사단이 젤 잘 싸움.

낙동강전선
백장군의 1사단이 MVP..

인천상륙다음..
백장군의 1사단이 MVP..
적이 없는 상황에서 큰 싸움도 없고 젤 진격을 잘 했으니까..

중공군 투입후..
백장군이 군단장으로도 가서.. 사단급으로 비교하기 힘듬..
후안무치 12-04-06 21:33
   
백선엽이 왜나옵니까 독립군 잡아 죽이던 골수 친일파 놈인데
김종오 장군이 개인적으로 제일 괜찮았다 생각합니다. 6.25는 6사단이 정말 갑이였으니까요
없습니다 12-04-06 21:33
   
김종오 장군은 현리전투에서 너무 큰 실수를 했죠.
백선엽 장군의 경우 전쟁초기 부터 끝날때까지 정말 꾸준히 잘했던겁니다 불리 했을 때나 유리했을때 상황이야 어떻든 흠잡을때없는(억지로 잡자면 있겠지만) 활약을 펼쳤죠. 그와중에 전쟁의 향방을 바꿀 전투도 승리로 이끌었고..

사실 웬만한 미국 장군들보다 더 뛰어났던 장군이었죠.. 그래서 625의 대표적인 전쟁영웅으로 꼽히는겁니다.
없습니다 12-04-06 21:39
   
백장군의 초기 전투지휘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열세한 전력으로 기습까지 당하고도 인접부대가 돌파돼서 포위 당할때 까지 버텼으니까요. 한강 후퇴 금지 시킨 채병덕만 아니었더라면 더 할나위 없는 지휘 였습니다.

한가지 더, 개전시 백장군은 후방에서 육대교육받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지휘를 선임연대장에게 넘기고 서울에 있었던거죠.
Centurion 12-04-06 22:00
   
<788>老兵이 걸어온 길-38-낙동강 전투-사단장의 돌격명

8월 20일 1사단 좌익 15연대는 328고지를 어렵게 확보했고, 중앙의 12연대는 유학산 정상을 향한 공격을 나흘째 계속하고 있었다. 우익 11연대는 증원부대에 힘입어 6사단과 함께 방어선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적의 공세가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훗날 전사 기록에는 이날 밤, 국군 1사단 정면의 적 15사단이 다부동 전선을 포기하고 영천의 8사단을 공격하기 위해 의성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을 적의 전력이 쇠퇴한 증거로 보고, 미 27연대 마이켈리스 대령과 협조해 반격작전을 개시하기로 결심했다.



“내가 앞장선다. 나를 따르라”



8월 21일 아침, 반격을 시작하기로 돼 있었는데 적이 먼저 공격을 가해 왔다. 그때 11연대 1대대 병력이 벌써 적군에게 쫓겨 후퇴 중이라는 보고가 들어왔다. 11연대와 인접해 있던 미 27연대도 당황한 모양이었다. 그들은 미8군사령부에 “한국군이 후퇴해 퇴로가 차단당하게 됐다. 늦기 전에 우리도 철수하겠다”고 보고하고 준비를 서둘렀다.

잠시 후 미8군사령부에서 항의전화가 걸려왔다. “도대체 한국군은 싸울 의지가 있는 군대냐”는 질책에 나는 크게 당황했다.나는 즉시 지프를 몰고 11연대 전방으로 나갔다. 그때 적의 포탄이 앞에 떨어져 운전병은 부상을 입었으나 나는 무사했다. 보고는 사실이었다. 11연대 병사들은 축 처진 모습으로 후퇴하고 있었다.

나는 김재명 1대대장을 불러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고 자초지종을 물었다. 대대장인 그도 기진맥진한 모습이었다.“병사들이 밤낮없이 계속되는 전투에 지쳤습니다. 거기다 보급이 끊겨 이틀 동안 물 한 모금 못 먹었습니다.”지치고 허기진 병사들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러나 그래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모두들 앉아라.” 아무리 다급해도 병사들의 마음을 가라앉혀야 했다.

“내 말 잘 들어라. 우리는 여기서 한 발자국도 후퇴할 곳이 없다. 물러서면 바다뿐이다. 후퇴하면 나라가 망하게 된다. 우리와 같이 싸우는 미군들은 우리를 믿고 싸우는데 우리가 먼저 후퇴하다니, 이 무슨 꼴인가? 대한남아로서 다시 싸우자. 내가 앞장서겠으니 나를 따르라. 내가 후퇴하거든 나를 쏘아라!”

나는 권총을 세워들며 돌격명령을 내리고 장병들 선두에 서서 앞으로 나아갔다. 용기를 얻은 병사들은 우렁차게 함성을 지르며 내 뒤를 따랐다. 한번 기세가 오른 병사들은 거짓말처럼 용감했다. 어렵지 않게 고지를 탈환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마이켈리스 대령은 나중에 내게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했다. 그러면서 사단장이 직접 앞장서는 한국군은 신병(神兵)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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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이 쓴 글인데, 솔까 당시 전투상황을 보니 저라면 화가 났을 듯..

보급이 끊겨 이틀동안 물한모금 못마시고 전투했다는데..
솔직히.. 8월 한여름에 고지 위에서 저런 환경에서 싸운다는 것 자체가 무리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퇴각하는데, 사단장이 갑자기 지프타고 와서 총검 돌격하자고 하니...

까라면 까야된다고 목말라 죽겠는데 사단장이 눈치없이 돌격타령해서 바로 총검 들고 고지 위로 닥돌해야 했으니..
병사된 입장에선 참 미운 지휘관같다능...

뭐 진지를 지키며 미국 측면을 엄호할 상황에 힘들다고 적군한테 밀려서 후퇴한 11연대도 잘한건 없다만..
     
painter 12-04-07 02:27
   
이제 30도 안된 한창 혈기 왕성한 중대장정도의 나이의 백선엽씨가
가뜩이나 2차대전을 겪었던 미군 대위들 보다 적은 나이에
나이먹은 미 사단장이나 미 연대장들이 갈궈대니
뭐 눈에 뵈는게 있었을까요?ㅎㅎ
개전초기 참모총장이던 채병덕도 만으로 33살도 안되던거 보면
정말 인제가 없긴 없었던거 같아요ㅋ
그나마 청산리대첩의 영웅이자 국무총리 겸 국방부장관이던 이범석장군님은..어쩌셨던건지..
아토나온 12-04-07 04:56
   
625 전쟁사에 대해서는 문외한 인데.. 좋은글이네요.. 다음에는 각 장군별로 좀 더 자세하게.. 부탁 좀 드릴께요 잼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