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가 운명을 가른 전투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북한의 남침 계획은.. 수도를 향한 진격과 더불어 춘천 홍천을 통한 우회 공격으로
퇴각하는 국군을.. 포위 섬멸하여.. 조기에 전쟁을 끝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뜻밖에도
춘천 홍천에서의 제 6사단의 분전으로 적의 의도가 분쇄되었으니
그 3일의 시간은.. 국군이 그나마.. 전력을 유지한 상태로.. 퇴각할수 있게끔.. 하였고.
개전 초기에 대한민국 국군이.. 괴멸될 상황을 벗어나게한.. 운명을 가른 전투라고 생각합니다.
개전 첫날 상황을 보면.. 개전 4시간만에 춘천 홍천 방면으로 남하하기 시작한 괴뢰군은 10km를 주파하는
그야말로 파죽지세의 진격을 하였고.. 춘천은 바람앞에 등불이었습니다.
그런데 적 선두의 적 2사단 자주포 대대를 심일 소위가 이끄는 6사단 특공대원들이 기습격파 하여
예봉을 꺾었고. 또한 북괴뢰군 보병의 선두를... 제 7사단 보병이 공격하여..전과를 올립니다.
둘째날.. 소양강교를 사이에 두고.. 밀려오는 북괴군을 힘겹게 방어하였으나 적의 강력한 공격에 의해 결국
7일 오후 .. 결국 홍천방면으로 퇴각했지만.. 적에게 많은 피해를 줌으로서.. 적의 진격을 늦추게 됩니다.
예정보다 2일이나 늦게 춘천을 점령한 북 제 2사단은
제 3일째 되던날..29일 가평을 지나 팔당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도 적의 도하장비 부족과 더불어
국군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결국 7월 2일이 되서야.. 작전 지역을 돌파하게 됩니다..
6월 25일부터 7월 2일까지.. 일주일.. 그리고 적이 서울을 점령한후 사흘이 지날때까지..
괴뢰군이 한강을 돌파하지 않고 머물렀던건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이렇듯..
서울 방면 국군 사단들이 모두 괴멸상태였을때..
춘천 홍천 방면을 3일간 지탱해준..제 6사단의 분투는 북한군의 포위섬멸 계획을 무산시킴과 동시에
무질서하게 퇴각하던 국군이 재 정비할 시간을 벌어준것은 물론이며
미군이 전선의 상황을 파악하여 효율적인 지원을 할수 있는.. 시간 또한 벌어준 것이었습니다.
기적과도 같은.. 기회를 만들수 있었던 것은.. 오직
목숨을 아끼지 않은.. 제 6 사단 장병들의 희생 덕분이었습니다
만약 그렇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할 지경입니다.
따라서 김종오 대령의 적절한 방어 전략과 제 6사단의 춘천 홍천 방어전이야 말로
우리나라를 위기에서 구한.. 가장 결정적 역활을 했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