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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8-11-07 14:04
[기타] [대만글 번역] 어느 대만 해군 장교의 군생활 썰 (2편)
 글쓴이 : 노닉
조회 : 2,368  





기어링급에서 하선한 나는 당시 한창 뜨고 있는 부처인 해군 본부의 무기 도입 부서로 가게 되었다.

가기 전 발생한 에피소드가 하나 있다.

당시 내가 속한 함대 사령관의 부관이 자리를 옮겼었다. 사령관이 손수 나의 이관서를 작성했기때문에 보직 이동이 한 달 간 지연되었다. 그 한달 동안 사령관께선 지속적으로 해군 인사부와 접촉했다. 함대에선 내가 무기 도입 부서로 가는 걸 원치 않는 듯 했다.

짐작컨데 함대 사령관께서 나를 부관으로 임명시키고 싶어했으나 불행하게도 당시 그 분의 힘이 그렇게 크지 않았거나, 내 명성때문에 부관을 시키기엔 좀 부담스럽다고 여겼던듯 하다. 이유가 뭐가 되었든, 결국 나는 무기 도입 부서로 이동했다.

저 한달 사이에 무기 도입 부서 대신 함대장이 부관이 되었다면, 내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었을 것이다.

무기 도입 부서의 정식 명칭은 '무기획득채구실(武器獲得採購室)'로 해군의 신형 함정 및 무기를 조달하는 걸 담당했다. 내부 조직은 전투 그룹, 행정 그룹, 포괄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나는 전투 그룹에 속해있었다. 이 그룹의 소속원들은 해군 사관학교를 졸업한 군 장교들로 병과도 전투와 관련있었다. 오직 이들만이 함장이 될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행정 그룹의 구성원은 소위 '사무직 장교' 들이었는데 같은 군 장교지만 업무 내용에는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무기 획득 부서의 장교 대부분은 대부분은 전투 병과였고, 나머지는 사무직 장교들이었다. 전투 병과 장교들은 실력이 떨어졌다간 바로 군복을 벗어야했고, 일정 주기로 보직을 바꾸는 로테이션이 있었다. 허나 사무직 장교들한테는 이런 로테이션이 없었다. 이들은 년 단위로, 심지어 10년 넘도록 같은 자리에서 근무했다.

고인물은 언젠가 썩는 법이다. 전투 병과 장교들만이 순결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부패 행위를 저지르려고 해도 로테이션 때문에 해쳐먹는 데 한계가 존재한다는 거다.

나는 무기 획득 부서에서 2년 6개월을 있었다. 그리고 부서에 배치된 지 겨우 2주만에 상관한테 주먹질을 당했다. 해군사관학교 졸업 후 상관한테 얻어맞은 건 그 때가 처음이었고, 군생활 22년 중 처벌당한 2건 중 1건이 저거였다.

다른 한 건은 내가 함장 자리에 있었을 때 어느 부하 수병이 미사일 장전 절차를 무시하고 슝펑 미사일을 장전하다 떨어트려 미사일 탄두가 우그러졌을 때 받았다. 후자는 가벼운 견책 처분이었지만. 어쨌거나 군생활 동안 내 잘못때문에 받은 처벌은 무기 부서에서의 사건이 유일했다.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화가 끓어오른다.

근무 첫 날, 부장은 나를 라파예트급 호위함 담당팀의 조직원으로 임명 시키고는 거대한 캐비닛 앞으로 날 데려가 캐비닛 안에 보관된 서류를 면밀 검토해서 요약하라고 명령했다. 나의 연구 정신에 다시 불이 붙었고, 휴식 시간까지 쪼개가며 캐비닛 안의 서류를 7-8개 안으로 정리했다. 핵심 요약까지 하는데 얼추 10일이 걸렸다. 그러자 부장은 내게 다른 임무도 떠넘긴다.

그 임무란 광화 1호 사업,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라이센스 생산에 관한 서류를 작성하라는 거였다.

당시 무기 도입 부서는 2개의 거대한 사업을 담당하고 있었다. 하나는 광화 1호,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라이센스 생산이었고 다른 하나는 광화 2호, 프랑스의 라파예트급 호위함 직도입 계획이었다. 재미있게도 광화 2호에 배정된 전투 장교는 오직 나밖에 없었다. 나머지는 죄다 사무직 장교들 뿐이었다. 저 두 사안을 동시에 다루는 건 머리가 빠개지는 일이었다.

내가 맡은 임무의 내용은 대충 이러했다. 매일 2 그룹의 직원들에게 오늘 하루 어떤 일을 수행했는지 질문하고 답변을 기록하는 것이었다. 무기 도입 부서에는 40명이 넘는 장교가 있었고, 대부분이 나보다 계급이 위였다. 나는 매일 40명이 넘는 상관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민감한 내용을 물어야 했다. 일을 하면서 내 인내심과 혈압이 한계점에 이르는 걸 느끼고 있었다.

왜 나한테 이러지? 내가 하급자라서 우습게 보이나? 내가 아무 불평불만 없이 일하는 걸 보니 내가 호구로 보이나?

나는 꾹 참았다. 업무를 위해 공용 기록장을 만들고 각 그룹의 장교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기록한 후 그걸 복사해서 '공식적 기록'이라는 타이틀을 붙여 보관했다. 다시 말해서 상관들이 뭔 일을 했는지 말하지 않는다면, 나도 그걸 기록하지 않았다. 상관들한테서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 공식 기록이 남는 걸 껄끄러워하는 낌새가 느껴졌다.

기록 과정을 설명하기 위해 설명지를 수십 장 복사하여 상관들 테이블 위에 하나씩 올려놨다. 부서 부국장이 지나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 고함을 지르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부국장이 속이 뒤집어져 내게 소리쳤다.

나도 꾹 참아왔던 분노를 터트렸고, 그 자리에서 바로 뛰쳐나왔다. 다툼이 있은 후, 나는 국방대학교에서 새로운 업무를 맡고 있었다. 그리고 무기 도입 부서로 돌아오라는 권유를 받게 된다.

개판이 터질 무렵, 무기 도입 부서의 총책임자는 해외에 있었다. 대만으로 돌아온 후 총책임자는 내게 부서로 돌아오라고 계속해서 설득했다. 총책임자는 실로 비범한 걸물이었다. 대만 해군은 한창 무게감이 터지는 부서의 총책임자를 아무한테나 맡기진 않았다. 총책임자는 미국 해군 참모대학교에서 교육을 이수한 엘리트였다.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인물로 해군참모총장의 비서실장까지 맡은 거물인데다 사람을 대하는 게 진실하고 언변이 항상 이치에 맞았다.

그런 사람이 권유하니 나로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지난 후, 라파예트급 도입 계획이 불미스러운 최후를 맞았다. 생존자였던 나를 총책임자가 ACS 미니 이지스함 계획의 전담 장교로 임명했다. 당시 나는 ACS 계획이 이미 '추진 중'인 사안이며 그렇기 때문에 위에서 내려온 명령을 충실히 따르면 된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이후에 ACS 사업이 해군 전체는 물론, 육해공 3군, 심지어 국방부와 중산 과학원까지 뒤엉켜 쌈박질을 벌이게 될 원흉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치 못했다. 격렬한 2년의 논쟁. 당시 나는 ACS 사업을 책임지고 관리하던 유일한 장교였다.

신께서 내게 의도적으로 시험을 내리거나, 아니면 고문을 가하는 것 같았다.

ACS 사업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간단히 요약하면,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 위에 위상배열 레이더와 수직발사관을 올리는 사업이었다. 가장 진보된 해군 전투 체계인 미 해군의 이지스 시스템만이 수직발사관과 위상배열 레이더를 갖추고 있었다.

나는 ACS 사업 반대파, 그것도 극렬 반대파였다. 이는 죽기 살기로 대항했단 의미다. 내가 반대한 이유를 알겠는가? 전 세계에서 오직 미국과 일본만이 저런 전투 체계를 보유하고 있었다. 저 두 나라는 8-9천톤 군함 위에 이지스 시스템을 올려놨지만 대만은 지금 겨우 4천톤 페리급에 올리려 하고 있었다.

간단히 비유하자면, 앞의 두 나라는 거대한 크레인을 실어나르기 위해 10륜 트럭을 썼지만, 대만은 SUV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이상은 이상일 뿐이고, 기술상의 어려움은 너무 많으며, 예산의 빠듯함은 소름돋을 지경이었다. 매일같이 관련 업체에서 나온 사람들과 만나는 내 입장에서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당시 내 판단이 잘못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본능과 심장에서 판단이 옳았다고 얘기했다. 군에서 무기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데 네가 만약 거기에 한 발 걸치고 있다면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한다. 천문학적인 돈이 오고가는 판이다. 네가 그 무기 도입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자기 주장을 대놓고 펼치지 마라. 주위 사람들이 너를 경계할 것이다.

나는 남들이 경계하든 말든 신경 안 썼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하기 위해 떨쳐일어나 소리쳤다.

높으신 고관들은 나를 눈엣가시로 여겼으며, 상관들이 내게 보내는 시선에는 애정과 증오가 뒤섞여 있었다. 비율로 따지면 내게 호의를 보내는 장교의 수는 매우 적었다.

ACS 사업을 둘러싸고 해군과 국방부는 힘겨루기를 지속했다. 해군은 반대파였고, 국방부는 찬성파였다. 결국 국회를 사이에 두고 양측이 타협했다. 소위 2단계로 사업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1단계는 연구 단계로 계획의 타당성이 있는 지 조사한다. 타당성이 있는 걸로 판단되면 2단계인 설계 및 제작으로 넘어간다(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저 ACS 사업에 타당성이 있었는지 논란이 많다)

뭐가 되었든 타협 후 2년의 시간이 지났고, 1단계가 완료되었다. 계획의 타당성은 없는 것으로 결론 내려졌으며 수백억 원이 허공으로 사라졌다. 해군참모총장은 ACS 사업의 중단을 선언했다. 그러나 국방부는 ACS 사업은 중단되어선 아니된다고 명령했다.

앞으로 사업이 어떻게 굴러가는 가에 대해선 더 이상 내가 관여할 수 없었다. 보직 이동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 해군 생활 역사상 가장 명예로웠던 시기를 보내게 된다. 나는 성공급 호위함(올리버 해저드 페리급을 라이센스 생산한) 1번함의 부함장으로 임명되었다.

대만 해군에게 성공급 호위함이 차지하는 의미는 대만 공군에게 IDF 경국 전투기가 의미하는 것보다 훨씬 중요하다. 성공급 호위함이 도입되기 전까지 대만 해군의 군함이라고는 미 해군이 2차대전 때 운용한 게 대부분으로 나보다 나이가 많았다. CSSC 조선소와 해군이 합작하여 대만 최초로 자가 건조한 군함인 성공급 호위함의 가격은 대당 5,488억 5,000만 원 정도다.

성공급 호위함의 1번함은 해군은 물론 국방부, 국방부를 넘어서 대만 전 인민들의 관심을 받았다. 그리고 그런 배의 부함장이 된다는 건, 엄청난 책임을 져야하고 힘든 과업을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나는 너무 걱정하며 살지 말라는 옛날 유행곡의 가사를 곱씹을 뿐이었다.

성공급 호위함 1번함의 부함장은 대만 해군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힘든 직책이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1번함은 차후에 뽑힐 배를 위해 매우 다양하고 까다로운 훈련을 여러 번 해치워야 했다. 부함장은 물론 함상훈련관, 정보 장교, 항해관 등 배에 탄 모든 장교들이 열심히 일하지만 그들이 낸 성과의 궁극적 수혜자는 함장이다. 부함장은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는 위치에서 애매모호한 일을 쉴 새 없이 처리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부함장의 임기는 1년이지만 그 배의 중요성 때문에 나는 1년 반을 1번함에서 근무했다. 다른 배의 부함장들이 고위급 장교를 만날 기회는 1년에 손에 꼽을 만큼 적다. 그러나 내 경우는 달랐다. 대만 해군 최초의 2세대 군함의 1번함인데다 해군 기함으로까지 선정된 이 배를 높으신 분들이 참 많이 방문했다.

대만 총통, 국회의원, 취재하러 온 언론사. 육해공 안 가리고 방문한 3군 장성들. 난 이들 모두를 접대해야 했다. 1번함이 항해를 끝내고 기지로 복귀할 때마다 함대 사령관께서 친히 부두로 나와 우리를 기다리고 계셨다. 사다리가 내려가면 사령관께선 배에 승선하셨다. 그리고 식사 시간이 되면 기지에 있는 공식 홀에 마련된 테이블에서 사령관과 함께 1번함 승조원들이 만찬을 가졌다.

내가 느꼈을 압박감이 상상이 가나? 2년 반을 저렇게 지냈다. 감히 말하건데 그 어느 해군 장교들 중 나보다 힘들게 일한 놈은 없으리라. 고난은 힘겨웠지만 그래도 보람은 있었다. 부함장으로써 일한 시간은 내 인생에서 가장 '일다운 일을 한' 시간이었다.

그 때 이후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났건만 당시만큼의 노력을 기울일 수 없었고 아마 앞으로도 그러리라. 가장 중요한 건 책임감이었고 두 번째는 육체적 인내력, 세 번째는 마음가짐이었다.

2년 반의 시간 동안 성공급 호위함 1번함은 온건하고 스무스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배의 장교와 수병들은 자신의 임무를 완벽히 완수했다. 해군참모총장이 인사관리팀의 책임자를 배로 보냈다. 인사담당관은 함장을 제외한 전 장교를 모아놓고 일일이 질문했다. '어느 곳으로 가고싶나?'

모든 장교들은 원하는 곳을 얘기했다. 나는 그 때 어디를 가고 싶은지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무기 도입 부서만큼은 결코 가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인사담당관은 돌아갔고, 배의 장교들은 자기들이 원하는 곳으로 떠났다. 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나는 또 다시 무기 도입 부서로 발령났다.

한광 훈련 때마다 성공급 호위함은 해군 사령부의 기함으로 지정되었다. 한광 훈련 당시 나는 부서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 새로운 부함장이 인수인계를 마치고 정식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2주의 인수인계 기간이 이미 지났기때문에 내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신임 부함장이 좀 늦게 인수인계 받았다는 식으로 일정이 어긋났다면 난 큰 곤욕을 치뤘을 것이다.

그 날 아침부터 있었던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해군참모총장이 한광 훈련을 참관하고 있었다. 참모총장은 해군의 함포 사격 성적이 나쁘게 나오자 불만족스러워했다. 참모총장은 간부들을 불러다놓고 잘 좀 하라고 타박을 줬다. 오후에 선박들이 입항한 후 모든 장교들이 사령부로 모여 함포 사격 정확도를 늘릴 방법에 대해 토의했다. 지지부진했던 토의는 '기관포나 함 쏴갈겨보자'는 걸로 결론났다.

다음 날 오후, 대만 총통이 구경하러 온 가운데 성공급 호위함 1번함이 기관포로 대공 사격을 실시했다. 기관포가 하늘의 프롭기를 오인 사격했다. 프롭기는 추락했고 3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조종사와 부조종사가 사망했다.

내가 성공급 호위함을 떠나지 않았다면 사건을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대해서 그 누구도 속 시원하게 답변 못 하리라. 그러나 만약 내가 사건을 막는데 실패했다면 사상 최악의 위기를 맞았을 게 틀림없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난 군함의 배치 준비에 관한 질문을 받았다. 배치 준비란 배의 모든 장교와 수병을 제자리에 위치시키는 명령이다. 사격을 하려면 배치 준비가 필수다. 성공급 호위함 1번함이 한광 훈련 때 기함으로 지정받았는데 단함훈련하던 훈련하던 때와 그 절차가 많이 달랐다. 배에 익숙했던 장교들은 딴 데로 가있었고 경험이 적은 장교들이 빈 자리를 채웠다. 내가 부함장이던 시절에는 항해관 일도 하면서 함상에서 어떤 임무를 수행하든지 나를 거쳐서 하도록 했었다.

운이 좋게도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부함장 직책과 연결성이 사라졌었고, '기관포 사격을 늘리자'는 결정이 내려진 자리에도 불참했었다. 누군가는 내가 악운에 강하다고 표현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렇다.

무기 도입 부서에는 겨우 반년밖에 안 있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나는 첫 번째 소설을 집필했다. 처음에는 나 혼자서 읽을려고만 쓴 거였다. 출판사들이 내 소설에 관심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내 앞에 다른 삶의 길이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소설은 출판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영가함(永嘉艦, 독일한테서 직도입한 소해함, 당시 최신함)의 함장으로 임명되었다.


3부는 시간나는 대로 번역할 예정.........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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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바꿔 18-11-07 14:42
   
해군장교의 번뇌가 잘 들어나는 번역글이네요.
신선합니다
태강즉절 18-11-07 19:53
   
잘 읽었습니다 ..감사!
덕분에(?) 먼지 쩐 종이 쪼가리들 찾아 봤습니다 그려..ㅎ

잡설...
-대만이 함에다 오리콘을 올린다고 해서리...뭐?..군함에 오리콘?...뭥??
35미리탄 하나 제대로 못만들어서리 쏘면 삑사리나 나고...
그래 그걸 한국에서 좀 맹길어줄수 없냐고..
국방부 군비국 국장  중장 개똥이 꽝! 직인 찍어..뭐 실제 타이완 함에다 올렸는진 몰겠지만..ㅎ
저자 서술한 것으론  뭐 대단한 내용같지만서도... 결국 지 자랑질 ..그것도 태산명동서일필같은 야그..ㅎ
진짜 탄하나 제대로 못만드는 요상한 집구석.
-감찰원 심계부 조사과에서 해참 총장을 호출할 예정이라 하니..해변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시고..
(과장이 전직 검찰총장급..조사 과정에서 고문도 ..공직자는 무식하게 가중처벌... 2심가면.. 형량 따블^^)
-전직 함장 출신이란 인간..술에 쩔어 사는 주정뱅이..평소 거의 취권 고수ㅎ
어찌그리도 술독에 빠졌냐는 주변 물음에..군함에서 매일 술마셨다고 자랑질..
-제독 출신 둘..낙하산으로 공공 뭐에 장으로 앉은..
군생활 무용담에...부산에 겨들어와..술집 여자들과 어찌했다는 설레발 뿐(?)....등등
불경에 나오는 일화인가요?..
애꾸눈 섬에 가면 두눈 멀쩡한 원숭이가 ㅂ ㅅ 이라고...
저자는... 중화민국 대만성 해군엔 안 어울리는 친구였던거여..수준에 맞게 놀아야지..ㅋㅋ
그냥 대만 해군 하니..떠오른 부정적 잡상에 주절 주절..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