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라는 말이 일반적인 상식적 어휘로 된 지는 그리 오래지 않았습니다.
세계 1차와 2차 대전을 통해 인류가 깨달은 것은 더 이상의 대규모 전쟁은 인류의 공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지만 세계대전을 통해 어리석은 인류는 평화를 생각하게 된 것입니다.
인류에게 이상은 평화이며 현실은 그 평화로 달려가야 합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평화는 아직까지 이상이며 현실은 그 평화와 다른 양상입니다.
핵을 보유한 세계 열강들은 서로간의 분쟁은 파멸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그 힘을 통해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고자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분란을 일으키거나 조장하고 있습니다.
때로는 자국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때로는 자신의 최신 무기를 팔고 시험하기 위해 민족주의를 자극하고 종교적 사상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지금 이시각에도 중동 어느 지역에서는,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서도, 크림반도와 동남아 일대, 남미의 어느 지역에서도 총성이 멎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우리나라는 지금 애매한 위치입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이지만 이미 반 세기 전에 미국과 소련의 대리전을 겪었던 바 있습니다.
같은 나라 같은 민족이 이념이라는 허상을 좇아 강대국을 대신해 피를 흘렸고 70년 가까이 분단으로 대립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체제 경쟁은 의미가 없고 이념도 사라진 시대입니다. 이제 우리는 민족의 단합과 통일을 위해 평화를 이야기 합니다.
평화를 추구하는 것에는 그 어떤 이견도 없습니다. 하지만 평화의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천 년 역사를 자랑하는 동로마 제국의 몰락은 엄청난 경제력도 최고의 난공불락의 요새와 성벽도 막지 못했습니다.
비잔티움의 몰락은 평화를 돈으로 사려했던 사람들의 안일함 때문이었습니다.
협상은 강한자가 약한자에게 베푸는 권고장일 뿐, 약한자에게는 희생과 헌납만이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평화를 이야기할 때 우리의 위치와 입장이 어디인지 인식해야 합니다.
지금의 평화 논의가 우리의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우리 의지로서의 평화 정착인지, 긴장에 지친 국민들이 돈으로 평화를 사려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전자는 가하나, 후자는 불가합니다.
저는 우리 정권의 평화 추구가 전자라 믿고 전자로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