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북한의 "우수한 미사일 기술" "우수한 추진체 기술"을 언급하시며 남북이 같이 협력하자고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평소 제 견해를 알고 계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제 입장에선 만만의 콩떡 같은 말씀이지요. 제 개인적 견해론 북한이 우수한 미사일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우수한 추진체를 가지고 있는 건 분명한데. 그것과 북한의 본래 기술과 연관 짓는 게 옳은 것인가?라고 보면 또 그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현재 북한이 보유한 최고의 추진체라 일컬어지는 RD-250입니다. SS-18사탄 ICBM의 엔진으로도 유명하지요. 그런데 북한이 화성 14/15에 장착한 추진체는 이 RD-250으로 분석되었고, 이는 러시아도 인정한 바. 누가 북한에게 이 추진체를 내주었는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물론 제 개인적으론 범인은 러시아일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이미 우크라이나측 유즈노마쉬측 기술자가 함정수사에 걸리는 등 철저한 통제하에 감시받고 있음이 증명된 바 있고, 정작 우크라이나도 이 RD-250추진체를 전량 러시아로 반납한 이후 이 추진체를 재생산할 능력이 없어 자체 추진체를 개발한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우크라이나의 추진체 및 핵탄두까지 철저히 통제하던 러시아의 이력을 봐선. 러시아의 관리부실이건 실수이건, 의도이건 아마 이 추진체는 러시아에서 북한으로 흘러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북한이 이 추진체를 완전히 소화했는가?라고 하냐면 아직까지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
다만, 연소기 2개에 터보 펌프 1개짜리 엔진을 반쪽으로 갈라 연소기 1개에 펌프 1개짜리 추진체, 그러니까 화성 14호에 붙은 엔진으로 자체적인 개조를 하는 것 보면 상당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아울러 북한 역시 30~40톤급 추진체를 가동할 수 있는 수준의 터보펌프를 자체 개발 제작할 수 있는 단계인 건 확실하고요.
그러면 이제 RD-250은 북한의 추진체이냐? 하면 그건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화성 14/15호 실험 발사를 하고 있고, 극히 최근까지 터보펌프 가동시험이나 연소시험을 하고 있는 것을 봐선 북한도 이 추진체를 소화하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그러면 북한은 우리보다 기술적으로 앞섰다고 할 수 있을가요?
그건 아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에 실증한 KARI의 75톤급 추진체도 객관적으로 보면 그리 만만한 물건은 또 아니거든요. 북한이 RD-250빼고 75톤급 추진체를 자체개발할 능력이 있냐면 아마 없을 것이 확실합니다. 북한과는 달리 적어도 우린 우리가 죄다 자체개발해 자체 제작중입니다. 그러니 조만간 이의 개량추진체가 나오겠지만, 북한은 또 다른 "오리진"이 제공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의 발전은 불가능해 보입니다.
우리가 북한보다 우세한 건 전후방 산업이 골고루 발전되었다는 겁니다.
물론 엔진 자체만 두고 본다면 RD-250이 기술적으로 더 복잡하고 고난이도 엔진임은 분명하나, 사산화질소/UDMH를 이용한 극악으로 유독한 연료를 사용합니다. 이 이원화 추진제들은 밀도가 높아 추력과 비추력을 높이는 데는 유리합니다만 우선 유독하고, 보관성이 더럽고, 특히 사산화질소는 영하 11도엔 얼어붙어 발사체를 사시사철 아무 때나 발사할 수가 없습니다.(중국은 적연질산을 섞어 이를 방지합니다만, 북한은 아직 그럴 단계는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영하 11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지기 전에 서둘러 모두 발사시험을 거쳤지요. 첨가제를 넣어 연소실험을 해 안정화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이것도 시간과 돈이 상당히 필요한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1> 북한이 가진 최고의 추진체는 북한의 것이 아니며, 북한이 개발한 적이 없다.
2> 개조를 하건 개량을 하건 개발한 적이 없으니 한계가 올 수 밖에 없다.
3> 한국 75톤 추진체는 수준이야 어쨌건 가압식 사이클 KSR시리즈 엔진부터 최초의 터보펌프 적용 엔진인 30톤 추진체까지 하나부터 열까지 작은 부속 하나부터 개발해가며 시간을 들여 개발해왔다.
4> 개발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베이스와 암묵적지식, 각 업체들에 파생된 기술과 특허, 개발체계와 생산체계는 고스란히 다 남아 있다.
5> 당장이야 큰 차이가 없겠지만, 이 차이가 향후의 가속에 끼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다.
남북간의 추진체를 보면, 현재로선 북한측이 더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이 개발한 물건이 아니고, 이제 소화를 해가는 과정이며, 그와 동일한 수준의 엔진을 독자 개발할 수준인가?하면 또 그렇지가 못 합니다. 당연히 그 이상의 추진체는 개발할 수가 없겠죠. 반면, 한국의 경우 자체개발 해 왔습니다. 그 기술을 바탕으로 얼마든 확장이 가능합니다. 사실 중요한 차이점은 여기에 있습니다. 이미 한 번 만들어봤으니 발달에 가속도가 붙습니다.
예전 한국형 발사체 계획 수립시 러시아 추진체를 기술도입하거나 직수입해 가져다 붙이자는 안이 있었는데, 그 길을 택했다면 북한보다 우수한 추진체를 얻기야 했겠죠. 그런데 그게 우리 것이고, 과연 우리 기술이 지금만치 발달했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 계속 러시아에 종속적인 상황이 되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