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미오급 잠수함 탐지
러시아는 킬로급 판매를 위해 전략적 기술제공을 약속함과 동시에, 자신의 기술력을 홍보하고자 킬로급에 장착되는 MGK-400 함수소나를 직접 가지고 왔다.
MGK-400 함수소나는 테스트를 겸해 부산 앞바다 부근에서 수중 속으로 내려졌고, 곧바로 주변의 수많은 음원을 포착하기 시작한다. 러시아 기술진은 탐지된 여러 종류의 음향에 대해 소개하면서, 잠시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산 앞바다에 프로젝트 633형 잠수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국과연 전문가가 "633형?"이라고 질문하자, 러시아 기술진은 그 잠수함의 NATO 코드명을 알려주었다. 바로 R(Romeo : 로미오)급이었던 것이다.
로미오급이 북한 해군 소속이었는지, 중국해군 소속이었는지 확인할 순 없지만, 부산항에 대한 감시 작전을 수행하는 것으로 보아 북한제 로미오급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렇게 러시아는 자신의 높은 기술력을 증명해 보였으며, 국방과학연구소는 킬로급 도입사업에 대한 한국 해군의 극심한 반대를 이해하면서도, 동시에 도입이 진행되었다면 국내 잠수함 기술력이 10년 정도는 진보했을 것이 라며 다소 아쉬운 모습을 보이 기도 했다.
◆ 한국 해군의 극렬한 반발
한국 정부가 여러 이유로 킬로급 도입을 검토하자, 한국 해군도 별수 없이 1999년 당시 러시아 블라디보 스토 크로 실사단을 보냈다.
당시 실사단 단장은 한국 해군의 현역 장보고급 함장이었으며, 필자에게 자신이 받은 킬로급의 인상에 대하여 이렇게 증언해 주었다.
"우리는 블라디보스 토크를 방문해 낡아빠진 러시아 잠수함 상태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안내받고 들어간 킬로급 (877급)은 녹이 잔뜩 슨 상태였으며, 내부는 2차 세계대전 잠수함을 연상할 정도로
복잡하고 낡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나는 킬로급 여기저기를 둘러보았고, 화장실 문을 열자 당시 일(?)을벌이고 있는 러시아수병의 놀란 눈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화장실 변기가 얼마나 더러웠던지 양변기에 앉지 않고, 양변기에 기마자세로 일을 벌이고 있었고 저는 그 모습에 너무나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시 말해 러시아의 형편없는 준비상태와 관리상태를 짐작건대, 러시아제를 구매 했다가는 품질상의 문제로 큰 일이 나겠다는 우려감을 느낀 것이었다.
필자가 조심히 물었다.
"한국 해군 잠수함은 상태는 어떻습니까?"
함장님은 웃으면서
"우리 화장실 변기와 잠수함 바닥은 혀로 핥아도 괜찮을 정도로 깨끗하게 관리 됩니다."
필자가 다시금 질문했다.
"러시아제가 나름 조용하고 우수하다고 하던데요."
"러시아 잠수함이 기술적으로 얼마나 우수할지 모르겠지만, 러시아의 관리상태를 보면 정상적인 잠수함이 건조될 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러시아 잠수함은 지금까지 수많은 사고를 일으켰고, 기초적인 해치잠김 확인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침몰한 잠수함도 많습니다."
한국 해군 잠수함대 실사단은 큰 충격을 받은 이후 그야말로 옷 벗을 각오로 극렬히 반대하였다.
해군 실사단의 보고를 토대로 한 해군 수뇌부 역시 강경히 반대하자, 1999년 10월 2일 열린 국가안전
보장회의는 '636사업'을 중단하고 러시아 방산물자 추가 도입방침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곧이어 10월 17일 국방부는 정책회의에서 러시아 방산물자 도입을 위한 2차 불곰사업 추진이 공식 결정됨에 따라, 러시아 킬로급 도입사업은 조용히 중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