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분 원래 독도관련 조사하시다가
이제껏 자신이 알고 있던 일본근대사에서 상당한 회의감을 느껴서
학자적인 양심에서 .
제대로 조사해보겟다 라는 의지로 시작하신분으로 알려져 있는데 .
(
그상황에서 일본우익에게 .. 상당한 공격을 받아서 연구진행을 위해서 한국에 넘어오셔서
개인적으로 연구하시는 분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이분이 대부분 미국자료열람실에서 상당부분 공개자료를 연구하시는 분으로 알려져있읍니다.
그전에 저분의 대학스승이시던 분이 상당한 역사관련 인식자셨는데.
저분대학교수님이 우익에게 당하시는것을 보고 엄청난 회의를 느끼셨다고..
지금은 일제강점기의 불법성에 대해서 상당한 연구를 진행하신다고들었읍니다.
얄타회담 및 포츠담회담에서의 현대국가의 국경선에 대해서 논의한 상황에 두가지 심각한 오류를 결정했는데.
그게 바로 이스라엘의 건국 과 우리나라의 한일합방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논의를 했다라는 것입니다.
즉 식민지는 국가가 아니라는 논리로 저회담을 진행했기때문에
지금까지 문제가 되어 오는 것입니다.
저들의 논리도 모두 저 두국제회담을 근거로 반박하고 있고 자신들이 주장하는 너희는 국가가 아니라는
그러면서 조선왕조를 없애고 상징적인 존재로 근속하는 부분을 흡수한듯이 이야기합니다.
특히 조선총독부역시 대부분한국인이 경영을 해서 침수침략의 근거가 빈약하다고 알려져 잇읍니다.
그것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그에 대한 식민지 거부의사를 확실한 역사적인 사건이
바로 3.1운동입니다.
민족대표33인을 위시로 전국적으로 행사한 비폭력적인 시위에서 일본은 상당히 당황해서 무력적인대응을 감행했읍니다.
그후 무력적진압을 행사한후 진압하자. 바로 일어난 것이 청산리전투입니다.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어낸 일본으로서는 무력행사의 끝판왕으로 아주 작살내기로 하여서.
청산리전투에서 상당한 패배를 맛보게 됩니다.
이게 의미하는 것이 3.1운동은 독립적국가로서의 불법적인 일본의 행위를 정확히 거론하고,
그에대한 대처로 청산리전투가 시작되었다.
뭐 유인책과 진압진행로를 한정하게 할수 밖에 없었던 봉오동전투.
그이후 국제적압력을 위시한 일본의 외교전. 그리고 만주사변으로 인해서 이러한 부분을 일본은 언론통제와 세계외교전에서
철저히 숨기는 행위를 시전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