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게시판에 깨작깨작 거주하면서 괴상하게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건 바로 소위 말해 "항공모함" "수상함"을 언급하며 해상전력 강화가 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말라 죽는다, 전략적으로 패배한다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엄밀하게 현실과 괴리 있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이미 20세기 중반부터 제해권이란 개념은 제공권의 하위 개념으로 변했기 때문입니다.
왜 항공모함이 궁극의 수상전투함인가요? 그건 제해권의 상위개념인 제공권과 관련된 함종이기 때문입니다. 이러니 이런 항공모함을 언급하며 제해권의 중요성을 역설하는 모습은 제가 보기에 굉장히 어색하게 보이지요. 그렇게 항공모함의 중요성을 잘 안다면, 그보다 더 상위 개념인 제공권의 중요성을 알 테고, 그렇다면 제공권의 가장 중요한 원천이자 주요한 펙터인 지상 전술기의 형편이 어떤지는 알아야 정상 아닐까요?
제공권의 가장 기초적인 기본기이며 필요조건이라 할 전술기 전력이 어떤지 알아야 충분조건인 항공모함 혹은 제해권 확보를 위한 수상함 전력을 들먹일 것 아니겠어요?
그 동안 제가 한 두 번 언급은 한 것 같은데, 지금 대한민국 공군 전술기 전력이 상당히 부실한 상황인 건 아실 겁니다. KFX를 추진하는 것은 저도 찬성하는 일이나, 이 사업을 연기하며 의사결정을 하는 그 시간동안 마땅히 했어야 할 GAP파이터 도입조차 하지 않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2012년 2차 FX사업이 마무리되었을 때부터 전술기 부족문제는 이미 예견되었음에도 어떤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습니다.
3차 FX사업조차 2014년까지 질질 끌며 결론을 내지 못했으며, 그랬다면 붕괴된 전술기 전력 복구를 위한 최소한의 추가 전술기 도입 사업이 이어져야 했으나 그러지도 못 했습니다. 그냥 폭탄 심지에 불 붙여 다음, 다음, 다음으로 넘겼을 뿐입니다. 퇴역 장성들은 앞선 두 행정부 시기에 연판장 돌리는 행위를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은 했어야 정상이라는 겁니다.(갭파이터 도입 필요성은 2013년부터 제기되었는데, 결국은 묵살.)
2008년 이래 정부재정 대비 15%이상을 유지하던 국방비는 그 이래 뚝뚝 떨어져 지금은 14%에서 맴돌고 있습니다. 2019년 올해 예산안에서 처음으로 GDP대비 2.5%이상 국방비를 달성하였고, 그 이전엔 2.4%도 못 지킨 2.3%대였습니다. 전전전 행정부의 목표가 GDP대비 2.5%이상의 국방비를 지출하는 것이었고, 이것은 2009년(2.48%) 거의 달성 직전이었습니다.
그런데 앞선 두 행정부가 국방비를 거의 인위적으로 매년 10%씩 감축한 덕분에 도루묵이 되었습니다. 그 시기 정부 재정이 긴축이었는가? 하면 전혀 아닙니다. 재정 규모가 이전 과는 비교할 수 없이 부풀던 시기죠. 즉, 밀리터리 매니아라면 정치색을 떠나 앞선 두 행정부는 부정적으로 볼 수 밖에 없습니다.
도표상 정부재정 대비 15%정도만 유지하였어도 10년간 누적 15조원 정도를 더 투자할 수 있었습니다. GDP대비 2.5%정도를 달성하고 지켰다면 대략 누적 25조원 이상을 투자하는 것이 가능했습니다.
아무튼 누적 15조원 예산이 10년 동안 3분의 1이 공군에게 떨어진다는 가정 하에 4~5조원 도입 사업 정도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었다는 가정이 가능하며, 이거면 공군은 갭 파이터 2개 대대 도입이 가능한 예산입니다. 육군이라면 흑표와 아파치 가디언을 바꿔 먹을 필요가 없고, 해군이라면 KDDX는 이미 지금쯤 건조에 들어갔어야 정상입니다.
할 수 있었지만 안 했다는 소리 밖에 되지 않습니다. 돈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능력이 부족했던 것도 아닙니다. 의지 박약이었다는 소립니다. 그리고 이런 의지박약한 국방비 투자로 인해 전술기 전력이 심하게 붕괴되었습니다. 아마 전술기 전력을 제대로 구축하려면 KFX가 성공한다는 가정에 더해 지금 같은 국방비 증강 기조 속에 F-35등의 하이엔드 전술기를 추가 도입해야 10년 정도 걸려 간신히 20년전쯤 전력을 재구축할 수 있을 겁니다.
2019년 기준으로 한국공군이 보유한 전술기 수량은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2019년 약 10기 전력화 예정인 F-35A를 합쳐도 357기로 360기 미만입니다. 2023년이 되면 327기가 됩니다. 그것도 하이엔드 분류 전투기 비중은 30.2%수준입니다. 만일 옵션 행사를 해서 F-35A를 20기 추가 도입해도 347기에 하이엔드 비중은 34.2%. 사실상 2007년 공군이 예상하고, 희망하던 전력에서 100여기 이상이 구멍 난 상황입니다. 이게 다 10년의 대참사 덕분입니다.
2023년 무렵 이웃 항공자위대의 경우 281기의 전술기를 보유할 예정인데, 87기의 F-2를 제외하면 우리 분류로는 전량 하이엔드 전술기입니다.
과거엔 적어도 2배 조금 안되는 수적인 전술기 우세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젠 수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상대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떡 줄 제공권은 생각도 없는데 벌써 제해권 걱정을 하며 함대를 키우자는 소릴 보면 전 조소가 나옵니다. 제해권은 제공권의 하위개념이 된 것이 벌써 80년이 다 되어가며, 이런 개념인식 아래 그 아이돌과 같은 항공모함을 만들자고 하는 것을 보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붕괴된 공군 전술기 전력으론 수세적 방공작전을 펼칠 수 밖에 없으며. 수상함대따위 거추장스러운 짐에 불과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항모, 항모 이야기 하며 공군의 제공권은 뭐 공짜로 샘솟는 줄 아는 분들을 보면 가슴이 좀 많이 답답하지요. 안방 지키기에도 급급한 공군 보고 해군이 작전 해야 되니, 자랑스런 기동함대 머리 위 우산까지 씌우란 소릴 뭐 이리 당당하게 하는 지 모를 노릇입니다. 공군이 무슨 해군 종인가요?
왜 가능하지도 않은 소릴 전제로 함대를 키우잔 소릴 하는지 모를 노릇입니다.
정말로 능히 아름다움이 적을 이긴다고 생각합니까?
도대체 얼마나 상황인식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야 이런 주장을 하는지 결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당장 100여기에 달하는 전술기를 채울 돈이 없어서 쩔쩔거리는 공군을 냅두고 한국이 무려 7~8조원쯤은 무리 없이 동원 가능하고, 항모를 구매해 전력화해야 한다는 호화찬란한 소리까지 듣고 있으려면 정신이 아득합니다. 그 돈 있으면 전투기나 좀 사자고 해야 할 걸요? 그래야 연안에서나마 수상함대가 깔짝깔짝 돌아다닐 여유가 좀 생길 테니까.
< 초음속 대함미사일 ASM-3를 장착한 F-2지원전투기. 일본엔 87기 정도가 있고, 유사시 2개 대대 정도 집중하는 것이 가능하니, 제발 대양함대 키우잔 헛소린 작작 합시다. 이 꼴을 보고도 계산이 안 되나? >
이런 시궁창스러운 현실을 타개하자면 FA-50 블록20을 60기 정도 추가로 전력화하고, F-35A도입사업을 더 대형화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옵션 20기 행사하는 걸 넘어 약 40~60기를 추가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해야 KFX가 전력화하는 시점까지 최소한의 양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그럼 그게 가능한가? 라고 하면 정부의 의지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봅니다.현재 국방비 증가 추세를 과거처럼 깎아 먹지 말고 유지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제발 지난 두 정부의 치명적 과오가 재발 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젠 전술기 전력이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붕괴되었습니다. 더 이상의 삽질은 할 수 없습니다. 했다간 대한민국 공군은 사실상 붕괴선언을 해야 할 상황입니다.
P.S
제공권 없는 제해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군사 게시판에서라도 선후가 뭔지는 똑바로 파악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