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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3-26 08:51
[영상] 병자호란 최악의 전투 top3
 글쓴이 : schwarze
조회 : 2,827  


300인줄..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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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니 19-03-26 09:40
   
저런 일이 현대에도 없으란 법은 없어요.
전투 경험 없는 생초짜들인 것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 없으니까.
훈련을 게을리 하면 안되죠.
수퍼밀가루 19-03-26 09:48
   
그 당시를 평가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군인이 있었어도 능양군과 서인 나부랭이들이 있는 한

그 어떤 전투도 이길 재간이 없었죠...서인 자체가 꼰대집단인데다 꼰대들의 꼭두각시였던 능양군에게

바랄 게 있을 수 없었죠......
     
곰팡이 19-03-26 10:52
   
광해군과 북인  골로보낸 서인 동인  입으로 전쟁한 무기력한  꼰대집단..
앨리 19-03-26 10:03
   
처음 알게된 사실인데 절대로 질수없는 상황에 완벽하게 패배했군요 안타깝네요.
오리발톱 19-03-26 11:41
   
사실 병자호란 때 청은 명과의 교역이 끊기면서 물자가 많이 부족했고, 전쟁을 오래 끌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부대를 선봉으로 신속하게 치고 내려오는 것을 택했고, 이건 3차 여요전쟁 당시 요의 소배압이 구사한 전략과 비슷했습니다.
반면에 조선은 이에 대항하는 고려의 입장과 비슷했는데, 전투에서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지구전으로만 끌고 갔다면 청이 버티기 힘들었겠지만, 조선은 이괄의 난으로 정예군이 대거 갈려 나갔고 이후 부임한 최고 지휘관들이 김자점, 김경징 같은 자들이라 전쟁 수행능력이 너무 떨어졌죠.
4leaf 19-03-26 12:53
   
이괄의 난이 제일 큰 문제였죠.

조선의 정예군과 실전경험있는 간부들이 이탈하면서 전쟁수행능력이 너무 떨어졌습니다. 특히 지방군들이... 병력은 어떻게든 채워넣을수 있지만 병력만 채운다고 전쟁을 이기는건 아니죠.

또한 전근대시기에는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면 또다른 반란을 염려하여 군사력 재건을 소홀히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반정으로 즉위한 인조와 정권을 잡은 서인, 거기에 소외되서 반란을 일으킨 이괄... 체제가 불안정하면 정권을 잡은 사람들은 외국과의 전쟁을 장기전이 아닌 단기전을 하고자하는 심리가 우선적이죠.
스리즈 19-03-26 13:36
   
후대에 우리가 보기에 병자호란은 희대의 개병크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맞지만
조선 백성 입장에서는 청이랑 싸워서 몽고떄처럼 국가 초토화되고 가족,친척 다 죽는 것보다는 적당히 선에서 국신관계 맺고 조공좀 하는게 낳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듯합니다
어차피 병자호란을 잘막았다고 해도 두 국간에 물량 자체가 다르다보니 계속된 침략으로 종국에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조선이 항복했을것입니다 당시 청은 세계 지디피에 40%차지하고 명의 전성기를 아득히 뛰어넘는 영토를 확보했죠 다만 종국이 삼전도라는 굴욕으로 끝난것이 아쉬울 뿐...
뭐.. 그래도 멸망해서 청에 동화되지않는게 어디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진심으로 청일대 다른나라들은 다 청에 정복되서 동화됬는데 왜 조선만 살려뒀을까 진짜 미스터리입니다
     
아뒤도업네 19-03-26 14:38
   
병자호란 때의 청나라는 중원먹고 지디피 40프로 차지한 국가가 아니라 이제 막 건국된 인구 100만 아래의 신생국가였습니다. 물량만 따지면 당시 인구 천만 안팎이었던 조선이 더 뛰어났죠. 당시 청나라의 강점은 여진통일전쟁과 몽골과의 전쟁, 명나라와의 사르후 전투의 승전(물론 중간에 영원성 전투의 패전이 있긴 했지만)으로 사기가 하늘을 찌르고,  전투에 이골이난 병력이 5~6만에 달하는 당시 동아시아 최강의 전투국가라는 거죠.
청나라 기록과 조선측 기록을 교차해서 병자호란의 조선군과의 전투들을 보면 청나라가 압도적인 교환비로 조선측을 두들겨패다시피 했습니다.
조선측을 좀 변호하자면 조선과의 전투에서 나온 교환비 못지 않게 명나라/몽골을 상대로도 두들겨팼을 정도로 당시 청나라군이 어마무시한 강군이었다는 점 정도?
구름무사 19-03-26 13:57
   
병자호란 당시는 청의 국력이 그렇게 강한때가 아니죠. 당시에는 명과의 일전을 준비할 때였고, 후방 안정과 물자보충의 의미가 큰 전쟁이죠. 조선이 지구전으로 끌고 갔다면 청군은 오래 버티지 못했을 것이고 명과 조선의 협공을 받아 멸망했을 수 있다고봅니다.
     
가민수 19-03-26 14:45
   
만약에 그렇게 청을 물리쳤다면 우리가 요동을 먹었을지도 모르겠네요.
          
TheCosm.. 19-03-26 15:46
   
설령. 아주 설령이라 하더라도 요동을 먹는 것은 매우 힘들었을 뿐더러 유지조차 못하였을 것입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요동을 정복할 국력도, 그것을 유지할 국력도 없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라는 점입니다.

단적으로 생각해보죠. 조선은 조선 전반기 내내 여진족을 몰아내고 함경도, 평안도를 점령하는데 세월을 보냈습니다. 많은 분들이 '어? 그냥 가서 쫓아내고 깃발꽂으면 끝 아냐?'라고들 쉽게 생각하시지만. 그 땅에서 쫓겨난 여진족들은 이놈이고 저놈이고 할 것없이 심심할 때마다 쳐들어오고, 그 땅에 사는 사람들, 살고싶어하는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적은데, 그마저도 사람살기가 그리 좋은 환경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조정에서 지원을 해주는게 마땅히 있던 것도 아닙니다. 어차피 산출량도 적으니 세수를 굳이 안걷겠다. 대신 거기서 무슨 일 생기면 어지간히 니들 알아서 해라 수준이었습니다. 아니 되레 지역 차별까지 하였으니 좋은 감정보단 나쁜 감정이 많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조선 전,중반기 대규모 반란에서 빠지지않는게 함경도 지방이었습니다.

왜 요동이야기하는데 함경도 이야기를 꺼내냐는 말씀을 하시겠지만,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바로 맞닿아있는 땅인 평안도와 함경도를 완전히 점유하는데에 조선 전반기 내내 시간을 보냈습니다. 거긴 그나마 고려 때에 우리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니 가능성이라도 있다고 보고 시도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요동은? 우리 역사에서 요동을 완전히 점유하던 시기는 수백년 전이야기입니다. 고려 때도 일시적으로 점유하고, 명목상으로도 점유했지만. 그 땅이 우리 땅이라는 확고하고 부동한 인식이 심어지진 못하였습니다.

그런 땅을 완전히 점유하려면 결국 우리 사람이 가야하는데, 당장 평안도 함경도도 가는 사람이 적어서 그 고생을 했는데. 요동 땅을 누구로 채울까요? 가장 가까이 있는 평안도와 함경도 사람들을 끌어오면 아랫돌 빼다 윗돌로 쓰는 격이니 미친짓이고, 그 밑에 사람들한텐 '내가 거길 왜가?'라는 소리 듣기 딱 좋은 지역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요동에 보급이 잘 될 것이냐고 한다면 그도 아닐 것입니다. 당장 조선 최악의 시기였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보낸 직후의 내정이 파탄난 시기에 요동까지 보낼 물자를 어디서 만들겠습니까? 당장 중앙의 관료들조차도 봉급을 못받는 일이 허다했을 정도로 생산성은 저하되고, 관리와 분배에 있어선 비효율의 극치였는데 말입니다.

요동을 먹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현실적으로 따지면 정말 말도 안되게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아 왜 그 시절에 못먹었지'를 자주 이야기하지만, 그 시대에는 그럴만한 여건이나 사정이 안되었으니 무언가를 못하는 게 태반이라는 걸 인지할 수도 있어야 합니다.
     
TheCosm.. 19-03-26 14:59
   
청(후금)의 국력은 점차 상승하던 시기였고, 반대로 명과 조선은 그 국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었는데. 상대가 강한 때가 아니라고 표현하시는 건 상대적인 상황과 배경적인 지식이 없으신 채로 쉽게 말씀하신 것 같습니다.

만주 일대를 통제하던 명의 산해관은 이미 통제력을 상실하였고, 점차 동북방면으로 침범해오는 만주족들의 침입에 방어만으로도 급급한 상황이었습니다. 덩달아 명의 일부 군관들이 후금에 항복하거나 귀순하는 등이 일이 연달아 발생하였습니다.

청(후금)은 오랜 숙적이었던 몽골을 제압하여 후환이 없었고, 만주 내에서 친명파를 제거하고 통합하면서 군사적 경험과 역량이 매우 뛰어나던 시기였습니다.

조선이 멍청해서 지구전을 가고싶지 않았겠습니까? 청군이 몰려오니 당장 지구전에 유리한 강화도로 왕자들을 보내고 인조는 남쪽으로 피신을 갔었지만, 이미 조선의 대처를 파악한 청군의 빠른 기동성에 지구책이 실패한 것입니다.

게다가 남한산성을 포위하고 있는 청의 병력들에 대응할 수 있는 동북방면의 병력들 대부분이 김자점 휘하에 있었는데. 김자점은 애초에 자기 보신만 챙기고, 게다가 중앙에 대한 반감을 내재하고 있던 동북방면 군대를 지휘하니 이들이 오겠습니까?

당시 조선의 내정은 우리가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심각했습니다. 광해군이 재건을 제대로한 군주도 아니었을 뿐더러 그 와중에 반정에 반란까지 겪었고, 임진왜란 이전과 비교하여 세수는 2/5 안밖수준으로 급감한 상황인데도 반정의 공신들을 챙겨주느라 그마저도 온전히 거두지 못하였으니.(임진왜란 전 경작지가 150만결을 넘나들고 있었는데, 광해군과 인조대에서는 고작 40만결도 아슬아슬하게 못될 정도였습니다. 이게 그나마 회복된 정도)

조선이 지구책을 제대로 펼칠 상황도 아니었을 뿐더러, 방어는 커녕 공격자체가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지식이나 정보가 부족하여 그러시는 것이겠지만, 공세적으로 대규모 병력이 전선까지 도달하고 이행하는데에 어마어마한 보급이 필요로한데. 당장 자국 내 영토에서도 방어하기 위한 보급이 원활치 않은 가운데. 공세에 쓸 보급물자를 어디서 확보한다는 것인지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