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팔년도는 서기 대신 단기를 사용했던 제 1 공화국 이승만 정부 시절에 단기 4288년 서기 1955년 입니다.
쌍팔년도 군대라는 이야기는 극심했던 군대내의 부정부패로 군인들이 정말 못먹고 힘들게 생활했기에 나온 이야기 입니다.
이당시 어떠했냐면,
군납업자는 사바사바를 통해 질 나쁜 싸구려 음식과 옷같은것을 고가로 군에 납품하고.
탄약을 날라야 될 군 트럭은 야산에서 도벌된 화목용 장작을 헌병 선도차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버젓이 후방으로 수송했다.
심지어 난민 구호용의 엄청난 양곡은 부두에서 하역되자마자 곧장 곡물 도매상의 비밀 창고로 운반도있고, 외국 자선 단체에서 보내온 전쟁 고아용 구호 물자는 운반 도중 소리 없이 증발하여 고아원 원장에게 재빨리 현금으로 전달되기도 했어요,
사바사바의 왕국이었죠
곡물 소매상은 병참부의 일등병과 안남미 한 가마를 사바사바
트럭 한대를 굴리는 영세업자는 수송대 하사와 휘발유 한 드럼을 사바사바
야전 병원 상사는 병원 의사들과 오일 페니실린 한 박스를 사바사바
수송부대소령은 군수품 수송을 뒤로 미루고 한 포대의 현금을 받고 어느 업자의 상품을 특급으로 수송해주고 사바사바
군이 부패 덩어리였으니, 신성한 병역의 의무가 더러워 지는 것은 당연했다. 55년 훈련소 참모장으로 부임한 채명신은 훈련병들이 입고 있는 옷은 누더기였고, 빽 있는 사람의 아들들은 서류만 와있고 사람은 오질 않았다고 증언했다. 다음 날 서류만 들어와 있는 100여 명을 징집하자, 청와대, 국회, 특무대 등 온갖 계통에서 청탁이 들어왔다고 했다.
55년 서울 지구 대학 졸업자 1차 소집에서 영장 교부 수는 1천209건이었는데 응소자는 163명 그중 입대 인계자는 112명이었다. 월간 신태양 57년 5월호에 실린 '법무행정 짓밟는 특권계급' 이라는 글은 국방부 모 고관실에는 아예 표제가 붙지 않은 인사청탁 처리부가 놓여 있으며 청탁자는 거의 전부가 저명 인사로 국회의원이 반 이상이라고 지적했다.
전쟁 직후에 고급 장교들이 고철 수집과 벌목 등 후생사업을 통해 치부하고, 각 부대의 간부들이 사병들의 몫을 횡령, 착복함으로써 훈련소 같은 곳에서는 훈련병의 사망률이 높아 원성의 대상이 되었는데도 군내 부정은 심화되어 1955년도는 군내 부정의 대표적인 해로 일컬어지게 되었고 그결과 쌍팔년도 군대라는 이야기가 나온것입니다.
간부들이 정당한 이유 없이 분풀이, 즉흥적인 장난으로 부하들을 구타하는 것이 예사였고, 지금도 터져 나오는 군내의 폭행, 추행 등의 악폐습의 기원은 바로 이때였다. 간부들의 부패와 폭행이 병 사이에서의 악폐습으로 확산된 것이다.
이처럼 군이 부패와 악습의 온상이 된 배후에는 당시 이승만 정부가 있었다. 대통령과 자유당 정권은 군의 부패를 북인했다. 이유는 이것이 정치자금 조달용이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55년 원면 사건이다.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미화 50만 달러어치 원면을 군용으로 쓰지 않고 상인과 결탈해 처분한 뒤 이기붕에게 헌납한 것이다.
이런 부정부패속에서 결국 419와 516이 터진다.
박정희에 대해서 잘은 모르지만 저 시대상황에서 젊은 장교들이 부정부패 뒤집자하고 생각했고,청렴했다고 알려진 장군이 박정희였기에 그를 중심으로 쿠테타가 발생했다고 보면 , 박정희가 그렇게 부정부패의 화신은 아닌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