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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9-09-09 17:43
[잡담] 베트남전 한국군 잔혹 행위와 그 배상문제
 글쓴이 : 야구아제
조회 : 2,586  

1. 한국군 잔혹행위에 대한 진상.

- 한국군 기록에는 중위 한 명이 민간인 살해 혐의로 군법 재판에 회부되어 처벌 받은 사례 말고는 기록이 없다.

- 베트남 전쟁에서 북맹군은 빨치산(게릴라)를 이용해 비정규전을 수행하였는데 민간인의 피해를 조장하며 이를 이용한 전술로 원천적으로 민간인 패해의 원인은 북맹의 전술에 있다.

- 현재 일부에서 주장하는 민간인 학살 혹은 잔혹행위에 대한 이야기는 베트남에 존재하는 '증오비'에 근거한 것이다.

- 하지만 그 증오비는 증언만으로 정부에서 만들어 주는 것으로 일단의 사회주의 선전 도구의 성격이 강하다.

- 이에 대해 우리 정부가 합동 조사와 피해 보상을 정부차원에서 제의 했으나 베트남 정부가 거부했다.

- 표면적인 이유는 이긴 전쟁에 피해 보상은 말이 아니라는 입장이었지만 이면적으로는 그 증오비를 증명할 길이 없음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 베트남은 북쪽과 남쪽의 문화가 다르고 우리군은 지역을 거점으로 안정화 및 안전 지대를 확보하여 베트콩이 잠입할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식 전술에서나 가능한 마을 숙청과 제거는 있을 수 없다.

- 따라서 우리군의 잔혹행위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 혹시 베트콩과의 교전에서 민간인으로 의심되는 자에 대한 오인 사격이나 살상이 있었다더라도 군법을 통해 진상 규명이 됐다고 봐야 한다.

- 우리가 착각하는 것이 군대는 무조건 총질하고 끝나는 줄 아는데 글자 한 자까지 빠짐 없이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해야 하고 만약 군 차원에서 민간인 피해가 있었는데 이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면 전군, 그러니까 한국군 사령부에서 은폐한 것이 된다. 과연 이가 가능할까?


2. 베트남의 증오비란?

- 베트남은 사회주의 국가이다. 아직도 일당 독재를 실현하는 국가이다. 이러한 사회주의 국가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체제 유지를 위한 선전선동 사업이다.

- 베트남이 개혁 개방을 하면서 전쟁 상대국이었던 우리나라와 미국과 교류하면서 자칫 공산당에 대한 충성이나 지배력이 떨어질 것을 우려하여 대외적 외교나 경제 정책과는 별개로 대내적 사상 교육과 선전선동을 진행한다.

- 증오비는 베트남 국가에서 세워주는 비석인데 지역 주민 증언에 의지하며 몇 명이 같은 주장을 하면 인정하는 구조이다. 따라서 철저한 사실 검증은 이뤄지지 않으며 증언자들의 증언에도 차이가 발생하지만 애초의 목적이 선전선동에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교려하지 않는다.

- 게다가 증언자들의 대부분이 북맹군 출신 참전자들이나 베트콩 출신자들로 국가로부터 수훈을 받은 사람들이다.

- 이른바 사회주의 국가에서 총대를 매고 나서서 일을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증오비는 믿을 수 있는 자료가 되지 못한다.

- 다만 대내용인 것일 뿐이다.


3. 그럼에도 한국 정부의 사과 행위는?

- 우리는 일제 식민의 치욕을 겪으면서 숱한 고초를 겪었다. 그러나 일본의 역사 수정주의로 인해 진실은 왜곡되고 진정한 사과나 보상은 받지 못했다.

- 이런 측면에서 우리는 피해자 중심의 사고를 중시하게 되고 일제와는 다른 측면에서 마음에서 우러난 사과와 그를 통한 상호 존중과 상생, 그리고 발전적 미래에 대한 추구를 표방한다.

- 따라서 우리가 베트남전쟁에 대해 사과하는 것은 민간인 학살에 대한 것이 아니라 베트남 전쟁에 우리군이 참여 함으로써 발생한 아픔과 상처에 대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매우 극소수에게 자행됐거나 혹은 매우 극소수만 느끼는 일일지라도 적이었고 또 싸웠던 사람들에 대해 먼저 사과하고 손을 내밈으로써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위무하고 과거를 풂과 동시에 발전적 미래를 도모할 수 있는 것이다.


4. 물타기와 토왜들.

- 일제는 일련의 우리의 행동이 자기들과 차원이 다른 행동임에도 물타기를 시도하며 우리에 대한 사과를 하지 않으려는 근거로 삼고 있다.

- 더 나아가 토착 왜구들을 선동하여 우리가 일제에 준하는 잔혹한 군대였음을 선전선동하고 있다.

- 결국 내부의 적이 진짜 적에게 가장 이로운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5. 배상 문제

- 배상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베트남에 제공하는 경제협력과 차관과는 별개로 베트남전으로 상처입은 사람들에게 배상할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 이는 아까도 언급했던 바와 같이 상생을 위한 노력인 것이다.

- 우리가 우선 이러한 의미를 제대로 인식해야 적에게 휘둘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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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007 19-09-09 17:49
   
착쪽죽쪽 착토죽토
오늘도야근 19-09-09 19:03
   
논점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의의 감사합니다.
도나201 19-09-09 19:19
   
1. 민간인 사살행위는 있긴 있었다.
  그러나 이는 극히 일부 였고 위에 이야기한 북맹의 민간과 전선의 이분화하지 않고 민간을 이용한 전술로
  공격해와서 사실상 제네바협정위반적행위를 자행햇다.

2.국군의 군기확립상황이 너무 잘 정립되었다.
이미 파견전부터 화산유격장의 고된 훈련후 파견 이에 관련한 군기확립이 엄청나게 확립되었다.
특히 북맹의 전선구축을 민간과 일원화 해서 이에 대한 민간인 오인사격을 막고자.
부대주변에 평화마을을 구축해서 수시로 의료지원 및 대민농사지원 및 경계  민생안정등
부대주변마을에 대한 약탈 및 범죄행위가 없었다. 

이에 대한 주변마을에서 오히려 베트콩의 부상자가 찾아들어서 부상치료를 하는 경우도 대다수 발생한것으로 알려짐. 
 이러한 정책은 미군에게도 영향을미쳐서  같이 실행하기도 함.

3.특히 북방 보급로 확보를 위해서 보급로개척에서 우리측에서도 상당히 고전을 햇는데.
이때 상당한 전장에서 많은 피해를 보았음.
후에 퇴각시에도 상당한 주위를 기울이면서 퇴각하는중에도 빠른 퇴각결정으로 인한
민간과 접촉의 기회가 적었음.. (백마부대 한정)

4.청룡부대의 군복과 월남특수대의 군복이 거의 비슷하고 부대마크도 상당히 흡사했음.
이를 오인한 사람들이 많고
특히 월남군의 이미지에서 대부분 당나라부대로 묘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서.
그들이 월남군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한국군이라고 생각함.

월남군의 정예부대는 그대로 맹위를 끼치고  엄청난 학살의 사례가 많음.
이를 오인한 정보가 많음.

5.베트남 증오비는 .. 바로 우리 한국군 주둔지에 설치한 비임.
일종의 공산당의 기념비같은 일종의 승전비 같은 의미가 더 강함.
한국군에게 승리한 적이 없었음.
1.이미 주변마을을 평화마을로 정착해서 의료지원 및 대민지원으로 주변마을의 지원을 얻어내기 힘들었음.
허나 부상자를 치료할 시설이 마당치않은 상황에서 이러한 마을의 부상자치료에 많은 이용을 했기에
이마을역시 전쟁에서 상당한 안전을 보장 받기도 했음.
(물론 대민지원과정에서 마을의 처녀와 하룻밤을 지원한 촌장이 있기는 있었고, 그마을처녀가 아닌
도시에서 윤락녀들을 데려와서 일부러 데주었다라는  그리고 의약품 이나 기타 물품을 부탁하는 경우가 있었음)
마을과의 교류가 활발한것으로 전해짐.
그러나 군기확립차원에서 철저한 인원관리가 되어서 미군과는 다르게 엄청난 군기로 인해서 인원관리가 생각외로 철저햇고  위에 법정에선 사례도 이러한 마을에서 베트콩과 짜고서 먼저 선공을 때린후에
그마을 쑥대밭을 만든경우로 알려짐.  일종의 거점타격 개념으로 위장해서 이부분은 상당한 애매함을 남김.

2.베트콩의 교관의 80%가 북한 교관이였음.
그래서 한국군과 교전을 피해라 소리가 나온것임.
북한교관과 비슷한 전력이라고 생각하고 되도록이면 피하라는 소리가 나왔음.
거기에 따른 초기의 청룡부대 맹호부대의 악따구니 맺힌 초반공세에 대패한후에..  북한 교관과 동급으로 생각하게됨.  왠지 아이러니한 상황임.

실제로 백마부대 초기 파병때는 엄청 한가로웟던것으로 알려짐.
진지구축 및 대민 지원이 주 임무일정도로 ..
다만 후반 공세에 갔을때  타격을 받았고.
심지어 보급로 확보를 위한 도로공사를 베트남에서 지원하기도 함.
해안에서 중앙숲속으로 향할때도 오히려 지들도 유리하니 놔두는 경향.
다만 정찰팀과의 교전사례가 몇차례있기는 햇음.

3.실제로 학살이라고 하는 부분은 부대철수시 많은 전투기록과 공세 때문에
마을을 신경쓸 겨를이 없었음.
어느 노병이 찾아가서 물만 잔뜩사서 교전하던 고지에서 정확한 위치에서 많이 목말랐지..
여기 실컷 마시게.. 하면서 사망한 자리에 물한병씩 주던 다큐멘터리가 있었음.
이당시 보급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였고 고지 수호때문에 자리이동도 힘든 상황이였음.
그만큼 긴박한 상황이여서 전략적인 후퇴를 위해서 상당한 고전을 했음.
이상황에서 민간과 접촉은 거의 불가능함.
도나201 19-09-09 19:21
   
베트남에서 피해자 전수조사 및 보상을 거절하는 이유는
바로 캄보디아 및 라오스 주변국에 대한 학살을 자행한 사례때문임.
북맹에서  미군철수후 남베트남에 엄청난 학살을 자행했음.
만약 베트남정부에서 우리의 보상을 받아들이면.
자국의 피해자들에게도 보상해주어야 하고 이게 알려지면 캄보디아 라오스에 대한 학살도
피해보상해야할 입장으로 됨.

이게 베트남입장으로서는 엄청난 골치 아픈 국제상황을 맞게 될수도 있음.
태지1 19-09-09 23:57
   
전에 배트남 국민들이 한국에 배상 해 달라고 왔었어요....
정당하게 대해야 했었던 문제 이었지요.... 개인 배상권 주장 했었습니다. 베트남은 승전국이었고 울 나라는 일본에게 먹힌 나라였었습니다.
유일구화 19-09-10 00:58
   
베트남 가봐
거기서 소비해
그리고 도와줘
부대끼지 않고
어깨 빼지 말고..
     
태지1 19-09-10 01:39
   
"베트남 가봐
거기서 소비해"
=> 왜 그렇게 생각 하세요?
rozenia 19-09-10 22:24
   
기본적으로 한국인의 한사람으로 그런일이 많이 자행되었던 적었든 더불어, 합법적이었든 전쟁이라는 상황으로 이해한다해도 기본적인 마음은 미안한 마음입니다 아마 이부분은 대다수의 국민들 의견도 같을 거라 생각합니다

만약, 정부차원에서 배상을 요구한다면 그것도 수용해야 한다고 생각하긴 합니다. 다른의견이 있을지 모르지만,

군의 명예를 위해 베트남에 그런일이 없었다고 하는일은 없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군과 국가와 국민 모두가 명예롭고 슬기롭기 위해서 더더욱이 인정할건 인정하고 조사할거 조사하고 배상하고 또한 돈 이외에 직접적으로 유가족이나 유족들을 만나 사과의 메세지를 전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 예상외에 베트남 사람들은 스스로의 승전이기에 누가누구에게 배상해야하냐고 묻긴 하더군요.

여기서 중요한점은 우리의 태도라고 봅니다. 분명, 베트남사람들이 승전했으니 배상은 한국이 할부분이 아니라고 말은 하지만 자국안에서 있었던 교전국과의 전쟁이후 우리의 태도가 일본처럼 극단적이라면 당연히 베트남의 국민정서를 물론 전체적인 관계에서도 문제가 될것이라고 봅니다

더불어, 사과할건 하고 보상해야한다면 하고 위로해야할 부분은 하며, 그들이 원하지 않아도 지속적으로 일정부분 민간이나 교류를 통해 의사전달을 꾸준히 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성장과 국익을 위한 전략적인 사고 이외에도 우리나라가 여느 열강들의 행동들처럼 잊고 살지말고 이해하며 살아가서 20년 50년 뒤에는 동남아시아든 어느국가든 한국이 목소리낼때, " 그래 한국이 이유가 있어서 저러겠지 한국은 그런나라니까 " 같은 부분이 생겼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