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첫날 미군은 북한의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다 제거하지 못한다."
걸프전 당시 정찰위성과 항공감시와 헬기등 공중감시로는 전쟁끝날때 까지 단 한대의 이동식 스커드 발사체도 발견하지 못하였고 모두 미사일 기지를 공격하여 성공하였을뿐이다.
개전후 스커드 미사일이 계속 이스라엘,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등에 날아들었지만 이동식 스커드 미사일 발사대를 찾지 못하였다.
당시 기록으로는 88발의 스커드 미사일 공격을 당하였다. 즉 패트리어트가 막지 못하였다.
정찰기기로는 일반트럭과 발사체 트럭을 구분하지 못하였으며 심지어는 염소떼를 발사체로 오인하기도
하여 염소들이 떼죽음 당하기도 하였다.
결국 영국 SAS와 델타포스를 투입하여 직접 탐사하여 파괴하기로 결정하였지만 작전중 사망자도 나왔다.
야간작전중 헬기는 모래언덕을 쳐박아 전원 사망하기도 하였다.
적진을 걸어서 몇주씩 걸리는 작전은 위험천만한 방법이었다.
특수부대원의 도움을 받아 F-15이글이 폭격하는 영상이 기록으로 하나 있다. 참고하시라.
지금시대에 와서는 드론의 발달 및 각종 첨단무기의 발달로 더 찾기 쉬워졌다고 하나 당시 사막에서도
쉽게 찾지 못하는 발사체를 산악과 땅굴이 많은 북한에서는 쉽게 찾을수 있다고 단정하는건 악몽이 될것이다.
실제 걸프전 당시 항공장비의 적외센 센스를 사용했다. 가끔 스커드 미사일이 발사되면 그 발사빛을 추적하여 정보를 공군지휘소로 전달하고 그것을 분석파악하고 하늘에 있는 공군기로 전달하여 타격하는데는
최소 30분이 소요되었다. 산악지역도 아닌 사막작전에서.
30분은 이론상 스커드 발사대가 발사후 이동을 시작하는 시간이지만 이라크 발사체는 발사과정을 단6분으로 간소화 했다. 또한 발사준비과정을 이론상 2시간이 소요되는데 실제로는 30분으로 단축했다.
즉 다시말해 발사전후로 발사체를 잡을수가 없었다.
이에 연합군은 발사후 스커드가 발사후 숨을것이라고 예상하여 각종 고가도로와 건물등 모든 가능지역을
파괴하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뢰도는 대단히 낮았다.
갯수조차 파악이 안되는 북한의 땅굴기지와 이동식 미사일 발사체와 미사일.
걸프전은 치고빠지는 작전을 상대가 구사하면 그것을 사냥하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가를 강조한다.
아무리 군사기술이 발달하여서 도움을 받는다 하여도 구식발사대 조차도 찾아내기가 얼마나 어렵고
또 구식 발사대 조차 위협이 된다는것을 시사하고 있다.
==========================================================================================
후세인은 88발의 스커드 미사일을 성공적으로 이스라엘과 사우디,바레인에 떨어뜨렸습니다.
만약 후세인이 대량살상무기가 있었다면 결과가 어찌되었을까요?
우리는 북한의 미사일을 100% 다 요격할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 찾아 낼수 있을까요?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