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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6-26 08:12
연평해전서 싸운 북한 해병들의 증언
 글쓴이 : 손만잡고잔…
조회 : 3,255  

2002년 교전 보도가 나온 후 직장에 출근했는데 당비서가 나 외 3명을 급히 찾았다. 그는 이제 곧 조선인민군11호병원으로 가야 한다면서 서약서를 내밀었다. 취재대상들의 발언을 외부로 절대 발설하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평양시 대동강구역 문수동에 위치한 조선인민군11호병원에 도착하니 외과병동 중 건물 하나를 해군사령부 8전대 부상병들을 위한 특별병동으로 봉쇄하고 무력부보위사령부 군인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아군의 승리만을 선전하는 북한에서 처참한 상처를 가진 부상병들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단 교전 참전자들을 회의실에 모두 모이게 했다. 12명 정도였는데 18세~19세 군인들이 그 중 5명이나 되었다. 함께 갔던 국장이 통전부에서 나왔고 교전 경험을 위에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간단히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웅담을 듣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니 교전소감을 솔직하게 말하라고 덧붙였다. 이 때 문이 열리며 온 몸에 붕대를 감은 한 해병이 휠체어에 실려 왔다. 그러자 그를 가리키며 모두가 합창하듯 말했다.

“저 애는 온 몸에 맞은 파편이 230개예요”
“???”

경악하는 우리에게 군의관이 렌트겐 필름을 한 장 보여줬다. 파편 흔적으로 보이는 점들이 가득했다. 교전 참전자들 중 군관이 말했다.
“파열탄에 맞았습니다. 위에서 터지는데 파편 수백 개가 우박 떨어지듯 합니다.”

가장 나이 어린 해병이 끼어들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해도 됩니까?”
“그래 그래 그냥 너희들 생각을 편하게 말하면 돼”
“사실 다 무섭지 않은데 그 파열탄이 제일 무섭습니다.”
그러자 여기저기서 한 마디씩 했다.

 

“놈들은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밑으로 사라지는데 우리는 전투준비! 하면 모두 갑판위로 올라가요, 그런 상황에서 저 파열탄만 터지면 전투능력이 우선 1차적으로 상실돼요.”

“영화에서 보면 전투 중 이름들을 서로 부르는데 당해보니깐 그건 완전한 거짓말이예요. 일단 포소리만 한번 울리면 귀에서 쨍-하는 울림밖에 더 없어요, 그래서 우린 서로 찾을 때 포탄깍지로 철갑모를 때리며 소통했어요”
자기를 상사로 소개한 해병이 말했다.

“한 가지 제기해도 좋습니까? 놈들 배는 부럽지 않은데 제일 부러운 게 방탄조끼입니다. 방탄조끼는 비싸니깐 우리에게 목화솜옷이라도 주면 파편이 덜 들어가겠는데…”
내 옆에 서있던 국장은 그의 말을 특별히 줄까지 쳐가며 메모했다.

전투 전반에 대해 구체적으로 말해보라는 국장의 말에 군관이 입을 열었다.
“그 날 함장이 평양에 갔다 온 날이어서 우리는 느슨하게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함장이 그날따라 배에 기름을 가득 채우라고 지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물었다.
“평일엔 기름을 가득 안 채웁니까?”

“사실 채울 기름이 없습니다. 그나마 기름이 정상적으로 보장되는 함선이란 것이 구축함뿐입니다. 현재 우리 해군에 소련 50년대 구축함이 두 대 있는데 한 대는 동해에, 한 대는 서해에 있습니다. 그런데 기름이 없어서 순찰을 못하고 작전지역에 진입하면 정박한 채 레이더감시만 하다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 경비함 같은 경우엔 기름공급이 더 부족한 형편입니다. 순찰이 아니라 근처에 나갔다 오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항에 도착하면 남은 기름을 군관들이 몰래 빼서 난방용으로 집에 가져가기 때문에 처음부터 연유부에서 절반씩 밖에 안 준지 오래됐습니다.”

상사해병이 불만조로 보탰다.
“우린 도색감도 받아본지 오래됐습니다.”
“그건 뭔데요?”
“배는 물위에 항상 떠 있기 때문에 선체에 골뱅이와 같은 해류들이 가득 달라붙습니다. 그럼 속도가 느려지죠, 도색감을 정기적으로 발라주어야 해류방지도 되고 속도에도 제한이 없겠는데 그것도 없다니깐요.”

그 말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군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날 함장이 기름뿐 아니라 포탄과 탄약들도 만장탄하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리고 배 앞에 붙인 레루(레일)도 확인하더니 다시 더 단단하게 용접하라고 하였습니다.”
“배 앞에 웬 레루요?”

“전번 1차 때 충돌싸움부터 시작했었는데 그 애들 철갑이 굉장히 단단해서 우리 배가 찢어지더라구요, 그래서 고심하던 함장이 창안한 겁니다. 레루를 붙이면 승산 있을거라면서요.”
“그럼 그 철의 강도문제는 전번 1차 때 제기 안했었습니까?”
“했죠, 장군님께도 보고돼서 장군님께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철갑으로 무장해주라고 지시하여 연형묵 자강도당책임비서를 비롯해서 자강도 군수공장 기술자들이 몇 번이나 우리 배에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해결 안됐는가요?”
“장갑을 두텁게 하면 함선이 기울기 때문에 대신 탱크포를 내려야 하는 문제가 제기됐습니다, 사실 우리 함선의 위력은 탱크포입니다. 아무리 파도가 심해도 정조준을 유지할 수 있고 또 포탄의 위력이 쎄서 놈들 함선에 구멍이 펑펑 납니다. 그런데 그런 위력을 없애면 속도도 상대적으로 느린데 싸움이 됩니까? 그래서 고심 끝에 철의 강도대신 화력을 더 보강하는 쪽으로 채택됐습니다. 놈들 자동포는 분당 3000발씩 나오는데 우리는 600발 정도거든요, 그래서 1차교전 후 소련 4구경 발칸포를 올려놨습니다. 그거면 우리도 분당 1500발을 쏠 수 있거든요.”

 

이 때 나이 어린 해병이 재잘거렸다.
“그것도요, 우린 다 갑판 위로 올라가서 쏘는데 그 놈들은 어디서 쏘는지 보이지도 않아요. 그 놈들 함선 무섭게 발전했어요”
“조용 못해 이 xx야!”
상사가 침대에 있던 베개를 집어던졌다.
“야, 너도 찍소리 마!”

군관이 상사의 과격한 행동에 이렇게 일침을 가하고나서 다시 이어갔다.
“기름과 탄약들을 가득 채우고 쉬고 있는데 이상하게 배를 꼼꼼히 점검하던 함장이 이번엔 격분해서 기관장을 소리치며 불렀습니다. 보조조타가 고장났는데 당장 수리하라면서요, 보조조타란 기본조타가 고장 났을 때 수동적으로 배를 움직일 수 있는 장치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 만약 함장이 그 보조조타 수리를 지시하지 않았으면 우린 살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왜요? 그 보조조타덕이란 게 무엇인데?”
“놈들 폭탄에 기관실이 맞았는데 기본조타가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 함선은 한동안 한 자리에서 빙빙 돌기만 했습니다. 아마 놈들도 이상하게 생각했을 겁니다.”
막내 해병은 이번에도 못 참고 끼어들었다.
“그때 봤어요,? 놈들이 갑판에 나와 쭉 서서 구경하더라구, 아 그 때 쏴야 하는건데....”
그러나 나이 든 해병들만은 침통한 얼굴이었다.

“전투상황을 좀 설명해보게” 국장의 질문에 군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린 놈들 배에 접근해서 충돌을 시도했어요. 함장이 지시해서 발포도 우리가 먼저 시작했구요, 근데 놈들 첫 포탄에 함장이 먼저 죽었어요, 우리 함선 규정엔 싸움을 시작할 땐 함보위지도원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함보위지도원이 정치지도원을 겸하거든요, 그래서 함장 대신 그 때부터 보위지도원이 지휘했습니다. 그날은 우리가 작심하고 나갔으니 놈들 배가 손실이 컸습니다. 작전이 더 길어지면 화력우세나 함선우세에서 우리가 밀리기 때문에 손실은 불가피했습니다. 마침 전대사령부와 실시간으로 통신하던 조타수가 달려와 전대의 철수명령을 전했고 우린 보조조타로 조종하며 돌아왔습니다. 이상한 것은 함장 딸이 세 명이거든요, 근데 죽은 함장 몸에서 세 개의 파편이 나왔습니다.”

 

국장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다.
“이제 다시 싸우라면 싸울 용기가 있어? 어때? 할 수 있지?”
해병들은 군인식으로 일제히 “예!”하고 합창했다.
그러나 그 날 해병들의 용기에서 나는 다른 점도 엿볼 수 있었다.
나이 어린 해병들은 영웅심리에 들떠 있었지만 나이 든 해병들일수록 한국군의 선진화에 당황하고 겁을 먹은 눈치였다.

우리가 나올 때 군관은 따라 나오면서까지 애원하다시피 말했다.
“정말 방탄조끼는 아니라도 좋으니 목화솜옷을 좀 해결해주십시오, 그것만 입어도 애들 저렇게까지 심하게 부상당하지 않습니다.”

 

2차 교전 결과를 보고받은 김정일은 1차교전은 진 전투였다면 2차는 이긴 전쟁이었다며 8전대 해병들에게 감사와 선물을 보냈다. 함장은 공화국 영웅칭호를 받았고 보위지도원은 국기훈장 1급을 수여받았다. 다른 해병들에게도 국기훈장 2, 3급과 함께 김정일 이름이 박힌 칼라TV가 선물로 하달됐다. 그 후 함장은 세 딸에게 아버지가 남긴 복수의 유산이란 내용의 “세 파편” 연극의 주인공으로 부활했다.

 

통전부가 연평해전서 싸운 해병들을 취재한 것은 NLL전략은 처음부터 김정일의 지시로 통전부가 기획했던 평화협박전략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통전부는 햇볕정책 역이용전략을 추진하면서 남한으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수용하는 대신 한편으로는 체제갈등을 유지하기 위한 상시적 평화협박 공간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개성이나 금강산 등 육지에서는 안정적으로 남북경협과 대북지원을 유인하고, 한편 평화협박공간은 바다로 옮기게 된 것이다. 북한은 NLL전략을 고착화시키기 위해 1차부터 3차까지의 교전도 모자라 천안함, 연평도 포격까지 이어오게 된 것이다.


http://www.newfocus.co.kr/news/article.html?no=2422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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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ckengel 12-06-26 10:10
   
북왕조는 정보수집이 목적이었겠져...3차,4차 갈수록 더 보강되어서 그들피해는 점점작아지구 우린커질
겁니다..  이런거뚜 모르구 저들 현대화에 퍼주기만 했으니..  이런말 하는거 자체를 냉전논리라구
여론심리전까지 펼치구,
꾸암 12-06-26 10:18
   
보고또보고..근데 230개를 맞고도 살아났다면 그게탄이냐
     
대략난감 12-06-26 10:55
   
좁살이 튀었나 봅니다.
사랑투 12-06-26 19:07
   
파편 230개 맞고 살아 있었다면 그게 사람인가... 시체에서 발견한거라면 몰라도....
과장이 섞인건 확실한듯..
참치 12-06-26 20:21
   
햇볕정책으로 위축되던 북한군부의 꼼수... 멍청한 김정일의 크나큰 실수라고 할 수 있죠. 남북대치로만 기득층의 지지를 얻고 조직을 유지할 수 있는 곳이 북한군부와 한국의 반공을 외치는 우파들임... 남북이 평화롭고 국민들이 생각을 많이하게되면 지지도 곤두박질 치는 사람들이니 이렇게라도 위기감을 만들어야죠. 총풍사건이나 북한의 도발은 내부용입니다.
티게르 12-06-26 22:14
   
윤영하급 미사일 고속정으로 대응하면... 대함미사일 한방에 훅갈것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