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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7-18 06:59
이순신 장군 세계의 평가
 글쓴이 : 드리머
조회 : 5,129  

- 와키자카 야스하루

1천5백~2천의 군사로 5~10만(우리역사에는 5~6만명이라고 하고 일본역사에는 8~10만)의 조선 육군을 물리친 명장.
한산도대첩 패배의 충격에 6일간 식음을 전폐.

나는 이순신이라는 조선의 장수를 몰랐다.
단지 해전에서 몇 번 이긴 그저 그런 다른 조선장수 정도였을 거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내가 겪은 그 한번의 이순신 그는 여느 조선의 장수와는 달랐다.
나는 그 두려움에 떨려 음식을 몇날 몇일을 먹을수가 없었으며
앞으로의 전쟁에 임해야하는 장수로써 나의 직무를 다할 수 있을련지 의문이 갔다.

내가 제일로 두려워하는 사람은 이순신이며
가장 미운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좋아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흠숭하는 사람도 이순신이며
가장 죽이고 싶은 사람 역시 이순신이며
가장 차를 함께하고 싶은 이도 바로 이순신이다.


- 명나라 사신 운덕

하루는 어두운 밤 눈이 몹시 내리고 그 바람이 칼날 같아서 살결을 찢는 듯하니,
감히 밖으로 나서지 못하겠더라.. 그러한데 그속을 통제사 영감이 홀로 지나가니,
무슨 까닭으로 이 어둡고 추운 바람 속으로 거닐고 있는걸까?
궁금하던 차에 한번 따라가보니 통제사 영감이 가고 있던 곳은 바로 왜놈이 잡혀있는 곳으로
가는거 아닌가...
더욱이 이상하여 더 밟아보니 통제사영감 손에는 한권의 책이 있더라...
밖에서 보니 통제사 영감은 그 왜군에게 명심보감중 효행편을 읽어주고 있는것이 아닌가...

다음날 알아보니 그 왜군의 나이는 15세이더라...
10살 의 어린나이에 병사가 되어 왔음에 이 아이가 포로가 된후 이를 딱히 여긴 통제사 영감이
별도로 감싸주었던 것이다.
10살에 포로가 되었으니 벌써 5년이 되었고 그동안 왜군의 아이는 조선말을 배웠으며
간간히 통제사 영감이 책을 읽어주기도 했다고 한다.

서로 죽이고 죽이는 전쟁이지만,
저 두사람을 보면 누가 어찌 서로를 원수라 하겠는가...
내가 본 저 두사람은 조선장수대 왜군이 아닌 한 아버지와 그의 아들로 보였으니..
통제사 영감이 저러하다면, 그의 백성을 아끼는 마음 무엇으로 나타낼 수 있겠는가!


- 명나라 도독 진린

명나라의 황제 신종(만력제)에게 보낸 서신.

황제폐하 이곳 조선에서 전란이 끝나면 조선의 왕에게 명을 내리시어 조선국 통제사 이순신을
요동으로 오라 하게 하소서..

신(臣)이 본 이순신은 그지략이 매우 뛰어날뿐만 아니라 그 성품과 또한 장수로 지녀야 할 품덕을
고루 지닌 바 만일 조선수군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께서 귀히 여기신다면
우리명(明)국의 화근인 저 오랑캐(훗날 청)를 견제할 수 있을뿐 아니라,
저 오랑케의 땅 모두를 우리의 명(明)국으로 귀속시킬 수 있을 것이옵니다.

혹여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의 장수됨을 걱정하신다면 신(臣)이 간청하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은 전란이 일어나고 수년간 수십차례의 전투에서 단 한번도 패하지 않았음에도
조선의 국왕은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며 또한 조정대신들 또한 이순신의 공적에 질투를 하여
수없이 이간질과 모함을 하였으며, 급기야는 통제사의 충의를 의심하여
결국에는 그를 조선수군통제사 지위를 빼앗아 백의종군에 임하게 하였나이다.

허나 통제사 이순신은 그러한 모함과 멸시에도 굴하지않고
국왕에게 충의 보였으니 이어찌 장수가 지녀야 할 가장큰 덕목이라 하지 않을수 있겠나이까.

조선국왕은 원균에게 조선통제사 지위권을 주었으나 그 원균이 자만심으로 인하여
수백척에 달한 함대를 전멸케 하였고 단 10여척만이 남았으메 당황한 조선국왕은
이순신을 다시불러 조선수군통제사에게 봉했으나, 이순신은 단 한번의 불평없이 충의를 보여
10여척의 함대로 수백척의 왜선을 통쾌하게도 격파하였나이다.

허나 조선의 국왕과 조정대신들은 아직도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또다시 통제사 이순신을 업신여기고 있나이다.
만일 전란이 끝이난다면 통제사 이순신의 그목숨은 바로 풍전등화가 될것이 뻔하며,
조정대신들과 국왕은 반드시 통제사 이순신을 해하려고 할것입니다.

황제폐하 바라옵건데 통제사 이순신의 목숨을 구명해주소서.
통제사 이순신을 황제폐하의 신하로 두소서. 황제폐하께서 통제사 이순신에게 덕을 베푸신다면
통제사 이순신 분명히 목숨이 다하는 날까지 황제폐하게 충(忠)을 다할것이옵니다.
부디 통제사 이순신을 거두시어 저 북쪽의 오랑케(훗날의청국)를 견제케 하소서.


- 일본 해군제독, 토고 헤이하찌로

러일 전쟁 승전 축하연이 있던 날 밤, 어떤 신문 기자가 도고 제독에게
"각하의 업적은 영국의 넬슨 제독, 조선의 이순신 제독에 비견할 만한 빛나는 업적이었습니다."라고
아부성 발언을 하자, 도고 제독은 그 기자를 즉각 야단을 쳤다는 기록이 있다.

나를 이순신 제독에 비교하지 말라. 그 분은 전쟁에 관한 한 신의 경지에 오른 분이다.
이순신 제독은 국가의 지원도 제대로 받지 않고, 훨씬 더 나쁜 상황에서 매번 승리를 끌어 내었다.
나를 전쟁의 신이자 바다의 신이신 이순신 제독에게 비유하는 것은 신에 대한 모독이다.

나를 넬슨에 비하는 것은 가하나 이순신에게 비하는 것은 감당 할 수 없는 일이다.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이순신 장군은 당시의 조선에서 유일하게 청렴한 장군이었고 충성심과 전술전략 운영 능력은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조선은 이순신 장군의 정신과 전술을 금방 잊어 버리고 38년만에 병자호란을 다시 당했다.

조선에서는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까마득히 잊혀졌지만 일본에서는 그를 존경하여
메이지(明治)시기 신식 해군이 창설되었을 때 그의 업적과 전술을 연구하였다"라고 밝히고 있는데,
실제 19세기 말 일본 해군사관학교에서는 "이순신전술전략"이라는 교과목을 가르치고 있었다.


- 영국 해군준장, 조지 알렉산더 발라드

이순신은 서양 사학자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순신은 전략적 상황을 널리 파악하고 해군전술의 비상한 기술을 가지고 전쟁의 유일한 참 정신인
불굴의 공격원칙에 의하여 항상 고무된 통솔원칙을 겸비하고 있었다.
그의 맹렬한 공격은 절대로 맹목적인 모험이 아니었다.
영국인에게 Nelson,과 견줄 수 있는 해군제독이 있다는 사실을 시인하기는 힘든 일이지만
이순신이 동양의 위대한 해군사령관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 일본 해군준장, 사토 데쯔라로

옛부터 장군으로서 묘법을 다한 자는 한둘에 그치지 않는다.
해군 장군으로서 이를 살펴보면 동양에서는 한국의 이순신, 서양에서는 영국의 NELSON(1758-1805)을
들지 않을 수 없다.
불행히도 이순신은 조선에 태어났기 때문에 서양에 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임진왜란의 문헌을 보면 실로 훌륭한 해군장군이다.
서양에서 이에 필적할 자를 찾는다면 네덜란드의 Ruyter Michiel(1607-1678) 이상이 되어야 한다.
넬슨과 같은 사람은 그 인격에 있어서도 도저히 어깨를 견줄 수가 없다.
장군(이순신)의 위대한 인격, 뛰어난 전략, 천재적 창의력, 외교적인 수완 등은
이 세상 어디에서도 그 짝을 찾을 수 없는 절세의 명장으로, 자랑으로 삼는 바이다.


- 일본 해군 전략 연구가, 가와다 고오

도고가 혁혁한 전공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이순신 장군과 비교하면 그 발가락 한 개에도 못 따라간다.
이순신에게 넬슨과 같은 거국적인 지원과 그 만큼의 풍부한 무기와 함선을 주었다면,
우리 일본은 하루 아침에 점령을 당하고 말았을 것이다.
대단히 실례인 줄알지만, 한국인들은 이순신 장군을 성웅이라고 떠받들기만 할 뿐
그 분이 진정으로 얼마나 위대한 분인가 하는 것은 우리 일본인보다도 모르고 있는 것 같다.


- 일본 역사 작가, 시바 료타로

이순신은 청렴한 인물로, 그 통솔력과 전술능력으로 보나 충성심과 용기로 보나
이러한 인물이 실재(實在)했다는 자체가 기적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이상적 군인이었다.
영국의 넬슨 이전에 있어서의 이름난 장수이기도 하거니와 세계 역사상 이순신만한 사람이 없으며,
이 인물의 존재는 조선에 있어서 까지도 잊혀지지 않겠지만,
도리어 일본 사람의 편에서 그에게 존경심이 계승되어, 명치유신 기간에 해군이 창설되기까지 하였으니,
그업적과 전술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 일본 역사 작가, 아오야 나기

고니시, 시마즈 등은 이순신이 죽은 줄도 모르고 싸우다가 또 패주했다.
이야말로 죽은 제갈(諸葛孔明)이 살아 있는 중달(仲達)을 쫓은 것이나 다름없다.
싸움이 그치자 그제서야 비로소 이순신의 죽음을 안 진린은 놀라고 배에 엎어지기 세 번이더니 탄식하기를
“실로 그만한 자 고금에 다시없다!” 고 하였다.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킨 그 충렬(忠烈). 조선왕조는 쇠망하기 시작하여 3 백년 뒤 일본에 합병 되었다.
하나, 호걸 이순신의 영명(英名)은 천추에 길이 빛날 것이다.



- 이순신 어록




- 세계속의 영웅, 이순신 장군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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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리머 12-07-18 07:01
   
웬 뜬금없는 글이냐? 다 아는 얘기잖아..
     
드리머 12-07-18 07:02
   
^^;
형존나쎄 12-07-18 07:22
   
이순신이 누구냐? 라고 물으니 고딩놈들이 김명민이요 이찌랄하더라
zzanzzo 12-07-18 09:23
   
지금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30대 이상분들에게 존경하는 위인 하고 물으면 거의 이순신장군 나머지 반은 세종대왕 이었지 ㅋ
천리마 12-07-18 10:52
   
장군 께서는 정력도 절륜 했다는 사실.
시간여행 12-07-28 21:19
   
잘바써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