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20-09-08 21:41
[잡담] 포상휴가로 휴가 나가기.
 글쓴이 : 야구아제
조회 : 1,249  

백령도는 나름 최전방입니다. 민간인들은 모르는 비상사태가 수시로 일어나는 바람에 경계 근무하거나 후방에서 훈련하는 부대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대신에 포상이 참 많았는데 저도 이러 저러 해서 포상일 많이 받았습니다.

문제는 포상을 받아도 나갈 수가 없다는 것이었죠.

비상 걸리면 외출 외박도 원래 없는 백령도인데 휴가를 못 나가니 정기 휴가를 가야 하는 병사들이 밀리고 밀려서 포상 휴가자는 명함도 못 꺼내는 것입니다.

대체로 정기 휴가에 포상을 붙여 나가거나 후임한테 물려 주기도 하고 그냥 소멸하기도 했습니다.

저도 그래서 포상으로 휴가 나갈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저보고 휴가 많이 밀렸다고 휴가를 나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제가 상병 때라 할 일도 많고 해서 나가도 그만 안 나가도 그만이라 들은 척 만 척 했는데 진짜로 다음날 아침에 과업을 나가는데 휴가 안 가고 뭐하냐면서 씻고 휴가 나가라는 것입니다.

백령도는 배가 하루에 한 척, 내지 두 척이 있는데 놓치면 안 되는 구조라 대충 씻고 휴가복도 대충 골라서 입고 배를 타러 가는데 휴가증과 지갑만 들고 나왔는데 현금도 안 챙겨서 같이 휴가 나가게 된 선임한테 배값도 빌려서 탈 정도 였습니다.

배가 좀 늦게 출발하는 바람에 인천에 도착하니 오후 4시가 넘어 가고 있었습니다. 평소라면 인천에서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아침에 풀려 나오는데 나는 포상휴가라서 당일부터 휴가라며 다른 휴가자들은 도파대로 가는데 저만 풀어 주더군요.

문제는 그때부터였습니다.

때는 금요일 오후 4시 반. 수중에 현금은 없고, 집은 부산이었습니다.

우체국 은행에 들러 창구에 가니 영업이 끝났다고 ATM기를 이용하라는데 카드는 군인이라 없고 통장만 있는데 ATM 등록이 안 된 통장이라 출금을 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급하게 농협으로 갔는데 농협도 마찬가지.

폐쇄된 창구를 두드려서 돈 좀 달라니까 창구 여성분이 당황하시며 어쩔 줄 몰라 하시더군요.

통장에 분명히 돈이 있는데 찾을 수가 없는 상황. 금요일이라 다음 은행은 토, 일 지나서 월요일에 여는 상황.

나의 집은 부산. 포상 휴가는 지금부터!

정말 황당하고 미치겠는데 농협 창구 안쪽에 맨 안쪽 자리에 앉으신 분이 무슨 일이냐며 제쪽으로 왔고, 상황을 설명드리니 자신도 고향이 남부 지역이라며 자신의 이름으로 15만원을 빌려 주셨습니다. 월요일에 자신의 계좌로 입금하라고 하면서요.

겨우 그 돈을 받아서 1호선을 타고 서울역으로 향했습니다.

포상 휴가라 KTX가 만 원 정도면 탈 수 있어서 TMO로 갔습니다.

창구에 표를 달라니 창구의 병사는 안 된답니다.

이유를 물으니 주말이라 매진이라는 것이죠.

어이가 없어서 나 집에 가야 한다고 표 달라고 하니까, 또 안쪽에 당직인 높으신 간부가 나오시더니 저의 상황을 듣고 TMO 병사들에게 표를 만들어 주라고 호통을 치시더군요.

그랬더니 장병들의 엔터 신공이 벌어졌습니다. 취소자가 나오면 바로 채가기 위해서였죠.

10분 정도의 엔터 신공 속에 갑자기 한 명이 "표 떴습니다."라고 말했고, 저는 언능 표를 받아 출발 5분 전인 기차를 향해 달렸습니다.

정말 터치 다운으로 겨우 타서 자리를 찾는데 4인석 중 한 자리였습니다.

저 빼고 다 일행 같았는데 모두 여자 부사관이었습니다.

동반석 4인석 중 저만 남인 상황, 게다가 저는 사병, 나머지는 간부, 플러스 나는 남자, 다른 사람들은 여자.

부산으로 오는 두 시간 40분이 어찌나 길던지.

우여 곡절 끝에 겨우 겨우 포상휴가를 나왔던 기억이 나네요.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포오97 20-09-08 22:20
   
고생하셨네요 저는 나름 후방에 있어서 편하게 군생활을 했는지라 전방에 근무하신분들 존경스러움
     
야구아제 20-09-09 10:31
   
전후방이 다 같은 군인인데요, 뭘.

선생님께서 후방에서 맡은 업무를 잘 해주신 덕에 전방에 있는 장병들이 제대로 보급도 받고 후방을 보장 받아서 군 생활 잘 할 수 있었을 겁니다.
     
태강즉절 20-09-09 20:23
   
다 같은 군바립네다..상대적으로 더 고생하셨는지도 몰라요,,심리적으로다가여 ㅎㅎ
새끼사자 20-09-08 22:42
   
글만 읽어도 참 스펙터클 하네요...
우리 부대도 태권도병이었던 병장이 사단 군단 육군 태권도 대회 나가서 다 쓸어버려서 복귀하고 인사과에서 난리가 난 기억이 나네요. (제가 인사병이어서..ㅋㅋ)
내일 당장 나가지 않으면 휴가를 다 못쓴다나??? 당장 나가라고 등떠밀려 나가던 병장..그 뒤로 한달 좀 넘어 완전 사재인간이 되서 전역신고하러 왔던 일이 생각나네요....ㅎㅎㅎ
나중에 알았는데 연대 포상 휴가는 다른 사람한테 넘기고도 그 정도 였던....
     
야구아제 20-09-09 10:29
   
제가 받은 포상 중에는 사령부에서 주는 포상도 있어서, 사령부 4박 5일 받으니까, 여단(백령도)에서 3박4일, 대대에서 2박3일, 중대에서 또 중대장이 1박2일 주는 바람에....

한 번에 포상만 13박 14일을 받았네요. 백령도 상황에서는 감당 불가였죠.^^;
          
태강즉절 20-09-09 20:31
   
ㅋㅋ..제가 복무한 단에는 요상한 포상 제도가 있었는데요
30일 휴가에..현금 몇백만원 (예전엔 거액이었죠)...
추노꾼질(탈영병 추포) 출동전..목전에서 현찰 봉투와 무기명 휴가증  흔들며 ...ㅋㅋ
술나비 20-09-09 04:24
   
백령도가 집인 우리 소대 쫄병 하나.
아~ 이놈은 휴가만 가면 안와!!! ㅋㅋㅋㅋㅋㅋ ㅡ,.ㅡ;;
한번 휴가 가면 최소 20일 이상을 놀다 옴 ㅎㅎ
     
야구아제 20-09-09 10:30
   
그래도 백령도 출시이면 대체로 백령도 내 상근으로 빠질텐데 그 분은 스스로 군에 지원하셨나 보네요.

백령도 거의 함경도 사투리 쓰던데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으셨는지요?^^;
태강즉절 20-09-09 20:22
   
휴가.. 서울쪽  수방사 검문소나마 통과해야 비로소 휴가라는걸 실감했죠.
언제 어디서 취소될지 몰라 조마조마..
지휘관 누군가..걔 어디갔어?..휴가 출발했는디유..하면 불러들여! 한마디에 중도에 취소..원대복귀..ㅋㅋ
그렇다고 날짜 더 주는 것도 아닌..하루 이츨 그냥 날라가는거죠
물론 그렇게 많은 케이스는 아니었지만..한번 당하면 워낙 큰 내상이라 각인되었었죠..
하긴 제대하는넘도 잡아 ( 설득, 꼬심?) 며칠 더 굴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