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에 청나라와 묘족이 전쟁을 했는데
청나라는 반항하는 묘족을 밟아버리기 위해 14만 대군을 동원함
당시 청군의 편제는 이럼
팔기
원난 주둔병: 263명
청두 주둔병: 1762명
북경, 북부 주둔병: 6521명
진저우 주둔병: 2202명
시안 주둔병: 2041명
합계: 12789명
녹영병
쓰촨: 25267명
구이저우: 15388명
산간: 36643명
양후: 15949명
원난: 8097명
합계:101344명
팔기+녹영 합계: 114133명
보급병: 29597명
총합: 143730명
건륭제는 14만 대군이 출동하면 묘족을 쉽게 제압할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음
묘족은 산에 탑을 지어놓는데 그 탑이 어떻냐면
이런 모습이었음
탑이 워낙 단단해서 청군은 그냥 닥치는 대로 대포와 화살을 사격하면서 인해전술로 밀고 들어감 당연히 사상자는 엄청 나왔고
이에 원주민들과 청의 일부 장수들은 협상하자고 했지만 건륭제는 이 말을 하면서 반대함
국경 지역의 분쟁을 확실히 종식시키기 위해 대금천과 소금천은 영원히 파괴되어야 한다.
묘족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청군은 주민들을 닥치는 대로 학살함
그리고 금천 전역이 엄청난 사상자를 내고 평정되자 이렇게 말함
금천의 승리는 오로지 내 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