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최초의 대규모 화력전 '만령전투' - The Actual Case of Hwacha, Joseon's Multiple Rocket Launcher!
세조 13년, (1467년) 북방의 호족인 이시애가 동북면(함경도)에서 난을 일으켰습니다.
이시애가 끌어들인 익속군은 화약무기를 보유하고 있었고 실전경험도 풍부한 정예병사들이었습니다. 조정도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토벌군을 다량의 화약무기로 무장시켜 이시애의 군대와 맞서게 합니다.
In the 13th year of King Sejo (1467), Yi Si-ae (李施愛), a member of powerful local family, rose in rebellion at the Northeast Frontier District (Hamgyeong Province). The Iksok Force (翼屬軍) that Yi Si-ae led in the rebellion was an elite force with a lot of battle experience, possessing gunpowder weapons. To suppress the rebellion, the court also dispatched the government forces equipped with a large amount of gunpowder weapons.
이시애의 난 최후의 전투인 만령전투는 어유소 장군의 위장복 특공대 상륙침투작전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기록으로 남은 조선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화약무기 vs 화약무기 전투이기도 합니다. 총통 공격을 막기 위한 방패벽부터 방패벽을 제압하기 위한 총통 운용 그리고 화차의 등장까지. 한마디로 당시 화약무기 전투의 모든 것이 담긴 전투가 바로 이시애의 난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영상은 그중에서도 만령전투의 화력전을 배경으로 조선 초기 화약무기에 대해 살펴봅니다.
The Battle of Manryeong, the last battle of Yi Si-ae’s Rebellion, was famous for the camouflaged commandos’ amphibious infiltration of General Eo Yu-so (魚有沼). But the battle was also the first massive fire combat in the Joseon Dynasty. Many different kinds of (gunpowder) weapons, including the shield walls for defending against chongtong, chongtong for destroying the shield walls, and hwacha for significant damage, could be seen in the battles during Yi Si-ae’s Rebellion. Let’s dive into gunpowder weapons in the early Joseon period by focusing on the fire combat in the Battle of Manryeong.
임진왜란 당시에도 북방군은 여진족을 상대로 수시로 전투를 벌여서
밀리지 않을 만큼 정예화된 군대였으나...
북방을 비울 수 없어서...
지휘관들만 내려 보냈죠...
조선은 이미 연산군 이후 윤원형 일파의 부정부패로
군정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아무리 북방에서 날고 기던 신립이라 할지라도...
훈련도 안된 오합지졸들 데리고 전쟁하기는 많이 깝깝했을 겁니다...
거기에... 여진족과 대기병전을 즐기던 장수라...
유격전 대신 평지에서의 대회전을 생각할 수 밖에 없었던 것도
신립의 한계였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조선은 주민동원령을 통해 전쟁에 대비합니다. 이 시기 병력동원은 그 지역 관찰사와 절도사가 동원령을 내리고 중앙에서 장군과 소수의 군을 파견해 군을 지휘하는 형태가 조선의 군제입니다.
신립장군의 경우 소수의 기병을 이끌고 북방에서 내려와 충주 일대의 징집군을 이끌고 전투를 해야했죠.
그런데 이때는 군사제도가 특히 징집제도가 와해된 상태라 군사훈련 한번도 안받은 농민에게 창 한자루 들려준 상황입니다. 조선의 기병이 평원에서 상대 기병을 압도할 능력을 발휘해도 사실상 주력인 보병이 일본보병과 맞서서 기병이 휘저을 시간을 버텨줄 능력이 안됐기에 참패는 뻔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