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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12-25 13:46
[기타] 2차대전때 동남아에서의 일본군 행태
 글쓴이 : 노닉
조회 : 3,364  


1942년 2월 17일, 싱가포르에서 일본군 헌병대가 프라나칸(화교)들을 집결시켰다.
12세에서 50세까지의 화교 남성 약 6000명이 "반일 친영분자"로 간주되어
굴비처럼 묶인 채 창이 해변으로 끌려간 다음 기관총으로 학살되었다.
이들은 주로 공산주의자(라고 일본군이 생각한 사람들)나 영국 식민정부에서 근무한 전직 공무원들이었지만
12살짜리 공산주의자나 총독부 공무원들이 얼마나 있었을지는 모를 일이다.
싱가포르의 레플스 호텔은 고위 장교들을 위한 전용 위안소로 변했다.
위안부 여성들은 주로 강제로 끌려온 한국 여자들이나 길거리에서 잡아온 예쁘고 어린 화교 소녀들이었다.



수많은 말레이시아 사람들이 일본군의 선전에 넘어가 황군이 자신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리라 기대하고
작은 욱일기를 흔들며 일본군을 환영했다.
그러나 그것은 곧 전혀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났다.
한탕을 노리고 온 일본인 이민자나 밀수꾼들이 마약, 매춘, 도박 등 온갖 부도덕한 사업들로 활개를 쳤다.



네덜란드령 인도네시아에서는 항복 전에 유전을 파괴했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격분한 상태였다.
그 "복수"로서 거의 모든 백인 남성들이 총살 또는 참수되고,
그들의 아내와 딸들은 위안소로 끌려가서
"아침에는 병사 20명, 오후에는 부사관 2명, 밤에는 장교 2명"을 매일 상대할 것을 강요당했다.
딸이 도망가려 하면 어머니가, 여동생이 반항하면 언니가 고문을 당했다.
일본 육군이 성노예로 강제동원한 소녀와 젊은 여성의 수는 어림잡아 약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대다수는 한국인이었지만, 말레이인, 현지 화교, 필리핀인, 인도네시아인 여성들도 헌병대에 끌려갔다.
정복한 지역의 여성들을 군의 "자원"으로 소모하는 이러한 정책은
일본 정부 수뇌부의 명시적인 승인을 받아 이뤄졌다.



버마에서는 처음에는 수많은 버마인들이 독립을 기대하며 일본군을 반겼고
3만 명에 달하는 장정들이 버마 국민군에 입대했다.
그러나 일본군은 "열등한" 버마 국민군으로 하여금 장교들조차 일본군 이등병에게 경례를 하도록 강요하여
그들이 버마 국민군을 어떻게 여기는지 잘 보여주었다.



바탄 반도의 미군과 필리핀군을 지휘하던 에드워드 킹 소장이 항복하기 직전인 1942년 4월 9일에
나카야마 모토 대좌에게 휘하 병사들이 항복하면 정당한 처우를 받을 수 있을지 묻자
나카야마 대좌는 우리 일본군이 무슨 야만인인 줄 아느냐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그리고 미군이 항복한 직후부터, 일본군은 야만인이 맞다는 것이 입증되었다.
굶주리며 오랫동안 전투를 벌여 이미 지칠 대로 지치고 야윈 7만 명의 미군과 필리핀군은
바탄 반도에서 캠프 오도널까지 100km의 거리를
가진 것은 모두 빼앗기고, 굶주림과 갈증에 시달리고, 총검에 쉴새없이 위협을 당하면서 강제 행군하면서
7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군인은 절대 항복해서는 안된다는 사이비 사무라이 정신에 세뇌된 일본군들은
항복하는 모든 적군은 존중할 가치가 없는 버러지로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한 것은, 그들이 바탄 반도의 적군들이
빨리 항복하지 않고 오랫동안 저항하며 애를 먹었다는 이유로 몹시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싱가포르에 있던 영국군과 호주군 포로들은 북쪽으로 보내져
악명 높은 철도 건설 현장에서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각기병, 이질, 디프테리아, 뎅기열, 말라리아, 펠라그라 병으로 죽어가는 포로들에게
일본군들은 그들이 굶주리고, 목마르고, 모기에 물어뜯기고, 밀림의 가시덩굴에 상처입은 줄 뻔히 알면서도
끊임없이 "스피도! 스피도!"를 외치며 채찍을 휘둘렀다.
장교인 포로가 일본군 이등병에게 허리를 굽혀 인사하지 않으면
빰을 맞거나 칼등으로 구타를 당했다.
반항을 한 포로에게는 배가 터지기 직전까지 물을 강제로 먹인 다음
바닥에 눕히고 사지를 찍어누른 채로 경비병이 배 위에 올라가 널을 뛰었다.



동남아시아에서 전시 일본의 지배 하에 약 500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그 중 최소 100만 명은 베트남인들이었다.
베트남인들을 먹여 살려야 할 쌀과 곡식들이 연료용 알코올 제조에 쓰였던 것이다.
정당활동이나 언론의 자유는 고사하고, "반일적"인 태도를 조금이라도 보이면
(무엇이 "반일적"인지는 일본군 헌병대가 결정했다.)
헌병대가 잔인하고 원시적인 고문으로 무조건 보복했다.
일본화 계획에 의해 일본어와 일본 달력 사용이 강요되었다.
실업률이 급상승하고 물가가 폭등하여 일본군표가 휴지조각이 되면서
대동아공영권은 동남아인들에게 공빈(貧)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 앤터니 비버 "제 2차 세계대전" 에서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1607554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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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로맨스 20-12-25 13:53
   
그런 역사적 사실조차 받아먹은 잽머니때문에 간과해야하는 그네들의 역사관이라는게 ㄷㄷㄷㄷ
     
전격전 20-12-25 16:33
   
2222
나기 20-12-25 14:39
   
앤터니 비버의 "스탈린그라드" 축약본인
"여기 들어오는 자 모든 희망을 버려라" 를 읽어보았었는데
다른 전쟁사가들이 쓰는 전쟁사 책들의 내용이
대부분의 전술과 전략에 대한 전쟁사에 집중한다면

앤터니 비버는 다른 이들이 보지 못하는 전술과 전략에 대해서
날카로운 안목으로 서술하는 것은 기본이고
전쟁의 참혹한 현실을 빼놓지 않고 실감나게 표현합니다

앤터니 비버의 "제 2차 세계대전"도 시간내서 읽어봐야 겠습니다
방사능토끼 20-12-25 16:56
   
동남아가 후진국을 벗어나지 못하는이유.
역사를잊으니 미래가 있을리가있나.
워해머 20-12-25 19:05
   
진짜 미개했네요.... ㄷㄷ
쾌남 20-12-25 20:13
   
이 모든걸 불가역적으로 면죄부를 주신 바그네씨.. 종신토록 격리해야 할것.
     
드뎌가입 20-12-28 02:47
   
비가역
대팔이 20-12-25 23:18
   
하지만 현재는 모두 친일국가들...ㅋㅋ
그러니 쨉들이 괄시하는게 당연...
하지만 한국에게는 고개 뻣뻣이 세우는 동남아인들...ㅋ
초율 20-12-27 00:13
   
아직도 일본의 정서는..
한국따위가..라는 생각이 지배적임..

나조차도 최근에 와서야 ..
아..우리나라도 일본을 넘어설 수가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크레모아 20-12-27 11:06
   
알고 보면 나치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았을
일본은 전쟁 범죄를 감추기 위해서
오래 전부터 일본의 미화 작업을 해 왔었음.
그 효과로 일본은 친절하고 질서를 잘 지키는 선진 국가로 세뇌가 되었죠.
실상은 음흉하고 날조를 잘 하며 뒤통수를 잘 치는 악랄한 변태 새끼들이 일본의 얼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