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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1-09 12:16
[영상] 제2연평해전, 끝나지 않은 전쟁과 잊혀진 호국영령들
 글쓴이 : 다중이론
조회 : 720  


19996, 북방한계선(NLL) 남쪽의 연평도 인근에서 우리나라 해군 함정과 북한 경비정이 14분간 전투를 펼쳤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2002, 북한군이 서해 연평도 인근 북방한계선을 넘어 대한민국 영해를 침범하고야 만다.

우리나라 해군은 이에 즉각 대응했지만, 전투가 끝나고 난 이후 국민들로부터 늦장 대응이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전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는 비참한 현실만이 남게 되었는데...

 

그런데!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 먼저 조국 수호를 위해 희생하신 순국선열호국영령앞에 존경과 감사의 묵념을 올립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날 경제적으로 선진화되고 국방적으로 강인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음에 그 영광을 돌립니다.

연평해전은 우리가 느끼는 절정의 전쟁공포는 아니었지만 사태의 심각성과 중요성은 매우 강하죠.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후, 휴전을 통해 총성을 멈추고 동족간 피비린내 나는 혈전을 멈춘 상태입니다.

이런 상황에 약 70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한반도는 언제 터질지 모를 화약고와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19991연평해전이 발발했을 때만 해도 우리는 승리자였으며 북한군의 그 어떠한 도발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국군의 모습을 각인시켰습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피해는 있었지만 북한군에 비해 적었다는 평가죠.

 

우리는 2연평해전을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1연평해전은 승전국이자 적으로부터 우리의 영해를 강력하게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을 전세계에 알렸으니까요.

2연평해전은 북한군이 우리나라 해군을 상대로 한 제1연평해전의 복수라 말할 수 있습니다.

북한 경비정이 NLL을 침범하였고 이에 우리나라 해군 고속정 4척이 교전수칙대로 대응하기 시작했습니다.

450m 정도로 근접한 북한 해군 경비정의 기습 공격으로 시작되어 약 30분가량 교전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참수리 357호 고속정은 교전 후 예인도중 침몰하였고, 참수리호 정장을 포함한 승무원 6명이 전사당하고 19명이 부상을 당하는 인명피해를 겪게 됩니다.

북한으로 예인된 북한군의 등산곶 경비정 684’을 앞세워 선제공격을 진행했는데 제원사항으로 배수량 207, 전장 42m, 선폭 6.1m에 승조원 약 40, 최대속력 28노트이며 무장사항으로 85mm ZiS-S-53 전차포, 37mm M1939(61-K) 기관포, RBU-1200 400mm 어뢰 발사관을 장착했습니다.

이에 맞서며 교전 중 침몰한 우리나라 해군의 참수리함의 제원사항은 배수량 170톤에 전장 37m, 선폭 6.7m 그리고 승조원 총원 31, 최대속력 37노트이며 무장사항으로는 40mm 1(함수), 20mm 발칸 2(함미), M60 기관총 2정이 장착되어 있었죠.

 

참수리호에는 20mm 벌컨포, 30mm 기관포, 40mm 기관포와 M60 7.62mm 기관총을 장착하고 있었으나 북한군 함정은 85mm 전차포와 14.5mm 기관총을 장착하여 화력에서 월등했습니다.

그리고 북한군은 참수리호의 조타실로 85mm 포탄을 집중공격하였으며 이에 지휘부가 타격을 입으며 부정장의 지휘로 전투는 진행되었으나, 너무 약한 참수리호의 방어력으로 인해서 조타실 등 핵심 시설이 타격을 받게 됩니다.

전투는 불가능했고 집중공격을 받은 참수리호는 끝내 침몰하기에 이르죠.

 

당시 우리나라 정부는 북한 경비정이 선제 기습사격을 가하는 등 무력도발 행위를 자행한 것은 명백한 정전협정 위반이며 한반도에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로 묵과할 수 없다고 말하며 북한정부에 강력한 항의를 합니다(당시 월드컵 때문에(?) 보였던 정부 및 대통령의 행동은 실망감과 서운함이 있었지만...).

더군다나 세계인의 축제 ‘2002 한일 월드컵의 막바지가 한창이던 바로 그때 이런 무력 도발은 반드시 응징해야 했던 일이기도 하죠.

이 전투로 우리나라 해군은 6명이 전사했고 19명이 부상을 당하였습니다.

6명의 전사자들 중 4명은 전투 중 사망하였으며 1명은 함체 수색 중 사체로 발견되었고 1명은 부상으로 후송된 후 치료 중 사망합니다.

 

하지만!

 

2연평해전은 마치 우리 해군의 패전처럼 보여지며, 사상자들에게 치욕과 같은 일들이 벌어지게 됩니다.

전사자 6명을 공무중 사망한 것으로 처리하며 순직자로 분류합니다.

공무중 사망한 것이기 때문에 보상금도 소급적용되고야 말죠.

그들의 비참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생존한 병사들은 포탄이 터지고 총탄이 빗발치는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고 전투를 벌여 북한군을 북쪽으로 쫓아냈습니다.

전투 직후 정부는 이 사건을 서해교전으로 명명하며 승전이 아닌 남북 충돌의미를 담았죠.

지금은 전역하고 당시 전투에서 생존한 이해영 예비역 원사의 증언은 가슴이 아플만큼 잔혹했습니다.

머리 부위 피부가 탄에 맞아 찢어졌고 꿰맸는데 8일 만에 국군수도병원에서 내쫓기듯 나왔습니다. 실밥 겨우 뽑고 마음 안정도 안 된 나를 바로 2함대 의무대로 보내더라고요. 일반 수술 환자도 그런 대접을 하진 않습니다. 당시 군 내부에서는 암묵적으로 우리를 패잔병으로 취급했습니다.”

그리고 또 이렇게 말했습니다.

트라우마 치료라고는 충남 계룡대에서 군의관에게 진료 1번 받은 것 뿐이에요. 트라우마 치료 기록이 있으면 오히려 보직을 제대로 맡지 못할까 봐 걱정부터 했습니다.”

 

군내부에서의 대우는 생존자들에게 큰 상처가 될만큼 모질었고 냉정했다고 합니다.

1연평해전의 결과를 비교하며 승전병이 아닌 패전병의 눈치를 봐야 했다고도 합니다.

한 언론사를 통해 공개된 또 다른 생존자의 인터뷰가 있습니다.

이철규 상사의 몸에는 당시 교전으로 인해 파편 11개가 박혀 있으며 연평해전 직후 국군수도병원에 이송돼 파편 제거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의 허벅지를 찢어놓았던 탄두 하나와 파편 30여 개를 빼냈지만 아직도 그의 몸 곳곳에는 쇳조각이 박혀있죠.

교전 다음날 위문을 온 사람들이 사진을 찍는다며 웃어주세요라고 말했으며, 보훈등급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간 관련부처에서는 예산낭비라며 비아냥거리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은 삐딱하기만 했으며 수차례 수술을 견디고 부상을 이겨낸 이들에게 돌아온 인사는 보상금 얼마나 받았느냐는 물음이었습니다.

패잔병 취급을 받았던 제2연평해전의 생존자들은 숨어서 울 수밖에 없었죠.

 

2연평해전을 교훈 삼아 우리나라 해군은 ‘1997년 한미연합사에서 제정된 교전규칙을 적극응전 개념으로 수정하기에 이릅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당시 우리나라의 피해보다 북한군의 피해가 더 컸다는 사실이죠.

대파된 북한의 경비정이 기동불능 상태로 내몰렸고, 13명이 사망하고 25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패전이라고 알려진 사실이 다른 평가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20084월에 우리나라 정부는 서해교전을 제2연평해전으로 명명했으며 이와 동시에 제2연평해전 추모식을 정부기념행사로 승격시켰습니다.

주관 부서도 해군 2함대 사령부에서 국가보훈처로 옮기며 그 의미를 강화시키기에 이르죠.

2015년에는 제2연평해전에 대해 국방장관이 승전으로 규정하였고 20182연평해전 전사자 보상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을 의결하게 되었습니다.

비로소 국가가 예우와 도리를 다할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래서!

 

호국영령이란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명예로운 영혼을 뜻하고 있죠.

지금부터 불러드리는 고귀한 이름은 우리나라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을 표하는 마음으로 6명의 호국영령의 이름을 한분한분 불러드리겠습니다.

참수리함 정장 윤영하 소령, 조타장 한상국 상사, 병기사 조천형 중사, 병기사 황도현 중사, 내연사 서후원 중사, 의무병 박동혁 병장.”

북한군의 도발을 막고 서해 바다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영령들에게 진심 어린 감사를 드리며, 감히 말하건데 전사자와 생존자 모두 우리나라의 영웅이십니다.

 

2007628일 참수리 고속정을 대체한 차기고속함 윤영하함이 진수되었고 2009923일 한상국함과 조천형함이 진수, 20091211일 황도현함과 서후원함이 진수, 2010728일 박동혁함이 진수되어 우리나라 영해를 강력하게 지켜내고 있습니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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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l로 21-01-09 21:21
   
그들의 처우가 패잔병 취급이라서 그런것만은 아닙니다.
1차해전이 확실한 승전이었어도 당시 2함대 사령관이자 승전의 주역이었던 박정성 제독은 제1차 연평해전 네 달 뒤 통상 1년 에서 1년 반 정도인 함대 사령관 임기도 채우지 못하고 해군본부 대기로 인사발령이 났습니다.
그냥 나라를 지킨게 죄인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