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00년대 초반에 군복무를 했고, 끌려 가기보다는 내가 간다는 의미로 해병대에 지원해서 군대 복무를 마쳤습니다.
훈련은 포항에서 받았고, 자대는 해병 6여단 백령도였습니다. 당시 해병대에는 '오도'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어원은 알 수 없으나 군대 용어가 대부분 일본어에서 온 것이라는 것은 대충 알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좋은 뜻은 아닌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른바 짬이라는 것이 호봉 별로, 원래 호봉이라는 말은 1년을 말하는데 해병대에서는 매 달을 한 호봉으로 봤습니다.
이병은 보는 앞에서 물을 마실 수 없고, 병장들 수발을 들어야 했고, 세탁기가 있어도 손빨래를 해야 하는 등 말도 안 되는 '법칙'들이 있었습니다.
폭력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제가 덜 맞아서 그렇게 느꼈을지도) 분위기는 상당히 폭압적인 부분이 컸습니다.
당시 저는 참는 것에 대해 공부하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선임들이 때린다고 해도 그 이유를 저에게서 찾으려 애 썼습니다.
사실 저는 정말 군생활 할 때 안 맞았습니다. 이병 때 아주 잠깐 이유 없이 맞은 것 말고는 상병까지 거의 맞아 본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대하고 동기들 말을 들어 보니 실제로 그렇게 폭력이 없진 않았다고 하더군요.
여하튼 후임들이 배신을 해도 후임들의 잘못을 탓하지 않았고, 선임들의 부당함에도 속으로만 생각하고 반항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병장이 돼서는 제가 생각했을 때 부당했던 것은 다 풀어 줬습니다. 이른바 해병 병장이 되면 오도를 만들 수도 풀 수도 있었습니다.
병장에 오를 때까지 온갖 부조리를 다 겪고, 심지어 꺾기기 위해서 삶은 계란을 매일 한 판씩 강제로 먹거나 물 5 리터를 원샸하기도 했습니다만 병장 되고 나서 다 풀어 줬습니다.
그랬더니 상병선에서 반발하더군요. 그래서 우리 소대에 한정에서 풀어줬습니다.
가장 반대가 심했던 동기들은 바로 이병 때 가장 군생활 못 한다며 늘 혼나고 맞았던 친구들이었죠.
어이가 없어서 굳이 그렇게 해야겠냐고 물었더니 당한 만큼 갚아 줘야 한다고 하더군요.
오도에 따르면 병장은 훈련 나갈 때 군장에 아무 것도 넣지 않고 신문지로 모양만 잡아야 했고, 이병은 병장들 군장까지 군장에 넣어야 했고, 물도 방독면 주머니에 두 패트병씩 넣어 다녀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 때는 분위기가 풀어 줄 것은 풀어 주고 병장이나 고참이 모범을 보이자였습니다. 그래서 병장 때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후임은 후임다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고, 선임에 대해 최소한의 예의만 지키면 평등하다고 여겼습니다.
해병은 병이라며 병이 주도해서 열심히 훈련과 근무에 임하는 것이 가장 모범적인 군대라고 그 때는 생각했었습니다.
저 때는 그랬습니다.
어느 시대가 되든 군대는 국민을 위해 가족을 위해 나라를 지키며 임전무퇴의 마음으로 나라를 지키며 맡은 바 임무에 대해 전문성과 적극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이 지켜진다면 어떤 변화도 상관 없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