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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2-02 16:47
[영상] 뉴스멘터리 전쟁과 사람 [25회], 조선과 후금의 전쟁 정묘호란
 글쓴이 : 김님
조회 : 1,149  



여담으로 24회는 코로나19전쟁이라고 해서 코로나 바이러스 내용만 계속 나와서 안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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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빵빵 21-02-02 17:31
   
인조의 업적이뭘까 ?
     
땡말벌11 21-02-02 17:48
   
인조의 업적
1. 대동법 실시
2. 만주와의 민간무역 공인
3. 연등 9분의 법을 제정하여 세제 합리화
4. 총융청, 수어청 등을 신설함
5. 북변 방위와 연해 방위를 위하여 북방에 여러 진을 설치

인조는 선조의 5남에 아들 즉 선조의 손주
광해군은 인조의 둘째 작은 아버지

광해군의 외교정책을 따르기엔 반정 정권으로써의 입지가 줄어드니 정묘호란 이후에도
반금친명을 내세울 수밖에 없었음.
솔직히 인조도 후금과의 전쟁을 생각해서 훈련도감을 위시한 여러 부대를 창설하여
그 규모가 수만에 이르렀으나 수성을 위주로 한 방어 전략으로 대부분의 주력이 각 지역 성에
포진하였지요. 즉 선조도 그렇지만 인조도 전략적으로 오판한 것입니다.
고려 현종과 같이 야전에서 결판을 낼 수 있는 준비와 이후의 대책이 없었다는 것이 아쉽죠.
          
땡말벌11 21-02-02 17:50
   
선조도 나름 현명한 왕이었다고 하는데 판단 미스가 많았던 것이죠.
대표적인 것이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을 따블 승진으로 전라좌수영의 장군으로 임한 것도 선조가 상당히
고심하였고 진보적으로 대비를 하였다는 것을 보여주죠.
판단 미스 중에 최고의 판단을 한 것이죠. 유성룔의 입김이 들어갔지만
               
대충123 21-02-03 00:13
   
정철시켜서 뒤에서 조종해서 사람들 싹쓸어버린 선조 ㅋㅋ
왜란때 자기는 도망치고 광해군이 커버친게 쪽팔려서 왜란후 광해군을 괴롭힘
이순신이 노량해전에서 전사 안했으면 아마 선조한테 억울하게 죽었을듯
원래 사람이 잘한일 잘못한일이 있는거지만
선조가 현명한 왕이었다는건 말이안됨
               
사커좀비 21-02-03 12:59
   
선조, 인조, 영조 등은 똑똑하기는 했습니다만...
현명하다고 하기에는 좀 많이 찌질했습니다..
선조와 영조는 영특하기까지 해서 정치력이 거의 만렙수준이었습니다만...
인조는 솔직히 무능해서 암군에 가깝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제가 선조, 영조를 찌질하다고 하는 이유는 아들을 견제했던 못난 아비들이어서입니다.
참 찌질했죠...
뭐... 권력은 아들과도 나누지 않는다는 말이 있긴 하지만...
진짜 전제군주가 말이죠...
광해군이나 사도세자가 삐뚤어진 건 순전히 이들 못난 아비들 때문입니다...
위에 적어주신 인조의 업적 대부분은 이미 광해군때 다 만들어졌거나 그전에 구상되어 있던 것들입니다...
제일 불쌍한 건 사도세자...
찌질한 아버지가 노론의 눈치때문에 문무에 능했던 젊은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이다니요...
세계 역사에 조카나 형제를 죽이고 찬탈한 군주는 여럿 보았으나...
아들을 죽인 왕이 또 있었는지 모르겠네요...
도나201 21-02-03 00:21
   
선조 인조..

둘다 왕권만을 생각하므로 서로 두패를 나뉘어서 당파싸움을 부추긴 두왕임.
어떤면에서는 현명하다고 하겠지만,

조선왕조역사로 볼때에는 최악의 왕들임.

우선은 가장 최악인 상황이 보고싶은 정보만을 믿었다라는 것이 가장 최악의 상황임.
마치 일본이 2차대전때 모의 대전에서 분명히 패전결과를 나왓는데도.
강행했던 것 처럼 말이죠.

두왕  모두 보고 싶은 것만 봤다라는 것임.

그렇다고 저때 조선시대의 정보망은 나쁘지 않은 편이였음.
이미 백성이 먼저 알고 평양성을 먼저 버리고 떠났다라는 것은
정보체계의 속도는 굉장히 빨랐다라는 이야기임.

정확한 정보는 속속히 도달했었고,
그에 따른 상황판단이 보고싶은 것만 봤다라는 것임.

특히 강홍립의 존재를 알고 있었음에도 . 대비자체가 개판이였다라는 것.
이미 모든것을 알고 있었던 와중에..  강홍립은 /빠른 점령만이 오히려 피해를 줄일수 잇다라는 생각에
모든 정보를 제공해줌.

병자호란이 생각보다 전투기간이 짧았고 성함락이 빨랐던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었음.
빠른 진격로확보에 후금은 모든 전력을 투자했었고,

문제는 그래도 정신못차린 조선정권에 있었음.
대신들이 가장 붕 신때가 바로 인조시기였음.

마치 ....국정양분으로 인한 세싸움을 부추김에 그대로 밀고 나갈수밖에 없었고,
상대진영의 문제점 보강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음.

인조의 후에 는 더 극심한 양당체계를 갖추면서 왕권유지에 상당한 골머리를 앓게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