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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2-09-09 18:43
[영상] 2차세계대전 동부전선에서의 전투
 글쓴이 : 레옹레옹
조회 : 1,373  

살아있는자든 죽은자든 모두가 길이 남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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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군43기 12-09-09 20:02
   
뭐..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재미삼아 하는 생각이..

독일이 2차대전때 큰피해 없이 유럽을 장악했을때..  거기서 무리해서 소련이나 영국침공을 하기보다..

공업등 내실을다져서  산업기반을 더 쌓고 방어준비를 한후에 차근차근 유럽의 중립국들을 점령해가고

그렇게 소련을 제외한 유럽대륙을 완전 정복한후에 그 후에 러시아를 침공했으면

결과가 많ㅇ ㅣ달라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드네요.
     
수한무 12-09-09 21:12
   
무리를 안 할 수가 없었습니다.
히틀러는 폴란드 및 프랑스 지역을 석권하였지만 원유가 생산되는 아랍지역을 영국으로 부터 획득하지 못했습니다.
원유 없이는 산업기반을 쌓을 수도 내실을 다질 수도 없어 아무 것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우크라이나까지 진격, 확보하려고 했던 거지요.
소련의 지연전에 말리는 바람에 소련과 싸운게 아니라 동장군과 싸워서 수 백만의 사상자를 내고 패퇴한거지요.
     
데스투도 12-09-09 21:13
   
가장 큰 문제는 무분별하게 전선을 확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뭐 이건 이탈리아의 공헌도 지대했으니 동맹국을 잘못 받아들인 탓도 있다고 해야겠죠. 유고야 군사 쿠테타가 일어났었으니 어쩔수 없다고 치고 말이죠. 어쨋던 아프리카를 치던 소련을 치던 둘 중 하나만 선택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user386 12-09-09 21:46
   
1938년 독,소 불가침조약 체결 당시에도 이미 이 두나라는 사상적, 정치적으로 서로 용납이
안되는 사이로 마치 링위에 올라와 시작종 울리기를 기다리는 권투 선수들 같은 입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 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히틀러나 스탈린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고, 어차피 유럽의 패권을두고 한
판 붙을 것 이라면 기습공격이 훨씬 유리하다는 것이 히틀러의 생각이었고 참모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는 1941년 독일의 대소련 기습전으로 이어졌죠.
          
그래그래 12-09-09 21:53
   
맞습니다. 채임벌린과 달라디에가 나치스를 공산주의 방패막이로 삼았었죠.

독소불가침 조약은 영국과 프랑스 쪽에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그래 12-09-09 21:51
   
소련의 잠재력을 너무 과소평가한 것도 히틀러 몰락의 가장 큰 원인 중하나라고 합니다.

핀란드와 겨울전쟁에서 쩔쩔매는 소련군을 보고 한 입거리도 안된다고 생각한거죠.
실제 독소전 초반에 소련군의 전투력은 보잘것 없었죠.
무선통신망도 갖추지 못했고 차량 또한 거의 없었기에 기동력 또한 형편없었습니다.
근데 전쟁을 거치면서 이 형편없는 군대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완전 기습으로 인해 소련이 패퇴를 거듭했지만
근데 이 소련이란 나라의 잠재력이란게 정말 무시무시했다고 하더군요.

손실회복 능력에서 독일과 소련은 애초에 게임이 되지 않았습니다.
독소전쟁 내내 독일군 지휘부는 소련군의 예비대 동원 능력에 대한 오판을 거듭합니다.
실제로 소련의 예비대 동원능력 생산능력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10개 사단이 전멸해도 바로 당일 10개 사단을 동원할 수 있었다라고 읽은 기억이 납니다.
당시 독일군이 보유하고 있던 277개 사단가운데 194개가 동부전선에 있었지만
소련이 스탈린그라드 일대에 국한해서 반격 작전에 동원한 병력 규모를 보면 병력만 114만3500명이고 야포 1만 3500문 전차 894대 였습니다.
당시 소련의 전차 생산능력은 월 2000대로 당시 유럽을 장악하고 있는 독일의 두배였습니다.

1943년 소련군의 4단계 반격작전에 동원된 병력만 469만 6100명으로 소련의 손실병력은 35만 8000명(7.7%)이었고 독일의 손실병력은 44만 8000명으로 독소전 후반으로 갈수록 전투력에서도 독일군을 압도하고 있었습니다. 웃긴건 이당시 독일 지휘부는 소련 예비대가 고갈되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스팀롤러라는 별명이 그냥 생긴 것은 아니더라구요.
세계랑 맞짱을 뜰 수 있는 미국과 2강 구도의 힘겨루기를 하던 소련이니까요
          
데스투도 12-09-09 21:59
   
독일이 전쟁 시기를 너무 늦게 잡고 장기전을 대비해 공장과 시설을 확장하던 것도 한 목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 기반 시설을 다시는 것이 끝난 시점이 43년 중반이니까, 이미 전세가 확 기운 이후에 독일은 물량이 터져나오기 시작한 것이죠.
               
그래그래 12-09-09 22:19
   
원래 계획초안에서는 41년 5월에 침공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그리스와 유고침공에서 시간을 5주가량 낭비했죠
6월에 개전을 하면 겨울이 오기전 4개월안에 소련군을 괴멸시키고
볼가에서 아르헨겔스크까지 확보하는게 독일군의 목표였다고 기억합니다.
(얼마전 정글의 법칙에서 이 지명이 나오더군요 ㅋ)
그리고 우랄산맥넘어 공업지대를 파괴하는 것도 시도할 생각이었다고 하더군요.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독일군 지휘부는 소련군이 '뇌사'상태라고 봤답니다.
영국과 프랑스 또한 개전전에 그렇게 판단하고 있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히틀러때문에 삽질한것도 크죠.
스탈린그라드나 모스크바전선에서 현지사수를 고집한것들 등등
괴멸을 자초했죠.
월하은랑 12-09-09 20:12
   
속전 속결을 노렸다고 보기엔;;

확실히 소련 침공은.. 조금 무리수가 있는 것 같아요

양측 모두 수십만의 사상자가 났던걸로 기억읋 하고 있습니다만.

방어하는 소련의 입장이야 어쩔수 없다지만

무리해서 공격을 감행했다는 건..

역시 히틀러의 정신에 뭔가 결함이 있지 않고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ㅇㅂㅇ
     
데스투도 12-09-09 21:11
   
대전중 히틀러의 주치의가 히틀러에게 처방하던 약물들을 보면 대부분 흥분제와 마약성분이 다수이죠. 약간 맛이 간 인간을 더 맛이 가게 만들었다고나 할까요? ㅇㅅㅇㅋ
          
그래그래 12-09-09 23:22
   
그런 일도 있었군요
거참 히틀러란 인물은 ...뭐라 말을 해야 할지 ^^
데스투도 12-09-09 21:09
   
솔직히 2차대전은 독소전을 주변국들이 지원한 전쟁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니.. 스탈린이나 히틀러가 조금만 유럽 동부에 대한 욕심을 버렸더라도 영국을 완전히 제압하기 전까진 독소전이 안 일어날 수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20~ 30년대경에는 제법 사이가 좋은 독일과 소련이었으니까요.

서유럽과 아프리카&중동을 완전히 지배할 수 있었다면 석유의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을테고 40년 경이면 이미 판터와 티거를 개발 중이던 시기이니 강력한 중전차들을 대량 배치하거나 당시도 강력했던 공군을 더 강력하게 만들 수 있었겠죠. 소련에서 꾸준히 들여오던 석유나 금속들도 비축할 수 있었을테고 말입니다.
   
한가지 의문인 것은 독일이 왜 전략 폭격기의 개발에 관심이 없었는지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전략 폭격기들이 제법 있었다면 독소전 초기의 독일 공군전력을 생각할때 우랄산맥 동쪽으로 이전한 군수공장에 막대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었을텐데 말이죠.
     
Ciel 12-09-09 21:31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경험이 오히려 독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물론 조종사들의 실전경험을 쌓는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사실 스페인 내전에서는
전략폭격기를 운용할 만한 표적도 이유도 없었으니까요. 그리고 대전초기 슈튜카가
효용성면이든 심리적측면에서든 활약을 하다보니 소홀해진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구요.
          
데스투도 12-09-09 21:48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렇게 전선에서 군수공장까지의 길이가 길어질 것이라는 건 예상 못했을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크라잉밥통 12-09-09 21:16
   
아마도 히틀러가 영국을 신속하게 점령했다면 독소전의 양상은 사뭇 달라졌겠죠. 그런 점에서 2차대전의 핵심 키포인트는 역시 영국 공방전이 아니었을까...만약 영국까지 점령당해 위성국이 되었다면 미국이 참전할 명분을 주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근데 하나 더 궁금한 건 히틀러는 왜 영국에 대한 상륙작전 등은 시도조차 못해봤는가 하는 거고, 또 하나는 영국을 내버려둔채 제2전선을 펼쳤어야만 하는가 하는건데....영국이야 해공군이 강하니 상륙전이 쉽지 않았겠지만, 소련 침공의 경우 소련에서 배후를 칠 거라는 명확한 징조가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 이해가 안되기는 함. 자원문제라면 영국과 함께 중동과 아프리카쪽에 좀 더 집중했어야 했는데..

아마도 근세이후, 특히 나폴레옹 이후 유럽인의 머리속에 자리잡은 러시아에 대한 두려움이 히틀러를 조급하게 만든 건 아닌지...
     
데스투도 12-09-09 21:20
   
스탈린이 노골적으로 동유럽에 대한 욕심을 내면서 독일과 소련의 관계가 파토났다고 하더군요. 동유럽에 대한 독일과 소련의 협상이 깨진뒤 바로 독일이 기습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당시 동유럽 국가들이 모두 독일측이었으니 이 정도면 이미 소련이 독일을 공격할 징후로는 명백하다고도 할 수 있죠.
          
크라잉밥통 12-09-09 21:26
   
원래 독-소관계야 적과의 동침이었으니 오래가지는 못한다고 봤지만, 독일이 소련침공 의사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소련의 스파이들이나 외교관들조차 조만간 독일이 침공할 것으로 보고했지만 스탈린이 이걸 무시한 이유가 뭘까요.. 이것도 음모론일라나...암튼 독-소관계가 소원해지긴 했지만 침공의사를 드러낸 건 독일이 먼저였고, 스탈린은 침공의사를 묵살했는데...이것도 참 미스테리함요..
               
데스투도 12-09-09 21:41
   
애시당초 히틀러의 계획이 우랄 산맥 전까지의 지역을 자국의 생활권에 두는 것이었죠.

연합국과 전쟁이 터지기 전의 계획은 영,프와 동맹내지는 중립의 약속을 받고 소련을 공격하는 것이었으니까요.

덩게르트에서 영국군이 무사히 철수 할 수 있었던 것도 영국과의 화해를 바라던 독일측의 내심이 어느정도 영향을 끼쳤죠. 즉 소련에 대한 독일측의 입장은 말할 것도 없지요. 

스탈린이 히틀러를 굳게 믿은 건 미스테리한 일이지요. 뭔 생각이었는지.. 근데 그 당시 수뇌부들이 첩보기록중 자기들이 믿고 싶은 것만 믿은 건 영,미측이나 독일도 별다를 건 없습니다.

연합군측만 하더라도 오버로드 작전 전에 독일의 주력 전차를 판터로 교체 중이라는 첩보를 소련 측으로 부터 입수했지만 쿠르스크에서 보여줬던 결함투성이 전차를 주력 전차로 삼을 이유가 없다는 생각에 의도적으로 무시했다고 하더군요. 덕분에 제대로 대비책을 수립 못한 연합군은 노르망디에 상륙한 이후 독일 전차부대에게 엄쳥 썰리는 일이 발생했고 말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자원을 독일로 꾸준히 보내고 있던 스탈린은 독일의 자원이 부족한 탓에 영국과 전쟁하는 중에 절대 먼저 소련을 공격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그래 12-09-09 22:36
   
제가 읽은 책중에 하나(지은이가 러셀하트였나??)는
독일군의 역정보가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독일군이 대규모로 동유럽으로 이동하는
것은 이미 소련의 정보망에 포착되고 있었는데 독일정보부는 기만공작을 통해
영국침공을 위한 기만작전의 일환이라고 믿게 했답니다.
실제로 영국침공후 점령지 분할에 대한 논의를 소련측에 하기도 했구요.
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위에 님께서 말씀하신 믿고 싶은 정보만 믿은 스탈린의
오판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독소전 개전 초기에 충격을 받은 스탈린이 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아
참모들이 찾으러 갔는데 그걸보고 쿠테타인줄 알고 스탈린이 시껍했다더군요 ㅋ
학군43기 12-09-09 22:35
   
그럼 독일군의 가장 결정적인 패착은 무엇일까요..
     
그래그래 12-09-09 22:41
   
제가 다른 분들에 비해 아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태평양 전쟁에서 일본의 패인처럼 결국은 독일과 소련의 총체적인 국력의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만 총력전에서는 결국 그렇게 결론이 나는게 아닐지...

이번 휴가 때도 볼만한 원서 몇권을 골라 사전뒤져가며 읽어 봤는데
(휴가를 계기로 동부전선 전사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독소전은 전격전을 내세운 독일군이 물량과 정신력 그리고 단기간에 빠른 성장을 보인
소련군에 완패한 전쟁으로 보여졌습니다

몽고메리 장군의 저서나 기타 2차대전 관련 서적들을 보면
결국 독일은 상대를 너무 과소평가했고 건드리지 말아야 할 상대를 건드렸다고 결론을 내리더군요.
          
학군43기 12-09-09 22:46
   
음..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 독일 산업자체만으로도 어느정도 규모가 있었고 오스트리아랑 프랑스 까지 먹으면서  규모가 상당히 커진걸로 알거든요. 오스트리아같은경우는 산업뿐아니라 병력자원까지 확보되니..

동시에 소련 영국 미국 이렇게 건드리지만 않고 하나씩 잘 각개격파했으면 뭔가
다른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 싶네요.. 

유럽을 장악해버리면 미국이 아무리 날고기어도 단독상륙엔 한계가 잇을테니깐요.
               
그래그래 12-09-09 23:01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

이것은 그냥 개인적인 생각인데
당시 독일과 맞짱을 뜰수 있는 산업력이 뒷받침 되는 군사력을 지닌 나라는
영국,프랑스 정도였고 (독일은 1차대전 때 영국,프랑스, 러시아를 상대로 거의 혼자 싸우다 시피했죠) 나머지 나라를 다 토탈해도 소련이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거라고 봅니다. 인구수나 생산능력면에서 소련은 그만한 능력을 갖고는 있었다고 합니다. 독소전이 2차대전의 유럽전선에서 거의 70%를 차지했다고 하니까요.
그리고 독소전에서도 소련은 개전 전에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고 개전후 북유럽의 자원을 확보한 독일군, 이탈리아, 루마니아,핀란드 등 북부 동부유럽국가에도 다구리 맞고 있었고 2차대전 후반에는 유럽전체를 군사력으로 제압하는 것으로 볼때 그리 쉽게 당하지는 않지 않을까요?

영국을 점령한 후에 점령국에 대해 충분히 시간을 갖고 통치기반을 다졌으면
어찌되었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 님의 말씀이 맞을 수 있을 거 같습니다.
무력점령 후에도 점령군이 진주해 있어야 하기에 통치기반이 확립될 때까지 병력 소모가 있을 것이고 산업생산력을 독일본토 많큼 끌어올리는데도 수십년정도 걸리지 않았을지

암튼 이거 동부전선 전사 꽤 재미있네요 ㅋ
혹시 추천서적이 있으면 추천좀 바랍니다
                    
데스투도 12-09-09 23:45
   
글랜츠의 '독소전쟁사1941~1945' 추천합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이분이 독일쪽 관련해서는 상당한 권위자인 2명중 한분인 걸로 기억합니다.
     
데스투도 12-09-09 23:53
   
일단 이데올로기 자체가 잘못된 이념을 가지고 전쟁을 시작한 것 부터가 에러였죠. 이거떄문에 군 사기도 제법까먹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부전선의 참상에서 소련인들을 학살하는 것을 정당화 하기 위한 사상교육에도 상당한 시간을 투자해야 했고요.

또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러시아 각지역의 민간인들을 한편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이 인종주의 정책으로 날려먹어 그 넓은 러시아 각지에 파르티잔들이 횡행하게 만들어 안그래도 부실한 보급선을 더욱 위태롭게 만들었죠.

또한 히틀러는 작전을 짤때 운을 필수 요소로 삼아 작전을 짠것으로 보여집니다.  너무 낙관적인 생각으로 일관했다고나 할까요? 그나마 뛰어난 전쟁대학 출신의 장군들의 역량에 힘 입어 어느정도 성과를 내기는 했습니다만, 이 장군들의 말을 듣지않고 자신의 고집대로 밀어붙인 것도(예를 들면 만슈타인이라던가.. 만슈타인 이라던가.. 만슈타인이라던가.. ;;;;) 큰 원인 중 하나 였습니다.
천리마 12-09-11 13:34
   
역시 역사는 만약 이라는 가정을 해서는 않되는 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