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레미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는 문명의 발전에서 지리환경적인 요소를 중시하는데 그 요소 중 하나가 해당 지역에 노동력을 제공할 가축이 있는가임.
이를테면 아메리카 대륙이나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은 유럽에서 전래되기 전까지 소나 말 같은 가축이 없었음. 물론 이 지역 사람들이 가축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님. 인류는 굉장히 다양한 방법으로 동물 사육을 시도함. 그게 경제적 이유건, 호기심에서건 주변 동물을 길들이려 시도한다고 함. 하지만 아메리카 대륙이나 아프리카 등에 있던 들소나 얼룩말따위는 가축화에 실패하였음.
어느 동물은 먹이가 특이해서 경제성이 없거나, 어느 동물은 너무 난폭하거나, 어느 동물은 번식방식이 특이해서 사육환경에서는 새끼치기가 어렵거나....
즉 어떤 짐승이 다른 가축화로서의 요건을 다 갖추어도 무엇 하나만 빠지면 결국 가축화가 불가능 함.
이를 제레미 다이아몬드는 나무판자를 이어 만드는 물통에 비유함. 가축화에 성공하려면 저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야 함. 그리고 저 물통의 나무판자들은 가축화에 필요한 여러 요소들임. 그 요소 중 하나라도 모자라면, 즉 나무 판자가 하나만이라도 높이가 낮으면 물통의 물을 가득 채울수가 없음.
즉 1번만큼 물을 채워어야 하는데 2번처럼 중간중간 짧은 판자가 섞여 있음 절대로 물을 1번 만큼채울수 없는거임.
스텔스기라는 것도 마찬가지임. 사실 스텔스기는 생각보다 칼로 두부 자르듯 완벽하게 '스텔스기와 비스텔스기'로 구분짓기는 어려움. 하지만 각 나라마다 정도는 달라도 다들 '최소 이정도 보다는 작은 RCS를 갖춰야 스텔스기지.'라고 생각하는 수준이 있기 마련임.
그런데 RCS에 영향을 주는 요소는 굉장히 많음. 익히 알려진 형상이나 전파흡수물질뿐만 아니라 각종 통신용 안테나나 피토튜브를 위시한 대기측정장비도 모두 스텔스에 영향을 줌.
F-117 개발 프로젝트 책임자이자 스컹크 웍스의 2대 대빵이었던 벤 리치가 쓴 책에 보면, F-117 개발 중 나사가 단 몇 미리 덜 채워진것 만으로 레이더에 포착 되었다거나, 캐노피에 전파가 투과해 들어와서 조종사 헬멧이 적 레이더에 포착되었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나옴. 심지어 비행중에 속도측정을 위한 피토튜브에 얼음이 끼면 안되기에 보통 여기에 열선을 넣는데, 117 개발도중 열선이 작동하니까 RCS 특성이 바뀌어서 이걸 해결하기 위해 골머리를 썪어야 했단 소리도 나옴.
'까짓것 피토튜브는 그냥 두면 되는거 아냐?'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러면 위에 설명한 나무물통의 나무 판자 하나가 짧아지는 거임. 다른 모든 나무판자가 다 20cm 이어도 피토튜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10cm 나무 판자를 덧댔다면 결국 그 물통에는 물을 10cm 만큼 밖에 못채우는 셈.
그래서 스텔스기를 만들려면 엄청나게 많은 요소를 생각해야 함. 이는 설계로 끝나는게 아니라 20년, 30년 넘게 이를 유지하기 위한 정비방법 개선이나 유지비 절감도 고민해야 함.
사실 그런점에서 볼 때, KFX는 엄연히 스텔스기가 아님. 외형은 스텔스기로서의 조건을 여럿 갖추었지만 예산과 기술확보 문제로 곳곳에 20cm짜리 나무찬 대신 10cm 짜리 나무판을 붙인 물통임.
즉 1번이 아닌 2번인 상태인 셈임.
하지만 그럼에도 흔히 표현하는 4.5세대기치고는 매우 특이한 선택을 했는데, 이를테면 내부무장을 위한 공간을 비워두었고 기체형상도 곳곳에 스텔스기를 염두에 둔 설계를 해 놓았음. 막말로 4.5세대기면 3번 물통처럼 10cm 나무판만 써도 되는데 곳곳에 20cm짜리 나무판을 굳이 사용한, 그런 모양새임.
과거 국과연 등은 장기적으로 블록3등을 제안하여 짧은 나무판을 긴 나무판으로 교체할거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왔음. 또 실제 기체의 설계를 보면 아무리봐도 이건 스텔스기 만들려다가 일단은 보류했단 느낌임.
그럼에도 왜 블록3에 대해 전적으로 말하지 않냐하면, 개인적 생각으로 어른들의 사정이 끼어있기 때문임.
국방계획은 예산도 엄청 잡아먹고 그래서 보통 5년 단위로 길게 잡음. 이걸 중기 계획이라하고 이것보다 더 길게 장기계획도 잡음.
이것도 그냥 막 잡는게 아니라 마찬가지로 중~장기적안 우라나라 국방/안보 상황을 얘측하고 거기에 맞춰 국방관련 전반에 대한 계획을 세우면서 이에 따라 무기체계 개발이나 도입, 개조 계획을 넣을지 말지 여러 방법으로 판단하고 타당성 검토해야 일단 '그럼 10년내에 이런거 개발(도입)하는걸로 일단 해두고, 정말 할지는 다시 검토해봅시다.'라는 의미의 리스트에라도 이름이 들어감(아주 시급한 경우 긴급소요라는 방식으로 끼워 넣는 방법이 있긴하지만).
그런데 크픅스 블록3를 하려면 아무리 대충 잡아도 7, 8년에서 길게는 10년뒤에나 사업 착수가 가능할거임. 즉 현재의 국방계획에서 블록3에 대해 직접 들어가있진 않을거임. 그래서 크픅스 사업단 입장에서 함부로 블록3에 대해 공식적으로는 말할수 없는 처지임. 나중에 계획이 어떻게 바뀔지도 모를 일이고 괜히 언플하다가 역풍을 맞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임(특히 KAI는 KMH-KHP 사업당시 언론에서 '단군이래 최대 규모 사업'으로 찍히면서 당한게 있어 이런거에 민감함).
개인적으로는 아마 문제없이 흘러간다면 블록3이것이 단순 개념이 아니라 실제 중장기 계획에 태워질거라 보지만, 현실에서 크픅스 사업이 순항할지도 아직 알 수 없는 상태인데다가 주변 여건이 어떻게 바뀔지는 알 수 없는 노릇임. 아직은 변수가 너무 많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