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1차대전이전의 상황에서 아직도 그 영향력이 미친다라는 사실임.
특히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흑백간의 인종차별은 날이 갈수록 심해지죠.
결국 노예라는 새로운 비인륜적인 사업을 확장하면서 벌어진일이죠.
그나마 점령당했어도 그존재의 의미가 굳건한것은 이미 문화적역사가 안정되어 있는 국가만이 독립을 쟁취하게 되죠.
아프리카가 점령당한것에 대한 독립적인부분에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국가형성이 이뤄지지 않았다라는 것이고
그에 대해서 아직도 유럽강국의 식민지정책이 비호받을수 있던 논리였죠.
아프리카는 국가가 아니니.... 신국가유지의 확장이라는 논리가 먹혔던 것이고,
프랑스는 스페인과 대립적으로 지브롤터해협으로 대칭 되면서 스페인은 영국의 해군기지를 지브롤터해협에 배치하면서 대립.
결국 지브롤터해협의 경계로 대서양의 진출로 를 아프리카 서부로 잡기 시작하죠.
지중해는 식민지의 경계로로...... 이때 영국은 지중해 남부국가를 복속 및 연맹국가로 점유하면서
한계성을 느끼죠. 그리고 인도양의 반대편 인도를 주목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지중해를 통한 인도양의 진입은 사실상 불가능.....................이를 해결한 것이 바로
수에즈운하.........
인류의 역사가 바꿔버린 토목공사였죠.
지중해의 중심국가로서 성장배경이된 이탈리아는 당시 국력에 겨우 수에즈운하 바깥으로 에디오피아를 점령하게 되면서
지중해 남단의 북아프리카 의 분할적으로 점령작업이 끝난후 확장세를 갖기 시작합니다.
그게 결국 충돌해서 생긴 것이 세계1차대전이였고,
세계는 수에즈운하를 중심으로 이집트는 각국의 이해로 어느정도 독립성을 유지할수 있었고,
반대로 후에 시나이반도의 지배력을 손상하는 결과로 남게 되엇죠.
당시 제국열강의 중심은 대부분 수에즈운하를 중심의 각국의 이해로 인해서
유럽열강의 동편진출이 영국에의해서 막혔다고 봐도 무방.
결국 다른 서양제국주의열강들은 프랑스는 지브롤터해협을 중심으로 아프리카 서쪽지역을 점유.
독일은 지중해 리비아 튀니지를 바탕으로 남아프리카의 남쪽을 선점하게됩니다.
그러나 재밋는것은 이와중에 투르크제국.........바로 터키의 존재였죠.
이미 그리스까지 점령한 투르크제국의 힘은 지중해 동편의 강자였기
예전처럼 십자군전쟁을 벌이기보다는
투르크제국의 외교적포섭이 오히려 각국의 힘의균형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되죠.
결국 영국은 아라비아로렌스로 유명한 사우디아라비아 및 기타 아라비아 반도에 대한 독립성보장 과 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강행하면서 자원확보를 굳건히 하면서
인도양의 진출을 사실상 독점하게 됩니다.
프랑스는 프랑스 나름대로 아프리카 북서부지역을 하나씩 하나씩 점유해 나갓고,
이과정에서 가장 내실있는 인력확보가 이뤄지게 되죠......노예산업.
그과정에서 벨기에. 네델란드. 등. 모자란 자본을 이들국가에게 분할권을 넘겨주면서
지본지원을 받게 되고 연합체를 구성하게 됩니다.
독일은 북아프리가 튀니지 리비아를 거점으로 했으나 이에 이탈리아의 연합체구성이 오히려 편했고,
남쪽 케이프타운의 희망봉을 점유하면서 아프리카의 북진을 시도하기 시작합니다.
즉, 아프리카는 북아프리카의 지중해인접국가를 제외한 나머지는 미개척지로 정한것이죠.
국가가 아닌 그냥 미개척지
반대로 강력한 종교적바탕이된 이슬람국가들은 투르크제국의 방벽아래서 독립 인정받고,
뭐 정확히는 사막환경에서 먹을게 없었다라는 것이 정확하겠지만,
영국은 인도의 무굴제국의 공백기를 적절히 파고들어서 인도를 식민지화 햇죠.
수에즈운하가 결국 당시 서양제국열강의 심화적인 역사적 변곡점이였고 그에 대한 세계근대역사의 문제를 야기한 토목공사로 나타나게 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