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월전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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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국 |
중화인민공화국 |
베트남 |
지휘관 |
리선념 |
톤둑
탕 |
병력 |
총병력 60만 명, 광주군구 63형 전차 400대 젠6형
전투기 |
총병력 10만 명, 민병대 및 국경수비대 A-37 전투기 수십기 |
피해
상황 |
2만 5000명 전사 총 6만 2000명 사상 63형 전차 380대 격파 젠6형 전투기 15대 격추 |
2만 명 사상 A-37 전투기
5~6대 격추 |
중국-베트남 전쟁
중월전쟁은 1979년
2월
17일 국경분쟁을 시작으로 일어난
중화인민공화국과
베트남 사이에
일어난 전쟁이다
배경
1975년
베트남 전쟁의
승리로 남북 베트남은 공산 통일되었고, 그 여파로 인접국인 캄보디아와
라오스마저
공산화 되었다. 베트남 공산당은 전쟁 중에 중국의 물적, 인적 지원을 전폭적으로 받았으나, 역사적으로 베트남인들의 대중국 감정이 좋지
않은데다가, 공산 정권이 남베트남의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를 탄압하여 양국관계는 험악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베트남 공산당은 공산권 국가들을 양분한 소련-중국 분쟁에서 소련측을 지지하여 중국의 분노를 샀다. 이에 동시에 친중국적인 캄보디아와 베트남의 관계도 악화되었으며, 급기야
베트남-캄보디아 전쟁이 발발하여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를 점령하고, 친베트남 괴뢰정권을 세우자, 중국은 캄보디아 전선에 머무르던 베트남군의
주력을 철수시키기 위해서 베트남의 북부를 침공하였다
전쟁
과정
국경인 운남성에 집결했던
중국군은 1979년
2월 17일
국경을 넘어 공세를 시작하였다. 베트남 북부는 열대 산악 지형이었기 때문에 대규모 병력의 이동에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당시 베트남군은 주력
부대가 캄보디아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침공군에 맞선 병력은 민병대와 국경 수비대 뿐이었다.
그러나 베트남군은 수 십년간의 실전경험이 있고 현지 지형에 익숙했지만, 중국군은 60-70년대를
흔들었던 문화대혁명의
와중에서 통신이나 장비면에서 근대화가 지체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하여 중국군은 커다란 희생을 내면서 계속 전진하여 국경에서 40km떨어진
교통의 요지인 란손을 3월
6일 점령하였다. 이후 중국은 일방적으로 "징벌적 목적을 달성했으므로 철군한다"고 발표하여 란손을 철저히 파괴하고 국경 밖으로
철수하였다
결과
중국군은 "목표를 달성했다"고 주장하며 철군했으나, 실제로는 처음에 의도했던 캄보디아 주둔 베트남군의
철군을 이뤄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제로는 목표를 이룬 것은 아니었다.
1980년대 내내 국경선의 확정을 둘러싸고 중국군과 베트남군의 산발적인 전투가 계속되다가
1989년에
베트남군이 캄보디아로부터 철군하자, 평화 협상이 시작되어 1999년 협정이 체절되었고, 중국-베트남 간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이 와중에서
1980년대 내내 베트남에서는 해상로를 통한 화교들의 탈출이 계속되어 보트피플이
동남아 해상을 떠돌기도 했다
민병대 vs 중국 정규 군사...
피해는 중국이 훨씬 많이 입고 고작 30km 전진으로 끝난전쟁..
훈련과 실전 경험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었던 전쟁..
지금 중국이 군사력이 강해졌다고는 하나..
일본의 해자대 처럼 훈련이 제대로 했는지 의심이 갑니다....특히 중국 해자대...
지난번 서해 포격 훈련이 중국 역사상 가장 큰 훈련이 아니였나요??
이에 반해 일본애들은 림팩이니 뭐니 미국 형님 따라 다니며 훈련을 많이 했는데...
과연 쪽수로 밀어붙여서 조어도 국지전에서 승리 할 수 있을려나 의심이 드네요...
베트남 전 육상에서도 겨우 저 정도 미미한 성과로 끝났는데..
해군력이 딸리고 노후화 된 장비들이 많은고 훈련도 제대로 안한 중국이..
일본 상대로는....많이 힘들 듯 합니다...핵탄도를 쏘지 않는 이상...
근데 내가 계속 요즘 왜 일본편을 드는건지...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