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도발’→‘연평도 포격전’으로
국방부, 북한 연평도 포격 공식 명칭 변경
K9으로 맞선 해병대 장병 전투성과 부각
당시 연평부대 정훈장교의 현장사진은 Trigger
[대한민국 국군 NOW by 국방사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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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의 오랜 염원이 드디어 이뤄졌습니다. 2010년 11월 벌어졌던 북한의 연평도 포격에 대한 공식 명칭을 ‘연평도 포격전’으로 바뀌었습니다. 31일 국방부는 그동안 사용하고 있던 ‘연평도 포격도발’이란 용어를 ‘연평도 포격전’으로 바꿔 사용하라는 용어 사용 변경 지시를 하달했습니다. 국방부 관계자는 "연평도 포격전 당시 전투 참가자와 유가족을 중심으로 우리 군의 전투 성과를 재조명하고 장병·국민의 자긍심을 함양해야 한다는 요구가 확산됐었다"며 “적 도발에 대한 대응사격을 통해 위협을 제고하고 추가도발을 억제했다는 면에서 작전계획에 명시된 ‘적 국지도발 시 임무’를 완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동안 전투의 주인공인 해병대 장병들과 유족 측은 포격전으로의 명칭 변경이 필요함을 지속적으로 건의해왔습니다. 해병대 그동안 내부 행사에서 만큼은 ‘싸워 이겼다’는 의미의 포격전 용어를 사용해 왔습니다. 이에 대통령은 지난 26일 제6회 서해수호의날 기념사에서 “불의의 피격에도 당당히 이겨낸 연평도 포격전 영웅들께도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며 ‘포격전’ 표현을 공식적으로 사용했는데 이번 명칭 변경에 영향을 줬다는 평가입니다.
연평도 포격전은 2010년 11월 23일 오후 2시 34분 연평도에서 12km 떨어진 북한의 개머리 해안에서 북한군 서남전선사령부 122mm 방사포 부대가 170여 발의 기습적인 포격 도발을 감행한 것으로 이에 맞서 해병대 연평부대는 K9 자주포로 80여 발을 대응사격 했습니다. 연평도 포격전은 1953년 정전협정 이후 북한이 우리 민간인 거주 구역을 공격한 첫 사례로 이 과정에서 연평부대 서정우 하사, 문광욱 일병이 전사했고, 장병 16명이 부상을 입었습니다. 민간인도 2명이 숨지는 피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북한 역시 우리 군의 대응사격으로 10여 명이 사망하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는 등 큰 피해를 입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진은 2010년 11월 23일부터 현재까지 해병대 연평부대 장병들 모습으로 국방일보 국방사진연구소 기자들이 촬영했습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포격전 당일 사진은 당시 연평부대 정훈장교였던 이성홍 대위가 찍었지요.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을 담은 이 대위의 이 사진 한 장을 통해 해병대의 용맹한 활약상은 국민들에게 직접 전달될 수 있었습니다. 긴 시간을 지나 포격전으로 제자리를 찾을 수 있던 데에는 이 사진 한 장의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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