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항모 논쟁을 겪으면서 역시 밀리터리 매니아란 자들의 시각의 한계가 크다는 것을 많이 느끼게 됩니다. (그렇다고 제가 무슨 특별한 사람은 아니고 저 역시 밀리터리 잡지나 사서 보는 밀매입니다만)
밀매의 한계를 보여주는 유사한 사례로써 과거 이순신급 방공 구축함 논쟁이 바로 밀매의 희망섞인 바람과 실제 현실, 그리고 효율적인 의사 결정은 다르다는 것을 극명히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까 해서 글을 써봅니다.
이런 글을 쓰는 저 또한 그동안 이순신급 구축함에 수많은 불만(바로 다들 아시는 MW-08!)을 토로한 사람 중 1명이었습니다.그러나 결국 깨닫게 된 현실과 합리적이고 타당한 실제 의사 결정은 밀매의 희망섞인 바람과는 크게 동떨어져 있었습니다.
아래는 과거 있었던 이순신급 구축함에 대한 쟁점들과 제 나름의 결론입니다.
1. 이순신급 구축함은 태생이 전문 방공 구축함이었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순신급 구축함은 영국의 협력(이라지만 사실상 돈 주고 몇 가지 요구사항 넣어서 돈 주고 산)을 받아 도입한 KDCOM이라는 전투체계를 탑재했으며, 이 전투체계 원형은 영국 해군의 주력의 저가 범용 호위함 23형 프리깃에 탑재되는 전투체계 SSCS였습니다.
영국의 23형 호위함은 영국 해군이 다량 건조한 대표적인 저가 주력 범용 호위함입니다. 방공 무장으로는 씨스페로우 정도의 성능을 가진 영국 개함방공 미사일 씨울프를 탑재합니다.
한국도 영국과 마찬가지로 향후 차세대 주력 범용 구축함 체계로써 영국 23형 SSCS라는 전투체계를 그대로 본 뜬 KDCOM이라는 체계를 KD-1과 KD-2사업에 적용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으며, 당시 해군의 차세대 주력 구축함으로써 KD-1과 KD-2로 명명된 도입 사업은 사실상 거의 동시기에 연결되어 진행됩니다. (KD-1이 1998년 최초 취역 KD-2가 2003년 최초 취역으로 불과 5년이라는 짧은 기간을 사이에 두고 거의 동시기에 취역합니다. 2개의 사업이 KDCOM전투체계 기반하에 거의 동시기에 진행된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절대 전문 방공 구축함용으로써 KDCOM전투체계를 개발한 것도 아니고, 애초부터 그런 용도로 쓰려던 전투체계가 아니었으며, 이 KDCOM을 적용할 대상이었던 KD-1과 KD-2는 결코 전문 방공 구축함으로 설계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2. 그럼 왜 SM-2를 탑재한 것인가?
KD-1과 KD-2는 모두 KDCOM전투체계를 탑재했지만 KD-2는 상대적으로 더 크고 여유로운 선체를 가지면서 KDCOM전투체계를 크게 바꾸지 않는 선에서 몇 가지 요구사항을 더 적용하였고, 이 중의 하나가 최대한 적은 비용, 적은 시간을 들여서 사격통제레이더인 STIR180을 STIR240으로 변경하고, SM-2 관제 능력 등을 추가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해군이 전문적인 방공 구축함으로써의 변신을 원한 것이 아니라, 범용 프리깃 수준의 전투함에 좀더 확장된 장거리 방공 능력 추가를 원한 결과였습니다.
3. KD-2를 개량한 것은 결국 해군이 전문 방공 구축함 역할을 원한 것이 아닌가?
전문 방공 구축함을 원했다면 KD-1과 동일한 KDCOM(23형 호위함의 SSCS)을 탑재하는게 아니라 좀 더 방공전투에 전문화되고 진보된 전투체계를 탑재해야 했습니다. (하다못해 그렇게 목말라했던 80년대 냉전시기에 탄생한 구닥다리 NTU방공체계 비슷하게라도 흉내내야 했으나...) 하지만 유럽의 저가 범용 프리깃에나 들어가는 전투체계를 거의 그대로 들여다가 KDCOM이라는 이름으로 탑재한 KD-1/KD-2는 절대 그런 용도로 진화시키려고 만든 배가 아니었으며, 해군은 그런 전문 방공함으로써 4면 위상배열레이더를 탑재한 이지스 체계를 별도로 KD-3라는 이름으로 도입하기로 이미 마음먹고 있었습니다.
4. 이왕 SM-2를 탑재했으면 동시교전 능력 확충은 기본 아닌가?
바로 이 '이왕이면'이라는 말은 한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 무기 개발 사업을 말아먹을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단어입니다. 앞서 얘기한대로 KD-1과 KD-2의 취역 시점의 간극은 불과 5년에 불과합니다. 사실상 거의 같은 시기에 KD-1과 KD-2 사업이 진행된 것이고, 이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KDCOM이라는 전투체계(저가 범용 프리깃용)공통 기반을 KD-1과 KD-2 공히 같이 병행하여 사용하기로 일찌감치 결정된 채로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 '이왕이면'이라는 단어를 실현하려면 KD-2는 단순히 3D 방공레이더 하나만 교체하는 것으로 되는게 아니라 전투체계부터 갈아엎어야 했는데, 이렇게 했을 때 단순히 더 들어가는 돈(레이더와 전투체계 신규 개발 비용)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5. 계획된 사업 예산과 기간은 고무줄이 될 수 없다.
여기서 드러나는 밀매 시각의 한계는 기계획된 사업의 예산과 기간을 고무줄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왕이면'으로 출발한 그 기능(해군이 요구한 것도 아니고, 밀매가 요구한!)을 넣기 위해서 KD-2의 전투체계를 손보는 순간 KDCOM이라는 공통 기반을 활용하여 KD-1과 KD-2로 이루어진 범용 구축함 라인을 구축한다는 모든 계획은 어그러지고, KD-2를 방공전투함으로 만들기 위한 새로운 전투체계와 쓸만한 레이더 통합에 시간과 돈을 다시 더 쓰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간과 돈이 늘어난다는 것은 사업의 타당성부터 흔들려서 다시 그 필요성과 타당성을 검증받아야 된다는 소리고, 사업이 원점부터 재검토에 들어가면서 다시 추진되기까지 시간이 얼마가 들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사업은 아예 송두리채 흔들려서 최악의 경우는 아예 무산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또한 이 '이왕이면'이라는 단어를 거듭하면 최악의 경우 어떤 꼴이 나게 되는지는 인도의 아준 전차 사업이 가장 교훈이 될 수 있게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왕이면 요즘 전차 개발 트렌드를 반영해서....라는 것이 30년을 끌어서 지금까지도...)
6. 그럼에도 밀매의 바람은 미래를 염두한 타당한 관점이었나?
KDCOM이라는 전투체계를 공통으로 활용하면서, 최대한 적은 돈과 시간을 투자해서 해군은 KD-2라는 결과물을 얻었고, KD-2는 당연히 전문 방공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동급의 범용 프리깃 수준에서는 감히 갖지 못하는 SM-2 장거리 대공 미사일 운용 능력을 얻었습니다. 그 방공 능력은 장거리에 위치한 360도 전방위 표적을 상대로 2개 방면 4개 표적에 대해서(1개 방면당 2개 표적에 대응할 수 있는 STIR240이 2개 이므로 동시 4개 표적) 8발의 SM-2미사일을 유도할 수 있는 꽤 쓸만한 능력을 얻게 됩니다. (동급 범용 프리깃과 비교 시에 쓸만하다 못해 아주 훌륭한 능력입니다. 보통 KDCOM정도의 전투체계 탑재한 다른나라 함정은 시스패로우 달면 그걸로 끝납니다. 뭐 요즘이라면 ESSM정도 달게 됩니다만... 그리고 물론 저런 결과물(범용 전투함+장거리 대공 교전 능력)은 현대적인 미사일 전투함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당시 해군의 고육책의 결과물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 해군은 이미 냉전시대의 산물인 구식 NTU방식 따위가 아닌 4면 위상배열 레이더를 갖춘 제대로된 전문 방공 전투함 KD-3를 도입할 예정이었으므로, 이미 KDCOM탑재를 처음부터 계획하고 진행되던 범용 구축함 KD-2에 전문 방공함을 위한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전혀 필요도 없고, 조금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으며, 위에서 나열한 예산의 증가, 사업 기간의 증가 등으로 인한 사업 재검토 및 전체 사업 지연을 시킬 이유 따위는 단 하나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더구나 당시는 IMF와 겹친 시기라 이런 식의 지연은 아예 사업 좌초로 연결될 가능성이 80%~90%는 되었을 겁니다.)
7. 지금도 밀매는 MW08을 씹어대며 분노를 표한다.
이렇게 말하는 저도 수없이 레이더 하나만 제대로 된 것을 달았으면 이라는 생각을 최근까지도 했습니다.
그런데 KDCOM이라는 전투체계가 이미 낡아서, 이 전투체계부터 아예 갈아엎어야 되는 시기가 온 지금에 와서는...설령 그게 그 시기에 가능했다고 한들 그렇게 하는게 무슨 의미가 있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어차피 낡아서 다 갈아없어야 될 물건인 것을(물론 애초에 할 필요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더구나 적당히 주워듣고 검색해본 바로는 SMART-S MK2 따위는 그거 하나 달랑 달아봐야 동시교전 능력이 크게 증가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10~20여기 표적과의 동시교전이 그렇게 아주 쉽게 될거였으면 냉전시대에 NTU같은 고육책을 쓰거나 아예 고정형 4면 위상배열 레이더를 단 이지스 방공체계는 왜 생겼겠습니까?
지금도 욕을 바가지로 먹는 MW08을 단 KD-2는 해군이 KDCOM기반으로 KD-1/KD-2 범용 전투함 라인을 구축하되, 선체가 충분히 여유로운 KD-2는 몇가지 기능을 확장해서 부여한다는 매우 합리적인 계획으로 진행되었고, 결국 매우 성공적으로 수행되서, 기동전단의 중추가 되는 전투함으로 사용되고 있는 중입니다.
KFX 사업 때 4.5세대 따위 때려치고 왜 6세대 개발을 안하냐던 밀매들...
그따위 능력도 부족한 경항모 따위 때려치고 소티 수 2배~3배는 뽑아내는 중형항모 해야된다는 밀매들...
뭔가 겹쳐 보이지 않으신가요?
저렇게 성공적으로 건조된 KD2 6척은 DDH(DDG가 아닌)라는 명칭이 부여되어 지금도 자신의 역할에 맞는 활약을 충분히 하고 있으며, 이제 근 미래에는 완전히 국산화된 그 능력이 진일보한 한화의 전투체계로 탈바꿈하게 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습니다.(전투체계는 알기 쉽게 PC로 비교해서 말하면, 메인보드+CPU+RAM같은 존재입니다. 진일보한 국산 전투체계로 기반이 바뀌면 이후 국산 장비(레이더, 미사일 등 PC로 따지면 그래픽카드 등 주변 장치일까요?)는 필요한 만큼 손쉽게 마음대로 인티할 수 있는 기반이 갖춰진다는 것입니다.)
혹시... 아직도 KD-2 MW-08에 분노가 느껴지고 아쉬우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