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사무라이는 허상임.
실제 일본이 전쟁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게 장창임. 대부분 농민병도 많았고, 체계적인 군사훈련을 받은건 몇되지 않았음.
고슴도치처럼 빽빽한 장창 전술에 반자이 돌격을 할 수는 없는 구조임. 그리고, 사무라이들의 전쟁 대부분은 병력이 우세한 쪽이 약세한쪽을 포위하면 대빵이 대충보고 질것 같으면 책임지고 깔끔하게 대가리만 할복하거나 머리숙이고 들어가서 따가리가 됐음.
임진왜란이야 항복해도 지들나라처럼 받아주고말고 상황이 아니니 목숨걸고 끝까지 버틴거고, 반자이는 2차대전 때 전후로 지들이 일왕이나 전체주의에 세뇌 시키면서 만든거고, 그전엔 그런거 없었음. 장창 들고 어떻게 뛰고 장창으로 방어중인 대형에 어뗗게 뛰어 들어감. 고대 일본 전술과 전혀 맞지 않은거임.
무사도는 전근대 포장된 사무라이 정신 입니다.
20세기 초 소설가 니토베 이나조가 서양에 열등감을 느껴
기사도를 기본 뼈대로 해서 만들었고 미국에서 출판되어 베스트 셀러가 됩니다.
일단 그 전에는 무사도라는 말 자체가 없어요. 가마쿠라 시대라면 모를까 무로마치
이후부터 사무라이는 이길수만 있다면 뭐든 상관없는 무력집단이 되었고 녹을 주는
주군에 충성하는것만이 전부였죠. 하지만 녹을 안주는 순간 계약은 끝입니다.
녹을 받아 먹는다는걸 매우 명예롭게 생각해서 그외의 도덕적 관념은 관심도 없었죠.
실제 사무라이들은 기사도의 주된 정의인 충성,용맹과는 부합할 지라도
신앙, 겸허, 사랑, 관용,약자보호 와는 거리가 멀죠
명예롭게 포장된 몇몇 일화가 있긴 하지만 밑바탕은 쪽먹는 순간
고용하는 사람이 없어져 가문의 몰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선택 결과 입니다.
사무라이는 그저 무력 게급일 뿐이에요. 그것도 매우 질이 안좋은 것으로요.
백성 상대로 이유없이 죽인 일화는 셀수없이 많아요. 숭고한 정신과는 거리가 멉니다.
전후관계 어디가 우선이냐 관점에 따라 다른건데 위의 내용은 "승리의 패턴을 망각해 정신력을 강조하여 백병전을 한거다"라는 주장보단 "화력전에서 밀리니 적과 함께 뒤섞여 화력을 봉쇄하고 소모전으로 끌고 가자"는게 주 목적이였다는거죠. 정신력으로 승리한다 어쩐다하는건 병사들에 대한 정신교육일뿐 전략적으로 대응방법이 요원해 나온 차선책입니다. 미국이 물러날때까지 최대한 피해를 주면 다시금 협상테이블로 이끌겠다 이런 얄팍한 생각인거죠.
실제로 미국에게 상당한 타격을 주기도 했고 화를 돋구는데는 성공했지만 병력보존 중요성을 관과해 몰빵하다 녹아버리는 탓에 실패했기에 결국 본토까지 밀려버린겁니다.
상황적 배경을 보면 정신력을 강조한 무모한 돌격이
전술적도 있겠지만 정치적 배경도 있습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내밑에 있는 군대가
장렬히 싸웠다는걸 보여주기 위해서죠.
레이테만 해전에 출격하던 야마토함에 내려진 명령은 동귀어진 입니다.
이유가 군이 밀리는데 야마토만 멀쩡하면 모양 빠지니 장렬히 싸우다 죽으라는 거였죠.
근대 강의나 방송풀영상 보면 일본관련된 내용에서는 본인도 일빠로 몰릴까바 두번세번 밑밥 깔고 이야기하심
그럼에도 일본에 관련되서 뭔가 긍정적 분석이나 의견을 낸다 하면 대환장파티가 열림
저분이 방송하거나 강의한 내용에 일본 박살내는 내용도, 대차게 까는 의견도 차고 넘치는데 말이죠
- 나무위키 참조 -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는 결정적 요소는 전상자의 수나 상대국 영토의 획득여부가 아니라, 야전지휘관이나 국가지도부가 전쟁을 지속할 의사가 있으냐 없느냐에 있다고 파악한 사상
엘랑 비탈은 이 군의 사기를 유지하는 수단으로 왕성한 공격정신을 강조했다. 이는 프랑스군이 보불전쟁, 보어전쟁, 러일전쟁에서 기관총, 야포 등의 진보된 화력장비의 위험성에 대하여 인식하지 못한 채 보병돌격을 고집하게 한,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이론이었다. 그렇기에 심지어 '모든 화기의 진보와 발달은 공세의 강화에만 도움이 되는 것이다.'라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이는 '기관총'이라는 딱 세 글자로 반박할 수 있는 말이다. 요즘의 일선 보병들이 거의 분대마다 하나씩 들고 다니는 경기관총이 없던 시절인 만큼 기관총은 당대의 대표적인 방어용 화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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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위키의 나머지 내용에서도 언급되지만, 그렇다고 엘랑비탈이 반자이돌격처럼 무조건 닥돌은 아니였고
불리한 상황에서도 사기를 유지하는 것을 중요시하는 방향으로 프랑스 이외의 유럽에서도 많이 받아들여지는 합니다.
일본이 유럽에서 배우긴 했는데
잘못 배운 내용으로 "중국"이라는 특이한 상대에서 많이 성공하여
이것을 승리의 공식으로 잘못 알려진 것입니다.
의외(?)로 중일전쟁과 전투의 상당부분에서
일본은 소수의 빈약(?)한 군대로 중국이 가진 다수의 충실(?)한 군대를 상대해서 이겨왔습니다.
중일 분쟁의 초기만 하더라도 청나라가 훨씬 더 많은 군비을 들여서
군함과 대포를 포함한 무기를 일본보더 더 잘 갖춘 군대였습니다.
그 군대의 내부 사기가 어떻냐는 문제가 심각했지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