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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1-06-26 01:31
[잡담] 소련군의 아프간 침공 막후
 글쓴이 : 지누짱
조회 : 1,623  

세간에는 마치 소련이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아프가니스탄에 침공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당초에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소련군 개입 요청을 거절했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을 서방에 넘겨줄 수 없다는 KGB측의 강력한 주장으로 1978년까지는 아직 구체적인 군사개입은 여러 옵션들 중 하나에 불과하였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아프가니스탄의 상황에서 소련의 개입에 결정적인 구실을 주는 사건이 터진다. 그것은 1979년 3월의 헤라트 반란으로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명령을 받고 반정부시위 진압에 투입된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육군 17사단 병력들이 이스마일 칸 대위의 선동으로 오히려 반정부군 세력에 가세해버린 사건으로, 이 사건에서 소련 군사고문 1명과 민간인 소련인 2명을 학살하고 시체를 막대기에 꽂아서 거리에 전시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당연히 이는 소련을 분노하게 만들었고 소련의 개입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합리적으로 본다면 당연히 살인범 체포 및 처벌을 요구하고, 못한다 싶으면 직접 자기들이 잡아들일 테니 협조해달라고 하는 게 정답일 것이다. 여기서 소련은 결정적인 오판을 하는데, 바로 친소 성향인 아민 정권을 제거하고 카르말 정권을 세우는 한편 적극 개입하여 아프간 전역을 확실하게 갈아엎는다는 결정을 내린 것이다.

아민 정권이 제대로 통치를 못하니까 갈아버려야겠다고 생각한 것인데, 동유럽 정권교체가 적어도 초기에는 현지 공산세력의 도움과 나치 독일과 무능한 기존 정부에 학을 뗀 나머지 누구라도 상관없다고 여긴 현지 국민들의 암묵적 동의로 가능했음을 생각하지 못한 실수였다.

어쨌건 1979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새벽 소련군 제40군은 아프간 접경 테르메즈 인근의 아무다르야 강에 부교를 설치하고 국경을 넘기 시작했다. 소련군은 본격적인 침공 시작 전인 12월 7일에 이미 민간인으로 위장한 KGB 예하 스페츠나츠 대원 700명과 친소파 인사인 바브라크 카르말을 전부 입국시켜놓았다. 초기에는 이 스페츠나츠 대원들을 이용하여 아민 대통령 관저의 식사에 독을 타는(!) 방법으로 아프간 지도부를 혼란시키려 했으나 미리 식사를 먹어보는 시식자들(...) 때문에 실패했고, 저격 또한 오발로 실패하였다. 결국 소련군의 본격적인 침공에 맞춰 관저를 전면공격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당일날 아프간군 지휘관들을 초청하여 모아두는 등 치밀하게 계획을 세워두고 1979년 12월 27일 작전개시와 동시에 아프간군 지휘관은 모조리 체포, 대통령궁은 스페츠나츠들이 습격했다. 당시 대통령궁을 지키고 있던 아프간 대통령 호위대 2백여 명은 모조리 사살당했고, 스페츠나츠들은 하피줄라 아민 대통령과 그 가족들까지 전부 사살해버렸다.[13] 스페츠나츠를 지원하기 위해 공수부대의 장갑차와 전차,[14] 소련-아프간 국경에서 전차와 장갑차들이 국경을 뚫어오고, 예정대로 지상으로 달려온 기갑부대와 보병들은 몇 개 안되는 아프간 도시들을 점령해서 전쟁은 순식간에 끝난 것 같았다. 그러나...

참고로 소련군은 62만명(...) 정도의 대군을 아프가니스탄에 주둔시켰는데도 전과가 크지 않다는 비판이 있는데, 이것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기간 전체의 '연인원' 개념이다.

전쟁 기간 동안 평균적으로 8~10만명 정도의 소련군만이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였고, 내무부 보안군과 KGB의 특수부대는 다 합쳐봐야 1만명 수준이었다.

더구나 광활한 아프가니스탄의 각 주요도로와 거점지역으로 병력을 분산시켜야 했던 소련군의 상황을 생각하면,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을 생각하면 이것도 애초부터 이기기 불가능한 전쟁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프간은 외부에서 막대한 지원을 얼마든지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현지에 나간 소련군 장군들도 모스크바에 전차와 전투기 중심이 아닌 2백만 명이 넘는 보병부대와 이를 지원하는 보급부대를 통하여 요충지나 도로 같은 점과 선 뿐만 아니라 면인 지역을 장기간 장악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수정할 것을 요구했고 모스크바 군 장성들도 이에 동의하고 전략을 전면 수정하는 안을 보고 했으나 소련의 열악한 경제사정으로 이를 실행하지 못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무자헤딘과 소련군, 아프간 정부군 간의 지리멸렬한 싸움이 지속되었다.

소련이 맞고만 다닌 것은 아니다. 상대가 미국과 맞설 수 있는 강대국인 소련이다 보니 모든 전투에서 소련 측의 사상자보다 무자헤딘 측의 사상자가 더 많았다. 10년 동안의 전쟁에서 소련군은 1만 5천명이 전사했는데 무자헤딘의 전사자는 20배에 달하는 30만 명이었다. 1987-1988년 사이 겨울에는 소련군 2만 명, 아프간 공산군 8천 명이 파키타 주(Pakita Province)에서 무자헤딘 2만 명에게 대규모 공세를 펼쳐서 무자헤딘 3천 명을 죽이는 등 일방적으로 몰아붙여 승리를 이끌어 내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형편없었다고 주장하는데, 소련이 패퇴한 10여년 후 같은 곳에 들어온 미군 및 ISAF가 온갖 첨단무기로 도배하고서도 무자헤딘보다 훨씬 조직력이 떨어지고 고립된 탈레반 반군을 진압하지 못했음을 상기하면, 소련군은 적어도 전술적으로 미군만큼은 전과를 올린 편이다. 특히, 소련군은 미국으로부터 온갖 무기를 공급받으며, CIA로부터 정기적으로 정보를 제공받던 무자헤딘과 싸우면서도 아프간 정부군을 모양새 있게 조직해서 연합작전을 효율적으로 펼칠 정도였으니,[38] 자신이 조직한 아프간 정부군으로부터 별다른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 미군보다는 보조병 운용도 더 잘한 셈. 아프간에서 소련군은 잘 싸웠다.[39]


출처 나무위키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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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누짱 21-06-26 01:48
   
우리가 생각하듯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잔인했다면 냉전시대에  사용가능할 수도 있었던 천술핵을 썻을 것이고 그랬으면 무자헤딘은 몰살되었을 겁니다.

중국의 아프간개입에서 우려대는 것은 바로 이점입니다. 무자헤딘들은 잔혹하기로 유명한데 만약에 중국군과 민간인 몇십명을 살해하면 짱개들은 무자헤딘 산악동굴은신처를 파괴하려고 전술핵을 쓸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정말 아비규환이 일어나겠지요. 핵은 못쓰더라도 버금가는 대량살상무기를 쓸겁니다. 그럼 대량의 인명피해가 날겁니다. 중국은 또 언플하겠죠.

암튼 지난 탈레반정권기간 동안 벌인 악행을 생각하면 저놈들 핵맞아도 될만한 놈들인데 인륜상 그럼 안되기에 분단시키는게 최선일듯요
     
다른생각 21-06-26 12:09
   
개입을 하게되면.. 어쩌면 쓸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드는군요.
어차피 외부의 비난이나 생명에대한 윤리적 관점같은거 신경안쓰는 족속들이니..
아프칸-파키스탄 국경선 산악지대가 탈레반의 주요 거점이자 통로이고..
국경지대 라인을타고 전술핵으로 오염지대를 만들어버리면 아무래도 세력은 확실히 약화될테니..
     
수염차 21-06-27 21:21
   
중국이 핵을 사용하면
우리 한국은 당장에 핵을 보유하게 될겁니다
그러니 중국은 패전해도 핵을 사용못하는것이죠
축구love 21-06-26 01:50
   
이런거 썰 풀어주는 유튜브는 없나요??

재밌네요.
     
지누짱 21-06-26 01:53
   
아마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