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풍신수길이 돌아이기 때문이다.
- 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했다지만 실제로는 그의 주군이었던 자가 다 이룬 것을 그가 갑자기 죽게 되자 정국을 잡아 합하의 자리에 올라 얻은 것으로 혼란기에 정권을 쟁취한 것에 대한 능력은 인정하겠으나 통일이 그의 손으로 이뤄졌다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봄.
- 그는 무인이고 기회주의자였기 때문에 통치 철학이나 이념이 없어 쓸데 없는 '징기즈칸'을 모델로 삼아 전 세계에 선전포고를 함.
- 실제로 그들이 닿을 수 없는 곳까지 선전포고를 하는 바람에 진위 여부도 판단하기 어렵게 된 상태였음.
- 일본 자체 문화가 위에서 말하면 거역하거나 반대 의견을 달기 어려워 일본의 주요 군벌들도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미친 한 인물의 발광을 막지 못함.
2. 붕당의 관념적 대립으로 왕이 실제 판단을 내리기 힘든 정치 구조.
- 조선 사회가 사림이 득세한 이후로 관념적 가치에 빠지게 됐고, 실제로는 이권 대립을 관념으로 풀어 답이 없는 싸움을 계속하게 됨.
- 백 수 년 만에 일본을 정찰하기 위해 통신사를 보냈으나 정사와 부사가 다른 파벌로 같은 사실에 대해 해석을 달리하여 왕이 판단을 내릴 수 없도록 함.
- 결국 왕은 두 의견을 절충하는 수준으로 밖에 일 처리를 하지 못하게 됐고, 역대 왜구들의 침탈 행위를 조사하여 대략 1만 여 정도의 발호가 제일 클 것으로 보고 그게 맞게 대비를 함.
3. 대마도주와 소서행장의 교란
- 대마도주는 명목상 조선의 신하기도 해서 일본에서 위치가 매우 불안했고, 소서행장도 풍신수길의 눈밖에 났던 인물이다.
- 이들은 풍신수길의 조선 침략과 항복 요구를 담은 외교 문서를 조작한다. 이는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행동으로 결국 조선이 사태를 파악하기 힘든 상황으로 만들었다.
- 이로 인해 조선의 붕당들은 의견을 모우지 못했고, 이가 본격적인 대비를 막았다.
4. 조선 입장에서 왜구는 잔당이고, 여진 등의 북방 민족이 주적이었다.
- 조선은 북쪽 국경에 대한 방비를 최 일선에 두었다. 역사적으로 한반도 침략의 의미는 북방 민족의 침탈이었기 때문이다.
- 고로 주 전략과 주 전력은 북쪽을 막는 데 집중하였고, 제승방략이 그 전략이었다.
- 지방이나 해안선에 대한 방호는 상대적으로 부족하야 비상시 향군을 조직하여 막는 방식이었다.
- 이러한 전략 상황 때문에 왜구를 막는 판옥선이라는 우수한 전선을 개발하였음에도 13만 왜군의 상륙을 막지 못해 임란이 발발한 것이다.
* 이른바 선조의 졸렬은 임란 전의 그의 행동이 아닌 임란이 진행되면서의 행적을 말한다. 조선이 임란을 막지 못한 것은 특정 인물이나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복합적인 문제였으며, 여러 요인에 의한 것이다.
흔히 당시 파당을 무능하다고 비판하는 것은 틀린 말은 아니나 일종의 식민사관에 근거함도 무시할 수 없다.
최근 밀게에서 흑색 토론이 짙다.
현재 국어 교과에서는 토론을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해 합리적이고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의사소통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다.
토론은 찬성과 반대가 주장과 근거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말하기이다.
찬성에도 반대에도 그에 대한 합당한 근거를 든 '입론'이라는 것이 있고, 상대방의 주장에 대해 공정성, 타당성, 신뢰성을 따져 반박하는 '반론'으로 구성되어 있다.
토론에서 해서는 안 되는 것은 여러 모순을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으로 인신공격과 비약적 해석, 감정에 대한 호소 등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혐오스러운 것은,
'중국과 일본의 의사와 같으니 너희도 토왜고 짱,개다.'는 것이다.
본인들의 의견에 대한 평가는 공정성, 타당성, 신뢰성에 근거해야 함에도 비약적인 수단으로 유추를 사용하여 감정적으로 상대를 비난하기에 급급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다시 말해 본인의 주장의 공정성, 타당성, 신뢰성도 떨어진다는 것을 함의 한다.
즉, 논리로 승부할 수 없으므로 비약을 통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기세를 꺾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전한 토론은 사회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합리적으로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임을 상기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