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스포츠
토론장


HOME > 커뮤니티 > 밀리터리 게시판
 
작성일 : 21-08-20 08:34
[잡담] 이스라엘 멸망할 뻔했던 전쟁
 글쓴이 : 진실게임
조회 : 3,728  

욤키푸르 전쟁 (1973년)[편집]

1973년 10월 6일 이집트의 기습선제공격으로 전쟁이 시작됐다. 이 날은 이스라엘의 종교적인 축제일인 욤키푸르(사죄의 날) 이었다.많은 병사들이 이날때문에 휴가를 떠난 이때 이집트군의 병력은 75만, 무기들은 탱크 3,200대, 소련제 미사일(SA-6) 까지 총동원해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병력은 이집트군의 3분의 1도 안 됐고 무기들도 이집트군의 절반도 안 됐다. 개전 48시간 만에 이스라엘은 17개 여단이 전멸되었다.시리아 역시 소련제 무기를 앞세우며 이스라엘 영내로 진격했다.이집트와 시리아의 승리가 코앞이었으나 미국이 이스라엘에 대대적 지원을 해주었다. 이 전쟁에서 소련이 35억 달러를 아랍국에, 미국이 22억 달러를 이스라엘에 쏟아부었다. 미국은 30일간 포위됐던 이스라엘에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무려 5,566번의 비행 수송작전을 펼쳤다. 이스라엘은 미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반격에 나섰고 비교적 허약한 시리아의 골란 고원을 집중포격했다. 골란 고원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시리아 군 탱크 867대, 차량 3,000대 이상을 파괴했다. 욤키푸르에 일어난 전쟁이라서 욤키푸르 전쟁이라고도 부른다.

========================================================


시리아 바보 장군이 압도적인 전력만 믿고 언덕 위에서 사격각도 확보한 이스라엘 방어선으로 들이박으라고 진격시킨 덕분에 장병들은 용감하게 죽음의 도전을 수행했지만 각도올려 쏠 수 없는 시리아 군 전차가 일방적으로 다 녹았음. K전차처럼 각도만 바꿀 수 있었어도... 급조 방어선 구축한 한줌의 전차부대가 뚫리면 이스라엘은 끝장이었음.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가생이닷컴 운영원칙
알림:공격적인 댓글이나 욕설, 인종차별적인 글, 무분별한 특정국가 비난글등 절대 삼가 바랍니다.
나댕 21-08-20 10:42
   
반대로 시리아 먹을수도 있었는데..
도나201 21-08-20 12:41
   
대부분 욤키푸르 전쟁이 대전차미사일에 당한 전쟁이라고 알고 있는데.
전략적으로 다시 판단하면.

이집트의 몇가지 이유가 있었음.
1. 기존과는 다르게 훈련이 잘된 병사들.
2. 전쟁초기 제공권을 잠시라도 장악했던 이집트공군.
3, 기존 전쟁과 같은 기존 기동로를 고집했던 이스라엘.

이세가지로 인해서 이스라엘이 남부에 이집트에게 당해서 실질적인 전력이 녹았다라는사실.
후에 같이 공격했던 시리아 입장에서는
어부지리로 선점했으나,
급히 이집트와 협상을 끝내고.  골란고원에 집중해서 이겼다라는 것이죠.
당시 시리아군은 이집트와 다르게
병력의 훈련상태가 그다지 좋지 못했음.

당시 이스라엘은 수에즈운하 반대편까지 장악한 상황이였기에
이를 수에즈운하를 사실 어느정도 내줄각오를 하고 있었음.
전쟁은 수에즈운하때문에 항상 일어난다고 보고 있었기에  정치적협상을 항상 준비놓은 상황이였음.

대신 골란고원의 점령을 항상 염두해두고서 일을 꾸몄다라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이집트의 초반공세에 너무도 많이 당했음.

특히 제공권을 일시 상실했다라는것이 이스라엘에게는 엄청난 충격이였고,
결국 지상전에서 엄청난 피해를 가져왔다라는 것이  정설임.
     
푸른능이 21-08-20 15:57
   
이집트보다는 못해도 시리아군도 꽤 훈련상태가 강화됬었습니다.
1.개전 초반에 헬기로 기습적으로 병력 투입해 관측소를 점령
2.옆에있던 아군 전차가 피격당해도 무시하고 계속 돌격
3.아군 전차를 맞춘 전차에 여러대가 일제사격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 전차병들이 포를 쏘는걸 주저하게 만듬
4.800m밖에서 전차포로 이스라엘 전차를 명중시킴
이런 것들이 있잖아요.
          
도나201 21-08-21 02:33
   
중요한 것은 정예사단이 남부에 집중되었다라는 것이죠.

예비사단이 시리아를 상대했고,  이미 예비역들이 주력전투요원이였고,
이집트와의 결착을 빨리 해결하게 되면서

남부의 의 전력을 빠르게 골란고원으로 배치하게 되었죠.
실질적인 정예병력은 대부분 남부에 집결되어 있었고,

골란고원에서의 언덕에서 대기타면서 골란고원의 점령을 저지하게 되죠.
그후 모사드의 첩보와 맞물려서 정예전차전력과 필사의 공병대의 활약으로 인해서
골란고원을 선점하게 됩니다.

시리아의 병력의 훈련상황도 물론 예전에 비해서엄청나게 준비되어 있었으나.

지근 거리자체가 없던 결전상황에서 골란고원의 언덕의 잇점을 살려서 배치하면서
전차의 교차장으로 변하게 되면서 세계2차대전의 쿠르드전투이후에 최대의 전차전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지근거리에서 누가더침착하게 쏘느냐 싸움이되면서
병력의 숙련도싸움에서 시리아가 밀리게 됩니다.

정말 한발로 생사가 갈리는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경험이 엄청나게 유리한 상황으로
특히 차창 큐폴라밖으로 현장으로 파악하면서
침착하게 전차를 서로가 서로를 확인하면서 운영하던 이스라엘의 승리가 됩니다.
그후 에서 이스라엘 전차사단의 전통으로 남아 있는
전차장이 큐폴라 밖으로 나와서 현장을 확인하는 전통이 생기게 되죠.

결국 승패는 실전경험의 숙련도에서 시리아의 대전차사단은 녹아버리게 됩니다.

그후도 급속으로 진격으로 하면서 골란고원을 넘어서 진군하게 됩니다.

시리아가 그나마 초창기 이집트 및 기타 아랍국가들 보다 나은점이
바로 영국에게 군사훈련을 받았다라는 것이 확실히 다른 아랍국가들보다 나은 점이였고,
여기에 이란을 비롯한 지원세력과 러시아의 대량공급에....
전투교리에 이질성에 적응하지 못한 상황이였죠.

영국의 전투교리와 소련의 전투교리는 2차대전의 양상자체가 달라서
이에대한 괴리가 존재하는 상황이였습니다.

특히 전차장의 교리는 너무나도 다른 위치를 갖고 있어서....
영국전차의 크롬웰전차의 엄청난 장갑으로 ...... 유인적인 교리를 갖고 있다면.
소련의 파상공세의 교리고 이스라엘을 상대했으니.....

엄청난 손실을 각오하고 돌진한게... 패착이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골란고원의 언덕에서 대기타면서 정확히 한대한대 맞추면서.....
전차를 격파해나갔고,
시리아는 소련의 파상공세로 엄청난 수량으로 밀어붙였죠.....

그때 이스라엘의 예비사단의 활약이 결정적인 수훈으로 됩니다.

그후 천천히 퇴각하면서  시간벌기에 여념이 없었고,

골란고원의 초창기 대부분을 빼앗기면서
엄청난 위기로 몰렸지만,

그후 정예사단과 공병의 작전으로 막말로 쉽게 이야기해서 기갑사단이 지나갈수 있도록
도로를 하루반만에 700미터 정도를 만들어버리면서

바로 전장에 투입이 가능하게 되면서 결과를 뒤집게 됩니다.
푸른능이 21-08-20 15:39
   
시리아군이 밀어붙인거 자체는 옳은 판단일 텐데요.
이스라엘군이 죽기살기로 막아서 겨우 막은거지 지형이 그 모양인데도 실제로 뚫어버리기 직전까지 가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시리아 입장에서도 시간 끌수록 이스라엘군 동원사단들이 증원될테니 빠르게 끝내야 됬고요.
중간에 재수없게 걸려서 실패해서 그렇지 시리아군이 무작정 정면돌파만 한 게 아니라 우회조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나일크루즈 21-08-21 04:25
   
결과적으로 보자면 이집트가 이긴 전쟁.
미국 캠프데이비드협정으로 쓸모없긴 하지만 엄청 큰땅 시나이반도 되찾고,
막대한 미군무기, 현금을 받았으니... 아랍세계 종주죽은 덤.
그리고 이 전쟁에 북한 전투기조종사가 참전해서 이집트 공군에 큰 전력을 보탬.
이스라엘 조종사가 독파이트 중 이집트 전투기 조종사가 동양인이더라는 증언도 있고...
당시 공군 수장 사다트가 특히 북한의 도움을 높게 쳐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