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퐁니*퐁넛 사건:68년2월12일 쿠앙남성 디엔반현>
해병 청룡사단 제2대대 6중대가 베트콩의 마을로 오인 81mm 박격포로 마을을 포격한 사건으로 총69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하였다.
당시의 원인으로는 보고서를 중심으로 기술하면
마을주변의 베트콩의 잦은 출연과 위장으로 인해 전사자3명 부상자14명이 발생할정도로 피해가 심했던점
마을 입구에 부비트랩을 설치로 인해 부상자의 속출로 인한 이성의마비
마을에 숨어든 베트콩의 저격으로 인해 사상자가 발생 이로인해 베트콩마을임을 확신했던점
등이다. (국군측 사상자에는 미해병대원2명이 포함된다.)
2.<푹미사건: 쿠앙남성 디엔반현>
사상자 22명 베트콩오인으로 인한 사건
3.<홍차우사건:쿠앙남성 디엔반현>
매복중 베트콩 오인사상 한국 소환후 사형 선고 이후 감형되어 무기징역으로 15년 복역
그밖에 한국군에 의해 일어났다는
빈호이사(131)/타이빈(380) 사건은 소문으로만 존재할뿐 사실여부를 확인할수없었다.
(엄밀히 말하면 사실여부가 아닌 , 사실상 존재할수 없는 사건이다.)
(사건의 성립에서 기본적오류가 많은데 예를들어 사실을 주장하는 생존자 의 주장에만 의지하면)
(헬기로 이동하여 학살했다라는 주장/ 66년에 일어난 사건인데,한국군에 헬기가 최초로 지급된)
(연도는 68년 초반이다-"국방부 작전일지"그외에 비합리적-논리적인 주장이 대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밀라이사건,기타 다국적군의 참전 등등을 감안할때 전혀 가능성이 없다.)
이에대한 한국정부의 조치는
69년 중앙정보부의 민간인 학살 진상조사 이후
68~73년 사이 구속군인 561명가운데 전쟁수행과 관련된 자를 제외한
40여명을(상관살해,현지인강간,살인) 미복권 미사면하여
무기징역,종신형,사형등을 집행하였다(이후 대부분이 형집행정지와 감형등을 받았다)
이후
김대중대통령은 2000년 베트남 국빈방문중 국민에게 공식사과를 했다
노무현대통령은 2004년 호치민묘지를 참배하며 공식사과했다.
2004년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모금활동을 벌여 베트남 퐁티에
사망자를 위로하는 “위령비”를 건립하였다
한화갑 민주당대표는 2006년당시 베트남인에게 사과하였다
2009년도 이병박대통령이 베트남 국빈방문당시 사과와함께 베트남유공자를 한국의 참전유공자와 함께 동등대우를 한다고 했지만
당시 이를 승전으로 생각했던 베트남인들의 강력반발과 외교부의 항으로 당시 유명환장관이
직접가 베트남정부에 사과했습니다.
베트남전을 이용하는부류들
1.북베트남인이다
이는 당연한 행동으로서 전쟁수행중 남베트남인에게 공포심을 심어
미군이나 한국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수행의 효율성을 극대화 시킬수 있기
때문이다 위에 적은것처엄 빈호이사 사건이나/타이빈 사건등 소문으로만 무성하지만
2000년 진상위원회에서 밝히지 못한것처럼 자료와 증거등에서도 진실여부를 정확히
가려내야 그에 합당한 반성이 생길수 있을것이다.(미군측의 100여종의 보고서에서
한국군에의한 사건은 총 3건으로 밝혀졌다)
3.일본애들
베트남전에 “귀로만든 목걸이”등의 일본측에 의도적으로 왜곡된 자료를 기반으로
하고있다. 이는 당연히 2차대전시 자신들의 선조들이 저질른 만행을 의식하여
너희들도 똑같다라는 식으로의 논리로 귀결되며
우스운 점은 이러한 논리에 한국의좌파와 일본의우익이 같은논조의 주장을
하고있다는 점이다.(유투부 ~ 위키피디아를 위시한 일본인들의 “한국인날조”설은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퍼온글이며 베트남정부와 공식적으로 조사진행했습니다 물론사과도
베트남서 받지않았지만말이죠;;2번은지움 정치적인말이많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