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모터 분야는 워낙 전통적인 분야라서
얼핏 보면 별다른 신기술이 새로 나올게 없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굉장히 발전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아이템이라고 생각됩니다.
특히 전기자동차 산업, 전기모터 기반 로봇산업이 급격히 발달하기 시작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습니다.
방위산업 분야에서도 말할 것도 없죠.
그런데 한국은 이 분야에서 이제까지 기술적으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었는데요.
하지만 최근에 주목할만한 기반기술의 발전이 눈에 띄여서
한 번 서머리 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1. 기존의 기술적 주도권
기존에는 고수준 전기모터 분야에서는 미국과 유럽이 주도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잠수함의 잠망경을 돌려주는 전기모터 같은 것을 보면
60년대 냉전기에 미국의 콜모겐사에서 세계최초로 토크모터 개념을 실용화해서 처음 적용한 케이스를 볼 수 있습니다.
토크모터라는 것은 간단히 말해 별다른 기어박스 없이 모터로 직접 터렛을 돌리는 개념인데, 때문에 모터가 다이렉트로 큰 토크를 발생시킬 수 있어야 하고, 저속운전에 적합해야 하며, 링 형태로 큰 직경을 가진 채로 가운데에는 뻥 뚫려서 중공형태(Hollow Shaft)를 가져서, 그 안으로 사람이 사다리를 타고 출입 가능해야 하죠.
이런걸 처음 만들어서 2차대전식 잠수함으로부터 벗어나 냉전시대 핵잠수함의 형태를 만들어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콜모겐사는 이외에도 세계최초 타이틀을 여럿 가지고 있는데,
예를 들어 희토류 네오디뮴 자석을 적용한 모터를 세계최초로 만들었다던가 하는 등입니다.
이런 종류의 방위산업용 모터는 대량생산 보다는 수작업으로 꼼꼼하게 만들는 소량생산이 적합하고,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더라도 최고의 성능과 품질을 구현하는게 중요했기 때문에 상당기간 국가기밀로 취급되었습니다.
2. 산업용 모터의 시대
이후 1970년대부터 전기모터식 산업용 로봇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일본이 상당한 지분을 가져가기 시작하죠.
일본은 산업용 로봇에 사용되는 서보모터를 크게 발전시켰는데
특히 2000년대 접어들면서 기존보다 훨씬 작은 사이즈로 더 큰 힘을 발생시킬 수 있는 고밀도 고효율 산업용 서보모터들을 만들어냅니다.
이를 위한 기술적 열쇄는 바로 IPM 스포크타입 설계에 있는데요.
자석을 적층된 규소강판 코어 안에 심어넣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면 자석 주위로 형성되는 자력선을 원하는 형태로 정돈시키기가 용이하므로
더 작은 양의 자석만 사용하고, 더 작은 사이즈로도 더 큰 힘을 낼 수 있었죠.
그래서 화낙,파나소닉,가와사키,다마가와 등의 일본 브랜드 산업용 서보모터들이 시장을 지배합니다.
일본은 다른 제조업들이 쇠퇴한 지금도, 이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주도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3. 중국의 등장
2008년 이후로 중국이 엄청난 기세로 산업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중국이 이 시장에서 엄청 중요해 지게 되는데, 잘 아시다시피 희토류 시장 지배권을 가져갔기 때문이죠.
(전기모터 기술적으로는 중국은 아직 상당히 뒤떨어져 있기는 합니다만)
중국의 희토류 수출제한조치 때문에 일본이 깨갱 했던 이유도 바로
위의 2번 산업이 일본에게 너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때부터 전기자동차 시장이 본격 개화하기 때문에, 이제는 일본 뿐만 아니라 한국, 미국, 유럽도 모두 중국산 희토류 때문에 목줄을 잡힌 형국이 되는 거 아니냐는 위협이 대두되었죠.
그리고 희토류 뿐만 아니라, 전기모터 권선에 사용되는 구리 공급 부분도 엄청 큰 문제가 되었고요.
4. 희토류 문제 해결의 시대
구리는 그렇다 쳐도, 네오디뮴 희토류가 없으면 요구스펙을 맞출 수 있는 전기모터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것 말고는 강력한 자력을 제공하는 자석의 대안이 없기 때문이죠.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 여기에 대한 대안을 연구하여 성과를 하나둘씩 내기 시작하고 있더군요.
예를 들면, 울산대 홍순철 교수팀에서는 철,니켈,질소를 합금해서 자석을 만드는 분자구조를 몬테카를로 기법으로 설계했는데, 시뮬레이션을 해 보니 네오디뮴 자석보다는 자력이 약간 떨어지기는 하지만, 내열온도가 150도씨 정도 더 높아져서 신뢰성이 엄청난 자석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아직 분자구조 설계단계 연구이므로 대량 제조 공법은 개발되지 못했음)
또 다른 연구팀을 보면...
재료연구원 최철진 박사팀의 경우에는 망간,탄소화합물만 가지고 자석을 만들수 있는 방법을 찾았는데 이놈은 온도가 올라갈수록 자력이 더 강해지는 희안한 특성을 가지고 있더군요. 이 방법은 대량 제조 가능한 제조방법까지 특허출원까지 완료를 했습니다.
이런 신물질들이 당장 기존 희토류 자석을 100% 대체하지는 못하겠지만
희토류 가격추이에 따라서 채산성이 발생하는 지점이 있을 것이고 그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사업화가 이루어지겠죠.
특히 방위산업 쪽의 경우에는, 희토류 같은 것들은 기본적으로 전략물자로 취급되기 때문에 중국 공급선이 단절될 경우에 대비가 반드시 필요하니까요.
이외에, 사업적 방법으로 미국-호주 희토류 생산 컨소시움에 한국도 올라타는 움직임도 보도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5. 기타 기술들
구리의 사용량을 줄이고, 더 강력한 힘을 만들어내기 위한 설계적 기법들도 발달하고 있죠.
기존에는 구리선을 둘둘 감아서 권선을 만들었는데
최근 전기자동차용 모터중 일부는 헤어핀 기술을 적용합니다.
구리선 대신 구리로 만든 헤어핀 모양을 슬롯에 꼽아넣어 조립한 후, 반대쪽을 레이저 용접해서 권선을 구성하는 방식인데, 이렇게 하면 권선 단면 형태를 사각형으로 바꿔서 빈틈없이 꽉꽉 채우기가 용이하므로 점적률(Coil Density)를 끌어올려 더 적은 권선만으로 더 큰 힘을 만들어낼 수 있죠.
헤어핀 기법에서 한단계 더 발전된 MSO(구리 블럭을 사용하는 방식) 기술도 최근에 한국에서 확립되었는데, 이것을 적용하면 헤어핀보다 더 고밀도 설계가 가능해집니다.
(물론 아직은 원가 부분이나 대량생산 적합성 등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모터를 구성하는 부품들의 가공정밀도가 더 올라가는 점을 이용하여, 공극(에어갭)을 극단적으로 줄여서 출력을 끌어올리는 기법도 발전되고 있고요.
마지막으로, 모터에 사용되는 적층 규소강판의 자력저항을 떨어뜨리기 위해 코발트 같은 성분을 추가하여 철손(Iron Loss)를 크게 줄여서 효율을 극적으로 개선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기술은 MIT의 치타로봇처럼 모터가 감속기를 거치지 않거나 아주 낮은 감속비율만으로 직접 로봇 관절에 동력을 전달하도록 하는 초고토크 모터를 구현하는데 필수적인 기술입니다.
현재는 철손을 감소시키기 위해 코발트 같은 중금속이 필요하기 때문에 산업적으로 일반화되기는 어렵지만, 코발트를 대체하는 철손 저감 물질이 개발되면 말도 안되는 힘을 내는 모터가 대거 등장하게 되겠죠.
이런 기술들이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것에 사용되느냐?
최근 현대가 M&A한 보스톤 로보틱스사의 뛸 수 있는 휴머노이드 로봇, 개 모양으로 뛰어다니는 로봇 같은 것에 필요합니다. 로봇이 뛰는 동작이 가능하려면 순간적으로 엄청난 토크를 발생시켜야 하는데, 기존 전기모터로는 구현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가솔린 엔진을 달아서 유압으로 구현하였는데요(빅독). 요즘은 위에 열거한 기술들을 적용한 신형 모터를 개발해서 적용, 전기모터만으로 엄청난 속도로 달릴 수 있는 치타로봇 같은것들이 나올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모터가 힘이 강해지게 되므로, 감속기(기어장치)의 역할도 줄어듭니다.
때문에 값비싼 정밀 기계부품의 비중이 줄어들게 되므로 전체적인 중량, 체적, 가격이 낮아질 것입니다.
6. 한국의 전기모터
삼성은 사실상 전기모터 쪽은 별로 관심이 없는 회사입니다.
LG는 가전부문에서 전통적으로 인덕션 모터를 적용하는 등 발전성이 있긴 하지만 역시 큰 기술적 모험은 안합니다.
방위산업체들은 수공업 레벨로 최첨단 모터를 소량 제작 가능하지만 대량생산 체제와는 거리가 멉니다. (코모텍,동성전기 등)
남은 것은 산업용 모터 제조업체들인데요. 효성,LS,하이젠 같은 회사들이 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현대자동차는 전기자동차용 모터에만 관심이 있죠.
이중에 산업용,방위산업에 호환성이 강한 업체는 아마 하이젠모터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네요.
최근에 일본이 소재부품장비 가지고 무역전쟁을 걸어줬던 덕분에
이쪽 분야에서도 약간 생기가 돌고 있습니다.
정부지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차세대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연구개발이 활발해 졌거든요. 물론 짧은 기간에 일본 기업들 레벨의 안정화를 이루기는 현실적으로 힘듭니다만 최소 수 년 정도 더 밀어주면 넘어서는 것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한편 중국은....
제가 봤을땐 중국은 별로 희망이 없어 보입니다.
왜냐면 중국에서 자생한 제조기업들은 산업공학적인 마인드가 없습니다.
간단히 말해 품질이 보장이 안됩니다.
그리고 그걸 개선하기 위한 산업공학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