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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2-05-03 18:44
[뉴스] [번역] 러시아군의 잔혹함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글쓴이 : 노닉
조회 : 2,879  

(4월 26일,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승전 기념일 퍼레이드 리허설 중. 러시아 국가근위대. 최근 Z표식은 성 요르고스의 리본(주황색, 검은색)으로 그려지고 있음.)



러시아군의 잔혹함은 어디에서 왔는가?

By 이리나 라스토구예바

최종 업데이트 : 2022년 4월 28일 08:31


[게스트 기고] 우크라이나에서 싸우는 수많은 러시아 군인들은 낙후된 지역에서 왔다. 이들에게 잔혹함은 어릴 때부터 겪어온, 일상적인 의사소통 방식이다.


기사원문(독일어, FAZ)


- 이리나 라스토구예바 : 베를린 거주 러시아인 작가. 유즈노사할린스크 출생. 그녀의 책 "The Russian Simulacrum"은 Matthes & Seitz에서 곧 출판될 예정임.


- 이 기사는 러시아인 작가 라스토구예바가 자신이 1990년대 사할린에 거주하던 당시의 경험을 통해 러시아인의 잔학함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설명하는 FAZ 게스트 기고임.


- 최근에 잘 알려진 대로 우크라이나에 침공한, 특히 잔혹행위를 저지르는 러시아군의 대부분은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대도시 출신이 아니라 시베리아, 극동, 사할린 등 오지 중의 오지에서 오는 이들이 대부분임.


- 1990년대 사할린은 그야말로 인세의 지옥이었음. 원래 소련 시절만 해도 일상에서 약간 부러움 정도로 끝날 일이 1990년대에는 시기와 증오로 바뀌었고, 사람들은 마시고, 훔치고, 때리고, 죽임. 사할린에는 나눌 수 있는 "사업"이 좀 있었기 때문에, 총으로 무장한 전역자 출신의 민병대들이 이런 "사업"을 나눠먹음. 이들은 나중에 경찰이 되거나, 정치인, 사업가 등이 되면서 오늘날 러시아 지배층을 형성함.


- 소련 붕괴 이후 사회는 말 그대로 분열됐음. 대도시는 자유의 수도가 됐고, 이런 오지는 부패의 수도가 되었음. 소련 시절에는 단순한 차이였던 것이 1990년대 이후에는 계층이 되어버렸음.


- 사할린을 떠나고 싶어도, 돈이 없음. 돈이 없으면 일을 해야되는데, 일자리가 없음. 억지로 나간다고 쳐도 거기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에, 오래 떠나 있을 수 없고 다시 돌아오게 됨. 그리고 이 인세지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사실상 군대에 갈 수밖에 없음. 최소한 전쟁에 참가하면 뭐라도 얻어올 기회가 있으니까.


- 저자는 사할린에 살던 시절 강.간을 당할 뻔하기도 했음. 자긴 운이 좋은 편이었고, 보통 운이 좋지 않아서, 어떤 소녀는 자기 아버지에게 강.간을 당하는 바람에 불과 8세에 자궁을 제거함. 경찰은 불러도 오지 않고, 어떤 여자는 남편에게 칼에 찔려서 구급차를 불렀지만 구급차가 늦게와서 죽어버렸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 가족은 내일 일을 걱정함. 무력감이 사회를 지배함.


- 그나마 자신은 운이 좋은 편이어서, 집에 도서관이 있어서 문학을 접할수도 있었고, 미술을 접할수도 있었음. 신문에 나오는 그림이나 그런 것들을 오려서 보관해두기도 했음.


- 이 모든 지옥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천천히 사상가 계층은 성장하고 있음. 최근 러시아 당국이 밀고자를 받기 위해서 봇을 설치했는데, 누군지 모를 "밀고자"들이 와서 이 봇을 씹창으로 만들어버렸음. 사실상 무력화됨. 하지만 정말로 폭력 없이 이 사회를 정화할 수 있을까?


- 푸틴은 권력에 매달려있고, 이전에 올라온 책상을 붙잡고 있는 사진이 그것을 상징함. 만약 지금 러시아에서 쿠데타가 일어난다면 어떨까? 아마 푸틴은 전복될 것이다. 왜냐? 푸틴은 약자고, 강자에게 뒤집힌다. 그게 지금 러시아 사회의 생리이기 때문이다.




세계는 러시아군의 잔혹함에 충격을 받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그토록 거대한 야만성, 강렬한 분노, 또 넘쳐나는 증오가 대체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우리가 직접 볼 수는 없지만,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 있는 이 군인들은 대체 누구인가? 그들의 출신지는 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또는 노보시비르스크 같은 곳이 아니다. 그들은 대부분 극동이나 러시아 중부의 가난한 지역에서 왔다. 조심스럽게 말하자면, 환영받지 못하는 곳에서 말이다.


나(라스토구예바)는 이러한 러시아 군인들이 우크라이나에 오기 전에 살았던 삶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나는 33년간 사할린에서 살았고, 그곳 출신의 징집병도 우크라이나로 파견되었다. (소련이 붕괴된) 1990년대, 폭력은 의사소통의 한 형태로서 널리 퍼졌다. 사회는 갑자기 궁핍해졌고, 하는 일만 다르고 재산만 좀 차이났던 이웃들이 하룻밤 사이에 다른 계층으로 분열되었으며, 평범한 일상의 부러움이 사회적 시기로 변질되었다. 부모님이 처음 일본제 자동차를 샀을 때(그 이전에는 모두가 소련제를 샀다), 우리 집 앞에서 불태워졌다. 그저 우리 모두가 못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무력으로 사업 영역을 나누다


폭력은 의사소통의 수단이었던 미디어를 바꿔버렸다. 외설적인 어휘가 시궁창으로부터 신문 칼럼으로까지 쏟아져나왔다. TV와 라디오는 폭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습관, 규범이 되어버렸다. 섬 사람들의 일부는 서로를 죽이고, (소련 붕괴 후) 새로이 생성된 "사업"에서 영역을 나누었다. 사할린에는 석탄, 가스, 석유, 어업 등 나눌 것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은 몇 년 동안 급여를 받지 못했기 때문에 서로를 죽였고, 어떤 사람들은 그저 재미로, 또는 폭력에 대한 갈구로 죽였다. 섬의 산업은 무너졌고, 사람들은 술을 마셨다. 그들은 먹는 것보다도 술을 더 많이 마셨다.


모두들 보드카를 마셨고 마약은 아이들에게 좋은 방과 후 활동이었다. 13살이었을 적 나는 오빠의 친구들과 함께 피우던 침카(아세톤과 해시와 대마초를 섞은 것) 한 갑을 받았다. 제대 후 민병대에서 근무하던 한 남자가 가끔 방탄조끼를 입고 칼라시니코프와 마카로프를 들고 우리를 찾아왔다. 어느 날 그는 장난으로 나에게 총을 겨눴는데, 오빠가 그의 팔을 때렸고, 총알이 나갔다. 내 발에서 2인치 떨어진 거실 창 옆 바닥에 (총알) 구멍이 났다. 모두들 그가 (쏜) 탄약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한다고 걱정했을 뿐, 아무도 바닥에 신경 쓰지 않았다. 우리는 TV 스탠드를 옮겼고, 구멍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폭력적인 죽음은 일상적이었다


열여섯 살 때, 가을은 여전히 따뜻했고 학교에서 귀가했을 때였다. 블라우스, 스커트, 신발, 배낭을 입고 있었다. 문 앞에 5~6명의 남자들이 서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모두 20대였다. 그들 중 한 명은 가까운 집에 살았고, 아내와 두 명의 어린 자녀가 있었다. 집에 들어가려면 그들 무리를 거쳐야 했다. 그들은 나를 통과시키지 않고 휘파람을 불고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를 말했다. 그들의 손은 마구잡이로 나를 손댔다. 내 치마 아래, 내 블라우스 아래... 무리는 내 주위를 둘러쌌다. 뒷걸음질치는 건 불가능했고, 난 어떻게든 3층으로 달려갔고, 뒤에서 발소리와 목소리가 났다.


나는 문을 열고 다시 잠그는 데 성공했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피아노 앞에 앉아서 오랫동안 횡설수설하듯 연주했다. 이번에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좋지 않게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오랫동안 자신의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기숙학교 여학생을 돌보았다. 소녀는 내상을 입어 불과 여덟 살에 자궁을 제거했다. 고아원과 기숙학교에 다니던 많은 아이들이 그런 경험을 했다. 그들에게는 돌봐줄 심리학자나, 특수교육 교사도 없었다.


폭력적인 죽음은 일상적이었다. 우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는데, 4층에서 한 청년이 떨어졌다. 내가 밖으로 나갔을 때 그는 여전히 창 아래에 누워 있었고, 그의 목은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으며 그의 머리 주위에는 피웅덩이가 생겨 있었다. 우리 집 위에 사는 이웃은 남편에게 끊임없이 구타를 당했다. 우리가 경찰을 불렀을 때에도 경찰은 결코 오지 않았다. 남편이 칼로 그녀를 찔렀을 때, 그녀는 피 묻은 잠옷을 입고 계단을 내려가 쓰러질 때까지 뛰어내렸다. 구급차가 너무 늦게 왔다. 그녀는 과다출혈로 죽었다. 그 와중에도 우리는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하고, 충분히 못 잔다고 불평했다. 일상적인 일이었다. 두려움도 없고, 호기심도 없고, 걱정도 없고, 그저 막연한 연민과 수많은 무력감만 있을 뿐이었다.



전쟁은 일부 수입원을 제공한다


죽음, 폭력, 무력감이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 경찰, 의료 서비스, 교사, 술 취한 이웃, 강도 가운데에서 자기 자신과 자녀를 위해 싸운다. 극동 같은 지역을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곳에서 나가려면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런 곳을 떠난다 하더라도, 일이 없어서 (타 지역에서) 머무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전쟁터에 나가는 게 가장 좋은 탈출구처럼 보일 수 있다. 전쟁은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쟁에 참전한 이들 중)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 전부터 도둑질하고, 죽이고, 강.간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그 이상 배울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겪은 이러한 악몽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 집 계단통의 창문은 끊임없이 깨졌고, 난간은 찢어졌다. 밤이 되면 누군가가 우리 집 문을 자주 두드렸다. 튼튼한 금속 문이었는데, 아마도 그게 그렇게 인기가 있었던 이유일 것이다. 그 당시에 나는 이미 아이를 가졌다. 아기들은 어둡고 시끄러운 소음을 두려워했다. 우리는 항상 조명과, 그리고 가벼운 음악과 함께 잤다. 아침에 계단은 종종 깨진 유리로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고 피로 얼룩져 있었다. 아마도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정부가 사회-경제적 문제를 결국 어떻게든 해결해내지 않는 한 1년 후, 아니 10년 후에도 여전히 상황은 똑같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정부가 도대체 어떻게 선출될수 있다는 말인가?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문화에서 위안을 찾는다


사람들은 러시아 문화가 어린이와 여성을 죽이고, 강.간하고, 불태우고, 훔치고, 고문하는 놈들을 생산한다고 하는데, 나는 그게 “문화”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떤 “문화”가 지옥을 생산해내는가?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문화"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 이웃들이 술에 취해 난투를 벌이는 대신 도스토옙스키를 읽고 난간이 끊어진 채 서로 몸을 던지며 "내가 떨리는 생물인가, 아니면 제게 권리가 있는가?"라고 소리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애초에 그들이 벽에 적힌 낙서 외에 다른 것을 읽기는 하는지 의심스럽다.


우리 집에 좋은 도서관이 있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었다. 도서관은 나의 가장 큰 위안거리였다. 그곳에서 내가 본 가장 아름다운 것은 귀스타프 도레(Gustave Doré)의 부식 동판화와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신곡(Divine Comedy)" 복제품이었다. 이들은 지역 신문의 1면에 인쇄되었다. 나는 그것들을 잘라내어 수첩에 모았다. 바실리 베레샤긴(Vasily Vereshchagin)의 두개골 피라미드 그림 "Apotheosis of War"의 사본이라던가, 세포 구조를 묘사한 생물학 책의 그림도 있었다. 오늘날에는 이 모든 것이 나에게 상징적으로 보인다. 사람들은 지옥 한가운데에서 자신을 위로할 무언가가 필요하다.


일곱 살 때 침례를 청했다. 나는 열한 살 때, 하나님께서 내 기도에 응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도서를 찢었다. 폭력은 사회의 기초이다. 육체적, 성적 의사 소통이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에게, 강한 사람이 약자에게 저지르는 폭력 말이다. 밤에 나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 쿵쾅거리는 소리, 가구가 떨어지는 소리, 유리가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우크라이나에서 잔학행위를 저지르는 러시아군은 어디에서 왔는가? 그들은 폭력이 곧 규범이고, 연민이 육체적 고통까지 유발하는 사회에서 왔다. 이곳에서 당신은 강.간범 아니면 피해자일 뿐이다. 이러한 폭력은 불행, 시기, 증오, 산업과 경제의 붕괴, 사회 제도와 제대로 기능하는 민주주의의 부재에서 비롯된다. 소련의 붕괴는 “새로운 시작”이 아니라, 태초부터 자유의 수도(모스크바, 상트페테르부르크 등)와 부패의 수도(낙후된 지역)를 분리한 것이다. 암시장에서 아기를 싸게 살 수 있었고, 알코올 중독자인 엄마가 갓난아기를 거지에게 보드카 한 병에 팔았다. 폭력은 그때부터 이미 시작된 것이다. 팔려간 아기들은 일찍 죽었다.


당시 무장한 민병대는 이를 알고 자기 사업의 몫을 챙겼다. 물론 오늘날, 이 모든 것이 다른 차원으로 바뀌긴 했다. 아기를 안고 있는 거지가 사라졌다. 강도가 경찰이 되었고, 경찰은 반대로 강도가 되었으며, 그들은 모두 사업가, 정치인, 국회의원이 되었다. 2020년 벨라루스, 그리고 지난 15년간 러시아에서 시위대에게 행해진 일을 살펴본다면, 잔인성에 대한 의문의 여지는 사라진다. 남녀 할 것 없이 고문을 당했을 뿐만 아니라 경찰서, 교도소에서 강.간을 당했다. 그리고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



사상가의 얇은 층은 성장하고 있다


1990년대 소련의 붕괴와 함께 절단되고 주변화된 사회는 민주주의, 법, 행정, 경제, 사회 제도 등 모든 시스템이 당국에 의해 통제되는 푸틴의 “블랙홀”에 빠져있다. 때로는 그 모든 역경에도 불구하고 당국의 순전한 태만 때문인지, 아니면 당혹스러운 우연의 일치 때문인지 사상가, 분석가, 활동가의 얇은 층이 형성된 것처럼 보인다. 모든 사람이 술을 마시고, 때리고, 살인한 것은 아니었고, 일부는 이전에 금지됐던 문학을 읽고,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1990년대 러시아 정부가 “국가를 무방비 상태로 서구의 손에 넘겨주었다”고 비난받은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모든 “실수” (“국가를 서방에 넘겨준”)가 해결되고, 자유가 마침내 억압되었으며, 지식인들이 나라에서 쫓겨나고, 감옥에 격리되고, 협박을 받았다.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입을 열려고 하지만, 군중은 그들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러시아) 당국은 최근 밀고를 받으려고 봇을 설치했다. 누구든지 러시아군을 비방하면 이름과 성을 신고하고, 고발하고, 스크린샷을 증거로 첨부할 수 있다. 모든 정보는 국가 감독 기관인 로스콤나조르(Roskomnadzor)에 직접 전달된다. 놀랍게도 이러한 계획은 당국의 의도와 반대로 돌아갔다. 수많은 "정보 제공자"가 펠메니 요리법, 휴가 사진, 새끼 고양이와 공룡 비디오, 가짜 주소 등 정치적 밈의 공세를 보냈다. 이는 당국이 설치한 봇을 압도했고, 거의 쓸모없게 만들어버렸다. 희망은 그 자신이 미처 죽어버리기 전에 풍자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똥통에서 깨끗하게 벗어날 수 있을까? 가능할까? 똥과 피를 씻어내고 깨끗한 나라를 만들수 있을까? 그리고 몇 세대가 지나면 더 이상 악취가 나지 않게 될까?



독재자는 권력에 집착한다


생각하고 분석하는 계층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국의 탄압 시도와 함께 민중이 크게 의기소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성장하고 있다. 아우기아스의 외양간(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30년간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외양간)을 청소하는 것은 바로 이 사람들이다. 그리고 문제는, 폭력 없이 이를 이뤄낼 수 있을까?


책상에 달라붙어 웅크리고 있는 푸틴이 연방의 “십자군 전쟁”을 책임지고 있는 장관에게 말을 걸고 있는 모습(저번에 올라왔던 책상 붙잡고 있는 모습)은 끝을 넘어 권력에 매달린 독재자를 상징한다. 그러나 누군가가 푸틴 통치하에서 왕좌를 전복한다면(쿠데타를 일으킨다면) 러시아는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되면 푸틴은 반드시 넘어질 것이다. 이것은 폭력을 기반으로 하는 모든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약한 자는 구타를 당하고 말 못하는 자는 짓밟히는 것이다.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war&no=2624367



댓글 반응 펌

비슷한 문제가 러시아 뿐만 아니라 사실 동구권 구소련 지역 대부분에서 벌어졌고 그나마 발트3국이나 체코 정도가 좀 소프트하게 넘어갈 수 있었지. 근데 저지경으로 악화된건 러시아가 독보적이지.

젊디 젊은 동네 양아치들이 갱단 조직해서 살인 저지르고 여자 하나 찍어서 집단강1간하고 그럼ㄹㅇ. 경찰은 당연히 손놓고 있고. 애들이 정상인으로 자라는게 더 이상할지도.
   우리나라는 그렇게까지 된 적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함.
과거 대한민국에서 비슷한 일들이 있었더라도 그건 아마 '사건'이었겠지만 러시아 시골 사람들에게는 그 자체가 생활이었다는 차이가 크지.
내가 본 영상에서 그 강1간당한 여자애는 결국 주동한 애가 감옥 가서 죽을 때까지 10년 이상 계속 당했음.

러시아에서 미친짓 찍어서 ( 예를 들면 빌딩 옥상 난간에서 걷는다든가 ) 올리는 애들이 이유가 있엇네

예전에 양아치 범죄자 살인마들을 군대로 보내면 아주 좋은 군인이 될거란 말을 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지금 러시아군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고 있네. 고등학교 교사였던가?

러시아제국도 대도시만 잘살고 나머지는 조선이나 중국 농민들보다도 참혹했었지....


출처 : 해외 네티즌 반응 - 가생이닷컴https://www.gasen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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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게임 22-05-03 19:48
   
집에 있는 건 도서관이 아니고 서재나 서가 겠죠...
행복찾기 22-05-03 22:00
   
원래 그런 모습이 왜구국이나 지나국이나 러시아의 모습이었죠...
조선,, 고려.. 그전의 한반도 또는 (고)조선에서는 그런짓을 하는 자들을 잡아다가
그런 짓 못하게 했죠...

왜구?? 짱꼐?? 유럽?/??
그런 것이 일상인 세상이었습니다...

동북아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중국, 일본을 우러러보다가
나중에는 조선,, 한국을 좋아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다른생각 22-05-04 01:27
   
러시아야 뭐..
이런 폭력적인 잔혹 문화(?).. 분위기는 18세기.. 19세기에 기록된 서민들의 생활상 문헌들만 들여다봐도 정도의 차이일뿐 일상적인 풍경이였는지라 새삼스러운것은 아닌데..
큰 변화없이 수세기 지나서도 반복되는걸보면 지역특인지 종특인지..
오히려 소수 민족들이 모여사는 지역마을이 더 온정이 넘칠지경이었고..

예로 소련의 영향력하에있던 몽골같은 경우도 불과 얼마전까지 사람이 죽거나 반신불수정도의 큰 부상자가 나지않는 이상 폭력사건에 관대한 분위기였어서 왠만한 주먹다짐은 수사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했고..
사건 접수조차도 안받고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는데..

구소련 붕괴후 자본주의 도입초기 적응못했던 전반적인 동구권 사회분위기도 비슷했던 기록들이 넘쳐나는걸보면 폭력을 견제하는 공권력이 제역할을 못하면 사회가 어떻게 일그러지고 무력해지는지 잘보여주는 예시같기도 함..
밥밥c 22-05-04 05:55
   
좌파가 말하는 가장 이상적인 사회입니다.

그래서 늘상 그들과 친해야 한다고 하지만,

결국 자기들도 싫어하는 집단일 뿐이죠.

정신분열증 환자 수준이라 '내로남불'이라는 단어만 남겼죠.
     
태강즉절 22-05-04 12:13
   
입을 삐둘어졌어도 말은 바로하랬다고.
저 푸틴 러샤의 꼬라지에서 뭔 좌파가 보이는지?..
제 눈에는 러샤 "극우"의 끝갈데없는 국가주의 개뻘 꼬라지만 보이는뎁쇼!..ㅋㅋㅋ
어디 좌파가 국가란 틀의 팽창을 추구하는지?..사상만 같다면 그걸 뽀샤는게 좌파 아녀?
러샤 제국의영광을!!!...소원하는게.... 좌파의 꼬라지여?..ㅋㅋ
하긴 울 우파라 참칭하는 짝퉁 사이비들은 타국 우선이니 말해뭐혀!...
태강즉절 22-05-04 12:03
   
"예따 러시아---" ...이것이 러시아다^^
생명경시, 절제되지 못한 야만성,잔혹함의 표출이겠지
70여년 철저 폭압통제에서 겨우 사육 당하며 비비다.... 그냥 툰드라 쌩어름구덩이에 자력갱생하라 내팽겨쳐진...
그걸 혹자는 불곰이라 비유하며 미화하겠지만..약육강식...그냥 쌩양아치 근성 그 자체만 남은..
뭐 사실 대부분 국가들의 본질이 거의 다 그런겨..
그나마  현대 시류에따라 먹고 살만한 국가는 엄격한 규율과 통제로 물밑에 숨겨져있는거지만..
인간 본성이 본래 그런겨
(우리네야  유교적으로다가(?) 주둥이로만 공격하는 착한병걸린 덕분에..서로 절제하고 겸양해 그런거겠지만..)
우리가 아주 별종인거여 (인간 본연의 자세를 찾겠다는 그런)
뭐 시비거리가 될 수도 있겠지만^^
6.25때의 쌍방간 잔학함도...왜넘들 치하의 생명경시 교육 영향으로 말미암아 그러했을지도란 생각까지도..